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1:1-8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요한계시록은 예수님에 의해 베일이 벗겨진 계시다. 이 계시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천사를 통하여 사도 요한과 일곱 교회에 주어졌다. 예수 그리스도는 찬양받기에 합당하신 분이며, 그분이 재림하시어 세상을 심판하시게 될 것이다.
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서론_1~3절)
1~2절은 요한계시록의 전체 메시지를 어떤 시각에서 읽고 해석해야 하는지 나아갈 방향성을 제시한다. 요한계시록의 성격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표현에 응축되어 있다. 종말에 대하여 강조하기는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논의 없이 거론하는 것은 아니다.
“속히 될 일”은 장차 모든 교회 시대에 일어날 일에 대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 이미 완성된 사역과 지금도 이뤄지고 있는 사역이 결국 온전히 성취될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대변되는 복음의 사역을 통해 이루신 사역은 속히 완성될 것이다.
주의할 것은 요한계시록을 묵상할 때 21세기의 독자들의 눈이 아니라 1세기 성도들의 정황에서 일어야 한다는 점이다. 황제 숭배를 거절한 대가로 고통당하고 있는 교회 공동체에 반드시 속히 될 일을 알려줌으로써 그들이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이루신 승리의 자리에 초대된 인생임을 확신시키려고 쓴 편지다. 요한은 두 가지에 대해 증언한다(2절).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다. 그런데 요한은 이것을 자기가 “본 것”이라고 말한다. “본 것”이라는 표현은 계시록 전체에 드러나는 요한의 증언 방법이다. 이 방법은 그리스도의 증언을 본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풀어낸다. 실제로 계시록은 총 404구절 가운데 278절이 한 번 혹은 그 이상 구약 구절을 언급한다. 어떤 학자는 인용과 은유 모두 합쳐 1,000곳의 구약 구절을 제시한다. 그러므로 요한의 증언은 구약에 대한 지식과 올바른 이해 없이 도저히 풀 수 없다. 요한은 그가 본 것을 말씀으로 풀었고, 또 들은 말씀을 본 것을 통해 이해했기 때문에 상상력과 감성을 충분히 사용하지 않으면 무슨 말하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책이 요한계시록이다.
3절은 이 계시와 관련된 복을 선언한다. 읽는 자는 단수, 듣는 자는 복수로 기록된다. 이는 당시 사람들이 대부분 자기가 직접 읽은 것이 아니고 예배를 위해 모인 상황에서 한 사람이 읽고 나머지 회중은 들었던 상황을 반영한다. 독자들이나 회중들은 이 책이 읽히는 것을 들으면서 영적인 상상의 나래를 폈을 것이다. 예수께서 직접 주신 계시를 읽고 듣는 사람들이 그 말씀을 “지킬 때” 위로부터 오는 복을 받는다. “지킨다”라는 것은 단순하게 말씀을 보존한다는 뜻보다는 이 계시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순종한다는 의미다.
요한계시록에는 이 복을 주는 말씀이 총 7회 나온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을 받는 이유는 “때가 가까이 왔기 때문”이었다. 즉,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가까이 온 것이다.
2. 기원과 송영(4~6절)
이 단락은 편지 양식을 따른 발신자가 수신자에게 기원하는 내용의 일반적인 기원문이다. 발신자는 사도 요한, 수신자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이다. 요한은 그들에게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은혜와 평강을 기원한다.
4~5a 절의 요한은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로마제국 통치 아래 핍박을 받고 씨름하는 교회에 편지를 전한다. 성부 하나님은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이시다. 오실 자는 현재 분사형으로 하나님은 미래의 실존이 아닌 구원과 심판을 위해 이 세상에 도래하신 분이라는 것이다. 이에 반해 사탄은 “이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나올 자(17:8, 11)로 비교한다. 즉 로마제국이 무소불위의 권세를 휘둘러도 여호와 하나님과 견줄 수 없다.
성부 하나님에 대하여 사용된 “계시고 계셨고 오실 이”라는 표현은 출애굽기 3:14의 헬라어 적 표현이다.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은 성령을 가리킨다. 이는 이사야 11:2와 스가랴 4:2~7을 결합하여 표현했다. 스가랴 말씀은 일곱 등잔(성전의 일곱 가지가 달린 금 촛대(메노라)를 “온 세상을 두루 다니는 하나님의 영”으로 묘사한다. 이사야에 따르면 성령은 교회에 능력을 주시는 분이다. 스가랴는 일곱 영을 네 번 언급한다. 슥 4:6에서 스룹바벨 성전 재건축은 힘으로도 아니고 능으로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 가능하다. 하나님의 통치와 임재는 짐승과 같은 세상 힘이 아닌 하나님의 영으로 이뤄진다. 스가랴 4:3에서 일곱 등불은 여호와의 일곱 눈으로 일곱 영이신 성령을 말한다. 여호와의 눈은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감찰하신다(대하 16:9). 세상의 짐승이 명백하게 어쩔 수 없는 힘과 세계적인 힘을 과시하는 세상에서 성령은 여전히 신실한 종을 찾으시고, 능력을 부어주셔서 하나님의 통치를 확립하신다.
그러고 나서 모든 영광이 예수님께 돌려지고 있는 것을 본다. 본문의 예수는 “충성된 증인”,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최초의 부활자).” “땅의 임금들의 머리”로 묘사된다. 이사야 43:10~13과 시편 89:27, 37을 배경으로 한다. 이사야는 고난받는 종 그리스도가 죽음에 이르는 핍박을 당하지만, 아버지에 대한 신실한 증인으로 참고 견딘다고 말한다. 그는 부활의 첫 열매로서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일어나 신실한 증인으로 인정을 받는다(사 43:10~13). 사망 권세를 이기고 우주의 통치자로(사 55:4) 하나님 보좌 우편에 오르신다(시 110:1).
5~6절은 예수 그리스도께 올리는 영광송이다. 왜 영광을 돌릴까? 첫째, 우리를 사랑하셨다. 둘째, 그의 피로 죄에서 해방하셨다. 셋째,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다. 삼위 하나님은 교회가 ‘나라와 제사장’으로 이중 직분을 수행하도록 부르셨다. 출애굽기 19:6과 베드로전서 2:9를 근거한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모델로 하여 이중직을 수행한다. 주님은 신실한 증인으로 죽기까지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의 진리를 계시하며 증언하셨다. 부활하여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왕으로 통치하신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개시다. 교회도 이방 사회 가운데서 신실한 증인으로 부름을 받았다. 죽기까지 고난과 순교를 당하고 복음을 말과 삶으로 증언하는 것으로 신실하게 왕 같은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에게 맡겨진 소명이 그리스도에게서 완수되었고, 이제 교회가 옛 이스라엘의 직무를 전수받아서 수행하여야 한다.
3. 선언과 계시(7~8절)
7절은 다니엘 7:13과 스가랴 12:10을 함께 인용했다. 다니엘은 악한 제국을 심판한 이후 열방의 통치자로 인자가 등극한다고 말한다. 스가랴 12:10 이하는 종말에 이스라엘의 대적은 패배를 당할 것이고,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그 사자를 배척한 죄악을 회개한 이후에 속량 될 것이라고 밝힌다. 이는 하나님이 종말에 그 백성의 대적을 물리치시고 하나님 나라를 시작할 것을 표현하는 전문 용어다.
요한은 역사적 이스라엘의 범위를 초월하여 온 열방이 애통하다고 표현한다. 믿는 열방이 참 이스라엘이다. 열방이 주께 돌아온다는 소망은 전혀 새롭지 않다. 이미 우리가 그 은혜와 역사 가운데 있다. 그런데 이 소망이 실현되는 방법에 대한 계시는 전적으로 새롭다. 이제까지 봉합되어 있던 두루마리의 내용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하나 나라는 이미 시작되었고 완성을 향해 나아간다. 열방의 멸망을 통해서가 아니라, 열방의 회개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7절은 교회가 여기에 동참하라는 선언이다.
그리고 8절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다.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 시다. 역사의 원천이요 목표 시다. 그런데 요한은 왜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으로 인사말을 마무리할까? 그것은 묵시를 계시받은 종은 계시한 자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한다. 위임을 받은 자는 누구의 권위로 직무를 수행하는지를 확신해야 한다. 현재 교회는 로마제국에 짓눌려서 기가 죽어 있다. 타협과 순응과 동화만이 살길로 보이지만, 교회는 전능하시고 영원하시며 시작과 마무리를 주관하시는 분에게 부름을 받았고 세상에 파송 받았다. 교회는 로마제국과 대결할 신분과 사명과 능력을 이미 가지고 있다.
나는?
-요한계시록은 그리스도의 계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계시이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계시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속히 이루시고 반드시 성취하실 구속의 경륜을 보여주심으로써 고난받는 종들(교회)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보낸 계시이고 예언이며 편지이다.
-요한계시록은 ‘이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로 시작하여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22:7)’로 끝난다. 가까이 다가온 완성의 때를 앞두고 이 책에 나와 있는 경고와 위로, 승리의 약속을 믿고 시련의 때를 타협 없이 잘 인내하며 주의 말씀을 지켜 새 하늘과 새 땅에 참여하는 복을 누리게 하려고 쓴 것이다.
*말씀은 지적 유희나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라 온몸으로 듣고 지켜야 할 대상이다.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요,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전능하신 분이다. 창조에서 새 창조까지 이 역사가 창조의 목표를 이룰 때까지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통치하시는 분이라는 뜻이다. 당시 초대교회 성도들의 눈으로 보기에 당장에는 로마제국이 전부인 듯 보이지만 주권자가 하나님임을 기억하는 것이 영적 전투의 첫째 태도다. 불의가 득세하고 악이 횡행한다 해도 살아계신 하나님만이 이 세상의 주인이심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성령님(일곱 영)은 완전하고 충만한 능력으로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와 구원 계획을 실행하신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떤 외압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주고 고백하고 그 주권에 순종하여 예수의 증인으로 이 땅을 살 수 있도록 도우신다.
-예수님은 충성된 증인으로서 교회가 걸어가야 할 증인의 길을 보여주셨고,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부활의 첫 열매로서 핍박받는 교회에 산 소망을 주신다. 또한 위를 사랑하사 구속하시고 주의 통치를 실현할 대리인(나라)과 이 세상을 하나님께 인도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제사장으로 삼으셨다. 온 우주 만물에 대한 주권을 갖고 사탄을 이기셨고, 종국에는 재림하셔서 악한 세력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바라보는 미래는 그저 막연하고 실체를 알 수 없는 미래가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보장해 주신 내일이다. 요한계시록을 통해 보여주는 미래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궁극적인 승리의 희망을 말하며, 이를 붙잡고 인내하는 삶을 동기부여 한다.
*진정 복 있는 사람은 예배당 안에서 설교를 들을 때 반응하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예배를 마치고 삶의 현장에서 고백 되는 참된 ‘아멘’이 있어야 한다. 요한계시록은 극심한 고난 중에 처한 공동체의 예배 가운데서 전파된 복음의 말씀이었다. 그 말씀을 경청하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온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그 말씀을 삶에서 실천하는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 그런 삶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아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사람이 된다.
*은혜와 평강을 기원하는 요한의 인사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기원으로 하고, 그 최종 영광을 예수께 돌린다. 악의 세력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모방하고 사람들을 미혹하여 바다짐승(적그리스도)에게 인도하려는 모든 시도가 거짓됨을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은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영광을 돌리는 생애를 살라야 한다.
*당장에 로마제국과 세상 권력이 전부인 듯 보이지만, 진정한 주권자요 통치자이신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이 영적 전투의 첫 번째 태도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계신 나의 하나님만이 이 세상의 주인이심을 간과하면 안 된다. 나의 신앙고백은 현재 내 삶의 문제와 나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
*세상이 하나님 나라 백성을 돈으로, 외모로, 직장으로, 성공과 실패로 평가하더라도 주님은 우리가 주님을 대표하는 나라요, 이 세상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제사장이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정의하신 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있는가?
*주님, 교회 가운데 거하시는 주님의 모습이 위로됩니다. 세상 속 어디에 있든지 그곳에 주님이 함께하시기에 힘이 납니다. 함께 제 삶의 지경을 거니시는 주님 때문에 더욱 믿음으로 살아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