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9:13-21 여섯째 나팔 재앙, 악을 통해 악을 심판하시는 하나님
9:12에서 경고한 대로 계속해서 “땅에 사는 자들”에게 재앙이 닥친다. 우상을 숭배하던 땅에 사는 자들에게 내려진 첫째 재앙은 제한된 다섯 달 동안만 고통을 당했으나 죽음은 면했었다. 하지만 둘째 재앙인 전쟁은 죽음을 면할 수 없었다. 땅 위의 사람 삼 분의 이가 살아남았지만, 여전히 회개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우상숭배에 매달린다.
1. 여섯째 나팔과 네 천사(13~15절)
13절의 ‘하나님 앞 금 제단 네 뿔에서 나온 음성’은 누구의 음성인가? 근동 지역의 제단은 전형적으로 네 개의 뿔이 달려 있다. 성전에는 성소 앞의 번제단과 분향단에는 네 뿔이 있다. 이는 동서남북 온 세상을 지칭하는 상징적인 표현이다. 출애굽기 27:2에 따르면 성막에서 제단의 네 뿔은 각기 동서남북을 향하여 배치되었다. 온 세상의 방향을 설정하는 뜻이다. 이를 기준으로 광야의 이스라엘은 동서남북으로 진영을 배열하여 주둔한 것이다. 또 근동 지역에서 하나님의 성전뿐 아니라 모든 신전은 전체 우주를 상징하는 소우주(microcosm)다.
성전의 금 제단은 지성소 앞의 분향단인데, 이곳에서 아침저녁으로 이스라엘이 기도를 올린다. 인 심판 시리즈에서 제단 앞에 성도들이 기도를 드린 곳이다(6:10~11; 8:3~5). 성도들의 탄원 기도에 대한 구체적인 응답이다. 열왕기상 1:50~53은 이 제단의 뿔을 잡고 사면을 요구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이 성소와 피난처로 인식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네 뿔에서 나오는 음성은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가리키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임재와 권위로 받아들여졌다. 그 음성이 나팔을 가진 여섯째 천사에게 명령하여 유브라데에 묶여 있던 네 천사를 풀어주라고 명령한다. 이 네 천사가 풀려나면서 재앙이 시작된다.
요한계시록 5:6에서 어린양은 일곱 눈과 함께 일곱 뿔이 달린 모습으로 묘사된다. 일곱 눈은 온 세상에 보냄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다. 하나님의 눈은 온 세상을 감찰하여 전심으로 자기를 찾는 자에게 능력을 베푸신다(슥 4장; 대하 16:9). 어린양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여 하나님 보좌 오른편에 좌정하셨다. 하나님의 통치가 온 우주에 이뤄지도록 시동을 거셨다. 성도들은 로마제국의 통치 아래에서 대부분이 타협과 동화의 길로 걸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신실한 증인의 삶을 살고 있는 자들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어린양의 군대 십사만 사천을 보호하고 승리의 개가를 부르기 위해 로마제국을 향한 구체적인 심판을 지시하신다.
처음 다섯 나팔을 불 때의 천사가 단지 나팔수 역할이었지만 여섯째 나팔을 분 천사는 여기에 다른 네 천사를 풀어주는 역할까지 수행한다. 네 찬사가 결박되어 있다는 것과 그들이 받은 임무로 미루어 볼 때 이 천사들은 타락한 천사들이었다. 1세기 당시 유브라데 강은 주전 1세기 폼페이 장군이 유브라데 강을 국경으로 삼은 이후 로마제국의 동쪽 국경선이었다. 그 너머에는 로마인이 두려워했던 파르티아 제국이 있었다. 당시 로마제국은 북, 서, 남쪽의 적들은 제압했지만, 동쪽의 파르티아 제국은 정복하지 못했다. 파르티아 제국의 잔인함과 공격성은 로마인들에게 두려움을 유발했다. 파르티아인들이 유브라데 강을 건너 침범해 오는 것을 엄청난 재앙으로 인식했다.
14~15절은, 네 천사의 재앙이 철저하게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서 진행되는 것을 보여준다. “준비되다(헤토이마조)”라는 요한계시록에서 일곱 번 사용된다. 이 단어는 하나님의 통치가 철저히 준비되어 이루어지는 것을 강조한다. 네 천사는 당시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대규모 군대를 동원하여 전쟁을 일으킨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도 결국 하나님의 손바닥 위에 있음을 놓치면 안 된다. 아무리 극심한 재앙이라도, 하나님의 주권하에 이루어진다. 네 천사가 사람 삼 분의 일을 죽이는 것은 하나님의 허락하에 일어난 일이다. 폭력에 기반한 제국들은 전쟁을 통한 살육과 파괴를 쉽게 자행한다. 하지만 완전하게 파괴된 것은 아니다. 삼 분의 이가 남아있다.
2. 이만 만의 마병대(16~19절)
“이만 만(이억 명)”은 엄청나게 많은 수보다 배나 더 많은 수를 의미한다.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큰 후자다. 따라서 상징적으로 큰 수다. 1세기 당시 5만~10만 명의 군대가 천하무적으로 여겨졌다는 것을 고려하면 요한이 들은 수는 상상을 초월하는 강력한 군대를 나타낸다. 다섯째 나팔의 메뚜기 떼와 같다. 그러나 이들은 의인들을 보호하고 악인들을 징벌하는 마치 하나님의 무수한 군대와 같다.
요한이 본 것은 환상 중에 본 것이므로 실제 상황처럼 해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마병대의 모습은 예레미야 46장에 근거한다. 투구와 갑옷을 입고 뱀 같은 모습으로 메뚜기 떼처럼 북쪽에서 오는 군대가 유브라데 강에 서 있다(46:1, 4, 10, 22~23). 여기에 불빛과 자줏빛과 유황빛 가슴막이를 차고 있고 사자 머리를 한 말들의 입에서는 불과 연기와 유황이 나오고 있다”라는 표현은 두려움을 주기 충분했다. 특히 ‘불과 연기와 유황’은 소돔과 고모라의 이미지(창 19:24)를 더하여 치명적인 심판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요한은 말들의 입에서 나오는 세 가지를 “세 재앙”이라고 부르며 그것을 통해 사람 삼 분의 일이 죽임을 당한다고 묘사한다.
요한은 이 일이 “땅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정당한 심판임을 강조한다. 입에서 나오는 불과 연기와 유황이 사람들을 죽이지만, 뱀과 같은 꼬리에는 머리가 달려 있어 그것으로 사람을 해친다. 이는 당시 파르티아 군대 궁수들이 적진을 향해 돌진하며 활을 쏘다가 적진을 통과하게 되면 말 위에서 뒤돌아 앉으면서 계속 활을 쏘았던 모습을 그린 것으로 이해한다. 이런 해괴망측한 모습은 그것 자체만으로 두려움을 자아낼 만하다.
3. 재앙에 죽지 않고 남아있는 자들(20~21절)
이 단락은 심판에서 살아남게 된 사람들의 반응이 소개된다. 여섯째 재앙으로 사람 삼 분의 일이 죽고, 나머지는 살아남았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하나님께 회개하지 않는다.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고 또 그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둑질을 회개하지 않았다. 요한은 회개해야 할 다섯 가지 죄를 열거하고(우상숭배, 살인, 마술, 음행, 도둑질), 우상의 재료 다섯 가지(금, 은, 동, 나무, 돌) 로 열거한다. 유대인들이 십계명을 다섯 계명으로 요약하는 관습을 따른 것으로 추측된다.
요한은 그들이 회개해야 할 목록의 초점을 우상숭배에 맞춘다. 계시록에서 이러한 사람들은 끝내 하나님 대신에 마귀 혹은 사탄에게 경배하는 자들이다. 그리고 재앙을 회개와 연결하면서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려주고 있다. 결국 그들이 심판당하는 이유가 끝까지 회개하지 않아서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이 공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생들이 끝내 돌아오지 않는 것으로 하나님이 심판하는 정당성이 확증된다. 사탄과 사탄의 세력들은 자신들을 섬기는 자들을 고통과 죽음의 자리에 몰아넣는 거짓 통치자이지만, 하나님은 세상이 끝내 심판으로 끝나지 않기를 간절히 원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나 끝내 회개하지 않는다면 최종적인 심판의 자리로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일곱 번째 나팔 재앙(11:15~19)이 울려 퍼지고 대접 재앙으로 이어져서 악인들의 최종적인 멸망이 완성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본 단락의 나팔 재앙 전체는 출애굽 재앙처럼 경고용이다. 회개의 기회를 충분하게 제공했다. 재앙을 통해 고통도 충분히 받았다. 그런데 마음을 더 강퍅하게 만든다. 회개를 끌어내지 못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회개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모습은 11장에서 등장하는 두 증인의 사역(11:1~~13)에서 나타난다.
나는?
-둘째 ‘화’가 임한다. 다섯 달 동안의 극심한 고통이 끝나는 다섯째 나팔 재앙과 달리 여섯째 나팔 재앙은 인침을 받지 않은 사람들 1/3의 죽음을 가져오는 끔찍한 재앙이다. 하나님 앞 금 제단 네 뿔에서 음성이 나와 심판을 시작한다. 복음을 전하다가 죽임을 당한 이들이 신원을 간구하며 기도하던 자리(6:9; 8:3)에서 심판이 시행된다. 이 심판이 성도들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요,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보응임을 알 수 있다. 비록 온갖 시련들, 심지어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것이 찾아올지 모르지만, 그것들 역시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적 손길 아래 있을 뿐이다. 성도가 기도의 자리에서 떠날 수 없는 이유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궁극적인 구원을 위해 모든 일을 통제하시고 경영하신다.
-무저갱에서 올라온 황충처럼(3절), 큰 강 유브라데에서 올라온 엄청난 수(2억)의 마병대는 불과 연기와 유황으로 사람 1/3을 잔혹하게 죽인다. 유브라데 강 너머의 파르티아 기병대에 기세등등하던 로마제국이 큰 타격을 입었듯이 창조주를 두려워하지도, 인정하지도 의지하지도 않는 오만한 자들과 죄와 함께 쌓여가는 모든 부와 힘과 명성도 결국 한순간에 무너지고 짓밟힐 것이다. 심판 날에 지킬 수도 없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 정작 하나님이 소중히 여기시는 것들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
-참담한 재앙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죄를 회개하기보다 도리어 자신이 가진 남은 자원들을 동원하여 불안과 두려움과 심판에서 자신을 지켜줄 우상을 만들기에 전념한다. 왜 그들에게 더 많은 재앙이 필요한지를 보여준다. 돌아오지 않고도 무사한 역사는 없다. 그런데 이들은 마지막 기회마저 저버렸다. 하나님은 구원을 위해 각자 자기 왕좌에서 내려와 주님께 복종하는 것 말고는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참된 믿음은 자기 절망에서 시작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믿을 구석이 남아있는 한 결코 주님께로 돌아서지 않는다. 하나님이 내게도 주의 능력을 믿기까지, 의지하던 것을 내려놓을 때까지 무엇이 더 필요하냐고 물으시는 하나님의 질문에 응답해야 하지 않을까.
-또 상황이 호전되면 그때 하나님을 향해 품었던 서원이나 결심은 과거의 일로 묻혀버린다. 어려울 때 그토록 간절하던 내 기도와 약속 중에서 삶이 편해졌다고 모른 척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역시 계시록은 위로와 소망의 책이었다! 탄원을 들으시는 하나님에게서 감동이 밀려온다! 반드시 들으시는 하나님이시다!
*반드시 정한 때가 이르면 지체하지 않고 나팔 소리를 울리실 하나님이시다. 미적거리며 신앙 생활하면 안 된다. 미적거리는 순간에 주님께서 행하신다.
*이렇게 완악한 사람들이라니…. 이 완악함이 공동체에 도사리지 않기를 바란다…. 나의 맘에 싹트지 않기를 바란다.
*주님, 참담한 재앙은 어김없이 주님의 주권하에 이루어지지만, 사람들이 회개하고 돌아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욱 우상에 기댑니다. 이런 세상 속에서 주님께 기도한 곳에서 주님의 뜻이 시작하는 말씀을 기억하고 꿋꿋하게 믿음으로 살아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