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오직 하나님의 영과 능력으로[슥 4:1-14]
 – 2025년 08월 09일
– 2025년 08월 09일 –

슥 4:1-14 오직 하나님의 영과 능력으로

여덟 개의 환상 중 다섯 번째 환상이다. 네 번째 환상이 여호수아에게 집중되었듯, 다섯 번째 환상은 스룹바벨에게 집중한다. 역시 성전 재건을 주요한 주제로 다루고 있고, 본문에서 직접 언급하지 않지만, 스룹바벨과 관련된 두 감람나무에 대한 환상을 소개하고 두 감람나무의 정체에 대해 다룬다.

성전을 재건하다 중단된 지 십육 년이나 지난 상황에서 이스라엘에는 내외적인 여러 문제로 성전 재건이 재개되는 일이 지연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를 보내 성전 재건을 재개하도록 권면하신다. 성전 재건의 문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어떻게 돌아올 것인가에 대한 대답이기 때문이다. 성전 건축 자체에 목적이 있기 보다는 이스라엘이 다시 언약 공동체, 곧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신앙공동체로서 회복하는 것에 있었다. 즉, 언약 공동체의 회복을 위한 단계로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성전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의 회복에 초점을 둔다는 것이다.

 


1. 다섯 번째 환상의 내용(1~5절)
이번 환상에서는 앞의 환상들과 달리 천사가 먼저 스가랴가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하면서 시작한다(2절). 스가랴가 본 등잔대(메노라)의 형상은 독특하다. 원문에 따르면 순금으로 된 등잔대는 각각의 등대에 심지 구실을 하는 일곱 개의 돌출부가 있어 모두 7×7개의 불꽃이 타오르는 형상이다.

한편, 2절에서 순금 등잔대의 위에까지 어떻게 기름이 공급되는지를 설명한다. 그리고 이는 3절에서 등잔대 곁의 두 감람나무에까지 연결된다. 두 감람나무에 대한 설명은 12~14절에서 다시 거론된다. 두 감람나무의 정체는 환상의 의미를 밝히는 가운데 드러나지만, 순금 등잔대는 이 환상과 환상에 대한 설명에서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문맥상 추측할 수밖에 없지만, 문맥상 순금 등잔대의 환상이 성전 재건과 관련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며, 더욱 구체적으로는 성전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두 감람나무의 정체가 궁극적으로는 메시아적 인물이겠지만, 구체적으로는 여호수아와 스룹바벨이라는 두 인물이라고 한다면, 순금 등잔대의 환상은 기름이 공급되어 등잔대가 유지되듯이 이 둘(여호수아와 스룹바벨)을 통해 성전이 완성된다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스가랴는 환상의 의미를 묻지만, 천사는 ‘네가 이것들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느냐?’라고 질문하고 스가랴는 모른다고 대답한다(4~5절).

 

2.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6~7절)
6~7절은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을 담고 있다. 6절의 “힘”과 “능력”은 ‘내 영’과 대조되는 인간의 힘을 의미한다. 스가랴가 이 메시지를 전하는 당시의 역사적 배경은 성전 건축이 여러 반대에 부딪혀 중단된 상황이었다.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는 성전 재건을 독려하고 있었는데, 스룹바벨은 정치적인 지도자로서 성전 재건을 주도해야 할 인물이다. 인간의 힘과 능력으로가 아니라 여호와의 영으로 성전 재건이 가능함을 권고하며 주변 환경이나 인간적인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권고하는 메시지다.

7절은 성전 재건에 방해가 되는 것을 ‘산’에 비유하였으며(사 40:4), 산이 평지가 된다는 것은 평탄하게 일이 진행될 것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7절의 ‘머릿돌’은 건물의 완성 단계에 놓는 중요한 돌을 가리키며, 성전이 완성될 때에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모두가 인정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성전의 완성은 곧 성전이라는 건물의 완성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순금 등잔대라는 환상을 통해 암시하듯이, 여호와께서 자신의 언약 백성 가운데 다시 거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전의 완성은 언약 공동체, 신앙 공동체의 회복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인 셈이다. 이런 점에서 성전 재건은 단순히 인간의 힘이나 능력이 아니라 여호와의 영이 함께하시는 역사다.

 

3. 백성들에게 촉구하는 말씀(8~10절)
본문은 스룹바벨이 할 일과 관련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촉구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 9절의 ‘손’은 하나님의 사역 대행자를 가리킨다(8:9, 13). 6절에서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라고 했으나, 이는 단순히 하나님의 영이 모든 것을 다 한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구체적으로 하나님 앞에 나오기를 원한다는 말씀이다.

9절의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줄을 네가 알리라’라는 표현은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이 성취될 것을 강조하는 표현이다(슥 2:9). 다시 말해 선지자를 통해 대언되는 여호와의 말씀이 성취됨으로써, 그 선지자가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임을 인정하게 된다는 뜻이다. 10절에서 ‘작은 나라’이라고 멸시하는 것은 스가랴 당시 재건 중이던 성전의 초라한 외야에 얽힌 사람들의 시선을 가리킨다. 파괴되기 전 솔로몬 성전에 비해 기초를 놓은 제2성전의 겉모습은 볼품이 없었다. 부푼 기대를 안고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에게는 이만저만한 실망이 아닐 수 없었다. 기초를 놓은 후에도 십육 년동안 여러 가지 요인으로 공사가 중단되면서 이스라엘 백성의 실망은 커져만 갔을 것이다.

10절에서 스룹바벨의 손에 있는 ‘다림줄’은 다른 단어이기는 하지만, 2:1의 측량불과도 관련이 있다. 이는 스룹바벨 성전 건축에 중대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또한 ‘일곱 눈’은 아마도 3:9의 ‘일곱 눈’과 연결될 것이다. 2절에서도 눈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일곱’이 반복된다. 순금 등잔대와 그 위에 있는 것을 보는 환상이 세상을 두루 다니며 보는 여호와의 일곱 눈과 연결된다고 할 수 있겠다. 이는 여호와께서 친히 증인이 됨과 동시에 성전의 완성에 대한 예언이 확고히 성취될 것을 보증하는 이가 되는다는 의미다.

 

4. 두 감람나무의 정체(11~14절)
본문은 두 감람나무가 무엇인지에 대해 초점을 둔다. 11~12절은 두 감람나무의 위치를 다시 확인하고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반복하여 묻는다. 13절은 스가랴 선지자가 알지 못한다는 것을 재차 확인한다. 14절에서는 두 감람나무의 정체를 알린다. 이렇게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주목하게 하는 것은 그만큼 두 감람나무가 무엇을 가리키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두 감람나무를 ‘기름 부음 받은 자 둘’이라고 확인하는데, “기름(이츠하르)”은 보통 임명할 때 붓는 기름이나 연료로 사용하는 기름(셰멘)과는 구별된다. 이 둘은 “여호수아와 스룹바벨”을 가리킨다. 그러나 주의할 것은 하나님의 대행자로서 ‘기름 부은 받은 자 둘’은 궁극적으로 메시아를 통해서만 성취될 것이다. 일차적으로 당시의 역사적인 두 인물에게 적용하지만, 궁극적인 의미에서는 성전의 완성을 이룰 메시아적 인물을 가리킨다고 해야 할 것이다.

 

나는?
-순금 등잔대와 두 감람나무. 일곱 등잔이 있는 순금 등잔대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 이스라엘을 가리킨다. 특별히 성전 공동체로서의 이스라엘을 가리키며, 이 등잔대가 비추는 불빛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온 세상을 환히 비추어야 할 이스라엘의 사명을 보여준다.

-이 성전이 완공되면 이스라엘은 새 시대의 주역으로서 온 세상을 어둠에서 빛과 생명 되시는 하나님께 인도할 사명을 감당할 것이라고 약속해주시는 것이다. 이 불빛은 여호와의 영이라는 해석을 선지자는 듣고 있다. 성령을 통해 어둠을 비추는 빛의 사명은 이스라엘의 존재 목적이었다. 그리고 오늘날 교회의 존재 목적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성전 건립은 이스라엘의 국력에 달려 있지 않았다. 그들의 힘과 능력이 모자라서 성전 재건이 중단된 것이 아니다. 성전 재건을 중단시킨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재개하실 분도 하나님이시다. 이스라엘 백성이 주의 영을 의지하여 말씀 앞에 조아릴 때 하나님은 성전을 지으실 것이다.

-스룹바벨을 통해 큰 산(장애물)이 제거되며 그 성전이 완성될 때 다들 하나님의 은총을 찬미할 것이다. 사람의 영향력과 이름 중심으로 모인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가 아니다. 주님만이 영광을 받으셔야 하고 주님의 은총만이 찬미를 받아야 하나님의 교회가 아닐까!

-여호와의 영이 함께하시면 성전 재건은 반드시 끝마칠 것이다. 큰 산을 향하여 호통 치셨던 하나님은 다시 한 번 성전 짓는 일을 하찮게 여기는 교만한 자들을 향해서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라고 호통을 치신다. 그들에게는 성전의 기능보다 성전 자체가 더 중요했다. 성전에서 어떤 마음으로 예배하는가보다 성전이 얼마나 크고 화려한지가 더 중요했다.

-그들은 솔로몬의 성전만 바라보았지, 그 성전 안에 계신 여호와는 보지 못했다. 그들은 주변의 마르둑 신전의 위용에만 감탄했지, 그 마르둑이 바벨론을 지켜주지 못한 무능한 신이었다는 것은 보지 못했다. 스룹바벨만 보았고 여호수아만 보았지, 그 뒤에 계시는 여호와와 여호와의 신은 보지 못한 것이다. 온 세상에 임재하시면서 온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은 알지 못했다.

*하나님의 천사는 스룹바벨을 성전 재건의 적임자임을 확증한다. 재건된 성전은 솔로몬의 성전과 비교하여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멸시하는 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성전의 본질은 외형의 규모에 따라 결정되지 않는다.

*오늘날에도 외형이 가치를 결정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 허다하다. 하나님나라 공동체에도 이런 모습이 비일비재하게 나타난다. 부디 우리 더온누리공동체가 이런 외형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서로 돌아보아 권면하며 나아가야 한다.

*마지막 때 눈으로 보이는 초라함에 삶의 가치가 흔들리지 않기를 전심으로 추구해야 하겠다. 하나님의 일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영이 역사하는 곳에는 겉으로 보이는 규가 아무리

 


*주님, 주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것이 사람의 힘이나, 겉으로 보여지는 권세가 아닌 하나님의 영으로 되는 것을 믿고 의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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