슥 1:7-21 변함없는 하나님의 주권과 사랑
1:7~6:8까지 여덟 개의 환상이 이어진다. 환상의 내용마다 차이가 있지만 환상의 의미를 문맥 속에서 보여주기에 여호와의 사자와 스가랴의 대화를 주의깊게 살필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이 환상들을 해석할 큰 틀을 제공하는 것은 1:1~6의 회개의 촉구와 회복이다. 환상의 내용은 다양하나 이 환상들은 회개 촉구와 회복의 약속을 주제로 삼는다는 것을 기억하면, 환상의 의미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
첫째 환상(7~17절)은 “붉은 말을 탄 자”가 여러 색의 말들과 더불어 온 땅을 두루 다니며 세상을 관찰한다. 둘째 환상(18~21절)은 네 뿔과 네 대장장이의 모습을 통해 유다와 주변 나라들의 운명을 보여준다.
1. 첫째 환상_붉은 말을 탄 자(7~17절)
7절은 “다리오 왕 제이년 열한째 달 곧 스밧월 이십사일”에 스가랴에게 새로운 말씀이 임한다. 이 말씀은 그날 밤 그가 본 여덟 개의 환상과 해석으로 전개된다.
8~11절은 첫째 환상의 내용이다. 이 환상에서는 붉은 말을 타고 있는 “한 사람”을 주목한다. 이 사람의 행동을 말한 후에 다시 여호와의 사자와의 대화 내용이 이어진다. 이 “한 사람”이 무엇을 보았는지가 이 환상의 핵심 주제인 것이다. 한 사람이 골짜기 속 화석류나무 사이에 서 있다. ‘화석류나무’는 팔레스타인 지역의 흔한 관목으로 뿌리가 깊게 내려 겨울에도 푸르름을 유지하기 때문에 ‘생명의 재탄생, 새로운 시작’등의 의미로 인식했다. 실제로 이사야 41:19~20, 55:13에서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맥락에서 이 나무가 표현되었다. 이 나무는 특히 성전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나무였기에. 환상에서 화석류나무를 보는 것은 새로운 시작과 관련한 메시지임을 상기시킨다.
환상에는 8절의 “붉은 말 탄 자”와 더불어 여러 색의 말이 등장하는데, 여기 등장하는 말들이 동일한 색은 아니지만 다시 6장의 환상에서 다시 등장한다. 그렇다면 색이 상징하는 의미보다 말들이 활기차게 온 땅을 두루 돌아다니는 것(10절)에 더 주목해야 한다. 이것은 여호와의 통치 영역이 온 세상에 두루 미친다는 것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주권이 온 세상에 미친다”는 메시지는 스가랴서의 매우 중요한 주제다.
학개서와 마찬가지로 스가랴서는 성전 건축이 중단된 상황을 배경으로 기록되었다. 성전건축이 중단된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 불신했기 때문이다. 포로에서 돌아오고 나서 성전 재건을 시작했지만, 여러 어려움을 연달아 겪고, 외부 세력들의 방해도 만만치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에 대한 신념이 스가랴서의 주요 신학적인 주제로 등장한 것이다. 말들이 온 세상을 두루 다니듯이 하나님은 여전히 온 세상을 주권적으로 다스리고 계심을 분명히 한 것이다.
11절에서 “붉은 말을 탄 자”는 “온 땅이 평안하고 조용하더이다”라고 말한다. 평안하고 조용한 모습은 이스라엘 주변 강대국들이 방해받지 않고 승승장구한다는 의미다. 이런 모습은 이스라엘의 불안정한 상황과 확연하게 대조된다. 이스라엘은 포로에서 돌아와 정착하며, 성전을 재건하고 과거의 모습을 회복하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으나 여의치 않은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무엇보다 이런 상황은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서 여호와에 대한 불신과 의구심을 가득 차게 하였다. 백성들은 회의에 가득 찬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여호와의 백성이 왜 회복을 볼 수 없는가?”, “오히려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나라와 불의한 나라가 왜 더 평안한가?” 등이다. 이런 질문들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이 여덟 개의 환상이다.
12~17절은 첫째 환상의 의미를 풀어준다. 12절은 “만군의 여호와여 여호와께서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시려 하나이까”라고 묻는다. 여기에서 “언제까지”는 여호와의 긴 침묵을 한탄하는 표현이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도 나아지지 않는 현실을 호소하는 것이다. “칠십 년”은 이사야와 예레미야에서 언약 파기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로 허락하신 바벨론 포로 기간으로 이미 언급 되었다(사 23:15~17; 렘 25:11; 29:10). 그리고 포로생활을 마치고 고레스 칙령이 있었던 주전 538년 이후 1차 포로귀환이 있은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여전히 완전한 이스라엘의 회복은 요원하기만 했다.
13절의 여호와께서 천사에게 하신 “선한 말씀, 위로하는 말씀”은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14~15절은 첫째 환상이 보여주는 핵심이다. “붉은 말을 탄 자”가 여러 색의 말들과 함께 세상을 두루 다녀 관찰한 결과, 온 땅이 평안하고 조용하게(11절) 보이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시온을 위해 크게 질투하실 것이다. 자신들은 안전할 것이라고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는(15절), 여러 나라들에 대해 하나님은 심히 진노하실 것이다고 밝힌다. “질투”는 결혼 관계에 사용되는 용어로 구약에서는 종종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남편으로 묘사하여 질투하는 하나님으로 소개하곤 했다(출 20:5; 겔 5:13; 8:3; 16:38).
16~17절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질투하신 결과로 나타나게 될 구체적 양상을 묘사한다. 학개와 스가랴 당시 주된 관심사였던 성전 건축과 관련된 메시지다. “내 집”은 여호와의 성전을 의미하지만, 건물로서의 성전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며,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이스라엘의 정체성이 회복된 모습을 뜻한다. 성전을 거슬러 올라가면 성막이 있다. 이 성막은 출애굽 후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을 때, 이스라엘 가운데 나타나신 여호와의 임재를 상징한다(출 25:22; 29:44~45).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을 불쌍히 여겨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그 위에 먹줄을 치시겠다고 한다(16절). “먹줄(측량줄)”은 파괴와 건설, 혹은 회복 모두를 상징하는 말로 성경에서 쓰였다. 성전과 예루살렘의 회복을 분명하게 선언하시는 것이다. 이어 17절에서는 “내 성읍”, 곧 땅의 회복도 확증하신다. 땅은 언약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로, 땅의 회복은 언약의 회복과 깊은 관련이 있다(신 28:11; 30:9).
2. 둘째 환상_네 개의 뿔(18~21절)
앞서 첫째 환상을 통해 세상의 평온함은 겉모습만 그러할 뿐임이 드러났다. 곧 여호와께서 개입하여 예루살렘의 회복(16~17절)을 통해 이스라엘을 회복 시키실 때, 세상의 참 평안이 찾아온다. 둘째 환상은 회복의 주제를 더욱 발전시켜 “뿔”로 상징되는 강력한 대적이 이스라엘을 괴롭힐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둘째 환상은 하나님이 세운 “뿔”을 상대하는 “대장장이”를 통해 대적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이 다시 회복할 것을 보여준다.
숫자 ‘넷’은 구체적으로 네 나라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방의 방향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이스라엘을 공격한 사방의 강대국들을 포괄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즉, 사방에서 쳐들어 오는 무시무시한 대적들을 가리킨다(사 11:12; 렘 49:36; 겔 7:2; 37:9; 단 7:2). 유다를 “흩트렸다”는 것은 포로로 추방당했다는 뜻이다. 역사적으로 앗수르가 주전 722년 북이스라엘을 멸망시켰고, 바벨론은 주전 586년 남유다를 멸망시켰음을 가리킨다.
이 포로(추방) 개념은 언약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언약을 깨뜨린 결과(레 26장; 신 28장)로 임하는 언약의 저주 가운데 하나가 “흩어짐(포로, 추방)”이다. 20절의 ‘대장장이’는 다양한 유형의 기술자를 의미한다. 어떤 특정한 일을 하는 것이기보다, ‘뿔’ 넷에 대응하여 이들을 처리하는 그의 파괴력, 힘을 강조한다.
나는?
-본문은 온 땅에 두루 미치는 하나님의 주권을 보여준다. 붉은 말을 탄 자와 붉은 말, 자주색 말, 백마 등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온 땅을 돌아다니는 모습은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주관하시는 분이심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불신 때문에 성전 건축이 중단되었다. 그들이 포로에서 돌아온 것이 정치, 외교적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였다는 신학적 안목과 믿음을 상실한 것이다. 하지만 이 환상을 통해 그 주권을 다시 상기 시키신다.
-온 땅을 돌아보고 붉은 말을 탄 자가 말하기를 온 땅이 평안하고 조용하다고 말해준다. 국제 정세는 강대국 중심으로 재편되어 조용하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은 이스라엘의 불안정한 상황과 대조된다. 왜 하나님이 다스리는 이스라엘은 불안정하고 우상이 다스리는 나라는 평안할까? 이런 질문은 그때나 지금이나 그리스도인들이 던지는 질문이다. 왜 그리스도인들은 고통을 당하고 악한 자들은 형통할까?
-이스라엘은 이미 포로에서 돌아왔지만,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영광의 시대는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 여전히 불의한 나라가 더 번성하고 안정적이다. 하지만 그것은 피상적인 관찰이다. 하나님이 승인하지 않는 평화는 거짓이고 그들의 안전은 헛것이다. 이스라엘보다 하나님께서 시온을 위하여 불의한 나라의 번성을 질투하신다. 그들이 과도하고 오만하게 사용한 권력에 대해 진노하신다. 머잖아 중단된 성전도 완공하게 하실 것이다. 이스라엘을 이스라엘답게 만들어 가실 것이다. 문제는 이스라엘이 먼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거룩한 성전, 하나님을 위하여 질투하는 존재가 되는가 하는 점이다.
-이미 돌아온 땅에서 아직 도래하지 않은 하나님 나라를 믿음으로 바라보는 그들의 심정이 십분 공감이 된다. 한편으로 믿음으로 바라보아야 할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는 오늘날 교회에도 묵직한 물음을 던진다. 그럼에도 충직하고 신실하게 믿음을 지켜 나가야 할 것을 다짐하게 된다.
-강력한 세력들(뿔)이 이스라엘을 괴롭게 할 것이다. 하지만 그 뿔들 역시 하나님에 의해서 심판을 받을 것이다. 유다는 심판을 받겠지만, 결국엔 회복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네 대장장이들(열국)이 이스라엘에게 권력을 남용하는 것을 그냥 두고 보지 않으신다. 이제는 그들이 심판받을 차례가 되었다. 그들보다 더 큰 나라가 등장하면 세상에 두려울 것 없이 교만하던 그들이 큰 공포에 잠길 것이다. 그 무섭고 두렵던 뿔들도 허무하게 잘려 나가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세상을 “두루 다니시며” 자기 백성의 형편을 살피시고 보호해주신다. 깊은 밤 어둡기만 한 역사의 현실 속에서 스가랴가 본 환상은, 하나님이 여호와의 사자를 보내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신다는 내용이다(7~10절). 오늘 우리 공동체와 나라와 민족이 처한 현실 역시 아무리 캄캄하고 비참할지라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두루 다니시며” 함께 하시는 영광의 주님께서 온갖 도움을 주신다.
*나의 삶도 마찬가지다. 삶의 걸음은 늘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주권에 대하여 물음을 던지게 하는 고된 시간들을 통과할 때가 있다. 하지만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 나의 삶을 “두루 살피시며(다니시며)”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록된 말씀을 통해 깨우치실 때 믿음으로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아야 하겠다.
*두루다니시며 온 땅을 순찰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은 하나님의 통치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는 우리 일상의 숨겨진 영역들도 하나님의 관심과 돌봄의 대상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렇기에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은 먼저 하나님앞에서 투명하게 살아야 한다.
*여호와의 사자를 통해 자기 백성의 형편을 고하게 하시고 선한 말씀과 위로의 말씀으로 응답해주신다. 세상을 두루 다니며 자기 백성의 형편을 알게 된 여호와의 사자는, 온 나라가 평안 가운데 있지만, 하나님의 백성인 유다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황폐한 가운데 있음을 보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한다(11~13절).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다. 내 안에 거주하시며 내 형편을 아실 뿐 아니라 나를 위해 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시는 주님이(롬 8:34) 오늘도 나와 함께 하신다. 이 사실만으로도 진정한 위로가 아닌가!
*자기 백성을 가엾게 여기시며 중심으로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다(14~17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돌이키시려고 잠시 채찍을 드실지라도, 정한 기간이 지나면 다시 긍휼을 베푸셔서 재건과 번영을 이루어주신다.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질투는 그들을 다시 선택하시고 그들이 다시 영광의 복과 평안을 누리게 해주시는 사랑으로 나타난다. 반드시 회복해주시고야 마는 이 약속의 말씀을 굳게 붙잡아야 하리라.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과 관심을 늘 기억하며 믿음의 힘을 내야겠다.
*자기 백성을 괴롭힌 악한 세력들의 힘을 꺾으시고 자기 백성에게 승리를 약속해 주신다. 스가랴가 본 네 뿔은 유다를 멸망케한 이방 세력이다. 이들은 하나님이 사용하신 징계의 막대기일 뿐인데, 교만과 자긍심으로 뭉쳐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징계의 수준 이상으로 과도하게 이스라엘을 괴롭혔다. 그러나 하나님은 네 명의 대장장이를 통해 그 대적들(네 뿔)을 쳐부술 것을 약속하신다(18~21절). 원수가 날 향해 공격해 올지라도 그 힘을 좌절시킬 더 강력한 세력을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아야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승리는 성전 재건이었다. 하나님은 파괴된 것을 다시 회복시키시고 새롭게 하시는 분이시다. 나의 삶의 무너진 영역들, 상처받은 관계들, 실패한 꿈들…. 이러한 영역도 하나님의 회복의 역사 안에서 새롭게 세워질 수 있다. 하나님 나라는 파괴와 좌절 속에서도 희망을 만들어내고, 나아가 실재를 이루어내는 능력이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된다.
*스가랴는 붉은 말을 탄 자와 붉은 말, 자주색 말, 백마를 통해 하나님이 세상의 주권자임을 강조한다. 이는 역사적인 사건인 바벨론 포로 귀환이 정치외교의 산물이 아닌 하나님의 주권 아래 이루어진 놀라운 일이라는 의미다. “뿔”은 권력을 가리키고,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뿔들은 대장장이를 통하여 철저히 심판받게 됨도 알려 주신다. 이런 모습을 통해 우리 하나님은 심판자를 심판하시는 분이심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를 통해 포로에서 귀환한 백성들에게 역사의 주관자, 주권자가 누구인지 분명하게 바라보라고 촉구하는 것이다.
*나 역시 이 촉구 앞에 당당할 수 없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보다 늘 눈치가 보이는 존재, 상황, 방식, 전통(관습) 등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하지만 역사의 주권자되신 하나님의 섭리 앞에 인간, 세상의 방식과 권세는 어떤 힘도 부리지 못한다. 잠시 흥하게 보이는 것은 하나님께서 잠시 허락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주권에 대한 믿음은 세상을 향해 서는 하나님 백성의 태도를 바로 세운다. 이 믿음이 기초이자 기본이다.
*오늘도 나의 유일한 주권자되신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순종하며 살아내리라.
*주님, 주님께서 이루실 구원의 영광을 바라보며 오늘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내게 하소서.
*주님, 불평과 염려가 제 마음을 가득채우지 못하도록 하나님의 평강과 신뢰를 먼저 가득채우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