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열방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항상”, “또” 찬양하라 [대상 16:23-43]
 – 2025년 06월 15일
– 2025년 06월 15일 –
역대상 16:23-43 열방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항상”, “또” 찬양하라
    
언약궤가 예루살렘에 안치되자 다윗이 찬양대를 통해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분께 감사드린다. 다윗은 구원의 하나님을 높이는 찬양이 계속된다. 언약 백성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과 모든 민족이 크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언약궤 이전 역사를 찬양으로 마감한 다윗은 기브온에서 예배를 관장하는 사독 집안 제사장들을 임명하고, 규례대로 드리는 제사를 소개한 후 찬양대 명단을 발표한다.
    
다윗의 찬양시는 시편을 활용하여 아브라함 언약을 성취하시는 구원의 하나님, 온 땅에 유일한 통치자이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구원과 회복을 위하여 기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에스라는 다윗의 찬양시를 통해 언약궤의 구속사적 의미를 확인한다. 다윗은 이스라엘이 언약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확인하고 언약 관계에 기초하여 기도를 드린다.
    
    
    
1. 열방의 찬양(23~30절)
본 단락은 시편 96:1~10을 인용했다. 이스라엘을 찬양하라고 했던 다윗은 이제 열방을 향해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요청한다. 23절은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하며 그의 구원을 날마다 선포할지어다’인데, 시편 96:1~2에서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와 ‘여호와께 노래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하며’라는 구절을 빼고 두 절을 합쳐 놓았다. 에스라는 두 절을 합치면서 새롭게 찬양하라고 요청하는 부분을 생략하여 자연스럽게 연결하고 있다. 이렇게 온 땅에 여호와의 구원을 선포하라고 요청하는 이유는 여호와가 모든 열국을 다스리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23~29절은 만국의 신은 헛것이며, 오직 하나님만 경외와 경배의 대상이시다. 그분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온 세상의 통치자(31절)이시기 때문이다. 영광스러운 예배의 부름에 따르고 있는가? 나를 옥죄는 세상을 두려워하다가 ‘하나님 경외’를 잊어버리거나 세상의 헛된 것만 추구하다가 ‘하나님 경배’를 잃어버리고 있지는 않는가? 주님께 드릴만한 아름답고 거룩한 예물(29절)이 내게는 무엇이 있을까?
    
    
    
2. 우주 만물의 찬양(31~33절)
이 단락은 시편 96:11~12를 인용한 부분으로 우주 만물에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요구한다. 왕들을 꾸짖고 자기 백성을 보호하시는(21~22절) 하나님은 열국의 통치자이시며 공의로운 심판자이시다. 하나님의 선하고 의로운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에 참된 경외와 즐거움이 있다. 지금은 만물이 죄와 인간의 탐욕 탓에 고통당하고 탄식하지만(롬 8:22, 23) 주께서 심판하러 오시는 그날에 주의 백성과 모든 만물이 의와 샬롬을 회복하고 영광의 즐거움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억울하고 답답한 현실 속에서도 주저앉지 않고 소망을 가질 이유가 여기에 있다. 33절은 심판주로 오시는 여호와를 나무들이 큰 소리로 기뻐 외치며 환영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 심판주로 오시는데 나무들이 기뻐하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악한 자를 벌주고 선한 자와 자기 백성을 구원하여 상 주며 정의와 질서를 세우기 때문이다.
    
    
    
3. 여호와께 감사하라(34~36절)
이 단락은 시편 106편을 인용하며 다시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요청한다. 34절에서 감사하는 이유가 하나님께 선하시고 인자가 영원하시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영원하신 인자에 대한 고백은 역대기와 시편에 자주 등장하는 문구다.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힘들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에 의지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하였다. 35절은 이스라엘의 구원에 대한 열망이 강하게 나타난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영원한 인자를 의지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자신들을 구원해달라고 만국 가운데서 건져달라고 요청한다. 시인은 하나님을 찾고 예배하고 감사하는 하나님의 백성을 열국의 손에서 구원해달라고 요청하며 여호와를 영원히 송출할 것을 약속하며 찬양을 마무리한다.
    
    
    
4. 기브온 성막에서 제사 드림(37~40절)
37~38절에서는 다윗이 다윗성에 놓은 언약궤 앞에서 섬기는 규칙을 만든다. 그는 아삽과 그의 형제에게 언약궤를 섬기는 직책을 주었고, 당번 날을 정해주며, 그날 행할 일을 정해주었다. 이것은 다윗이 언약궤를 모시는 제의와 규칙을 제정했다는 의미다. 오벧에돔과 그의 형제 68명과 여두둔의 아들 오벧에돔과 호사를 문지기로 삼는다. 문지기는 성막이나 법궤나 성전의 경비를 담당한 직책이다. 39~40절은 기브온 산당에 있는 여호와의 성막을 섬기는 일에 대한 부분인데, 당시 여호와의 성막이 기브온 산당에 있다고 말한다. 원래 성막과 법궤는 같이 있어야 하는데, 여기서는 성막과 법궤가 따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다윗은 기브온 산당에 있는 여호와의 성막을 섬기기 위해 사독과 제사장들을 세우고 아침저녁으로, 매일 규칙적으로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게 했다. 에스라는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행했다는 것을 강조한다.
    
    
    
5. 찬양대 조직(41~42절은 찬양대 조직에 대하여 4~6절에서 언급된 것이 다시 언급된다. 찬양대의 임무는 여호와를 찬양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유는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기 때문이다. 영원한 인자하심의 대상은 본문 자체에서는 다윗 왕조지만 역대기를 기록한 정황에서는 이스라엘이다. 에스라는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영원한 사랑을 믿고 이에 근거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주신다고 생각하였다. 43절은 법궤를 옮기는 이야기의 마지막으로 3절과 연결되어 음식을 받은 사람들이 각자 집으로 돌아가고 다윗도 자신의 집을 축복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간다.
    
    
    
나는?
-하나님은 온 세상의 통치자시다. 만국의 모든 신은 다 헛것이며, 오직 하나님만 유일하신 경외와 경배의 대상이시다. 그가 천지를 창조하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온 세상의 통치자(31절)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윗은 이스라엘과 모든 민족을 향해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고 그분을 예배하도록 요청한다. 반대로 나를 옥죄는 세상을 두려워하면 하나님 경외를 잊어버리고 세상의 헛된 것만 추구하다가 하나님 경배를 잃어버리게 된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통치자시다. 왕들을 꾸짖고 자기 백성을 보호하시는(21, 22절) 하나님은 열국의 통치자이시며 공의로운 심판자이시다. 하나님의 선하고 의로운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에 참된 경외와 즐거움이 있다. 지금은 만물이 죄와 인간의 탐욕 탓에 고통당하고 탄식하지만(롬 8:22, 23) 주께서 심판하러 오시는 그날에 주의 백성과 만물이 의와 샬롬을 회복하고 영광의 즐거움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답답한 현실 속에서도 주저앉지 않고 소망을 가질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나님은 인자하고 선하신 통치자시다. 이스라엘의 구원과 회복은 자기 백성의 기도에 다시 언약을 기억하시고 긍휼을 베풀어 주시는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선하심’에 있다. 이것은 마르지 않는 찬양의 원천이고 섬김과 헌신의 이유(41절)이며, 땅끝까지 전해야 할 영광스러운 진리다.
    
-하나님은 언제나 찬양을 받으실 통치자시다. 다윗은 하나님 예배함을 나라의 근간으로 삼고 언약궤가 있는 예루살렘과 성막이 있는 기브온 산당에서 지속적인 예배와 섬김을 위해 사람들을 세운다. 예배는 하나님 나라 백성 삶의 중심이고 토대다. 우리는 일꾼이기 전에 예배자로 부름을 받았음을 잊으면 안 된다. 세상에서 성공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예배자로 살 수 있도록 다음 세대를 이끌어야 할 것이다.
    
    
*’항상’ 궤 앞에서 섬기라!(37절), ‘항상’ 명령하신 대로 준행하라!(40절) ‘또’ 감사하라(41절) ‘또’ (악기로) 소리를 크게 내라!(42절) ‘또’ 문을 지키라(42절). 이스라엘 백성과 만민들의 찬양이 찬양되게 하도록 하나님의 궤를 철저하게 구별하고 지키며 ‘그 앞에서’ 찬양과 예배(제사)를 명령하신 대로 항상 드리므로 찬양이 일상이 되게 하였다. 그렇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섬기는 것은 늘 행하여야 할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다. 그런데 그 의무가 특정한 날, 시간만으로 한정되는 특별함이 아니라 ‘항상’, ‘또’ 행하며, 지키는 일상이어야 한다.
    
*일상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서는 늘 하나님의 궤 앞에 있어야 하고 그 궤를 구별해야 한다. 함부로 하나님의 거룩함을 침범해서는 안 된다. 항상 하나님을 섬기며, 순종하며, 감사하며, 소리를 크게 내어 알리는 것만큼, “지키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내 마음은 그리스도의 집이다. 성령께서 거하시는 거룩한 전이다. “잠 4: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라”
    
*오늘날 하나님의 궤는 “말씀”과 “성령”이라 하겠다. 특히 성령은 나의 마음에 거하신다. 손에 든 말씀은 늘 섬기고 순종하며 소리 내 알리는 것이어야 하고, 궤 앞을 지킨 문지기처럼 내 마음의 성전도 세상이 들어오지 못 하도록 “지키고 또 지켜야” 한다. 마음은 어떻게 지킬까? 내 마음에 계신 성령께서 도우신다. 기도를 가르치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도록 도우신다(롬 8:26-27). 기도로 지킨다(빌 4:6-7). 결국 마음을 지키는 것은 “말씀”과 기도”이다. 그래서 말씀과 기도는 우리를 더욱 구별되게 한다(딤전 4:5).
    
*하나님 중심은 궤(말씀) 앞에서의 삶이다. 또한 시선이 자기중심이 아니다. 다윗은 민족 안에 머물지 않는다. 온 땅을 바라본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통하여 하나님 되심을 가르치실 뿐이지,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다. 다윗은 이것을 알았다. 교회를 통하여 세상에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이지, 교회만의 하나님이 아니시라는 것이다. 나의 좁디 좁은 시각과 마음이 더 열리고 퍼지면 좋겠다. 말씀 앞에 살수록 더욱 세상을 바라보는 삶이어야 하겠다.
    
*마음의 경계는 지키되 시선의 경계는 넘어서라
    
    
    
*주님, 예배와 찬양의 삶이 일상이어야 함을 다시 다잡습니다. 매일, 매 순간이 하나님의 이름이 드러나는 삶이기를 추구합니다.
*주님, 일상의 찬양과 경배의 삶이 곧 말씀과 기도 가운데 이루어짐을 다시 확인합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묵상의 은혜를 따라 기도하는 축복된 시간을 늘 누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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