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12:1-40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함께 하고, 함께 즐거워하며 세운 왕, 다윗
에스라는 다윗이 왕이 되기 전부터 많은 이스라엘 사람의 지지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린다. 1~22절은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다닐 때부터 그와 함께했던 지파와 그 지파 출신 용사들의 명단을 소개한다. 23~40절은 사울이 죽은 후 다윗이 헤브론에서 왕이 될 때 다윗과 함께한 지파와 그 지파 출신 명단으로 다윗이 단지 유다 지파의 왕이 아니라, 온 이스라엘의 지지로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하였음을 보여준다.
1. 다윗이 도망 다닐 때 함께한 용사들(1~22절)
1절은 1~22절에 언급된 명단이 다윗이 시글락에 있을 때 함께한 용사의 명단이라고 밝힌다. 시글락은 블레셋의 다섯 왕 중 하나인 가드 왕 아기스가 다윗에게 준 성읍이다. 이곳에서 다윗은 사울을 피해 있었다. 사무엘상 22:2에 따르면 사울에게 도망치기 시작한 초기 아둘람에 있을 때 그를 따른 용사들이 400명이었고, 사무엘상 27:2에서는 다윗이 자기 용사 600명을 데리고 가드 왕 아기스에게 의탁했다. 이에 따르면 본 단락의 명단은 600명의 용사 중에서 나온 것이다.
가장 먼저 언급된 사람들은 베냐민 지파 사람들이다. 에스라는 다윗이 이미 사울의 지파였던 베냐민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다는 것을 강조하며, 다윗이 모든 지파의 지지를 골고루 받은 하나님이 선택한 왕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2절은 베냐민 지파의 특징을 양손잡이로 소개한다. 물매를 잘 다루는 왼손잡이로 소개된 사사기의 기록보다(삿 3:15; 20:16) 왼손뿐 아니라 오른손도 사용하는 더 유능한 용사들인 것을 강조한 것이다. 베냐민 지파 사람들은 비록 소수지만 매우 용감하고 싸움에 능한 전사들이었다. 베냐민 지파의 우두머리 아히에셀의 이름 뜻은 “형제의 도움”으로 다윗을 돕는 자라는 그의 정체성이 잘 드러난다. 그들은 기브아 사람들, 기브온 사람들, 고라 사람들, 그돌 사람의 이름이 언급된다. 이 중에서 기브온 사람 ‘이스마야’는 30인 용사의 우두머리로 소개된다(대하 11장의 30인 용사 명단에 등장하지 않고, 이후 30인 용사의 우두머리가 여러 명 소개되는 것을 보면 시기에 따라 우두머리가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8~15절은 갓 지파 용사들의 명단이다. 갓 지파는 요단 동편 중간에 있었다. 그런데 요단 서편 끝에 있는 광야 요새(정확한 위치는 불분명하다. 삼상 23:14) 까지 다윗을 돕기 위해 온 것이다. “스스로 분리되었다”라는 표현은 특별하게 다윗에게 헌신된 자들이라는 의미다. 이들은 특히 창과 방패를 잘 쓰는 사람들이며, 얼굴은 사자 같고 산의 사슴같이 빠르다고 묘사한다. 그만큼 강하고 재빠른 뛰어난 용사들이라는 의미다. 여기서 언급된 11명은 천부장과 백부장 역할을 한 지도자의 이름이다. 15절은 갓 용사들의 용감함과 대담함을 보여주는 일화로 요단강물이 가장 많았을 때 위험을 무릅쓰고 적들이 방심한 틈을 타 기습 공격을 하여 골짜기 거민을 물리쳤다는 것을 들려준다.
16~22절은 다윗과 함께한 지파의 일화를 중심으로 기록되었다. 16~18절은 베냐민 지파 용사들의 일화다. 이들이 다윗에게 합류한 것은 다윗이 요새(광야에 있는 요새, 8절) 에 있을 때인데, 이를 근거하여 1~8절의 시글락 시절보다 이전부터 다윗과 함께한 용사들임을 알 수 있다. 17절은 다윗이 자신을 찾아온 이들과 함께 언약을 맺는 장면이다. 자신을 돕겠다고 찾아온 사람들에게 하나님 앞에서 맹세하게 함으로써 이들과 온전하고 굳건한 관계를 맺으려고 했다. 이 맹세 속에서 다윗은 자신이 할 부분과 하나님께서 하실 부분을 구분한다. 아직 힘이 없는 상황이기에 자신을 도우면 자신이 잘되었을 때 절대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책임을 강조하고, 한편 배신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처벌을 원한다. *배신의 위험성은 하나님의 손에 넘기는 다윗의 모습에서 자신이 책임질 수 없는 부분에 대하여 스스로 자책하고 괴로워할 필요 없다.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없고 어떻게 변할지도 알 수 없는 사람 간의 마음 때문에 자책하기보다는 자신의 선함을 지키며 하나님의 손에 넘기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런 요구에 대해 하나님의 영이 임한 아마새는 평안을 세 번이나 반복하면서 하나님께서 다윗을 돕고 계신다고 고백한다. 아마새의 고백은 다윗이 사울에게 반대하고 왕이 되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밝힌 것이다.
19~21절은 사무엘상 27:2~6을 배경으로 한다. 다윗은 블레셋 방백들의 반대로 이스라엘 군대를 치려는 블레셋 군대에 합류하지 못하는데, 이때 므낫세 지파 용사들이 다윗에게 합류한다. 이들의 업적은 다윗이 시글락을 침략한 아말렉을 칠 때 함께 전쟁한 것이다. 다윗이 가장 어려운 순간에 므낫세의 용사들은 다윗과 함께 싸운 것이다. 22절은 이 단락의 결론으로 다윗에게 사람들이 점점 모여들었고, 결국 하나님의 군대 같은 큰 군대를 이루게 되었다. ‘하나님의 군대 같다’라는 표현은 단지 숫자가 많다는 의미보다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에 언제나 전쟁에서 승리하며 승승장구하는 힘 있는 군대라는 의미다. 이때 다윗의 군대는 실제로 600명 정도 되었지만, 이들은 하나님이 도우시므로 늘 승리하였다.
2. 헤브론에서 왕이 될 때 함께한 용사들과 즉위식(23~40절)
23~37절은 헤브론에서 왕이 될 때 함께 한 용사들로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다윗이 헤브론에서 왕이 될 때부터 지지하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레위 지파의 경우 아론과 사독 가문까지 언급하여 제사장 그룹이 다윗을 왕으로서 절대적으로 지지하였다는 것을 강조한다.
38~40절은 다윗이 헤브론에서 왕으로 등극하는 장면으로 “성심으로”, “온 이스라엘”, “한 마음으로”라는 표현을 통해 모든 이스라엘이 진심으로 다윗이 왕이 되는 것을 지지했으며, 사방에서 다윗에게 음식을 보내 3일 동안 풍족하게 즉위식 잔치를 벌일 수 있게 했다고 한다. 다윗의 즉위식은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음식을 보내며 기뻐하는 축제의 자리였다. 하나님이 선택하시고 기뻐하는 왕을 가진 이때의 이스라엘은 참으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나는?
-사울의 집요한 추격과 위협을 피하여 적국인 블레셋에 숨어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 속에서 다윗을 찾아와 도움을 준 용사들은 다름 아닌 사울의 동족인 베냐민 지파(기브아 사람)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결심과 행동은 사울과 지파에 대한 배반이나 변절로 충분히 비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뜻(23, 29절)에 대한 순종이며 충성이었다. 어떤 상황이든지 하나님의 뜻이 먼저다. 당연하지만, 때로 이를 순종하는 것이 태산만큼 버거운 때가 있다. 그럼에도 기꺼이 다윗을 도움 용사들의 용기와 믿음이 도전되는 아침이다.
-갓 지파는 “비옥한 땅 요단 동편”을 떠나 “척박한 땅 광야”에 거하는 다윗을 찾아왔다. 그들은 군사로서 용맹함과 민첩함에 통솔력까지 갖춘 준비된 용사들이었다. 사울의 비호 아래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음에도 도망자 신세의 다윗을 도우러 광야 요새까지 찾아왔다. 다윗은 처음에는 그들의 진의를 의심했으나 성령에 감화된 “아마새”에게서 진심 어린 확언과 충성의 맹세를 듣고 받아들인다.
-잇사갈 자파 가운데서도 전쟁과 통솔에 능하고 앞서 시세를 간파하고 사명을 깨달아 실천에 옮긴 지도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처세에 능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를 분별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것이다. 신앙의 타협과 변절을 강요받는 시대 속에서 세상의 포로가 되지 않기 위해서 영적 분별력과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것이 더없이 중요함을 간과하면 안 되겠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돕는 자 중에 함께 계셨다. 또한 다윗이 사무엘에게서 기름 부음 받고(삼상 16:13) 왕의 자리에 오를 때까지 신실한 친구(요나단)와 충성스러운 용사들(하나님의 군대)을 보내 도우셨다. 이 은혜로 사울의 위협, 거친 광야(8절), 위험한 적지(1절)에서도 다윗은 안전했고 가야 할 길과 해야 할 일(20절)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다윗과 함께 광야를 보낸 용사들의 면면이 대단하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나서는 것은 당연하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방 땅에서의 더부살이, 광야에서의 방랑 생활이 만만치 않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갈 때 함께 감당해야 할 것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기꺼이 감당한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살아내는 삶의 여정이 이렇지 않을까?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기에 오늘 직면해야 할 고달픔을 인내하며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먼저 아마새의 고백에서처럼 다윗을 도우시는 하나님이 나를 도우심을 믿는다. 그 도우심은 사람들을 붙여 주시는 것이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을 “하나님의 군대”라 불릴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기 뜻을 따라 돕기 위해 모아 주셨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삶을 뒤돌아보니 나에게도 역시 다윗과 같은 용사들이 있었다. 먼저 사랑하는 아내가 용사다. 아내가 없었으면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몇 번이고 함께 걸어온 그 광야에서 낙오되었을 것이다. 또 사역의 현장에서 붙여 주신 동역자들이다. 공동체의 지도자들이다. 이들이 없었다면 어떻게 사역의 현장에서 “기쁨”을 누릴 수 있었을까? 이들은 모두 용사다. 이제껏 만난 목회의 동기들이다. 많은 목회적인 고통과 아픔을 함께 고민하고 시간을 나누는 그들이다. 그들은 말씀의 현장을 꿋꿋이 지킬 수 있도록 함께 해 주는 용사들이다. 어찌 그 이름들을 잊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우리가 그 광야를 함께 통과할 수 있었고 지금도 통과하는 힘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뜻을 따라’였기에 가능하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면 기쁨이 있다. 하나 되어 누리는 기쁨이 반드시 있다.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 나라 진실한 공동체를 이루어가는 과정도 이렇게 인도하실 것이다. 온 성도가 한자리에서 기쁨의 축제를 벌일 것이다. 그 자리에 기쁨이 있을 것이다. 다윗 왕국의 출발은 거룩한 종교의식이 아니었다. 함께 즐거워하는 축제였다. 그 기쁨은 하나 된 하나님의 뜻에 대한 감동의 표현이었다. 하나님의 기쁨이 끊이지 않는 공동체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함께 광야를 통과하는 공동체이다. 이런 공동체가 하나님의 군대이다. 우리 더온누리 공동체가 이런 공동체 이루어가기를 소망한다.
*한편으로 나도 다윗을 돕기 위해 합류한 용사들과 같이 되고 싶다. 누군가에게 그런 용사가 되어야 하겠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기꺼이 마음을 모으고 힘을 합해야 하겠다. 시글랏이든, 요새이든 달려가야겠다. 하나님의 뜻이니까…. 나에게 오는 용사도 필요하지만 내가 용사가 되어야겠다.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어디든지 달려가 그 뜻대로 마음과 힘을 합하여 함께 해야겠다.
*주님, 악한 사울 왕 아래에서 충분히 부화뇌동할 할 수 있었지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 거친 광야와 적국의 땅이라도 다윗과 함께 하기 위해 달려간 용사들이 사뭇 대단합니다. 저의 걸음도 하나님의 뜻이 있는 어떤 곳이라도 담대히 나아가도록 분별력과 용기를 주십시오.
*주님, 모든 백성이 잔치하며 새로운 왕의 등극을 축하하는 모습이 공교롭게도 이 나라의 새로운 지도자가 선출된 시기와 맞물려, 우리 민족에게도 이런 의롭고 바른 지도자가 세워지는 것이 모두의 기쁨임을 새 지도자를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을 열어 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