역대상 7:1-8:40 요단 서편 지파들과 베냐민 지파의 족보
7~8장은 이미 언급한 유다를 제외한 요단 서편 지역에 자리 잡은 여섯 개 지파 자손들의 계보다. 7장은 여섯 지파에 대해 개괄하고 있으며, 8장은 이 중에서 베냐민 지파의 자손을 좀더 자세하게 다룬다. 열두 지파의 계보에 대한 언급은 8장에서 마무리된다. 역대상 2:1~2에는 열두 지파의 이름이 모두 들어 있지만, 2~8장의 계보에서는 스불론과 단 지파 사존에 대한 언급이 빠져 있다.
1. 요단 서편 지파들(7장 1절~40절)
1~5절은 잇사갈 자손의 계보다 4대까지만 소개되고 용사의 숫자가 첨가 된다. 이 기록은 에스라가 군사의 숫자를 파악하기 위해 인구조사 자료를 사용한 것으로 추측한다. 잇사갈 용사의 숫자는 역대기 저자만 가지고 있는 자료로 다른 성경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잇사갈 용사 87,000명은 민수기의 인구조사(민 1:29 54,400명, 민 26:25 64,300명) 때와 비교하여 많은 숫자다. 잇사갈 지파는 시므온 지파처럼 사라지거나 줄어들지 않고 존속하며 증가하였다는 것을 나타낸다.
6~12절은 베냐민 자손에 대해 2~3대까지의 간략한 소개와 용사의 숫자가 나온다. 벨라, 베겔, 여디아엘 세 명의 아들들과 그들의 자손만 간략하게 언급된다. 베냐민 지파의 좀 더 자세한 명단은 8장에 나온다. 본문의 명단과 용사 숫자 역시 군사적 목적으로 인구조사 한 자료를 사용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이런 인용은 다양하게 수집된 자료를 사용하여 족보를 분류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13절은 납달리 지파의 납달리의 아들 야시엘과 구니와 예셀과 살룸만 언급된다. 에스라가 남달리 지파에 대한 자료가 이것 외에 없었음을 나타낸다. 더불어 단과 스불론에 대한 계보는 아예 생략되었는데, 요단 서쪽, 북쪽 지파에 대한 자료가 없었음을 보여준다. 에스라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남유다 왕국의 사람으로 유다와 베냐민과 레위 지파에 대한 자료는 많이 가지고 있었지만, 북쪽 일부 지파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했다. 하지만 에스라는 다윗 왕조와 성전을 중심으로 한 온 이스라엘의 회복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할 수만 있으면 북쪽 지파의 계보를 함께 역대기 족보에 남기려고 최선을 다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참고로 북쪽 지파들의 경우 앗수르에 의해 좀 더 일찍 통치하에 들어갔기 때문에 자료가 사라졌을 가능성이 크다. 언약 백성이지만 여호와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면 누구라도 이렇게 그 땅의 이름도 일찍 사라지게 됨을 보게 된다.
14~19절은 므낫세 자손의 계보다. 이 계보는 정확하게 재구성하기 어렵다. 다만 지역적으로 요단 동편과 서편으로 나뉘고, 첩의 아들인 마길의 자손들은 요단 동편 지역 부족으로 마길의 아들 슬로브핫과 그의 딸들과 마길의 누이로 소개된 함몰레겟과 스미다의 자손은 요단 서편 지역의 부족이다. 슬로브핫의 딸들에 대한 언급은 민수기 26장의 사건을 통해 서므낫세 가문은 여성들을 통해 가문이 이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20~29절은 에브라임 자손의 계보다. 이 계보는 민수기 26:35에서 유래했는데, 수델라 종족, 베겔 종족, 다한 종족으로 소개되어 있기에 본문의 족보는 가문의 이름을 기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에브라임 계보에서 이스라엘의 탁월한 지도자인 여호수아가 나온다. 특이한 것은 딸인 세에라가 위아래 벧호론 성읍과 우센세에라 등 세 개의 성읍을 건설한 점이다. 성경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성읍을 지은 여성은 세에라가 유일하다. 이를 통해 브리아로 이어진다 그의 이름의 뜻은 ‘재앙 가운데 있다’는 의미인데 그 의미와 다르게 매우 축복을 받은 것으로 소개한다.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역을 한꺼번에 소개하는 것은 이들이 모두 요셉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30~40절은 아셀 자손 족보다. 아셀 자손은 직계와 방계를 모두 포함한 복잡한 족보를 보여준다. 직계는 6대까지 계보가 나와 다른 북이스라엘 지파 보다는 많은 자손의 이름이 알려져 있다. 잇사갈처럼 마지막에 용사의 숫자가 언급되고 있어 아셀의 자료도 인구조사 문서에서 나왔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한편 용사의 숫자를 기록하고 있는 것은 군사적으로 북이스라엘이 약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북이스라엘의 멸망이 군사력의 문제가 아니라 동므낫세 지파의 멸망에서 보여주듯 하나님을 떠나 다른 신을 섬겼기 때문이다.
2. 베냐민 지파(8장 1~40절) 1~28절의 베냐민 지파는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인 사울의 지파이기에 자료가 상대적으로 많이 남아있어 유다와 레위 지파의 족보와 견줄 정도로 많은 분량이다. 이 족보는 후손의 이름과 함께 그들이 사는 지역도 같이 언급된다. 베냐민 지파가 거주하는 지역은 주로 게바, 오노, 룻, 아얄론, 예루살렘이었다.
14~28절은 예루살렘에 사는 후손들의 명단으로 브리아와 엘바알과 시므이와 사삭과 여로함의 자손들이다. 29~32절은 기브온 지역 가문들의 명단이다. 기브온은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지역 이름으로 기브온이 특별히 언급된 것은 예루살렘이 있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30~40절은 베냐민 지파중에서 사울 가문의 계보다. 사울 가문은 넬, 기스, 사울, 요나단, 므비보셋으로 이어져 울람의 아들들이 모두 용사요 활을 잘 쏘는 자라는 언급으로 끝나는데 사울부터 시작해서 12대가 언급된다. 사울의 계보에서 놀라운 것은 사울 가문이 비록 왕위를 계승하지 못하지만 모두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존속할 뿐 아니라 울람의 경우 자식과 손자가 150명이나 될 정도로 번성했다는 것이다. 울람의 자손들은 포로에서 돌아온 시대의 사람들로 이들은 돌아온 공동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자신들이 사울의 왕정이 무너진 것과 자손이 많이 남은 것이 서로 상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울 가문의 후손이 많이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요나단과 다윗의 언약의 결과다.
나는?
-각 지파들의 족보는 하나님 나라 용사들의 족보였다. 족보에서 특히 용사들과 출전 가능한 병력의 수효를 중점적으로 부각시킨 것은 다윗 시대의 ‘징병을 위한 인구조사’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대상 21:2, 5). 또한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에게 마치 가나안 정복에 임하듯 하나님 나라 재건을 위해 참여하고 협력할 것을 독려하는 듯하다.
-고통 중에 태어난 야베스에게 복을 더하셨던 것처럼(4:9,10), 재앙을 당해 큰 슬픔에 빠져 있는 에브라임의 가정에 재건의 희망을 주신다. 아들(브리아)의 출생과 세 성읍을 건설한 딸(세에라)의 행적, 그리고 이스라엘에게 새 시대를 안겨준 여호수아로 이어지는 계보가 이를 증명한다. 불행과 시련의 담을 뛰어 넘는 여호와의 복(창 49:22)이었다.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함이 없는 주의 복이 재기와 재건으로 우리를 이끄실 것이다.
-홀대받은 이방 여인과 아버지를 잃은 딸들을 통해 영적인 계보와 기업을 잇게 하신 것처럼(7:14, 15), 버림받은 여인(후심, 8:8)의 후손들을 보호하고 보존하며 강성케 하신다. 세상에서는 외면당한 여인이었지만 하나님 나라의 복과 역사에서 소외되지는 않았다.
-시기에 사로잡혀 다윗을 죽이려 했던 사울과는 달리, 다윗을 생명처럼 여기고 다윗의 왕권을 인정하며 그 나라를 세우는 데 공헌한 요나단의 후손을 끝까지 보존해 주신다(삼상 20:15,42). 우애를 넘어 다윗을 세우신 하나님(뜻)에 대한 순종과 충성을 보였기 때문이다(삼상 23:16~18).
*큰 용사들이었던 북 이스라엘의 지파들이 사라졌다. 힘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없었다. 하나님이 없는 큰 용사의 힘은 아무 소용이 없다. 하나님의 약속(말씀)은 오늘을 살며 미래에 열매를 맺힌다. 오늘 약속을 따라 살지 못하면 미래는 그 열매가 없다. 하나님의 약속(말씀) 없는 과거, 현재는 무의미한 미래만 기다릴 뿐이다.
*큰 용사되려고 노력하기보다 하나님의 사람이 되려고 부단히 힘써야 한다. 이 세상에서 인정받는 용사보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하나님의 사람이어야 한다.
*주님께서 오늘도 이 모든 문제들 앞에 직면하게 하실 때 “용사”처럼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언약)으로 직면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이방 문화와의 혼합 위험성을 강력하게 경고한다. 지금 여기 하나님 나라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내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역대기 족보가 주는 교훈은 선명하고 간결하다. 신앙과 세속 문화의 경계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야 하는지 깊이 고민해야 할 것이다.
*교회 공동체는 이런 고민에 대해 에스라가 포로귀환 공동체에게 역대기, 에스라, 느헤미야와 같은 성경을 통해 끊임없이 촉구했던 말씀 중심, 하나님 신뢰함의 걸음을 성실하게 감당해야 하며 뒤따르는 성도들에게 길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
*주님, 아무리 용사가 많더라도 하나님 신뢰함 없는 용사는 오합지졸일 뿐임을 깨닫습니다. 한편 아무리 오합지졸같은 연약한 존재들이 모여 있더라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합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심을 알기에 믿음으로 걸어나아가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