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다윗의 감사와 찬양과 간구 [대상 17:16-27]
 – 2025년 06월 17일
– 2025년 06월 17일 –

역대상 17:16-27 다윗의 감사와 찬양과 간구

하나님은 성전을 짓겠다는 다윗의 요청을 거절하신다. 하지만 그 대신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에 뿌리박고 다윗 왕조를 영원히 세우며 다윗의 후손을 양자로 삼겠다고 약속하신다. 본문은 이 은혜로운 선택을 받은 다윗이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기도다. 사무엘하 7:18~29절이 평행 본문이다.

나단의 신탁을 들은 다윗은 여호와의 언약궤가 놓여 있는 장막으로 가서 그 앞에 앉는다(16a절). 다윗은 먼저 초라했던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까지 자신을 존귀하게 하신 은혜에 감사한다. 더 나아가 자신의 왕조를 영원히 견고히 하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간구한다.



1. 여호와의 놀라운 은혜에 대한 감사(16b~19절)
다윗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자신과 자기 집이 무엇인데 이렇게까지 해주시냐는 수사학적 질문으로 감사 기도를 시작한다. 이 질문은 아무 자격이 없는 자신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감격한 다윗의 솔직한 고백이다. 그는 하나님께 자신이 이런 큰 은혜와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이 왕이 된 것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여기까지 이끌고 오셨기 때문이라고 고백한다(16a절). 17절은 지금까지 주신 것도 황송한데, 이것보다도 훨씬 큰 약속과 미래의 약속을 주시고 존귀한 자로 보아주셨다는 것에 감사한다. 18절에서도 다윗은 베풀어주신 영광이 너무 커서 다른 말을 더할 수가 없다며 감격한다.

이런 다윗의 감사 속에는 그의 겸손함이 그대로 묻어난다. 17~19절에서 다윗은 자신을 “당신의 종”이라고 부르며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순종과 겸손함을 보인다. 19절은 다윗이 자신을 왕으로 세우고 자기 후손을 통해 왕조를 세우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주권에 달린 일임을 인정한다. 사울을 세우신 하나님께서 사울의 가문을 폐하시고 자신을 선택하셔서 왕으로 세우시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은혜를 철저하게 깨닫고 감사한 것이다.



2.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찬양(20~22절)
이 단락은 다윗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확대되어 이스라엘 전체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대한 찬양으로 넘어간다. 20절에서 하나님만이 신이라고 고백한 것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주와 같은 이가 없다는 고백은 세상 어느 신도 하지 못하는 힘과 능력과 권세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다윗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이런 하나님을 체험하였다. 더 나아가 여호와만이 유일한 신이라는 고백으로 이어진다.

21절은 왜 여호와 같은 신이 없는지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설명한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기 위해 직접 용사로 나서시고 애굽에 열 가지 놀랍고 무서운 재앙을 내리시며 이스라엘 백성을 구해내셨다. 이런 놀라운 이적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을 애굽과 이스라엘 백성이 알게 하셨다. 출애굽기에서 여호와께서 애굽과 이스라엘에 재앙을 내리신 이유는 여호와만이 진정한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큰 능력으로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고 그 땅에 사는 거민들을 모두 쫓아내셨다. 여호수아서를 통해 보여주는 가나안 정복은 여호와께서 전사로 싸우신 여호와의 거룩한 전쟁이다.

22절은 이스라엘과 하나님이 언약 관계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 언약은 출애굽기 24장에서 맺은 것이며,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다윗의 이런 고백은 역사의 시간 흐름과 맞지 않지만, 다윗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은혜 베풀어주신 이유를 강조하기 위해서 고백했다.

이와 같은 고백은 다윗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행하신 역사를 분명히 알고 있었고 그것이 단지 오래된 전설이나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실재하신 역사로 믿었음을 드러낸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역사하신 일들을 보면서 그가 살아계시며 자신을 의지하고 찾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되어주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의 삶을 변화시키는 힘은 하나님을 직접 만나는 순간 하나님께서 하신 모든 역사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닌 실제의 역사가 될 때 일어난다.



3. 여호와의 언약을 이루어 달라는 간구(23~27절)
이 단락은 다윗의 간구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왕조를 세워주겠다고 말씀하신 것을 꼭 지켜달라고 반복적으로 간구한다. 23절에서는 “말씀을 영원히 견고하게 하시고 말씀하신 대로 행해달라”고 요청한다. 24절에서도 “다윗 왕조가 주 앞에서 견고히 서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25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왕조를 세워주실 것을 먼저 약속하셨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하나님께 약속을 지켜달라고 요청한다. 25절 마지막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기도한다고 고백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먼저 다윗에게 말씀을 드러내셨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주의 종의 귀를 열다”를 직역하면 “주의 종의 귀를 벌거벗기다”인데 이것은 계시를 드러내셨다는 의미다. 즉 여호와께서 나단을 통해 이런 계시를 주셨기 때문에 자신의 집을 굳건하게 해달라고 기도할 용기를 얻었다는 것이다. 26절에서 다시 다윗은 오직 여호와만이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한다. 27절은 ‘복’이라는 단어가 반복되면서 다윗은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 영원하기를 기원하며 기도를 마친다.

다윗은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축복의 말씀에 감사하며 기뻐한다.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때때로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약속과 은혜를 주실 때가 있다. 그럴 때 다윗처럼 하나님만이 주권자이신 것에 감사하며 행복을 느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빨리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에 취하여 참다운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잊고 자기 능력으로 모든 일이 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없다. 다윗도 이를 잊었기에 하나님 앞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만 것이다.



나는?
-다윗이 양 떼를 치는 목동으로 있을 때는 상상할 수도 없던 존귀한 왕위와 아무도 넘볼 수 없는 나라를 주셨다. 지금까지 베풀어주신 은혜를 오히려 작게 여기시고 먼 장래까지 은혜의 복을 보장해 주신다.

-다윗은 거절된 응답(4절)에 실망하지 않고 도리어 더 큰 하나님의 은혜와 뜻(19절)을 깨닫고 깊은 감사를 드린다. 감당할 수 없는 과분한 은혜였고, 다함 없는 자비였다. 자격 없는 나에게 주신 은혜와 복을 당연히 여기거나 소홀히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수용하기 힘든, 거절된 기도에 대한 나의 반응은 어떠한가? 하나님께 거절된 선의에 집착하지 말고 깨닫게 하시는 더 큰 은혜의 품을 소망해야 할 것이다.

-은혜에 감격하며 감사하던 다윗은 이제 하나님의 집 건축에 대한 자기 뜻을 내려놓고, 자신의 집(왕조와 나라) 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구한다. 선지자를 통해 자신의 열망보다 더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의 간구는 자신의 영예와 영화가 아닌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위한 것이었다. 기도는 내 뜻을 관철하는 수단이 아니라 주의 뜻을 수용하는 일이다. 자기중심적 신앙과 영성과 기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다윗처럼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주의 임재 안에 들어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깊이 묵상하는 데 있다.

-다윗처럼 자기 뜻을 꺾고 주님의 뜻을 세우는 기도에 귀를 기울이는 목자가 되어야겠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복을 약속하시고 또 베푸시고 누리게 하신다. 다윗의 집을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는 언약의 복은 자기 집을 위해 축복하려고 돌아간(16:43) 다윗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하나님의 축복이었다.

*복은 보상이 아니라 선물이며, 먼 미래가 아닌 지금 여기에서부터 누려야 할 은혜다.


*때로 하나님 앞에서 나의 계획과 바람이 막힐 때, 하나님의 계획하신 “더 큰 일”을 바라보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러니 지금까지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도 쉽게 잊어버리고 불평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나의 간절하고 절박한 계획은 ‘오히려 작은 것(17절)’임을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의 ‘이 모든 큰일(19절)’을 깨닫게 하신 하나님에 대한 반응이 바로 “감사”이다. ‘오히려 작은’ 나의 계획을 고집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이 모든 큰일”을 계획하신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지 못하면 늘 불평만 남는다. 감사는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는 믿음의 증표가 분명한 것이다.

*다윗의 감사가 그래서 도전된다. 내 일상의 작은 일조차 하나님이 반응이 없거나 거절될 때 그렇게 서운할 수가 없는데, 다윗은 오히려 지금 하지 못할 나의 일보다 앞으로 약속하신 대로 행하실 하나님의 일을 바라보았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은 이러한 신뢰가 있어야 한다.

*다윗은 하나님께 들은 것을 “이제부터” 응답해 주실 것을 구한다. 얼마나 당찬 믿음인가? 한편으로 이는 하나님의 계획을 완전히 동의(받아들임)한다는 것이 전제한다. 자기 생각과 계획이 포기되어야 가능한 반응인 것이다. 이런 반응을 고민조차 하지 않고 곧바로 하나님의 계획을 듣자마자 반응하여 고백하는 것이다. 신뢰는 계산조차 필요 없는 믿음이며 간구는 그 믿음의 무조건 반사이다. 사실 이것이 참 어렵다. 내가 간절하게 소망했던 것을 하나님께서 막으실 때 이게 쉬울까? 절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다윗은 감사와 찬양과 간구를 막힘없이 고백한다. 이런 다윗의 반응이 좋다! 단순하게 반응하며 단순하게 순종한다. “간구”는 어쩌면 나의 소원을 매달리며 부르짖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제(지금)” 이루어지도록 믿음의 반응하는 것이 아닐까?

*다윗처럼 자신의 선한 계획이 막히고 다른 하나님의 계획이 선포될 때, 서운함과 실망이 아니라 감격과 기쁨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계획하는 것이 반드시 정답이 아닌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나를 깨우칠 때, 미련 없이 내려놓을 수 있기를 바래본다. 이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하나님을 내 생각과 계획보다 더 신뢰할 때 가능한 것이리라. 더 큰 하나님의 뜻을 말씀으로 깨우치실 때, 서운해 하지 말자.

*나의 평생에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어 감사!,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찬양!, 하나님이 이루어주시기를 간구! 하는 삶을 살아내며 누려야겠다.

 

*주님, 자기 뜻보다 하나님의 뜻을 수용하는 다윗의 성숙한 모습을 본받습니다.
*주님, 저의 간구도 이런 자세가 얼마나 필요한지 모르겠습니다. 관철하기 위헤 발버둥치는 것보다 수용하여 감당하기 위해 발버둥치겠습니다. 세상 이치가 그런듯합니다. 나의 욕망에 붙들리는 삶이 아니라 주의 말씀에 불들려 기도하는 삶이 곧 나를 살리고 공동체안에 주님의 뜻을 이루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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