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18:9-19 바벨론의 멸망이 부른 탄식과 환희
로마제국은 하룻밤 사이에 멸망한다. 로마제국의 멸망을 보고 세 집단이 통곡한다. 로마와 영적 매춘을 하며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던 땅의 왕들, 그동안 제국의 보호 아래서 치부했던 땅의 상인들, 해양산업 종사자들이 통곡한다. 그사이에 멸망하는 로마를 향해 불쑥 터져 나오는 탄식이 들려온다. 로마제국을 향한 애가다.
1. 땅 왕들의 통곡(9~10절)
땅의 왕들은 로마제국과 거래(음행)하며 사치를 누려왔다. ‘사치’는 부유하면서도 교만한 사람들의 특징이다. “사치(스트레니아오)”로 번역된 단어는 “방탕한, 관능적인”이라는 의미도 있다. 악의적인 탐욕을 부리는 행동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로마 지방 정부의 지도자들은 신분과 지위를 유지하고 경제적인 유익을 얻기 위해서 로마의 제국적 체제를 지지하고 후원했다. 일부 외경의 기록에 따르면 ‘아시아는 경제적 부도덕에 협력함으로써 로마의 매력과 유혹에 공동 분깃을 두고 있었다(에스라 4서 15:46~63).’ 경제 복지를 위해서 자기 영혼을 짐승에게 팔아버린 것이다.
이들에게 로마는 견고했다. 그래서 추종하고 부역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로마가 바벨론 제국처럼 순식간(한 시간)에 멸망할 줄 몰랐다. “한 시간”은 다니엘 4:17에서 가져왔다. 이는 실제 물리적인 시간이라기보다 바벨론의 이전 동맹들이 등을 돌리고 도리어 붕괴시키는 간략한 시간을 의미한다. 그렇게 멸망한 로마를 바라보며 경제적 손실만 계산하고 애통해한다. 로마에 대한 애정은 추호도 없다. 어쩌면 이 왕들이 17:16에서 음녀를 멸망시킨 주역들인지도 모른다. 그간 자신들이 누려온 혜택을 주던 로마의 멸망을, 거리를 두고 서서 두려워하며 통탄하고 있을 뿐이다. 이들은 곤경을 당하는 자들과의 공감 능력이 전혀 없다. 자신에게 닥치게 될 빈곤과 같은 어려움만 생각한다. 더더욱 자기들에게 닥칠 심판은 고려하지도 않는다. 어리석다.
2. 땅 상인들의 통곡(11~13절)
상인들은 로마가 자신들의 주요 고객이었기에 망하는 그들을 보며 통곡한다. 그들의 가장 막대한 무역 판로였다. 이를 다시 개척하기에 막막하기만 하다. 인도주의적인 공감은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다(15절). 단지 자신들의 경제적 손실, 사회적 신분과 지위, 생활 수준을 유지하기 위한 기반만 생각할 뿐이다. 무역 거래의 상대는 이용의 대상일 뿐 공감의 대상은 애초에 아니었다.
12~13절은 로마와 거래했던 상품의 목록들이다. 총 스물여덟 가지에 이른다. 수비학으로 풀어보자면, 4×7=28인데, 4는 동서남북 모든 방향을, 7은 완전수의 의미가 있다. 그 둘을 곱하여 나온 28은 추측하기로 “온 세상에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라는 의미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로마의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수다. 또, 이 물품들은 매우 사치스러운 것들이다. 로마의 수입물 중에서 가장 비싸고, 사치와 향락을 위한 것들이었다. 이 목록에는 로마 세계에서 가장 값비싼 자연 생산품 중 열세 가지나 포함되어 있다.
1세기 당시 아우구스투스 이래로 이런 수입이 증가하여 베스파시아누스 시대를 거쳐 계시록이 기록된 도미티아누스 시대에, 절정에 이른다. 특히 아라비아, 동아프리카, 인도의 동방 무역이 급증했다. 요한은 로마제국 자체를 신랄하고 철저하게, 그리고 포괄적으로 비판한다. 로마가 가진 사악한 근성을 폭로하고 비판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비판의 절정은 스물여덟 항목의 마지막 두 항목인 노예무역과 사람의 영혼 매매다. 로마는 부와 사치를 위해 세계를 정복하며 노략질했고 정복한 땅에서 세금을 수탈하여 부와 풍요를 누렸다. 또 노예와 부속민의 노동을 착취하였다.
이런 로마의 사치와 풍요는 로마를 치장하는 복장과 보석에 잘 반영되었다(16절). 이 구절은 로마가 왜 음녀(17:4)인지를 알려주는데, 음녀의 옷은 로마의 경제 체제가 종교적인 후광을 입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음녀의 옷은 대제사장의 의복과 비슷하다. 세마포와 진주와 자주색 옷 등이 칠십인 역 대제사장의 의복 묘사에 등장하는 것들인데, 이 목록들 가운데 포함되어 있다.
이와 같은 묘사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곱게 단장하여 제사장 나라로 삼으셨는데, 결국 이스라엘은 그 화려함을 믿고 창녀가 되어버렸다(겔 16:13). 한편, 로마제국도 대제사장의 의복을 입은 모습으로 등장하나, 음녀의 짓을 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신부인 새 예루살렘도 동일하게 대제사장의 옷을 입고 등장한다(21:2, 10~23).
3. 로마를 향한 애가, 뱃사람들의 애통(14~19절)
14~19절은 로마를 향한 애가다. 상인들과 바다에서 배를 부리는 사람들은 절대 망하지 않을 것 같았고, 자신들에게 부를 안겨주던 바벨론의 급작스러운 몰락을 보면서 충격과 공포에 휩싸인다. 어제 부러움의 대상이 오늘 두려움의 대상이 된 것이다. 부와 우상 위에 세워진 나라 또 그 나라를 맹신하던 자들의 허망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그들은 바벨론의 패망을 보며 자신들의 이해를 따라 일희일비하지 말고, 심판에 대한 경계로 삼고 근신하며 회개해야 했다. 하지만, 기회는 이미 사라졌다. 그들에게 남은 것은 애가와 애통뿐이었다.
특히 15~17a절은 바벨론의 멸망에 대한 애통의 근원적인 내용을 소개한다. 바벨론 때문에 치부하던 상인들이 그 고난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애통해하는 모습이다. 멀리 선 것은 “두려움” 때문이다. 고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울며 애통해하는 것이다. 그들은 애통해하면서 바벨론의 부가”한 시간에(일순간에, 17a절)” 망하였다고 통곡한다.
17b~19절은 바다에서 일하고 있는 선장들과 선객들과 선원들, 즉 뱃사람들의 애가다. 당시 중요한 무역 수단은 역시 배였다. 따라서 이들이 로마의 멸망을 슬퍼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은 로마의 불타는 연기를 보면서 “이 큰 성과 같은 성이 어디 있느냐?”라고 탄식하면서 티끌을 자기 머리에 뿌리며 울고 애통해하며 외친다. “화를 입었다. 화를 입었다. 큰 도시야! 바다에 배를 가진 사람은 모두 그 도시의 값진 상품으로 부자가 되었건만, 그것이 한순간에(개역 개정, 한 시간에) 잿더미가 되고 말았구나! (새번역, 19절)”
나는?
-땅의 왕들은 함께 음행하던 바벨론이 불타 멸망하는 모습을 보고 울며 가슴을 친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닥쳐올 불안한 미래로 인해 두려워한다. 한순간에 사라질 이 세상의 부와 권력을 좇던 자들의 허망한 탄식이요, 엄습할 심판 앞에서 두려움에 떠는 자들의 절망적인 통곡인 것이다. “바벨론의 죄에서 떠나지 않는 자들(4절)”에게 찾아온 예견된 보응이었고 너무 늦은 후회였다.
-말씀이 들릴 때가 기회인 줄 알아야 한다. 들릴 때 돌이켜야 한다. 내 안에서 말씀이 업신여김을 당할 때는 나에게 더 이상 소망이 없다.
-땅의 상인들도 바벨론의 멸망을 슬퍼한다. 최대 소비국이자 교역 대상이었던 바벨론의 멸망은 그를 통해 치부하던(3절) 자신들의 몰락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패망한 바벨론을 위한 애도가 아니라 몰락하는 자신을 향한 비통이었다. 돈을 버는 데 혈안이었던 그들은 호화로운 고가 사치품은 물론 종들(노예)과 심지어 사람의 영혼마저 매매의 대상으로 삼았고, 인권을 짓밟는 반인륜적인 범죄도 서슴지 않았다. 세상은 그것을 묵인하고 용인하며 자신의 부를 축적했지만, 하나님은 절대 좌시하지 않으셨다.
-오늘날은 물질 중심 시대이다. 혹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은 바 된 사람보다 더 우선되는 사치 물품 때문에 다른 영혼을 억압하거나, 나의 영혼을 그 사치에 팔고 있지는 않는가? 지나친 과소비는 탐욕의 방증일 뿐이다.
-땅의 상인들과 바다에서 배를 부리는 사람들은 절대 망하지 않을 것 같고, 자신들에게 부를 안겨준 바벨론의 급작스러운 몰락을 보면서 충격과 공포와 허탈감에 사로잡혔다.
-반면 바벨론의 횡포로 고난받던 성도들은 바벨론의 멸망 소식을 듣고 환호하며 즐거워한다. 하나님은 바벨론의 가치와 문화에 끝까지 저항하며, 하나님 없는 성공보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곤경을 선택하고 숱한 위협 속에서도 하나님만은 잃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사람들을 기억하실 것이다. 또 온갖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적인 손길을 믿고 의지하며 말씀을 청종하는 삶에 따르는 고난과 소외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신원하실 것이다.
-잠시 있다가 사라지고 결국 우리에게 실망만 안겨줄 것들을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 내가 굳게 붙들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고 말씀 안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하나님 나라 가치들을 붙드는 인생이 복되다.
-오늘날 경제 체제도 당시 로마제국의 탐욕과 이에 부역하던 사치하는 소수를 위한 것과 다를 바 없는 듯하다. 이 땅에서도 합리성과 효율성을 앞세워 저임금과 불안정한 고용을 일삼는 비정한 경제 질서가 굳혀진 지 오래다. 하지만 언젠가 그 허위와 위선은 반드시 폭로된다. 세상이 인간을 경제적 이익 창출 도구로, 국가를 위한 “자원”으로 분류하고 등급을 매기더라도 하나님 나라 공동체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빚은, 사랑받아야 할 영혼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주님, 탐욕의 시대, 탐욕이 나를 침몰시키지 않도록 하나님 나라 가치를 붙잡고 나아가겠습니다.
*주님, 이를 위해 무엇이든, 어떤 상황이든 자족하는 마음으로 살아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