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공정하게, 하나님께 선택받음에 감사하며 [역대상 24:1-31]
 – 2025년 06월 24일
– 2025년 06월 24일 –
역대상 24:1-31 공정하게, 하나님께 선택받음에 감사하며
    
다윗은 성막 시대에서 성전 시대로 넘어가면서 새롭게 레위인의 역할을 재정립한다. 그동안 레위인은 성막을 관리하고 운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였는데, 예루살렘에 정착하여 성전을 지으면서 성막 운반 일을 그만두게 하고, 그 대신 성전을 관리하고 예배와 제사를 돕는 다양한 일을 시킨다. 24장은 특별히 제사장 조직을 정비하는 일을 다룬다.
    
다윗은 하나님이 정하신 규례에 따라 제사장과 직무의 순번을 정한다. 아론의 자손 중 엘르아살과 이다말의 자손들로 제사장을 세웠다. 그리고 그들을 24반차로 나누어 성전 봉사를 위한 질서를 세운다. 직임을 맡기는 일에는 제비뽑기 방식을 운용하여 공정성을 기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게 했다. 이 과정은 단순히 행정조직을 넘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거룩함과 그 안에서 순종의 중요성을 교훈한다.
    
    
    
1. 제사장을 24반차로 조직하다(1~19절)
1~2절은 아론 계열의 두 가문의 계보다. ‘계보(마할로케트)’는 일반적으로 ‘분할, 분배’라는 의미지만, 역대기에서는 제사장과 레위인의 조직을 나타내는 전문 용어로 사용되었다. 26:1에서는 “반차”로 번역되었다. 제사장 조직은 아론의 아들들을 중심으로 나뉜다. 아론의 네 아들 나답과 아비후, 엘르아살과 이다말 중에서 엘르아살과 이다말 두 명만이 제사장의 계보를 이루게 된다. 나답과 아비후는 아버지보다 먼저 죽었고 아들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간략히 넘어가며 그들의 잘못은 언급하지 않았다.
    
레위기 8~10장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아론과 네 아들 모두를 제사장으로 선택하셨고, 그들 모두를 제사장으로 위임하셨다(레 8:13). 하지만 속죄제를 드리던 중 나답과 아비후가 향로에 여호와께서 명령하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분향함으로써 여호와의 진노를 받아 즉사했다. 이 사건은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는 것과,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큰 진노를 살 수 있는 위험한 직책임을 알리는 경고가 되었다. 또 본문은 아론의 다른 두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이 제사장직을 수행했다고 기록하지만, 민수기 20:25~28에 따르면 아론이 죽은 후 엘르아살이 대제사장직을 계승했고, 엘르아살이 죽은 후에는 그의 아들 비느하스가 계승했다(수 24:33). 이다말은 레위인들을 관리하는 일을 했다(민 4:28, 33).
    
3절은 다윗이 두 개의 계보와 24반차를 조직하였다고 말한다. 역대기의 저자 에스라는 다윗을 제사 제도와 직제를 만든 인물로 묘사한다. 다윗은 사독과 아히멜렉 두 제사장을 중심으로 24반차를 주관하는 지도자를 세웠다. 다윗 시대에 엘르아살 계열에서 사독이 대표가 되고, 이다말 계열에서는 아히멜렉이 대표가 되었다. 24반차 중 엘르아살 계열의 후손은 16반차이고, 이다말 계열은 8반차이다.
    
5절은 제사장 반차를 조직할 때 서로 동등한 입장에서 제비뽑기 하는 방식으로 하였는데, 이것은 엘르아살 계열과 이다말 계열의 제사장들이 성소의 일과 제사 일을 함께하였기 때문이다. 어느 계열의 제사장인지에 상관없이 모두 성소의 일과 제사 드리는 일 등 제사장이 해야 할 모든 일을 같이하였다. 제비뽑기는 구약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자주 사용하던 방법이다.
    
6절은 반차를 조직하는 데 관여한 인물들로 왕 다윗, 제사장 사독과 아히멜렉, 제사장과 레위인의 우두머리들은 참관인이자 증인으로 그 자리에 참여하였고, 제비 뽑힌 사람들의 이름을 서기관인 스마야가 기록하였다. 서기관 스마야의 존재는 레위인의 역할 중 하나가 기록하는 것임을 알려주고 있다. 또 스마야가 기록했다는 말을 통해 본문에 언급된 24반차의 명단이 틀림없음을 확증해준다.
    
7~19절은 24반차의 명단이다. 모두 24명의 이름이 언급된다. 성전 봉사를 24반차로 나누면 당번인 제사장들은 1년에 두 주 동안 성전에 와 봉사를 하고 다시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다. 즉, 재사장들은 1년에 15일 정도를 성전에서 봉사하게 된다. 19절은 제사장들이 성전에서 행한 규례의 기원에 대해 강조한다. 그들이 행한 규례는 자신들이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이며, 초대 대제사장이신 아론 때부터 행하던 것이다. 아는 성막 제의에서 성전 제의로 넘어가면서 성막 제의와 성전 제의의 연속성을 강조하기 위해 설명했다.
    
이스라엘의 제의 제도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행해야 하므로, 성전에서 행하는 제의 제도가 하나님의 규례를 따라 이루어졌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정당성의 문제가 된다. 에스라 6:16~18은 예루살렘 성전 봉헌식을 할 때 모세의 책에 기록된 대로 제사장과 레위인을 세워 하나님의 전을 섬기게 했다고 말하는데, 스룹바벨 성전(제2 성전) 제의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성막 제의를 계승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
    
    
    
2. 추가된 레위인 족보(20~31절)
이 단락은 23장의 레위인 족보에 추가된 인물들의 명단이다. 이 명단에서는 23:7~23에서 언급된 다섯 가문을 확대하고, “수바엘” 가문과, 므라리의 자손인 야아시야의 자손들도 추가한다. 이런 추가된 명단은 레위인 자손이 번성했다는 것과 레위인들이 감당해야 할 종교적 임무가 많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31절은 추가된 이들도 이전 족보에 나온 사람들과 동일하게 제비뽑기에 참여하여 여호와의 성전에서 일하는 책무를 받았다고 말한다. “장자의 가문과 막내 동생의 가문이 다름이 없더라”는 문장을 직역하면 “지도자의 아버지들과 가장 어린 그들의 형제가 나란히 서서”이다. “지도자의 아버지들”은 가장 연장자이거나 권위가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가장 어린 형제”는 가장 어리고 권위가 없는 사람을 의미한다. 즉, 나이와 신분에 상관없이 나란히 서서 제비를 뽑았다는 것이다. 또한 모든 가문의 레위인들이 동등한 자격으로 제비뽑기에 참여하여 제사장 일을 동등하게 감당했다는 뜻이다.
    
제사장의 책임에 참여하는 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가문의 크고 작음이나 현재 그들의 상황에 달린 일이 아니다. 레위의 후손으로서 레위 지파에 속한 가문이라면 모든 가문이 주어진 임무에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해야 할 의무과 책임과 권리를 가졌다. 이처럼 하나님의 교회에서 하는 봉사는 하나님께서 부르셨느냐 아니냐가 중요하며,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성도라면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갖는다. 교회 안에 좀 더 특별한 일이 없어야 할 것이며, 모든 섬김의 자리가 동등하고 특별하게 존중을 받고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의지하는 마음으로만 감당해야 할 것이다. 무슨 일에 부르시든지 간에 하나님이 일하시도록 자신을 내어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나는?
-다윗은 성전 건축에 앞서 레위인과 제사장의 조직과 직무를 재편성하고 재정비하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 성전의 외형보다 성전 예배와 봉사를 감당할 사람들의 역할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인선과 조직 편성과 직무 배정을 독단적으로 처리하지 않고 지도자들과 더불어 의논하며 공정하게 결정한다.
    
-24반열에 뽑힌 제사장들은 순서에 따라 성전에 들어가서 하나님이 명하신 규례대로 직무를 감당한다. 다른 불로 분향하다가 심판받은 나답과 아비후처럼(레 19:1, 2) “임의로” 하지 않았고, 정해진 순서와 규례에 충실했다. 일을 잘하고 많이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말씀을 따라 바르고 충실하게 하는 것이다. 내 마음(뜻)대로 하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드릴 수 있는 길은 없다.
    
-다윗은 차등을 주지 않기 위해 ‘제비를 뽑아’ 제사장의 반열을 나누고 직무 순서를 정한다. 이것은 제사장이나 그 자손들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필요한 긴장과 갈등과 혼란을 막고, 성전 예배와 봉사를 질서정연하게 또 온전하게 섬기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우리는 성도 간에, 교회 간에 서로 동역하기보다는 경쟁하듯 일하고, 서로를 존중하기보다는 시기하듯 폄하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다윗은 레위 자손 중 남은 자들에게도 제사장들처럼 동일한 원칙과 규례를 따라 반열을 정하고 직무를 맡겼다. 가문과 혈통의 서열대로 중요한 일을 맡긴 것이 아니라, 공평하게 제비를 뽑아 정했다. 공정한 절차를 통해 누구에게나 공평한 섬김의 기회를 준 것이다. 성전 봉사 레위인이라면 누구든 감당해야 할 특권(은혜)이자 의무(사명)였기 때문이다.
    
    
*고대 사회는 서열이 참 중요했다. 성별 구별도 확실했다. 여성과 어린아이들은 인구조사 대상도 아니었다. 그런데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부름을 받은 가문에 있어 혈통의 순서는 철저한 “제비뽑기” 앞에 무의미했다. 하나님의 의도는 분명하다. 성전 봉사는 레위 사람이라면 누구나 감당해야 할 특권이자 의무였기 때문이다. 누가 먼저 시작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 감당하느냐가 중요했다. “선택받아 규례대로” 감당하면 된다. 나이가 어리거나 많거나, 집안의 어른인 것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자세는 똑같다.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이다. 성도는 모두가 제사장이다. 본문에 따르면 제사장이 감당해야 할 자리가 이렇게 귀중한데, 오늘날 성도들은 과연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엄중하게 감당하고 있을까? 제사장은 책임이 큰 자리이다. 자신의 삶을 걸고 감당해야 하는 자리였다. 나답과 아비후의 예를 든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하나님을 잘못 알거나 자기 마음의 지배를 따라 감당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사람이 제사장이다.
    
*오늘날은 제사장은 사라지고 제사장적 의미로 하나님앞에 서야 할 본질만 남았다. 성도는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 중보의 역할로 서 있어야 한다. 우리의 참 대제사장 되시는 주님의 모습을 본받아 내가 서 있는 곳에서 “규례대로(말씀대로)”, “다름없이” 살아내야 한다.
    
*말씀대로 살아내는 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선택해 주신 은혜가 나에게 있음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셔서 섬기는 자리로 세우셨다. “말씀을 따라 기도로 성령께서 분별하게 하시는 은혜”를 따라 오늘도 말씀대로 살아내야 하리라.
 
 
 
*주님, 맡겨주신 사명, 감사하며 엄중하게 감당하겠습니다.
*주님, 제비뽑기를 통해 하나님의 주권에 따라 일을 맡기셔서 감당하게 하시는 뜻을 헤아립니다. 신분과 나이, 직분의 중요도나 선호도에 따라가 아닌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맡기시는 사명으로 받아들이며 감당하게 하는 방법임을 깨닫습니다. 늘 주님의 마음과 뜻을 따라, 맡겨주신 것을 맡긴 이의 뜻을 따라 순종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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