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두 번의 실패는 없다 [대상 15:1-29]
 – 2025년 06월 13일
– 2025년 06월 13일 –
역대상 15:1-29 두 번의 실패는 없다
    
다윗은 예루살렘에 처소를 예비하고 다시 언약궤를 운반하고자 한다. 재시도 과정에서 다윗은 언약궤를 운반할 레위인을 선정하는 등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 예루살렘 장막에 안치된 언약궤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가운데 임재하시고 통치하시는 사실을 공적으로 선언하는 의미가 있기에 다윗은 이를 기리기 위해 찬양대를 조직한다.
    
역대기는 평행 본문인 사무엘하 6:12~19과는 다르게 언약궤를 가져올 아론 자손과 레위인들의 명단과 행렬 앞에서 찬양한 레위인들의 명단이 상당히 길게 첨가되어 있다. 15장에서는 고핫 자손이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언급된다. 민수기 3장과 4장에 따르면 고핫은 레위의 아들로 고핫 자손에서 대제사장인 아론의 가문이 나온다. 고핫 자손은 성소에서 사용되는 모든 기구, 즉 법궤와 상과 등잔대와 제단들과 성소에서 쓰이는 기구와 성막을 관리하고 운반하는 임무를 맡았다. 민수기 4장에서는 특별히 그 임무를 자세히 기록하며 고핫 자손이 끊어지지 않게 주의할 것을 당부까지 했다. 이는 지성소에 있는 법궤를 잘못 다루다가 죽을 수 있는 위험한 일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세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 즉 대제사장이 이들을 특별히 감독하라고 주의를 준다. 법궤는 오직 대제사장만 볼 수 있었다.
    
    
    
1. 다윗이 하나님의 궤를 다시 가져오려고 준비함(1~3절)
1절은 다윗의 궁전 안에 하나님의 궤를 둘 곳을 마련했다고 밝힌다. 2절에서 다윗은 오직 레위인 만이 언약궤를 멜 수 있다고 하는데 그 이유를 하나님께서 그들이 여호와의 궤를 메고 영원히 섬기도록 선택하셨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이와 같은 기록을 통해 1차 법궤 이송 실패의 원인 중의 하나를 오직 레위인 만이 하나님의 궤를 옮겨야 한다는 명령을 어겼기 때문으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에스라는 이송 실패의 원인을 한 가지로만 보지 않는다. 13절에서는 옮기는 방식에 문제가 있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2절에서 이를 언급한 것은 4~10절의 아론과 레위 지도자들의 명단을 함께 삽입하여 하나님의 궤를 옮기는 데 제사장과 레위인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다.
    
다윗이 1차 실패를 통해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였고 하나님의 궤를 옮기는 올바른 방법을 알았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다윗은 이전과 동일하게 모든 이스라엘 사람을 예루살렘으로 불러 모아 하나님의 궤를 다윗성으로 옮기는 행사에 참여하게 한다. 이것은 궤를 옮기는 것이 다윗 개인의 일이 아니라, 온 백성이 함께해야 할 이스라엘 전체를 위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2. 아론 가문과 레위 지도자 명단(4~10절)
레위 지파 여섯 개 가문과 지도자들의 이름과 숫자가 나온다. 레위의 아들은 역대상 6:1에 따르면 게르손과 그핫과 므라리다. 이들 세 가문과 그 지도자들이 먼저 언급된다. 그핫 자손의 지도자는 우리엘인데, 그는 그핫의 아홉 번째 후손이다(대상 6:22~24). 그리고 므라리 자손의 지도자는 아사야로 그는 므라리의 일곱 번째 후손이다(대상 6:29~30). 그리고 게르손의 지도자는 요엘이다. 요엘은 게르손의 후손임이 분명하나 어떤 관계인지는 명확하게 알기 어렵다. 이렇게 레위 가문을 여섯 개로 나누는 명단은 본문에서만 등장한다. 대부분은 세 가문(그핫, 므라리, 게르손)을 중심으로 레위 지파를 나눈다.
    
이 명단에서 가장 중요한 가문은 그핫 가문이다. 그핫 가문 자체와 그의 후손의 세 가문을 합치면 가장 인원이 많다. 이렇게 그핫 가문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그핫 자손에게서 대제사장 가문인 아론이 나왔기 때문이고, 그 결과 그핫 가문이 하나님의 궤를 맡았고 이것을 옮기는 임무도 맡았기 때문이다(민 3:31; 민 4:15).
    
    
    
3. 레위 자손이 하나님의 궤를 메고 돌아오다(11~24절)
다윗은 대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을 부른다. 아비아달은 사울의 제사장 아비멜렉의 아들로 다윗의 제사장으로 봉사한 인물이다(삼상 30:7). 아비아달과 아비멜렉은 다윗 시대 제사장으로서 사무엘서에서는 둘의 이름이 항상 같이 등장한다. 민수기 4:19에서는 사독과 아비아달를 부른 이유는 고핫 자손들이 하나님의 궤를 무사히 옮길 수 있도록 관리 감독하기 위해서다. 하나님의 법궤에 가까이 갈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대제사장들이기 때문에 사독과 아비아달이 법궤를 옮길 준비를 해야 한다.
    
12절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옮길 레위인들에게 스스로 거룩하게 하며 하나님의 궤를 옮길 준비를 하라고 전한다. 거룩하지 않은 자가 거룩한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없기 때문이다. 13절에서 다윗은 레위인이 하나님의 궤를 메지 않았기에 궤를 옮기는 첫 번째 시도가 실패했다고 설명한다. 즉,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깨달은 다윗은 주저하지 않는다. 레위 지파 그핫 자손에게 법궤를 메어 올릴 준비를 시킨다. 그들을 ‘성결’하게 구별하고, 백성들에게는 선포한다. 우리가 하나님이 정하신 대로 하지 않음으로 우리를 찢기셨다. “규례대로” 하나님께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13절). 최고 통치자가 자신의 실수를 솔직하게 백성들 앞에서 인정한다. 자신의 실수로 인해 일어난 참사였고, 그것은 백성들의 마음을 찢은 참사였음을 인정한다. 레위 자손들은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명령한 대로 하나님의 궤를 어깨에 메고 옮기기 시작하였다. 이제는 모든 것을 모세의 율법, 하나님의 규례대로 행했다고 강조한다.
    
16~24절은 하나님의 궤를 운반하는 행렬에서 노래하는 레위 가문 사람들의 명단이다. 역대상 13:8에서는 다윗과 무리들이 노래하고 악기를 연주하며 행렬을 따랐었다. 하지만 본 단락에서는 노래하고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도 모두 레위인 음악가들로 세운다. 17~18절은 대략적인 설명이고, 19~24절은 이것을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한다. 이들의 지도자는 헤만과 아삽과 에단으로 이들은 계속해서 성전 음악가로 등장한다.
    
    
    
4.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져오는 과정(25~29절)
25~26절은 레위인들이 무사히 오벧에돔의 집에서 하나님의 궤를 옮겨왔고 그에 대한 감사로 수송아지 일곱과 숫양 일곱으로 감사의 제사를 드렸다고 말한다. 27절은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하나님을 섬길 때 입는 옷을 입고 갖추어서 하나님의 규례대로 옮겼다는 것을 강조한다.
    
28절은 일반 백성들이 레위인 음악가들의 인도에 따라 연주한다. 역대기는 다윗이 춤추는 것을 못마땅해하는 미갈의 모습만 묘사한다. 이는 실패한 사울 왕가를 상징하는 것으로 사울 왕조의 실패와 다윗 왕조의 성공을 대조하기 위한 것이다.
    
    
    
나는?
*다윗에게 언약궤를 시온성으로 들이는 것은 포기할 수도, 미룰 수도 없었다.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를 의미하는 언약궤 없는 이스라엘은 더 이상 하나님 나라, 거룩한 백성일 수 없었다. 모든 민족이 다윗을 두려워했지만(14:17), 다윗은 하나님을 두려워했고(14:12),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이 누구인지 잊지 않았다.
    
*기돈 참사 이후 다윗의 석 달은 어땠을까? 다윗의 행동에 눈길이 간다. 궁전을 지으면서 하나님의 궤를 둘 곳을 정하고 그곳에 장막까지 친 것이다. 참사로 끝내지 않는다. 참사를 넘어 회복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중심 모시고 싶은 마음은 변치 않은 것이다. 온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다윗의 나라로 허락하셨지만, 하나님의 나라임을 잊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의 통치가 실제로 온 이스라엘 앞에 이루어지게 하려고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궤를 하나 된 이스라엘의 중심에 두고자 하는 것은 다윗의 간절한 마음이었다.
    
*다윗의 변치 않는 마음이 참 놀랍다. 하나님의 나라인 이스라엘의 실제적인 통치자 되시는 하나님을 잊지 않는 그의 겸손함이 놀랍다. 즉위 초기 온 이스라엘이 하나 되어 열정을 가지고 추진한 법궤 이전 축제가 기돈 참사로 마무리되었을 때, 그 실패를 결론으로 두지 않고 과정으로 만든 다윗의 마음이 놀랍다. 누구나 실패할 수 있지만 잘 분석하여 문제를 파악하고 다시 시도하여 바른 결과를 향해 달려가는 그의 자세가 놀랍다.
    
*이 모든 과정의 중심에는 다윗의 하나님이 진정한 이스라엘의 왕이며, 그의 통치만이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룬다는 변치 않는 마음이 있다. 그래서 참사 이후에도 꿋꿋이 장막을 치며 백성들에게 보여준다. 반드시 궤를 이곳에 옮기겠다는 것을…. 다만 석 달의 시간 동안 고민의 고민을 거듭 한 것이다. 왜 하나님은 웃사를 치셨을까? 그를 찢으셨을까? 그러다 마침내 찾은 것이다. 새 수레가 아니다. 레위 자손이 메고 옮겨야 한다!
    
*13장에서 정치 지도자들과 논의했던(13:1) 다윗이 이번에는 언약궤 운반의 실질적 책임자인 레위 지파 지도자들과 의논하며 세심한 주의와 신중한 책무를 당부한다. 레위 자손에게 몸을 성결케 하고 그 규례를 따라 언약궤를 꿰어 어깨에 메고 운반하도록 지시한다. 또다시 실패하지 않기 위해 하나님이 정하신 사람(2절)과 정하신 방식에 따라 심혈을 기울인다.
    
*변명과 회피로 일관했던 사울(삼상 13:11~12)과 달리 다윗은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시정한다. 철저한 회개와 말씀 순종이 뼈아픈 실패를 만회하고 언약궤와 함께 예루살렘을 향한 순적한 행보를 가능하게 한 것이다. 진실한 회개와 온전한 순종이 영적 회복과 도약의 길이다. 무딘 회개와 절반의 순종에 머물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우리가 규례대로 그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13절)”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자 한 열정과 열심으로 궤를 옮기고자 할 때 정작 다윗은 하나님께 묻지 않았고, 불러 모은 제사장들이나 레위 사람들에게도 묻지 않았다. 또 제사장들이나 레위 자손들 누구도 다윗의 궤를 옮기는 지휘에 하나님의 규례를 확인하지 않느냐고 묻지 않았다. 그렇게 1차 실패 후 하나님께 구하지 않은 자신을 돌아보며 참사 원인을 레위 사람들이 메고 운반해야 하는 것을 미처 알지 못한 실수를 인정한 것이다. 다윗은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다시 진행하는 궤 운반을 철저하게 ‘말씀대로’ 실행한다. 하나님께서 정확하게 운반에 관해 ‘지시하신’ 대로 철저하게 진행한다.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명령한 대로(15절)” 해결책은 말씀에 있었고 말씀대로 순종하여 진행하니 하나님께서 순종하는 그들의 마음에 “기쁨”을 주셨다(25절). 참사의 원인을 파악하고 말씀대로 다시 옮길 준비를 하는 그들에게 웃사의 죽음으로 인한 두려움이 아니라 “기쁜 마음”을 주신 것이다.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에게는 과거 실패의 두려움은 사라지고 기쁜 마음이 일어난다.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올바른 순종은 마음의 기쁨으로 두려움 없이 감당하게 한다.
    
*언약궤가 들어올 때 왕을 맞이하는 기쁨과 감격으로 다윗은 이스라엘 무리와 함께 춤추며 찬양한다. 하지만 사울의 딸(미갈)은 그것을 업신여기며 축제의 즐거움에 동참하지 않았고 비웃으며 구경한다. 이런 미갈의 모습은 체통을 잊고 춤추는 다윗을 비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언약궤의 예루살렘 입성을 비하하는 태도다. 언약궤가 예루살렘으로 들어오는 것을 사소한 일로 여기고 자신과 무관한 일로 여긴 것이다. 하지만 이는 주의 임재와 은혜에서 자신을 스스로 소외시켰다. 안타깝다.
    
*미갈을 통해 하나님이 안중에도 없고 오직 신분과 지위의 허울에 갇혀 사는 인생이 맞는 비극을 깨닫게 한다. 하나님의 통치 앞에 세상의 신분이나 지위는 의미 없다. 다윗처럼 하나님의 자녀로, 그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기쁨을 춤추는 삶이 되어야 한다. 지금 나의 신분이나 직분, 직임은 하나님 앞에서 견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왕이라도 백성처럼 그 기쁨을 누리며 표현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복이다.
    
    
*실패가 결론이 되지 않도록 “절치부심”의 자세를 잃지 않아야 하겠다. 다윗처럼 궤를 옮기기 위해 친 장막처럼 내 인생 절치부심의 장막을 치리라. 열정과 열심만이 아닌 “말씀대로”이다. 실패를 세상의 가치나 방법으로 만회하려고 발버둥 치는 실패의 반복이 아닌 “말씀”에서 반전의 출발을 늘 찾아야 하겠다. 하늘의 지혜는 말씀에 있다. 두 번의 실패는 없다!
    
*모두가 기쁨의 은혜를 누리는 자리, 그러나 미갈과 같은 마음은 늘 있다. 그래서 두렵다. 미갈과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의 기쁨을 놓치지 않기를 결심하고 또 결심해 본다. 축제의 자리에서 떨어진 창가에서 바라보는 인생이 아니라 처음부터 함께하는 백성들처럼 “처음부터”, “함께”, “기쁨”으로….
    
    
    
    
*주님, 실패를 결론 삼지 않고 하나님의 방법대로 다시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주님, 주님의 축제 자리에서 떨어진 창가에 있는 미갈과 같은 인생이 아니라 다윗처럼 하나님의 임재 앞에 춤추는 인생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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