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21:9-21 어린양의 신부 새 예루살렘
이미 소개된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구체적으로 설명된다. 어린양이 아내로 불리는 새 예루살렘 성은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으로 가득 차 있다. 크고 견고한 성곽과 각양의 보석으로 치장된 성의 모습은 신부(성도)인데, 새 예루살렘이 얼마나 하나님의 영광과 아름다움을 잘 드러내고 있는지를 설명해 준다. 또한 새 예루살렘의 영광스러운 모습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흠과 티가 없는 성화와 영화의 자리로 이끄셨음을 증명한다.
1. 새 예루살렘의 모습(9~14절)
이 단락은 새로운 환상을 담고 있다. 요한은 일곱 대접에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의 부름을 받는다. 이미 17:1~3에서도 이 천사의 부름을 받았었는데, 그때 음녀 바벨론을 소개했었다. 그 동일한 천사가 다시 등장하여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을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 의도적으로 동일한 천사가 각각 바벨론과 새 예루살렘이라는 두 여인을 대조한다. 바벨론을 통해서는 큰 음녀의 악과 심판을 묘사하였고, 본문에서는 새 예루살렘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신부의 아름다움과 영광을 묘사한다.
본문에서 “새 예루살렘”은 어린양의 신부를 상징하는 거룩한 성이다. 외적으로 크고 화려한 것을 추구하다가 패망한 바벨론과는 달리, 새 예루살렘은 정결하고 거룩한 어린양의 신부로서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된다. 요한은 그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으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점이 강조된다. 이는 땅 위에서 생긴 음녀 바벨론과는 근원과 본질이 다른 것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10절은 새로운 환상을 위하여 성령께서 요한을 데리고 가신 것을 통해 성령께서 이 일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계심을 깨닫게 한다. 음녀 바벨론을 소개할 때는 광야로 이끌어 갔지만, 이제는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간다.
11~14절은 새 예루살렘의 모습을 묘사해 준다. 새 예루살렘의 가장 현저한 특징은 이 성이 11절에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는 사실이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임재를 지칭한다. 요한은 자신이 본 새 예루살렘에 깃들인 하나님의 영광을 설명하는 것에는 언어 전달의 한계가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이는 한 번도 보지 못한 특정한 것에 대하여 설명하는 것과 유사하다. 이러한 한계점을 이해하며 요한이 새 예루살렘을 묘사하는 표현 속에 깃든 의미를 곰곰이 묵상하는 것이 타당하다. 문자적으로만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요한이 묘사하는 새 예루살렘은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더라(11절)”라고 밝힌다. 이것은 교회의 존귀함, 순결함, 정결함을 상징한다. 특히 이 표현은 4:3에 나온 하나님에 대한 묘사와 비슷하다. 즉, 하나님과 새 예루살렘의 동질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12~14절은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는데, 특히 “열둘”이라는 수가 반복된다. 열두 문, 열두 천사, 열두 지파의 이름, 열두 기초석, 그리고 열두 사도의 열두 이름이다. “열둘”은 구약의 공동체와 그 성취인 신약의 공동체 모두를 가리킨다. 교회 전체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교회가 크고 높은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다. ‘성곽’은 당시 세계관에서 ‘안전’하다는 것을 상징한다. 또, 그 성은 완전하고 완성된 것이며 완전한 안전과 장엄함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 준다.
2. 새 예루살렘의 영광(15~21절)
15~17절은 새 예루살렘을 측량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이 단락은 에스겔 40~48장이 배경이다. 측량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향한 임재와 보호가 영원할 것임을 상징한다. 새 예루살렘을 측량해 보니 네모가 반듯하고 가로세로와 높이가 동일한 정육면체 모양을 하고 있다. 크기는 전체적으로 12,000스다디온(2,200km)이다. 이는 문자적인 풀이보다는 상징적인 수로 12×1,000이 결합한 것으로 열둘이라는 하나님 백성의 수를 포함하여 완전함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성곽의 높이는 144 규빗(약 75m)인데, 7:4~9과 14:1, 3의 144,000을 반향한다. 이 역시 12×12로서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또한 솔로몬 성전의 지성소가 가로세로와 높이가 각각 20 규빗(약 9m)의 정방형 입방체인 것을 감안하면 새 예루살렘은 성전의 속성을 가지고 있는 지성소임을 알게 해준다.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임재로 충만한 성임을 드러낸다. 이런 의미에서 이미 21:3의 임마누엘의 약속이 구체적으로 성취된 것도 깨우쳐 준다.
18~21절에서는 보석의 이미지로 새 예루살렘의 영광과 하나님의 임재의 충만함을 묘사한다. 본문에 등장하는 다양한 이름의 보석들은 개별적인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전체적인 의미에 집중해야 한다. 다양한 보석으로 장식된 새 예루살렘 성은 도시 전체가 하나님의 아름다운 영광의 광채로 빛난다. 이런 맥락으로 보석은 거룩한 도시, 새 예루살렘의 영광, 순결성, 아름다움, 소중함을 나타낸다. 성을 치장한 열두 개의 보석은 출애굽기 28장과 39장에 기록된 제사장이 입는 옷을 치장하라고 하나님이 정해 주신 보석들과 동일하다. 열두 개의 보석은 열두 지파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계시록의 여러 구절에서 하나님 백성은 하나님의 제사장으로서 그 정체성을 부각했다(1:6; 5:10; 20:6). 하나님의 백성을 제사장 삼아서 “그 나라” 곧 하나님의 통치가 오게 하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19:7과 21:2과 관련하여 이러한 보석의 기능은 남편을 위해 단장한 신부의 아름다움을 더욱 강화해 준다. 이사야 54장을 배경으로 한다. 반면 음녀 바벨론도 금으로 치장했지만, 이는 온갖 불의와 악행을 통해 탈취한 인위적이고 외형적인 영광이었다. 이에 비해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은혜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을 통하여 얻게 된 진정한 영광과 아름다움을 소유한 성이다.
새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어린양이 성전이기 때문이다(22절). 하나님은 언제나 그들과 함께하시기에 구별된 성전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나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귀하고 아름다우며 영광스러운 이유는 화려하고 사치스럽지만 허무한 바벨론의 영광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임재)”이 머물기 때문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계시기에 교회는 거룩해야 하고, 또 그분의 거룩함과 의로움과 영광을 세상에 나타내야 한다. 성전과 신부인 우리는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어 세상이 그분을 알게 하는 자들로 부름을 받았다. 힘이 지배하는 곳이 아니라 주의 영광이 머무는 교회이어야 한다. 건물이나, 여러 가지 행사만 남는 교회가 아니라 주님의 임재(영광)가 머무는 교회여야 하지 않겠는가!
-새 예루살렘의 열두 문에는 구약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하는 열두 지파의 이름이, 열두 기초석에는 교회의 기초(엡 2:20)인 열두 사도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것은 새 예루살렘이 구약과 신약의 백성으로 이루어진 장엄하고 완전하며 완성된 존재임을 보여 준다. 하늘 아버지와 교제하고 형제들과 연합하여 사랑함이, 우리를 향한 새 창조의 목적이며 우리에게 주시려는 영생의 본질이다(시 133편).
-지성소처럼 정방형으로 되어 있는 성의 구조와 측량에서 사용된 하나님 백성의 숫자(12), 그리고 각종 진귀한 보석들은 장차 교회가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한 지성소처럼 신랑을 위해 단장한 신부처럼 얼마나 거룩하고 완전하며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존재가 될 것인지를 보여 준다. 이것은 잃어버린 에덴동산의 모습(겔 28:13)이며 새 창조가 완성될 때 우리가 보기를 기대하는 회복의 그림이다. 크고 화려한 건축 양식이나 내부 장식이 아닌 은혜에 화답하는 순종(14:4)이 주님의 처소를 꾸미는 가장 아름다운 장식이다.
-우리 공동체도 이와 같은 거룩한 신부의 공동체이기를 바란다. 장소는 좁고, 불편하여도 외형에 치우지 않고 성령의 충만함과 하나님과의 교제가 넘치는 공동체로 살아가다가 다시 오실 주님을 만나 뵈어야 하지 않겠는가!
-새 예루살렘을 장식한 보석들의 이름과 의미에 치중하기보다 전체적으로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된 교회의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시각으로 보아야 한다. 이는 천국이 보석으로 되어 있다고 말하기보다 하나님의 임재와 거룩함이 가득한 그 나라의 모습을 이해라 수 있도록 시도한 표현임을 간과하면 안 된다. 신부된 교회, 나 자신이 이처럼 거룩하고 정결하며 영광스러운 존재가 되어 이에 걸맞게 이 땅을 살아가다 주님을 맞이해야 한다.
*세상의 어떤 화려함이나 사치스러움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이 깃든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을 바라본다. 세상이 지금 이곳의 더온누리 공동체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볼까? 우리 공동체는 우리를 통해 드러나야 할 주님의 영광과 주님의 명예를 실추하는 공동체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 하나님의 영광을 머금은 세상을 비추는 빛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통과되어 세상을 살리는 소금으로 살아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삶은 결국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가운데 함께 임재하시는 주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이루어진다. 이 땅의 교회를 새로운 생명으로 창조하여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게 지어주신다. 그러므로 그 통치 아래 있는 하나님 나라 백성은 주님을 더욱 바로 알고 따르고자 하는 갈망과 열망을 식히면 안된다.
*새 예루살렘은 눈에 보이는 보석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가 얼마나 영광스러운지를 묘사한 표현일 뿐이다. 중심은 하나님의 영광이다. 어린양의 신부다. 즉,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 그 자체가 충만한 아름다움, 어느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고귀함이라는 것이다. 임마누엘이면 된다!
*그런데 사탄은 임마누엘 보다 더 나은 것이 있다고 유혹한다. 그것에 넘어가버리면 임마누엘을 잃어버린다. 오늘 나의 삶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하루가 될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다!
*주님, 새 예루살렘의 거룩함과 영광이 곧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의 교회 공동체가 먼저 살아내야 할 하나님과 함께하는 임마누엘의 삶을 꿈꾸게 합니다. 늘 주님과 동행하다 다시 오실 주님과 함께 완성될 그 나라를 소망하며 오늘을 믿음으로 인내하며 살아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