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하늘 예배가 이 땅의 예배로 [계 5:1-14]
 – 2025년 07월 09일
– 2025년 07월 09일 –
계 5:1-14 하늘 예배가 이 땅의 예배로
    
하늘 예배 장면이 이어진다. 4장은 예배 장소를 묘사하는 데 집중하지만, 4장 후반부부터 시작된 예배의 행위가 5장에서 더욱 극적으로 펼쳐진다. 예배의 중심은 죽임을 당한 것 같은 어린 양이다. 보좌로부터 세상으로 나아가는 원심력적 예배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들린 두루마리를 어린양이 취함으로,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하늘 보좌의 프로젝트가 시행된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과 천사들, 모든 피조물이 찬양으로 어린양께 영광을 돌린다. 성도의 기도가 하늘 보좌에 상달되어 이 땅에 세 가지 연속적인 일곱 심판 시리즈가 시작된다.
    
    
    
1. 두루마리와 어린양(1~7절)
5장은 죽임당한 어린양 중심의 예배다(4장은 보좌에 앉으신 이를 향한 찬양 예배). 또 보좌로부터 열방을 향한 원심적 예배다(4장은 하늘 보좌를 향한 구심적 예배). 그 출발점은 두루마리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두루마리가 있는데, 일곱 인으로 봉해져 있다.
    
왜 두루마리는 인봉 되어 있을까? 그 이유는 다니엘 12장에서 찾아야 한다. 다니엘서는 세계 역사의 주권자는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백성은 궁극적으로 제국에 승리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다니엘은 두 천사가 역사의 결말에 대해 나누는 대화를 목격한다. 들었으나 깨닫지 못한다. 다니엘이 알려고 했지만, 천사는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합하라고 명한다. 다니엘에게는 멀리 떨어진 종말적 미래지만, 요한과 독자들에게는 직접 영향을 미치는 내용이다. 즉시 공개되어야 할 시점에 있다. 그래서 요한은 다니엘이 봉인한 두루마리가 해제되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두루마리 내용은 무엇인가?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제국이 지배하고 있는 땅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가? 요한계시록 12~14장이 그 내용이다. 따라서 인이나 나팔 심판은 그 내용이 아니다. 두루마리는 10장에서 요한이 소화하여 예언적 선포를 할 때 드러난다. 11장은 두루마리의 맛보기에 해당한다.
    
봉인이 해제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하나님 백성은 여전히 이사야 29:9~12의 상황 속에 놓여 있을 수밖에 없게 된다. 천상에서 논의된 하나님의 계획이 실행되지 못한다. 제국의 모습으로 세상을 지배하는 하나님의 대적이 심판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은 그 압제에서 벗어나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일이 실현되지 않는다. 역사는 제국의 손에 이끌려 갈 것이며, 시련 중인 하나님의 자녀는 보호를 받지 못하고, 악한 제국에 대한 심판과 그리스도인의 승리도 없다. 새 하늘과 새 땅도 없다. 새 예루살렘의 유업도 없다. 그래서 요한은 절망한다. 인을 떼기에 합당한 자가 없다는 것은 큰 문제다.
    
하나님은 창조 세계를 순종하는 인류에게 맡기셨다. 하지만 인류는 실패했다. 하나님은 참 인류가 되라고 이스라엘을 부르셨다. 하지만 육신적 이스라엘도 실패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보내셨다. 예수는 친히 참 인류와 참 이스라엘이 수행하도록 부름을 받은 일을 성취하신다. 그래서 어린양밖에는 인을 뗄 자가 없다.
    
5~7절이 일곱 인을 떼기에 합당하신 죽임을 당한 어린양을 소개한다. 요한이 절망하고 있는데 한 장로가 일곱 인을 떼기에 합당한 분이 있다고 소개한다. 유다 지파의 사자요, 다윗의 뿌리다. 그런데 요한이 보니,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다. 유다 지파의 사자는 다윗의 후손에게 약속한 메시아다(삼하 7:14~16; 시 2:8). 다윗의 뿌리는 이사야가 예언한 다윗 계통의 메시아다. 하나님의 동산이 대적으로 인해 초토화될 것이나, 그루터기(사 6:13)에서 나온 가지와 뿌리와 싹을 통해 동산을 회복하고, 하나님 나라를 이룰 것이다. 그 동산에 이스라엘의 흩어진 자들이 돌아오고, 이방인도 올 것이다. 이사야 11:1~10의 예언이다. 예수는 나사렛(가지)이다. 사자가 이겼는데, 사자가 아닌 도살을 당한 어린양이 서 있다. 사자의 승리는 어린양의 희생을 통해 완수되었다. 어린양의 승리는 사자와 같은 승리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파괴하는 악과 죽음을 모두 정복하셨다. 이사야 40~53장의 고난 받는 여호와의 종이다. 죽음을 통해 그 백성의 죄를 사하고 악의 세력에 승리한다. 신적 아이러니다. 예수님의 세례 중에 하늘에서 들려온 음성(‘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기뻐하는 자라’)도 신적 아이러니를 반영한다. 시편 2편과 이사야 42장의 결합이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결국 이겼고, 일곱 인을 떼시기에 합당하다. 어린양은 다니엘 7장의 인자와 같은 이에게 부여한 권세(일곱 뿔)를 가졌다. 또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하나님을 진심으로 찾는 이들을 찾는 하나님의 영(일곱 눈, 참조. 슥 4:10; 대하 16:9)이 함께 한다.
    
    
    
2. 성도들의 기도(8절)
어린양이 두루마리를 취하신다. 두루마리는 기도와 찬양을 통해 어린양이 어떤 권세와 영광과 능력을 갖췄는지를 드러낸다. 이 구절에서 왜 성도의 기도가 언급되는가? 기도는 두루마리가 개봉되어 선포되어야 할 이유를 나타낸다. 기도는 6:9~10과 8:1~5에서 세 가지 연속적인 심판 시리즈가 하늘에서 시행하도록 만드는 정당한 이유를 제공한다. 기도가 하늘 보좌에 올라간다. 하나님이 들으시고, 심판과 구원의 계획을 결정하고 시행 포고령을 내리신다. 기도의 내용은 무엇인가? 순교자들이 하나님께 정당함을 인정받으려는 탄원과 더불어 제국과 그 우상 숭배자들에 대한 심판을 위한 청원이다.
    
    
    
3. 어린양께 드리는 찬양의 반응(9~14절)
9~10절은, 네 생물과 장로들이 어린양께 새 노래를 드린다.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만물의 근원이기에 찬송 받으시기에 합당하다. 어린양은 구속의 행위로 찬양받기에 합당하다고 인정된다. 어린양의 희생 제사는 찬양이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오는 근거다. 9~14절의 찬양은 1~7절의 의미를 설명한다. 또한 전체 계시록의 주제를 설명하는 노래다. 새 노래는 새 창조에 대한 찬양이다. 구약에서 ‘새 노래’는 항상 대적에 대한 하나님의 승리를 위한 찬양의 표현이다. 다가올 세상에서 메시아 도래의 시기에, 구속 이후에, 이스라엘의 부활에, 네 번째 왕국의 패배에 ‘새 노래’라는 개념은 9~10절의 내용에 잘 들어맞는다.
    
9~10절은 광야 이스라엘의 소명과 사명을 선포하는 출애굽기 19:5~6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근거하여 재해석한다. 출애굽기 19장은 ‘이스라엘’에 한정되어 있지만, 요한은 계시록에서 열방을 전문적으로 나타내는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를 사용하여, 그 적용 범위를 열방으로 확대한다. 창세기 10장과 다니엘 7장 사상의 발전이다.
    
11~12절은 천사들은 왕권이 가지는 일곱 가지 속성을 어린양에게 돌리며 찬양한다. 만민과 천천은 보좌를 중심으로 헤아릴 수 없는 하늘 보좌 예배 참석자들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다니엘 7:10에서 파생된 표현이다. 천사들은 어린양을, 절대주권을 가진 왕으로 찬양한다. ‘능력과 부와 힘과 존귀와 영광’은 역대상 29:11~12에서, ‘지혜’는 다니엘 2:20에서 찾아내 일곱 완전수로 재구성한다.
    
13~14절에서 모든 피조물이 성부와 성자께 드리는 찬양을 올린다. 어린양의 찬양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모든 피조물이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을 함께 찬양한다. 그리스도가 영광 받으시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통해서임을 보충 설명한다. 구약과 유대교의 유일신 사상의 한계를 넘어 성부와 성자가 예배의 대상이 된다.
    
5장 예배의 특징은 무엇인가? 첫째, 선교적이다. 보좌로부터 열방을 향해 나아가는 예배다. 열방이 주께로 돌아오도록 두루마리가 등장한다. 둘째, 기도와 찬양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예배다. 셋째, 예수가 예배의 대상이 된다. 예수가 신적인 존재로 하늘 보좌에서 인정받는다. 유일신론에서 삼위일체로 발전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나는?
-하나님은 역사의 주권자이시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일곱 인으로 봉해진 두루마리가 있다. 이것은 창조에서 새 창조까지 구속의 경륜과 주권이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보여준다. 아무도 악한 세력을 심판하시고 주의 백성을 새롭게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작정을 막을 수 없고, 그분의 의지를 꺾지 못할 것이다. 악은 득세하고 교회는 수세에 몰리고 성도들은 모진 핍박을 받는 상황 속에서, 구속의 역사는 정체되고 하나님 나라를 이어갈 희망마저 보이지 않지만, 보좌에 앉으신 주가 계시기에 탄식은 탄성으로, 슬픔은 환희로 바뀔 것이다.
    
-예수님은 구속을 완성하실 것이다. 봉인된 루두마리의 인을 떼시기에 합당하신 분은 다윗의 뿌리요 어린양이신 예수님뿐이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을 통해 죄와 사망을 이기신 예수님만이 심판과 구원을 통한 하나님의 구속 경륜을 성취하실 것이다. 성령(일곱 영)을 통해 그 구속이 온 세상에 편만하게 적용될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영원히 구속하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구속을 통해 새롭게 창조하고 싶은 미래의 우리 모습을 보여주셨다. 아버지의 뜻을 따라 자기부정과 십자가의 길을 가신 어린양을 따르는 것만이 ‘이기는 자(2~3장)’가 되어 영원한 승리와 영광에 참여하는 길이다.
    
-예수님은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와 수많은 천사들은 어린양 앞에 엎드려, 지기 피로 백성을 속량하여 하나님을 위해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어린양께 경배한다. 오직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만이 인을 떼시기에 합당하고 찬양받으시기에 합당하다고 고백하며 찬양한다. 주님이 아니면 오늘의 내가 없고, 살아갈 수도 없고, 내일도 보장할 수 없다는 기도와 고백이 바로 찬양이다.
    
    
*하늘 예배에 있는 것은 “말씀하신 대로”, “계시”하신 대로이다. 이미 다니엘과 에스겔과 스가랴와 이사야를 통해 알려 주셨던 그 이야기가 실제였다!. 나의 믿음이 여정도 들었던 이야기가 진리로 확증되는 실제를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이야기를 듣고 호기심이 일어, 성령의 감동으로 진리로 믿고, 들려주신 대로 실제가 되는 그 순간이 반드시 오리라!
    
*너무 주님을 간절히 사모하기에 성급한 마음에 내가 듣고 싶은 대로, 알고 싶은 대로 예배드릴 수 있다. 그래서 나의 절망이 예배에서 터져 나올 수 있다. 요한처럼 말이다. 그러나 주님은 이를 책망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확인시켜 주심으로 “새 노래”를 부를 수 있게 하신다. 보좌에 앉으신 창조주 하나님과 두루마리를 취하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노래하게 하신다.
    
*이제껏 내가 알고 있던 노래에서 깊이 보여주시고 들려주심으로 깨닫게 된 노래를 부르게 하실 것이다. 역시 말씀대로 들려주신 것을 초점 조정하신 것이다. 내가 하늘 예배에서 불러야 할 노래는 오직 창조주와 어린 양을 찬양하는 노래뿐이다. 내 마음이 위로받고 안정되게 하는 노래에 머물지 않는다. “새 노래”가 들리고 “새 노래”를 따라 고백하게 될 것이다. 나의 노래에서부터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노래한다.
    
    
*묵상하면서 “하늘 예배처럼”이라는 소망이 간절히 생긴다. 내가 드리는 예배가 “말씀에서 말씀으로” 실제가 되는 현장이 되기를 사모했다. 형식을 따라가는 예배가 아니라 말씀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예배이기를 바랬다.
    
*또한 그런 예배는 결코 감정적인 폭발보다 말씀의 지배를 받는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통곡할 때라도 말씀대로 이루어진 것을 들으며 곧바로 죽임당한 어린 양을 바라본(5~6절) 요한의 모습을 기억해야 하겠다. 감정과 감동으로 예수를 바라보면 오해한다. 내 삶의 상황과 여건으로만 예수를 보기 때문이다. 그러면 통곡이 터져 나오겠지. 하지만 기록된 말씀대로 이루신 어린 양 예수를 바라보면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면 “새 노래”가 터져 나온다!
    
*예수를 온전히(말씀하신 대로, 이루신 대로) 바라보면 삶에서도 믿음의 경주를 완주할 수 있다. 상황을 바라보며 예수를 오해하면 또 다른 나의 예수(구원자)를 만들 뿐이다. 그것이 타협이고 간음이며 배교이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주님, 하늘 예배 더온누리의 예배 가운데 실현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주님, 더온누리의 예배가 하늘 예배와 같이 되기 위해 보좌에 계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바라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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