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29:20-30 주와 함께, 주 앞에서
다윗은 성전을 건축할 준비를 한 후 솔로몬을 후계자로 선택하고 공식적으로 모든 백성과 지도자들 앞에서 왕으로 세운다. 29장에서 솔로몬이 왕으로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성전 건축이다. 다윗은 기도를 통해 다윗과 지도자들이 자원하여 드린 예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솔로몬이 성전을 꼭 지을 수 있게 해달라고 간구한다. 다윗의 솔로몬에게 왕위 승계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단락이기도 하다.
1. 솔로몬의 즉위식(20~22절)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마친 다윗은 모인 회중에게도 동일하게 여호와를 송축하라고 명령한다. 회중은 다윗의 명령을 따르는데, 여호와를 가리켜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는 18절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한 것과 유사하다. 이들은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를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가장 근원적인 언약에서 찾고 있다. 현재 포로 귀환 공동체는 율법 준수와 밀접하게 연관된 시내산 언약이나 왕조 언약보다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주신 언약을 붙잡고 살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간은 실패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으시고 그분은 언약을 파기하지 않으시는 신실하신 분이시다. 한편, 여호와와 왕에게 모두 절하는 것은 여호와가 진정한 이스라엘의 왕이시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며, 그가 솔로몬을 왕으로 선택했기에 솔로몬을 왕으로 인정하며 그에게 복종하겠다는 의미다.
21절은 다음 날 거행된 제사와 축제에 대한 보고다. 즉위식 다음 날 다윗은 여호와께 제사와 번제를 드린다. ‘제사’로 언급된 것은 화목제와 속죄제를 가리킨다. 제물의 양은 수소가 천 마리, 숫양이 천 마리, 어린 양이 천 마리 모두 삼천 마리의 가축을 제물로 드린다. 이는 에스라가 상당히 많은 제물을 드렸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과장한 수일 가능성이 크다.
제사가 끝난 뒤 제사를 드린 곳에서 함께 즐거워하며 먹고 마시는 잔치를 벌였는데, 이 모습은 다윗이 헤브론에서 왕이 되었을 때 벌였던 잔치의 모습을 연상시킨다(대상 12:40). 이 잔치의 원형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은 후 여호와 앞에서 먹고 마시던 언약식이다. 즉위식은 왕과 백성 사이에 보호와 충성의 언약을 맺는 잔치였다.
22절 하반절은 솔로몬 중심의 서술 방식으로 전환되는 지점이다. 무리가 다윗을 계승하여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이 된 솔로몬과 대제사장으로 임명된 사독에게 기름을 붓는다. 이 사독은 다윗 시대에 제사장으로 있던 그 사독과는 다른 인물이다. 한편, 열왕기상 2:35에 따르면 솔로몬은 왕이 되면서 아도니야 편에 선 아비아달을 대신하여 사독을 대제사장으로 임명한다. 하지만 역대기에서는 왕과 대제사장의 임명식을 동시에 언급함으로써 왕과 제사장의 역할이 서로 결합하여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와 같이 솔로몬의 즉위식은 어떤 갈등이나 반역적 행동 없이 매우 평화적으로 이루어졌다.
2. 솔로몬의 통치에 대한 예비적 평가(23~25절)
이 단락은 솔로몬의 치세에 대한 평가다. 이후에 나올 솔로몬 이야기에 대한 서론이자 결론으로 솔로몬이 매우 성공적으로 이스라엘을 다스렸다고 평가한다. 그의 성공적인 통치 평가 표현은 첫째, 그가 형통했다고 하고, 둘째, 알빈 백성들이 그에게 순종했다고 한다. 셋째로 다윗이 세운 지도자들과 장군들, 심지어 다윗의 다른 아들들도 솔로몬의 권위에 복종하며 솔로몬을 지지했다고 한다. 우리말에서는 백성도 순종하고 지도자들은 복종했다고 표현하여 비슷한 의미로 보이지만 백성의 경우는 “듣다”라고 표현하여 솔로몬의 말을 들었음을 보여주고, 지도자들의 경우에는 “손을 두다(나 트누 야드)”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동맹과 지지와 복종을 표현한다. 여기에서는 아도니야와 요압 등의 반란에 관한 내용은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 즉위 초반의 갈등이나 어려움은 언급하지 않고 솔로몬의 평화로운 통치만을 강조한다. 넷째,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셨고, 최고의 영광을 주셨다고 한다. “위엄(호드)”으로 번역된 단어는 솔로몬에게 여호와께서 주셨다고 말한다.
결국 솔로몬의 통치가 성공적인 것은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시고 지켜주시고 강성하게 만들어 주셨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다(12절)”는 말로, 결국 다윗의 말이 솔로몬에게 성취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이렇게 특별한 은혜를 주신 이유는 역대하 1장에 등장하는 일천 번째 이야기와 연결되면서 하나님을 찾는 자를 만나주신다는 역대기 신학이 잘 드러난다.
3. 다윗의 죽음(26~30절)
이 단락은 다윗의 죽음에 대한 기록으로 특징은 그에 대한 신학적 평가가 생략되었다는 것이다. 다윗은 이새의 아들로 소개된다(그는 지극히 평범한 서민 출신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시 왕이었던 사울의 아들이 아니라, 평민 이새의 막내아들이며 목동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울을 버리고 다윗을 선택하셨기 때문에, 평민 이새의 아들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이 될 수 있었다. 이런 놀라운 하나님의 역전을 보여주는 표현이기도 하다.
27절은 열왕기상 2:11을 인용했다. 다윗이 40년 동안 이스라엘의 왕으로 지냈는데, 헤브론에서 7년, 예루살렘에서 33년간 다스렸다. 28절은 다윗의 평안하고 존귀한 죽음을 보고한다. 다윗은 천수를 다하고 죽는 날까지 영광과 부귀를 누리면서 평안한 죽음을 맞이한다. 이런 죽음의 모습 속에 에스라의 인과응보 사상이 잘 드러난다. 에스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산 왕은 장수하다가 평안한 죽음을 맞이하고, 하나님께 불순종한 왕은 일찍 죽거나 전쟁터에서 객사하여 조상의 묘에 묻히지 못한다.
한편, 열왕기상 1~2장에서 다윗이 늙었을 때 힘이 없어 누군가 보살펴주어야 했던 모습을 생략한다. 그러면서 장수와 평안에 중점을 두어 하나님께 순종한 다윗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모습만을 강조한다. 29~30절은 다윗의 행적들과 이스라엘의 역사가 기록된 자료들이 존재한다는 것과 특히 선지자의 글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밝힌다. 선견자 사무엘, 선견자 갓이라는 표현을 통해 이들의 글이 오래된 자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에스라는 다윗을 성전 건설을 준비한 인물이자 성전 제도와 군사 제도 등 이스라엘의 종교, 행정, 군사 제도를 정립한 왕이며, 하나님께 헌신이 남달랐던 왕으로 평가한다.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라는 왕의 요청에 화답하여 온 회중이 열조의 하나님을 송축한다. 아브라함의 소명에서 성전 건축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은혜와 언약의 궤적을 그려오신 하나님께 감사와 순종과 헌신의 제사를 드린다. 어제의 은혜가 오늘의 나를 있게 하였고, 그 은혜에 감사하며 순종할 때 내일이 있음을 잊지 않았다. 지금도 하나님을 기억하는 곳에서 그분을 살아계신 통치자로 인정하는 곳에서 하나님은 역사하시고 영광을 받으신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시고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로서 하나님의 나라와 백성을 다스리게 하신다. 이전 이스라엘의 모든 왕보다 뛰어난 존귀와 위엄을 그에게 주셨고 온 이스라엘이 그의 명령에 복종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아들 예수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시고,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셨다(빌 2:9~11). 솔로몬을 향한 이스라엘의 순종처럼,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참된 왕으로 모시고 순종하고 있는가?
-다윗은 숱한 역경의 광야를 거쳐 30세에 왕위에 올라 40년 동안 “온 이스라엘”을 통치하다가 아들 솔로몬에게 왕위와 그 나라를 물려주고 떠났다. 그는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 앞에서” 살았고(왕상 3:6),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의 성전을 향한 그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19절). 약속을 주시고 친히 이루시는 하나님은 다윗의 생애뿐 아니라 내 인생에서도 진정한 왕이 되신다.
*다윗의 때와 달리 지금은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가를 고민하지 않아도 될 만큼 선명하게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셨고, 분명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칙들을 밝혀주셨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고민하는 것보다 주저 없이 “순종”하는 것이 더 큰 고민인 시대이다. 하지만 다윗의 이야기는 고민하지 말 것을 가르친다. “하나님께서 주신 대로” 그 권위에 순종하면 된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기 위해 함께 마음을 모으고 힘을 다하면 된다.
*그럼에도 이것이 벅차게 느껴지는 이유는 역시 “자기 뜻”을 “하나님의 뜻”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며 이를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윗의 길을 나에게 보이신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걸어간 인생이 어떤 것인지를 분명히 보이기 위함이다. 이스라엘을 다스린 40년간 “나이 많아 늙도록 부와 존귀를 누리다가 죽었고”, 무엇보다 “그를 대신하여” 평안히 왕위 계승이 이루어졌음을 밝힌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간 인생에게 숱한 위기와 실수와 실패가 있었더라도 결국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은 변함없이 그의 인생을 받치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아니면 어찌 누릴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오늘도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신 대로, 말씀의 힘으로 순종을 발버둥 쳐보자. 준비해야 할 여러 사역이 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드러나도록 민감해 보자. 오늘 나의 발버둥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내기 위한 흔적으로 남게 되겠지…. 흔적이 새겨질수록 “나의 뜻”은 지워지고 “하나님의 뜻”은 선명해 질게다…. 나를 통해 이루어질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나라…. 아멘….
*주님, 다윗이 평범한 삶에서 왕의 삶을 산 인생을 보며 제 삶의 진정한 왕 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주님, “주와 함께, 주 앞에서” 살다 간 다윗의 생애가 제 삶에 입혀지기를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