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16:1-11 일곱 대접 재앙 _ 첫째 대접~다섯째 대접
이제 본격적으로 일곱 대접이 하나씩 쏟아지기 시작한다. 본문에서 묘사된 심판(일곱 나팔, 일곱 대접)은 출애굽기 7, 9장을 배경으로 한다. 대접이 하나씩 쏟아질 때 땅과 바다와 강과 샘물에 영향을 미치고, 해에 쏟을 때 사람들이 타고, 짐승의 왕자에게 쏟아질 때 어둠이 찾아와 사람들이 고통받는다. 하지만 그들은 회개하지 않는다.
일곱 대접이 쏟아지는 환상은 마지막 재앙으로 하나님의 진노가 이 재앙으로 마무리된다(15:1). 이 환상에는 몇 가지 특징이 나타나는데, 첫째, 일곱 대접 심판은 일곱 인과 일곱 나팔 심판 때 일어났던 사건들을 다른 각도에서 보여준다. 둘째, 대접들이 쏟아질 때 전체 우주가 영향을 받는다. 인간이나 그들의 제국만이 아닌, 땅, 물, 불, 공기까지 영향을 받게 된다. 셋째, 이 재앙들은 엄청나게 파괴적이지만, 그것들은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고 그 통치를 증거한 사람들을 박해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의롭고 정당한 반응이다. 넷째, 하나님의 심판은 악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정확하게 응징한다. 다섯째, 이 모든 재앙은 출애굽 사건에서 온 이미지로 구성된다.
1. 첫째 대접부터 셋째 대접(1~4절)
하나님의 거룩함이 성전을 가득 채우면서 긴장감은 극대화된다. 일곱 천사는 곡식과 포도를 수확하라는 명령이 있은 다음에 활동을 시작했던 것처럼(14:15, 18), 성전으로부터 큰 음성이 나서 하나님의 진노 일곱 대접을 쏟으라는 명령이 내려지기까지 기다린다. 명령이 떨어지자, 일곱 대접 심판이 시작된다.
이 심판은 하나님의 심판이다. 대접들이 하나씩 쏟아지며 묘사된 재앙들은 이스라엘이 출애굽 하기 전에 애굽에 내려진 재앙들과 닮았다. 이는 매우 의도적인 묘사인데, 이미 15:3~4의 찬양이 모세의 노래와 어린양의 노래인 것과 같은 이유다. 하나님은 바로가 이스라엘을 보내 주기를 거절했을 때 모세를 통해 여러 재앙을 내리셨다. 모든 생물의 장자가 죽는 열 번째 재앙을 당하기 전까지도 바로는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가 마침내 굴복했다(출 7:14~12:33).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불리며 광야 생활을 할 때 하나님은 그들이 불순종하던 애굽에 내렸던 재앙을 그들에게도 내릴 수 있음을 경고하셨다(레 26:1~33).
첫 세 대접 재앙은 빠른 속도로 쏟아진다. 나팔 심판 때의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 파괴되었던 것과 달리 광범위한 재난이 내려진다. 삼분의 일이 아니라 전체가 영향을 받는다. 첫째 대접이 쏟아지자, 악하고 독한 종기가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을 괴롭히게 된다(2절). 출애굽의 악성 종기 재앙을 연상케 한다(출 9:9). 만약 짐승의 표를 비밀리에 받은 사람들이 있다면 종기로 인해 그 실체를 숨길 수 없게 될 것이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예배하지만, 속으로 용을 따르던 사람들의 정체가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모든 것을 밝혀 드러낸다.
둘째 대접이 쏟아지자, 바닷물이 죽은 사람의 피처럼 되어 바다에 있는 모든 생물이 죽는다(3절). 셋째 대접이 쏟아지니, 강과 물의 근원이 피로 변한다(4절). 셋째 나팔 재앙에서 강가 샘 삼분의 일이 쑥물로 변한 것(8:11)보다 더 큰 재앙이다. 둘째와 셋째 대접 재앙은 식수와 당시 로마 제국을 지탱하던 해상 무역과 강과 수로를 통한 물품 운반과 관련된 재앙이다. 로마 제국을 유지하는 기반을 무너뜨리는 재앙이다. 즉, 사탄이 통치하는 세상에서 사탄이 사람들을 옭아맨 경제 활동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재앙인 것이다. 나팔 심판 때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이미 언급한 만큼 강과 물의 근원이 피가 되어 식수로 사용할 수 없게 되면서 짐승 숭배자들이 마실 물을 더 이상 찾지 못하게 되는 재앙도 함께 묘사한 것이다.
2. 물을 차지한 천사와 제단의 찬양(5~7절)
물을 주관하는 천사의 찬양이 곧바로 이어진다. 일곱 대접의 심판이 예배의 맥락에서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 짐승 숭배자들이 종기로 고통받고, 바닷물이 시체의 피가 되고, 강과 물의 근원마저 피로 변해 식수를 구할 수 없게 된 것은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징벌임을 노래한다. 하나님의 심판이 이루어지고 그가 의로우심이 증명된다(5절).
악이 처벌받을 때 하나님의 정의가 드러난다. 짐승 숭배자들이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그들이 강과 물의 근원이 피가 되었기에 피를 마시게 된 것은 “합당하다(악시오스, 6절)”라고 찬양한다. 합당하다는 저울에 무게를 달 때 정확하게 균형이 맞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심판이 그들이 저지른 일에 대한 정확한 보응이라는 의미다. 짐승 숭배자들은 선지자들을 학살했고, 성도들을 박해했다(11:7; 13:7).
또 제단이 하나님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 것이라고 찬양한다(7절). 이는 6:9~11에서 순교자들의 탄원 기도가 마침내 응답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순교자들이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하는지 울부짖었는데, 이것을 하나님께서 들어주신 것이다.
한편, 셋째 대접과 넷째 대접 사이에서 이 찬양이 불리는 것은 짐승 숭배자들에 대한 무자비한 파괴가 아니라 그들이 ‘피를 마시게” 하는 것을 주목하게 한다(6절). 그들이 순교자들의 피를 흘리게 한 것처럼 그들이 피를 흘려야 마땅하나 피를 마시는 징벌을 받도록 하신 것이다. 이는 넷째와 다섯째 대접이 부어질 때처럼 그들에게 아직 회개할 기회가 남아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짐승을 이긴 신실한 사람들이 바닷가에서 부른 노래가 모세의 노래지만 어린 양의 노래이기도 했다. 그들이 저지른 죄악에 ‘합당한’ 심판은 피 흘리는 대신 피를 마시는 것이었다. 천사는 짐승 숭배자들이 당한 이 처벌이 합당하다고 노래한다.
과연 짐승 숭배자들은 피를 흘리지 않고 피를 마시게 하는 심판 속에 감춰진 회개의 기회를 붙잡을 수 있을까?
3. 넷째 대접과 다섯째 대접(8~11절)
넷째 대접 재앙은 해에 쏟아진다(8절). 해는 불로 사람을 태워도 된다는 허락을 받고 사람들을 태워 버린다. 몹시 뜨거워진 태양열에 고통을 당한다. 이것 또한 그들에게 닥칠 패배에 대한 경고의 역할이다. 아직은 그들에게 기회가 있다. 하지만 그들은 회개하지 않는다(9절).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은 바벨론이 짐승에 의해 불에 태워질 때 완전히 이루어질 것이다(17:16). 또 사탄의 군대가 하늘로부터 오는 불에 의해 불태워질 때(20:9) 이루어질 것이다. 즉, 넷째 대접 재앙은 이후 이루어질 마지막 심판의 맛보기에 해당한다. 맛보기를 보여줌으로 그들이 깨닫지 못하지만, 회개의 기회가 주어진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고 회개하지 않는다. 13장에서는 짐승이 하나님을 모독했으나(13:6), 이제는 짐승 숭배자들이 하나님을 모독한다.
다섯째 대접은 짐승의 왕좌에 쏟아진다(10절). 짐승의 나라가 어둠에 휩싸인다. 이제까지의 대접 재앙들은 짐승 나라의 땅, 바다, 강, 물 근원, 해를 위협했다면, 다섯째 대접은 직접 중심을 쳤다. 짐승은 사탄에게 그 왕좌를 받았고(13:2), 사탄은 속임수와 폭력으로 권력을 행사했는데, 짐승도 이를 그대로 이어받았다(12:9, 17; 13:1~18). 하지만 짐승의 통치는 영원하지 못하며, 마지막에 결국 파괴된다.
하지만 짐승 숭배자들은 고통(자기 혀를 깨물고, 아픈 것, 종기) 을 받으면서도 회개치 않고 하나님을 비방하고 모독하기를 계속한다. 자신들의 힘이 하나님에 의해 제한되어 어둠의 감옥에 갇히게 되었지만, 짐승 숭배자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회개의 기회를 거부하고 하나님을 지속적으로 대적한다.
나는?
-성전에서 큰 음성이 나와 진노의 일곱 대접을 쏟으라고 명령하셨다. 첫째, 다섯째 대접이 땅에 쏟아지니 짐승의 표를 받은 이들과 우상에 경배하는 자들에게 악하고 독한 종기가 나서 괴롭힌다. 둘째와 셋째 대접이 바다와 강에 쏟아지자, 바다가 피로 물들어 생명체가 죽고, 강과 물도 피가 된다. 불의와 패역, 탐욕이 가득한 짐승 숭배자들이 물을 마시지 못하고 피를 마시게 된다.
-짐승의 표를 받고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에게 ‘악하고 독한 종기’가 나게 하셨다. 그들은 창조주와의 언약을 어기고 어린 양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새 언약의 은혜를 저버렸다(신 28:35). 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부정하고 땅에 집착하다 우상의 노예로 전락하고만 자들이다. 늘 살아가면서 내 마음을 파고들어 상하게 하고 삶을 피폐하게 하는 우상이 없는지 분별해야 할 것이다.
-로마 제국의 근간이었던 바다를 오가는 해상 무역이 더 이상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바다로부터 자원들이 공급되어야 하지만, 더 이상 얻지 못한다. 제국의 힘을 이용하여 세계를 착취하던 이들은 분노의 재앙을 피해 갈 수 없었다.
-물 근원을 피로 심판한 천사가 영원하고 거룩하신 분에게 ‘악한 자들에게 피를 마시게 하는 심판이 정당하다’라고 찬송한다.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무고한 피를 흘렸기에 정당한 보응이라는 수긍이다. 기도하는 순교자들도 ‘거룩하고 의로운 심판’이라고 화답한다. 하나님의 정의는 합당한 심판으로 증명된다.
-이세벨은 나봇의 피를 흘렸기에 행한 그대로 심판을 받았다(왕하 9:30~37). 주님께서는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고 하셨다(마 26:52). 그리고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하셨다(마 16:27). 악을 뿌리면 재앙을 거둔다(잠 22:8).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갈 6:7). 불의와 악은 영원할 수 없다.
-넷째 대접을 ‘해’에 쏟자, 해는 작렬하는 빛과 열기를 내어 수많은 사람을 태운다. 인간이 창조 질서를 파괴하자, 피조 세계가 도리어 인간을 심판하는 것이다. 탐욕스럽게 창조 세계를 착취한 인간은 죄에 합당한 보응을 받는다. 오늘날 이상 기후에 따른 재해들은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분명한 경고임을 간과하면 안 된다.
-특히 심판받는 짐승 숭배자들은 하나님의 분명한 심판 앞에 두려워하고 회개하기는커녕 심판의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비방하고 모독하며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다. 이처럼 하나님을 떠난 악인의 특징은 완악함이다. 애굽의 파라오처럼 재앙을 받을수록 더 완고해진다. 하나님을 인정할 충분한 증거를 가졌고 재앙의 징조들이 여실히 드러남에도, 외면한 채 돌이킴이 없다. 인생이라는 광야를 걷는 이는 특히 “완고함”을 경계하라고 가르친다(히 3:13).
-재앙의 징조들이 나타나고 이전보다 더 분명하게 경고하시는 것을 애써 외면하지는 않은지 모르겠다. 지금도 세상은 하나님을 충분히 인정할 만큼 증거들이 차고 넘치지만, 하나님의 실체를 알고 있으면서도 굴복하지 않는다. 이것이 우상 숭배자들의 특징이다.
-일곱 천사에게 하나님의 진노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는 큰 음성이 들렸다.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는 창조주를 대적하고 성도들의 피를 흘리며 짐승을 추종하여 우상을 숭배하던 “땅”에 쏟아진다. 불의와 탐욕이 가득한 땅, 자비와 샬롬이 무너진 땅이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은 그 땅을 한 평이라도 더 넓게 차지하려고 고군분투하지만, 하나님은 그 땅을 향해 진노하신다. 지금 내가 서 있는 나의 땅이 욕망의 땅이어서 진노 받을 땅이어서는 곤란하지 않은가! 하늘 소망을 추구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내는 의의 땅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주님, 진노의 대접이 쏟아지는 가운데도 회개의 기회를 숨겨 놓아 붙잡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놀랍습니다. 진정 어린양의 노래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이심이 틀림없습니다. 먼저 나의 삶에서 일어나는 여러 상황 속에 깃든 ‘하나님의 은혜’라는 기회들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도록 늘 영적으로 분별하며 살아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