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계 21:1-8]
 – 2025년 08월 01일
– 2025년 08월 01일 –
계 21:1-8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본문은 새로운 세상을 소개한다. 새 하늘과 새 땅이 보이고 곧이어 거룩한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온다. 새 하늘과 새 땅의 중심에 새 예루살렘이 있다.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과 함께하시는 장막이다. 그리고 주님께서 만물을 새롭게 하신다. 주님을 믿고 그 믿음 안에서 마지막까지 승리하는 자들은 생명수 샘물을 유업으로 얻을 것이고, 반대로 끝까지 믿음의 길을 거절하고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은 영원한 심판을 받아 둘째 사망에 이르게 된다.
    
    
    
1.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새 예루살렘(1~2절)
요한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본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종말에 완성될 하나님 나라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지고”라는 말씀은 새 하늘과 새 땅이 우리가 고대하는 천국임을 알게 한다. 새 창조에 관한 약속은 이사야 65:17~18과 베드로후서 3:13에 잘 나타나 있다. 본문의 새 하늘과 새 땅은 이러한 약속들에 대한 최종적인 성취다. 하늘에서 이루어진 나라가 땅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대로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새롭다”라는 형용사는 질적인 구별을 나타낸다. 옛것의 소멸이 아니다. 새것과 옛것 사이에는 불연속성이 존재하고 갱신과 변혁을 통해 전혀 다른 차원의 새 하늘과 새 땅이 등장하는 것이다. 새 창조는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변화되고 쇄신되어 “갱신된 세상”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하나님께서 처음 창조한 세상을 모두 폐기하고 세워지는 곳이라기보다는 그것을 온전히 완성하는 곳이라고 볼 때, 무(無)에서 창조라기보다 형태나 관계의 변화이다. 처음 세상 가운데 죄로 오염된 부정적인 것들을 모두 제거하여 전혀 오점이 없는 상태가 될 때, 질적으로 새로운 것이 된다.
    
이런 측면에서 요한은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다”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그 상태는 죄의 요소가 소멸하고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가 완벽하게 실현되는 새 하늘과 새 땅이다. 그렇다면 추측하기로는 이러한 맥락에서 구속받은 주님의 백성들이 처음 땅에서 힘쓰고 있었던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순종했던 모든 믿음의 산물은 비로소 온전하게 되어 그 나라에 편입되게 될 것이다.
    
또 요한은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라는 표현은 물리적으로 바다가 없어졌다는 의미보다는 요한계시록 안에서 바다가 주었던 상징적인 의미와 관련해서 생각해야 한다. 바다는 짐승이 출몰한 곳이고 바벨론의 주 무대였다. 그러한 바다가 없어졌다는 표현은 이제 악의 모든 요소가 근원부터 사라졌다는 의미다.
    
“새 예루살렘”은 “거룩한 성”이라는 수식어로 그 특징을 설명한다. 바벨론에 대한 수식어가 “큰 음녀”였던 것과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새 예루살렘은 이미 19장에서 소개된 것처럼 주님의 신부를 의미한다. 신부는 거룩한 행실로 단장하고 있다. ‘신부’ 또한 은유인데, 교회의 아름다움과 영광스러움, 그리고 기쁨을 상기시킨다.
    
    
    
2.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3~6절).
3~4절에서 요한은 보좌에서 나는 큰 소리를 듣는다.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3절)” 하나님 나라의 핵심인 임마누엘의 약속이 성취된다는 것이다.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라는 약속의 말씀은 출애굽의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맺어주신 언약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구약의 백성들은 이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었고 공생애 사역과 성령의 강림을 통해 임마누엘의 약속은 구체화하고 내면화되었다. 특히 성령이 함께하심은 성도의 마음과 심령 속에서 역사하신다. 그럼에도 여전히 죄의 권세와 영향력(바벨론의 영향) 아래 있던 주님의 백성들과 나누는 교제는 온전하지 못했다. 백성들이 여전히 죄 가운데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 창조의 세상은 하나님의 동행하심과 임재의 약속이 온전해진다.
    
임마누엘의 약속이 온전히 성취되어 성도가 죄 없는 상태로 하나님의 장막에 거하게 되며, 하나님과 가장 깊고 충만한 교제를 나누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온전히 함께하시는 새 하늘과 새 땅은 더 이상 세상에서 경험하던 고통과 슬픔과 그리고 죽음은 사라지게 된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한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이 다 지나갔음 이러라(4절)”
    
5~6절은 긴 침묵을 깨고 보좌에 앉으신 이가 말씀하신다.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5절).” 하나님에 의해서 말씀으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듯이 만물이 근본적으로 변화된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신실하시고 참되신 하나님께서 역사를 시작하신 알파(처음)요 역사를 종결하시는 오메가(나중)이기에 당연한 마지막 성취의 선언도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것이다.
    
이는 이사야가 꿈꾸었던 새 창조의 예언(사 43:18~19; 65:17; 66:22)과 고린도후서 5:17을 통해 바울이 이해한 이사야의 예언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성취되기 시작한 이래 비로소 온전하게 성취되었음을 선언하신 것이다. “이 말이 참되다”라는 선언에는 하나님이 약속에 신실하신 분으로 창조의 약속이 의심할 여지 없이 실행되는 것을 내포한다. 또한 하나님은 진리이기에 약속의 절대 취소 불가능성을 선포한 것이다. “이루었다(6절)”는 다니엘 7장과 요한계시록 4장의 보좌에 앉으신 이의 절대 주권을 확인하게 하는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사 41:4; 44:6; 48:12)”의 성취다. 이 표현은 요한계시록의 초반과 후반에 각각 등장한다(1:8, 17; 22:13). 즉 1:8과 21:6 사이에 서술되고 묘사된 모든 사건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 아래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3. 새 하늘과 새 땅의 주인공(7~8절)
새롭게 된 세상의 주인공에게는 생명수 샘물이 값없이 주어진다. 그러나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오직 이기는 자들에게만 주신다. 그들은 끝까지 믿음을 지킨 자들이다. 반면 8절은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갈 수 없는 자들의 목록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지 않고 우상을 숭배하는 불신자들이다. 다만 ‘두려워하는 자들’이라는 표현은 이들 가운데는 신자이면서도 핍박에 굴복하고 경제적 유혹에 넘어간 자들도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황제숭배를 거부함으로 초래될 결과를 두려워하여 거짓말한 자들도 있을 것이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이는 믿는 자들을 향한 선명한 경고가 된다.
    
따라서 본문은 새 창조를 선언하고 승인하시는 하나님께서 두 부류로 구별하실 것임을 보여 준다. 마치 백 보좌 심판의 결과를 보는 듯하고, 주님께서 비유로 말씀해 주신 양과 염소의 비유와 같다(마 25장). 먼저 이기는 자에게는 두 가지 약속이 성취된다. 먼저,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들에게 값없이 줄 것이다(사 49:10)”의 말씀이 성취되는 것인데, 이사야 12:3에서는 구원의 샘물로 표현되었다. 또한 “생명수”는 영생을 대변하는 표현으로 하나님과 어린양이 근원이다(22:1, 17; 렘 2:13; 시 36:8~9; 욜 3:18; 요 4:10; 7:38; 계 7:17). 이것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누리는 영원한 교제의 삶이다. “값없이(도레안)”는 “자유롭게(마 10:8; 롬 3:24; 살후 3:8), 공짜로(요 15:25; 고후 11:7; 갈 2:21)”라는 의미다. 하나님의 은혜로 “샘물의 근원(하나님의 구원)”을 가까이할 수 있다(사 55:1). 둘째,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 아들은 유업을 상속받는 자(시 2:7~8; 삼하 7:14)다. “이것들”은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을 지칭하므로 새로운 가나안 땅과 같다.
    
그런데 타협한 자들에게는 심판이 있음을 경고하신다. 그들은 불신자가 아니다. 가짜 신자들이며, 거짓 선지자의 미혹에 빠진 자들이다. 음녀 바벨론이 주는 포도주를 마신 자들이다. 용과 짐승들과 바벨론의 부역자들이 던져진 유황불 못으로 던져진다. 이것이 둘째 사망이다. 이렇게 둘째 사망에 던져지는 이들의 목록은 여덟 가지이고 이를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두려워하는 자와 믿지 않은 자”다. 두려워하는 자는 소심한 자인데, 짐승과의 전투에서 용감한 신앙을 증명하지 못했다. 믿지 않는 자는 신실하지 못한 자다. 둘째,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이다. 이들은 교회 내부에서 짐승과 타협하는 자들이다. “흉악하다”라는 표현은 우상숭배 주변에서 나타나는 불경한 행동들이다. 살인자들은 박해자들이다(13:15; 17:6). 음행은 우상의 제단에서 벌어지는 제의적인 매춘 행위를 지칭한다. 점술과 마술은 고대로부터 우상숭배와 결부되어 실행되어 온 것들이다. 셋째, 거짓말(프쉬데신)하는 모든 자들이다. 이들은 겉과 속이 다른 가짜들이다. 경건한 신앙의 모양은 있는데, 실상은 바알 숭배자들이다. 앞의 일곱 가지 목록에 해당하는 자들은 모두 “거짓말(프쉬데신)”쟁이들이다.
    
그들은 모두 거짓의 영인 사탄을 닮았다. 거짓의 영에 사로잡힌 공동체는 신부 새 예루살렘의 모습이 아니라 음녀 바벨론의 모습을 보여 줄 뿐이다.
    
    
    
나는?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시간과 질서를 가져오신 알파(처음)인 하나님이, 죄로 망가진 만물과 옛 질서를 새롭게 하신다. 보시기에 심히 좋은 대로 만드실 것이다. 이미 있던 만물과 옛 질서가 전격적이고 철저하게 새로워지고, 처음 하늘과 땅의 존재감을 거의 느낄 수 없을 만큼 완전하게 갱신될 것이다.
    
-창조의 본래 의도가 완성되는 그날 만물이 탄식하는 소리도 그치고(롬 8:22) 에덴의 풍요로움과 샬롬을 맛볼 것이다.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마지막” 되시는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로서 인간의 끊임없는 반역과 베신, 사탄의 집요한 도전과 훼방 속에서도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으로 새 창조를 완성하실 것이다.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처럼 새 하늘과 새 땅의 주인공은 ‘새 예루살렘(교회)’이다. 크고 음란하고 사치스러운 음녀 바벨론과 달리, 거룩하고 정결한 신부다. 우리는 많은 흠을 쉽게 용납하면서 큰 것에 환호하지만, 하나님은 거룩으로 단장한 신부를 기대하며 기다리신다. 신부가 추구할 것은 거대함이 아니라 거룩함이다.
    
-성도들을 신부와 백성과 성전으로 삼아 영원토록 함께 하신다.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관계), 내가 영원히 너희와 함께하리라(임마누엘)는 약속(언약)이 온전히 성취된다. 악의 세력들이 멸망하고 악의 근원인 바다(13장; 1절)가 파멸되고, 또 주께서 영원히 함께하시니 성도들에게는 더 이상의 슬픔도 아픔도 고통도 죽음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기억하고 경계를 삼아야 할 것이 있다. 세상과 우상의 거센 위협과 유혹 속에서도 충성된 증인, 그리스도처럼 피 흘리기까지 충성하는 자, 즉 이긴 자들을 정결한 신부로 주 앞에 서게 하신다(19:8). 생명책에서 그 이름을 지우지 않으시며(20:12), 아들로 인정하여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상속하게 하신다. 하지만 제국의 위협에 변절과 거짓, 살인과 행음에 이르고 우상숭배에 굴복한 자들은 둘째 사망에 떨어질 것이다.
    
*영광스러운 새 창조의 세계는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믿음을 끝까지 지키는 자들, 즉 이기는 자들에게만 주어진다. 믿지 않는 자들과 두려워하는 자들과 거짓말하는 자들은 영원한 불 못에서 둘째 사망을 맞이한다. 순간의 영광을 위해 영원한 영광을 저버리지 않아야 한다.
    
*자기 현재의 안위를 위해 배교의 압력에 굴복하여 주와 믿음을 저버리고, 죄와 우상으로 더럽히며, 거짓과 살인을 일삼은 사람들에게는 분명한 둘째 사망이 임한다. 살기 어렵다고 그래서 어쩔 수 없었다는 말로 신앙을 제쳐둔 이유를 변명하지 못한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출애굽의 최종 완성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그 땅을 더럽힌 원주민들을 쫓아냈듯 새 하늘과 새 땅은 ‘비겁한 자와 믿음이 없는 자, 가증한 자와 살인한 자, 간음한 자와 마술쟁이와 우상숭배자와 모든 거짓말쟁이’를 철저하게 가려낸다. 그드릉ㄴ 불과 유황으로 타는 바다에 던져진다. 가나안 정복은 미완성이었지만, 새 하늘과 새 땅은 반드시 성취된다.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안다고 했다. 하나님의 백성이요 거룩한 자녀라고 하면서 성령의 열매가 아니라 육의 열매들이 드러난다면 잘못되고 한참 잘못된 것이다. 믿음 또한 열매를 보고 알 수 있다고 했는데 땅에 속한 자인지, 하늘에 속한자인지 선명하게 드러난다. 하나님과 이웃과의 관계,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 속에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사랑하며 다스릴 것들을 분별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 때에 맺혀 있는 열매(행실)가 나를 판단할 것이다.
    
    
    
*주님, 새 하늘과 새 땅의 유업을 받을 새 예루살렘으로 거룩한 삶을 추구하며 순종하다 주님을 뵙겠습니다.
*주님, 찰나의 유혹에, 현실의 압박에 견디지 못해 영원한 나라에 눈감지 않겠습니다. 더욱 소망하며 믿음을 지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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