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불에 그슬린 나무와 같은 나에게 임한 놀라운 하나님 은혜[슥 3:1-10]
 – 2025년 08월 08일
– 2025년 08월 08일 –
슥 3:1-10 불에 그슬린 나무와 같은 나에게 임한 놀라운 하나님 은혜
 
여덟 개의 환상 중 네 번째다. 이 환상은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관련된다. 이전의 다른 환상과 다른 형식을 띤다. 이전 세 환상이 ‘돌이킴과 회복’이라는 주제를 제시했지만, 1~7절의 네 번째 환상은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위임식을 보여준다. 동시에 죄악에서 돌이킴이라는 주제를 다룬다. 8~10절에서는 죄악을 해결하는 온전한 회복을 다룬다.
 
스가랴서의 주제는 이스라엘의 회개와 여호와의 회복이다(1:3). 조건적인 것은 아니지만, 역동적으로 여호와는 회복을 약속하시면서 이스라엘의 회개를 요구한다. 이스라엘이 회개하여 하나님께 돌아오는 방법은 역사적 인물인 여호수아와 스룹바벨의 역할과 관련이 있다. 이들은 각각 종교와 정치 지도자로서 “언약 공동체로서의 이스라엘 회복”을 어떻게 해야 할것인지를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1. 여호수아 위임식(1~7절)
여호수아의 위임식 장면은 출애굽기 29장과 레위기 8장에서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제사장으로 위임하는 위임식 내용과 비슷하다. 그리고 환상의 배경은 천상회의다, 여호수아는 스룹바벨과 함께 포로 후기 유다 공동체의 대표적인 지도자이다(학 1:1, 12, 14; 2:2,4). 이 위임식은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공식적으로 인정해주는 것이다.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역사적 인물로서의 개인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공동체를 대표한다.
 
3절에서 더로운 옷을 입은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공동체가 죄로 더럽혀진 것을 나타낸다. 여호수아를 전면으로 내세우는 이유는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이스라엘이 신앙 공동체로 회복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여호수아가 입은 옷이 더럽혀진 옷에서 깨끗한 옷으로 바뀔 필요가 있듯이 이스라엘도 깨끗해져야 한다. 이사야 64:6에서 이스라엘의 의롭지 못한 상태를 더러운 옷에 비유했다. ‘더로운 옷’이라는 것은 대제사장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4절은 ‘더러운 옷’이 의미하는 바를 더욱 발전 시킨다. ‘죄악’이라는 분명한 단어는 여호수아의 죄와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나타낸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죄악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죄악을 제거함으로써(4절) ‘정결한 관’을 쓰게 된다(5절). 이 ‘정결한 관’은 3절의 ‘더러운 옷’과 대조되어, 4절에서 표현하는 대로 죄악이 제거되었음을 상징한다. 이와같은 환상을 통해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바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스라엘 백성은 더러움에서 정결함으로 나아가야 한다. 정결함은 거룩함의 개념과 더불어 언약 백성으로서의 삶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곧 정결함은 거룩함과 더불어 여호와께서 다가가기 위한 중요한 조건이다(레 15:13; 16:30). 이는 단순히 의식적인 면에서만이 아니라 전반적인 사회생활에서 하나님 중심의 삶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정결과 거룩함은 모든 삶의 영역이 하나님 중심이어야 함을 의미한다.
 
무엇보다 놓치지 않아야 할 관점은 하나님께서 이러한 제도적 장치를 통해 이스라엘 공동체가 하나님 중심의 언약 공동체로 회복하기를 권고하신다는 것이다.
 
 
 
2. 온전한 회복(8~10절)
온전한 회복은 무엇일까? 본문은 이런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들 가운데 거하려면 그들이 정결하고 거룩해야 한다. 거룩한 하나님께서 더럽혀진 사람들과 함께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를 떠나시며 그들을 각각 앗수르와 바벨론으로 추방한 것도 이스라엘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그들과 함께 더 이상 거하실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포로기를 지나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 가나안 땅에 돌아온 현재에도 그들이 깨끗하고 거룩하게 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한 문제였다.
 
이런 의미에서 성전 재건은 언약 백성과 신앙 공동체의 회복에 관한 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이스라엘이 회복하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임재가 있어야 하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에 거하시려면 죄악의 문제, 즉 정결과 거룩함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정결과 거룩함의 문제는 단순히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8~10절에서는 더욱 분명하게 죄의 문제를 언급하며, 현재적 관점과 미래적 관점에서 더욱 큰 소망을 품고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게 만들고 있다. 8절의 “싹”은 6:12에서도 다시 언급된다. 다윗은 나단 선지자를 통해 전해받은 영원한 언약(삼하 7:13)을 생각하며 “나의 모든 구원과 나의 모든 소원을 어찌 이루지 아니하시랴(야츠미아흐, 싹이 나게 하다; 삼하 23:5)”라고 말하였다. 에스겔도 새 언약을 언급하는 맥락에서 ‘그 날에 나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한 뿔이 돋아나게(아츠미아흐)’라고 예언한다(겔 29:21). 또한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아를 “여호와의 싹”으로 표현하였다(사 4:2). 에레미야 선지자 역시 “의로운 가지”를 메시아에 적용하여 예언하였다(렘 23:5~6; 33:15~16).
 
스가랴는 이렇게 이사야서와 예레미야서에서 메시아적 인물을 가리키는 데 사용된 “싹”이나 “종”의 개념을 차용한다. 그리하여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통한 사역이 궁극적으로는 메시아를 통한 미래적인 완성에 있음을 주목하게 한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 환상(4:1~14)은 역사적 인물에 집중하면서도 ‘그 날에(10절)’이라는 언급을 통해 종말론적, 미래적 관점을 제시한다. 하나님 백성의 궁극적인 회복은 메시아를 통해 성취될 것을 미리 보여준 것이다.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거하리라(9절)’는 표현도 이런 온전한 회복을 잘 보여준다.
 
9절의 ‘돌’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귀중한 돌, 즉 보석으로 보기도 하고 비슷하게 장식용 돌로 보기도 하며, 성전을 재건하는 상징으로 보기도 한다. 마치 여호수아가 요단을 건너면서 취한 열두 돌을 표징으로 삼아 이스라엘이 기념하도록 한 것(수 4:5~7)과 같이 돌은 증거의 역할을 한다고도 볼 수 있겠다. 4:10에서 ‘일곱’을 ‘세상에 두루 돌아다니는 여호와의 눈’으로 설명한다. 이와 연결하여 9절의 “일곱 눈” 역시 여호와의 눈일 가능성이 높다.
 
“일곱 눈”은 “내 종 싹”을 통한 미래적인 일, 곧 성전 회복을 통한 죄악 제거에 대한 증인 역할을 하며 그 증인 다름 아닌 여호와시라는 것을 보증한다. 따라서 여호와의 눈이 직접 보며 증거하고 있기 때문에 이 환상에서 보여주는 내용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의 표현이다.
 
 
 
나는?
-천상회의의 장면이 보여진다. 사탄이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참소한다. 그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 같고 더러운 옷을 입고 있다고 고발한다. 죄로 더럽혀진 이스라엘의 모습이다. 이런 묘사를 통해 이스라엘이 성전 건축을 중단하고 불안한 정세 속에서 사는 원인이 드러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약속을 어기셨거나 불의하셔서가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탄의 말은 옳다. 하지만 사탄의 말이기에 하나님은 듣지 않고 책망하신다.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의 더러운 옷은 이스라엘이 범한 죄악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그 옷을 벗겨 아름다운 옷으로 입혀주시고 정결한 관을 씌워주신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기대하신 정체성이다. 이스라엘의 의지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이스라엘은 불평하는 입을 닫고 자신들의 죄악과 직면해야 한다. 성전만 있으면 그 나라가 안 망한다고 믿었던 조상들의 망상의 그늘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도를 행하면 하나님의 통치에 참여할 것이다. 성전이 재건되어야만 강한 나라가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약속하신 대로 이루어져야 가능하다.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예표하는 “싹”이나 성전의 모퉁이돌을 가리키는 듯한 “돌”에 대한 약속도 함께 주시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는 훗날 메시아 예수께서 십자가와 부활로 온전한 성전이 되시면, 그를 믿는 모든 자들의 죄를 낱낱이 다 아시면서도 단번에 그리고 영원히 대속하실 것을 보여주셨다. 그러므로 메사아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믿음으로 하나님께 돌아온 자들에게는 죄 용서의 은혜의 날을 누리게 하시지만, 이 은혜를 거절한 자들에게는 심판이 기다릴 것이다.
 
-모든 죄가 용서받는 그날이 되면 이스라엘은 어떤 복을 누리게 되는가? 하나님과 잔치를 누릴 것이다. 눈물도 없고 슬픔도 없고 사망도 없는 메시아 잔치로 초대하신다.
 
 
*하나님의 백성을 참소하는 사탄을 책망하신다(1,2절). 하나님 앞에 범죄한 이스라엘의 대표격인 여호수아를 고발하는 사탄에게, 하나님은 이미 그가 받은 형벌이 적당하다고(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처럼) 말씀하시며 사탄을 물리치신다. 우리의 죄가 몹시 중하여 대적자들의 비난을 받을지라도, 하나님이 선택하신 자녀를 용서하시고 죄 없다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늘 감사하며 기억해야 할 것이다.
 
*여호수아를 정결케 하셔서 대제사장의 직무를 회복시키신다(3~5절).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은 죄 때문에 세상에 대한 제사장의 직무를 상실한 자들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여호수아의 더러운 옷을 벗기시고 정결한 관을 씌워주시며, 이스라엘의 모든 죄과를 용서하시고 제사장 나라로 회복해주셨다.
 
*네번째 환상은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제사장의 옷을 입혀 주심으로 본토에 남아 있었던 이들이 제사장으로서 여호수아의 권위를 인정하도록 행하신 조치다. 하나님의 통치는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따라 행하는 리더십을 통해 더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실행되게 되어있다. 하나님께서는 회복된 이스라엘 공동체가 더욱 하나님의 백성답게 서도록 먼저 새로운 리더십을 인정해주신다. 죄와 악으로 채워진 리더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한 뜻을 따라 하나님의 마음으로 채워진 리더가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구현할 수 있다.
 
*나도 하나님께 부름받아 서 있는 목양의 자리가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곳이 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혀 주시고 성령을 보내주신 뜻을 따라 믿음의 순종으로 나아가야 하겠다. 불에 그슬린 나무와 같았던 나를 하나님의 거룩한 도구로 삼아주신 은혜를 늘 잊지 않고 충성하리라. 나는 초라하고 부족해도 나를 불러주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며 담대하고 겸손하게 감당하리라.
 
*우리는 스가랴 시대의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보다 그 이상의 성취가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 아래,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름 받은 우리에게 이루어졌음을(벧전 2:9) 믿고 찬양해야 할 것이다.
 
*여호수아로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는 책임자가 되게 하신다(6~7절). 하나님은 여호수아의 죄를 용서하여 주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 집 뜰에서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영적인 통로가 되게 하셨다.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이러한 놀라운 특권을 받게 된 사실을 기억하면서(마 18:18), 하나님이 주신 영적인 권한을 올바로 순종하기 위해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할 것이다.
 
*메시아를 지칭하는 하나님의 종이신 “순”을 통해 이 땅의 모든 죄악을 제거하시고, 그가 하나님의 백성들의 참된 목자와 왕으로 통치하게 하신다(사 4:2; 11:1; 렘 23:5; 33:14~15; 겔 34:24; 37:24). 이 땅에 종으로 오셔서 우리의 허물과 죄를 짊어지시고 죽으신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여전히 죄의 영향 아래에 있는 세상의 삶속에서 지금, 나의 죄를 남김없이 고백하고 용서받아야 하리라.
 
*메시아가 다스리시는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로 상징되는 평화와 번영을 누리게 해주신다(왕상 4:25; 왕하 18:31; 미 4:4).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의 죄를 제거하시고 이루신 이 놀라운 평화와 번영을 공동체와 함께 누리고, 세상에 전해야 하리라.
 
 
 
*주님, 여전히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그럼에도 죄를 사해주시는 사랑을 베푸시는데 주저하지 않으시고, 온전케 하셔서 구원의 열매를 누리게 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주님, 여호수아가 도무지 자격 없었지만, 친히 더러운 옷을 벗기시고 정결한 관을 씌워주셔서 온전한 회복의 은혜를 베푸셨듯이 지금 이 땅의 교회도 그리하시리라 소망합니다.
*주님, 저도 불에 그슬린 나무처럼 초라하고 부족하기 그지 없었음을 기억하겠습니다. 그런 저에게 입혀주신 예수님의 옷을 자랑스럽게 세상속에서 입으며 그에 걸맞게 살아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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