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구원의 추수와 심판의 추수 [계 14:14-20]
 – 2025년 07월 22일
– 2025년 07월 22일 –
계 14:14-20 구원의 추수와 심판의 추수
    
두 가지 심판이 진행된다. 먼저 신자의 구원을 위한 곡식 추수다. 다른 하나는 포도 추수로 불신자에 대한 심판을 보여준다. 두 표징을 통해 최후 심판의 양면성을 보게 한다. 인자는 예리한 낫으로 익은 곡식을 추수한다. 또, 역시 예리한 낫을 가진 다른 천사는 포도 추수를 하여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진다.
    
666은 144,000에 패배를 당했다. 그 결과 바벨론이 멸망한다. 바벨론은 666이 고대로부터 현재까지 제국주의를 추구하는 모든 정치, 경제 제도다. 우상 숭배자들은 666의 표를 받았다. 그들은 안식 없는 삶을 쉴 새 없이 추구한다. 종교도 이를 부추긴다. 이 체제가 심판을 받는다. 반면 성도는 안식이 없는 가치와 생활 방식에 저항한다. 지혜와 인내로 분별하고 저항하여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가 보인 신실함(14:12)은 안식과 희년 사회를 지향하고 마침내 영원한 안식에 참여한다.
    
그렇다면 영원한 안식을 향해 열방이 언제, 어떻게 주께로 돌아오게 될까? 십사만 사천은 추수의 첫 열매다. 새 노래는 승리의 노래이자, 열방이 주께로 돌아오도록 초청하는 노래다(14:3; 시편 96~100). 천사는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라고 열방을 초청한다(14:6~7). 본문은 두루마리 전체(12~15장)에서 이 주제를 다룬다. 곡식과 포도 추수는 복음 선포에 열방이 반응한 결과다. 열방의 구원과 심판을 보여준다. 이 장면을 다니엘 7장과 요엘 3장이 배경으로 펼쳐진다.
    
    
    
1. 인자의 익은 곡식 추수(14~16절)
십사만 사천은 구원의 첫 열매를 상징한다고 했다. 첫 열매는 하나님께 올려드렸다(5:9). 레위기 23:10은 이스라엘이 농사의 첫 열매를 걷어서 하나님께 봉헌하였음을 보여준다. 이때 흠이 없는 어린 양과 함께 봉헌된다.
    
14절에서 요한은 “또 내가 보니”라고 언급하며 새로운 환상을 소개한다. 어린 양 대신 구름 위에 앉아 계신 인자와 같은 이를 보게 된다. “인자와 같은 이”는 다니엘 7:13~14에서 다니엘이 본 밤 환상 속에서 종말의 심판 때, 하늘 구름을 타고 등장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한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받고 민족과 언어가 다른 모든 백성으로부터 경배를 받고 그들을 심판하게 될 분으로 묘사한다. 요한이 본 “인자(사람)와 같은 이”은 하나님이 보좌에서 통치하는 것과 같이 구름 위에 앉아 있는 모습과 그가 쓴 정복과 승리의 상징인 금 면류관(3:21)으로 보아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가 분명하다.
    
요한은 5장을 통해 어린 양의 희생적인 죽음으로 승리했음을 분명히 선포했다. 그의 죽음으로 모든 민족과 언어가 다른 백성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이끄신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어린 양이 승리했지만, 아직 그에게 대항하는 악의 세력들은 어린 양을 따르는 성도들을 계속 핍박하고 있다. 이렇게 박해받는 성도들을 위한 어린 양의 해결책은 과연 무엇일까? 또 해결될 때는 언제인가?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때가 분명히 올 것을 이미 보여주었듯(11:15~18), 본문 인자의 익은 곡식 추수를 통해 마침내 하나님 나라 완성을 보여준다.
    
15절은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큰 소리로 외친다. “땅의 곡식이 다 익어 거둘 때가 이르렀다”에서 “익었다(크세라이노)”로 번역된 단어는 “바싹 마르다”는 의미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갈릴리호숫가에서 말씀하신 “희어져(이미 익어서) 추수할 때가 되었다(요 4:35)”라는 것과 다름없다. 천사의 외침은 보좌에 계신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인데, 마태복음 24:36에서 마지막 심판의 시간을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며,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는 말씀에 따라 그 시간을 열어 주는 모습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구름은 성경에서 하나님과 예수께서 이동하실 때 사용하신 것을 보면 인자가 땅으로 이동하여 마지막 추수를 하는 모습을 묘사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인자가 추수할 곡식이 의미하는 것에 대한 논란이 많지만, 요한은 이미 십사만 사천의 성도들을 처음 추수 때 거두어들일 “첫 열매(아파르케)”로 표현하였고(14:1~5), 이는 이어지는 더 많은 추수를 기대하게 하는 것이어서, 인자의 추수는 성도의 구원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포도주는 부정적인 심판의 이미지와 연결되어, 짐승을 따르고 우상을 숭배한 사람들에 대한 심판으로 묘사된다. 인자의 곡식 추수는 곡식이 거두어지면서 마무리되지만, 포도 추수는 포도가 포도주 틀에 던져져서 밟히는 것까지 그려진다.
    
그러므로 인자의 곡식 추수는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가 구름 타고 오실 때에 신실하게 어린 양을 따르던 사람들을 수확하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마 24:30~31; 막 13:26).
    
    
    
2. 또 다른 천사의 포도 추수(17~20절)
또 다른 천사가 성전에서 나온다. 성전에서 나왔다는 것은 보좌 위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나온 것을 전제한다. 그 천사는 “날 선 낫”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 천사는 불을 다스리는 천사가 나와 큰 음성으로 외치기 전까지 추수하지 않는다. 불을 다스리는 천사가 나온 곳은 제단이다. 이곳은 순교자들이 제단 아래에서 얼마나 더 기다려야 자신들을 피 흘리게 한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볼 수 있느냐고 부르짖은 곳이다(6:9~11). 포도 추수는 그들이 더 시간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때를 보여준다.
    
천사는 포도가 익었다고 선언한다. 포도의 과즙이 꽉 차 있다는 것은 요엘 선지자의 선언처럼 그만큼 인간의 악이 차고 넘칠 때를 빗댄 것이다(욜 3:13). 그런데 왜 포도 열매로 이를 빗댔을까? 이사야 5:7을 통해 유다 백성은 주님께서 심으신 포도나무라고 밝히며 그들이 선한 일, 옳은 일 하기를 기대했지만, 보이는 것은 살육과 사람들의 울부짖음밖에 없다고 일갈했다. 요한은 온 땅이 이처럼 피로 가득한 포도밭이며, 그 피는 어린 양과 순교자들이 흘린 피(5:9; 6:10; 7:14; 12:11)임을 빗댄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땅은 성도들과 예언자들의 피를 흘리게 한 것(16:6)과 큰 음녀(로마)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 증인들의 피에 취한 것과(17:6), 바벨론에서 예언자들과 성도들과 땅에서 죽임당한 모든 사람의 피가 발견된 것(18:24)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종들이 흘린 피의 원한을 갚으신다(19:2). 땅에서 일어난 폭력으로 땅은 피로 가득한 포도밭이 되었기에 그 밭의 포도를 추수하여 포도주를 짜낼 때 사람들이 흘린 피가 뿜어져 나온 것이다. 분문은 이렇게 불의하게 흘린 피에 대한 정의로운 심판을 묘사한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표현할 때 포도주, 포도주잔, 포도 추수와 같은 이미지를 종종 사용한다. 특히 포도주 틀은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한다(사 63:2~6).
    
본문에서 천사가 포도를 추수하여 하나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짐으로 짐승을 따르는 자들의 심판이 시작된다. 추수한 포도는 “성 밖에서” 틀에 들어가 밟힌다. 계시록은 “성”을 구원받은 공동체, 믿음의 공동체로 빗대고, “성 밖”은 그 공동체에 속하지 못한 상태를 빗댄다. 이미 11:2에서는 ‘거룩한 도성’이 짓밟히지만, 본문은 그 성에 속하지 못한 자들, 즉 짐승을 따르는 자들이 짓밟힌다. 하나님의 심판임을 분명하게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누가 짓밟았는지에 대한 표현은 직접적으로 밝히지 않는다. 다만, 계시록의 문맥상 이후 요한계시록 19:11~21에 등장하는 백마 탄 그리스도가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을 것이라고 밝히기에, 그리스도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본 단락은 천사가 수확하고 그리스도가 포도주 틀을 밟는 것으로 연상케 하지만, 19:11~21에서는 그리스도가 모든 것을 감당하는 것을 보여준다. 이렇게 하여 땅을 오염시킨 불의가 마침내 심판받아 사라지는 것을 보게 된다.
    
한편, 포도주 틀에서 나온 피가 말 굴레의 높이까지 닿고, 1,600 스다디온(약 300km)까지 퍼져 나갔다는 묘사를 통해 땅 위에 사는 자들이 저지른 폭력의 범위와 규모가 온 세상에 가득했음을 깨닫게 한다. 또한 세상에서 벌어진 잔인함의 정도가 이렇게 악했음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전통적으로 학자들은 1,600이라는 숫자를 해석하면서 이 숫자가 4의 제곱에 10의 제곱을 곱한 것이라고 정의한다. 계시록의 상징적인 숫자 사용에서 10×10은 전체를 상징하고, 4×4는 땅의 네 끝을 가리키는 의미가 있기에 인간의 악의 범위와 규모가 온 땅에 상상을 초월하여 퍼져 있고, 하나님의 심판이 온 땅에 정의를 가져올 것을 바라보게 한다.
    
    
    
나는?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손에는 날카로운 낫을 가진 “인자 같은 이(단 7:13)”의 환상은 예수님이 진정한 승리자이며, 영원한 통치자, 최후의 심판자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세상 끝 날에 날카로운 낫을 휘둘러 땅의 곡식은 거두시고, 땅의 포도는 포도주 틀에 넣어 밟으실 것이다. 이를 통해 주의 백성은 구원하고 악한 세력은 섬멸하신다. 잠시 불의한 승리가 우리의 삶에 패배감을 안겨주더라도 절망해서는 안 된다. 오늘이 전부가 아니다. 결론도 아니다. 뿌린 대로 거두는 그날이 반드시 온다. 그날에 최의 심판자는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시다.
    
-임박한 심판을 알리며 열방에 회개를 촉구하던 천사가 이제 땅의 곡식(성도)들이 다 익어 거둘 때가 이르렀음을 예수께 요청한다. 주님은 마지막 맹렬한 진노의 순간에 앞서서 성도들을 먼저 모으시고 구원의 반열에 세우신다. 어린 양 예수님의 추수는 먼저 성도들에게 이루어진다.
    
-회개의 기회를 거부하고 짐승과 그 우상을 숭배하던 자들을 향해 예고된 심판(8~10절)이 집행된다. 불을 다스리는 천사가 예리한 낫을 가진 천사에게 땅의 포도를 거두라고 명령한다. 예고 없는 심판 없고, 이유 없는 심판도 없다. 진심으로 회개할 때까지 심판을 잠시 유예할 뿐, 철회한 것이 아니다.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들이 거하는 “성안”과 달리 “성 밖”은 심판의 장소다 자기 피로 백성을 속량하려고 “성 밖에서” 죽임을 당한 어린 양 예수(히 13:13)를 거절한 이들은 “성 밖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진노의 포도주 틀에서 나온 피가 말 굴레에 이르기까지 닿고 온 땅에 퍼질 만큼 철저하고 맹렬한 심판을 결코 피하지 못한다.
    
*추수 날이 이를 것이다. 나는 과연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으로 변질되지 않고 그 언약의 약속 위에 서 있는가? 지금 주님이 오신다면 나와 우리 공동체, 이 땅의 교회들은 온전히 하나님의 것으로 추수될 수 있을까? 지금 당장 외면 곤란한 마음이 조금도 없을까? 그날이 두렵고 당황스러운 날이 되지 않도록 늘 깨어 준비해야 하리라.
    
*이스라엘은 매년 농사의 첫 열매를 걷어 먼저 하나님께 드렸다. 이것은 전체 추수의 보증이다. 144,000이 열방의 첫 열매로 드려진 성도들이라면, 곡식 추수는 열방의 모든 성도를 불러 모으시는 이미지이다. 144,000이 완성이 아니다. 그들은 첫 열매였고 이후 열방의 구원받는 성도들이 완성이다.
    
*나는 농부의 아들이다. 그래서 추수 때의 기쁨이나 절망의 감정을 잘 안다. 우리 인생의 끝 날에 있을 추수를 안다면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복된 걸음인지 알 것이다.
    
    
    
*주님, 주님 다시 오실 그날에 내가 거두어질 곳이 구원의 추수 밭임을 알기에 지금 여기에서 더욱 믿음으로 살아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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