슥 5:1-11 자기 백성의 죄악을 제거하시는 하나님
두루마리에 대한 환상과 에바 속의 여인에 대한 환상을 보여주는데, 각각 철저한 심판과 완전한 죄악의 제거라는 주제를 다룬다.
여호수아와 스룹바벨이라는 두 역사적 인물이 등장하는 이전 환상에서, 하나님 앞에 들어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엿볼 수 있었다. 5장의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 환상에서 본격적으로 죄의 문제를 지적하며 하나님 앞에 돌아오기 위한 필수적인 전제를 제시한다. 두루마리 환상은 하나님의 심판이 두루 미친다는 것을 보여주고, 에바 속 여인에 대한 환상은 죄악의 완전한 제거를 보여준다. 이와같은 환상들이 강조하는 것은 죄의 문제를 해결할 때 비로소 거룩한 하나님 앞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1. 여섯 번째 환상_두루마리(1~4절)
3장을 통해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 필요성을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환상을 통해 보여주며 이스라엘의 정결을 요구했었다. 본문은 저주를 상징하는 두루마리를 통해 온 땅에 심판이 내릴 것을 예고한다. 죄의 문제는 거룩하신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레 19:2). 가나안 족속을 멸하신 것도,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한 것도, 남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포로로 끌려가게 된 것도 죄악 때문이었다(레 18:27~28).
2절의 ‘날아가는 루두마리’는 기록을 목적으로 하는 두루마리를 가리킨다(렘 36:2). 주로 파피루스나 동물의 가죽으로 만들어 말아서 휴대할 수 있는 고대의 책이다. 두루마리가 난다는 것은 누구나 볼 수 있게 한다는 의미이며, 두루마리에 기록된 저주(5:3)가 온 천하에 이루어진다는 의미기도 하다. 그 두루마리의 길이가 이십 규빗(약 9m), 너비가 십 규빗(약 4.5m)이다. 실제로 이런 크기의 두루마리는 없다. 길이는 이와 같이 길수 있지만, 너비는 현실적이지 않다. 이것은 굉장히 큰 두루마리가 하늘을 뒤덮은 것을 강조한다.
“두루마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학자들은 크게 두 가지 해석을 내놓는다. 먼저 성전의 속죄소의 크기와 두루마리의 크기가 같은 점을 들어 의미를 해석한다. 그리고 속죄소의 두 그룹(천사)이 난다는 점도 고려했다. 3절에서 밝히듯 두루마리에 기록된 저주의 내용이 십계명과 관련이 있는데, 속죄소가 덮은 법궤(언약궤)는 십계명 두 돌판을 보관한다. 시내산 언약의 핵심은 십계명이고, 십계명이 새겨진 두 돌판이 담겨 있는 언약궤(법궤)와 그 법궤를 덮는 속죄소는 언약의 핵심을 늘 기억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이런 연결점을 통해 두루마리의 역할이 십계명, 즉 언약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두루마리에 기록된 저주의 내용을 통해 이스라엘의 현재 상황을 언약이라는 관점으로 파악해야 함을 보여준다. 두루마리의 기록된 저주는 이스라엘을 향한 저주이며 죄악에서 돌이키라는 강력한 촉구가 된다.
또, “주랑”의 크기(왕상 6:3)도 두루마리의 크기와 같다.주랑은 성전의 입구이며 주랑 앞에 번제단이 있다. 열왕기상 7:7은 “재판하는 주랑”을 소개하는데, 이곳에서 제사장이 재판을 했었다(슥 3:7, 욜 2:7). 한편 솔로몬의 기도에서 성전은 심판의 기능을 담당하기도 한다(왕상 8:31~32). 이런 측면에서 날아다니는 두루마리가 심판의 성격을 지닌다고 해석한다. 성소(출 26장에 소개된 성소의 크기도 두루마리 크기와 동일하다)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만나는 곳이며, 하나님의 임재를 늘 기억하는 곳이다. 그렇다면 두루마리에 기록된 저주(5:3)는 하나님이 보낸 저주이며 따라서 하나님에게로 돌아오도록 강력하게 촉구하는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3절은 “두루마리”가 “온 땅 위에 내리는 저주”라고 확인된다. 저주는 언약적 저주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에 충실하지 못한 것에 대한 질책의 메시지다. 두루마리 양쪽에 각각 “도둑질하는 자”와 “(거짓) 맹세하는 자”에 대한 저주가 기록되어 있다. 이는 저주가 있게 된 죄악과 그 죄악으로 인한 저주를 강조하는 것이다. 이것은 십계명의 셋째와 여덟째 계명에 해당한다. 4절은 이 표현과 내용을 확대하여 발전시킨다.
이렇게 기록되어 언급된 죄악은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관계뿐만 아니라, 언약 공동체를 훼손하는 죄악을 중대하게 여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2. 일곱 번째 환상_시날 땅으로 옮겨지는 에바 속의 여인(5~11절)
여섯 번째 환상은 죄가 가득한 상황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본문의 환상은 죄가 제거되는 미래적인 소망을 보여준다. 예레미야를 통해 주신 새 언약에서도 이미 죄에 대한 미래적 소망을 언급한 바 있다(렘 31:33~34).
환상은 먼저 천사가 스가랴에게 “부디 너의 눈을 들어보라(5절)”고 명령한다. 그런데 이에 따른 환상의 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부족하다. 이는 보여주는 환상을 통해 스가랴의 시선으로 그 의미를 깊이 숙고하라는 것이다. 스가랴는 천사가 일러준대로 환상을 보며 묻는다(6절). 천사는 그것이 에바라고 알려준다. “에바”는 고대 이스라엘에서 곡식을 측량하는 단위(겔 45:11)이자 측량을 위한 바구니 및 용기(대략 36리터)들이다.
천사는 에바가 온 땅에서 “그들의 눈 또는 그들의 죄”라고 설명해준다. 7절은 스가랴가 둥근 납(에바의 내용물을 눌러 밀봉하는 역할을 하는 뚜껑)이 들리는 것과 에바 가운데 한 여인이 앉아 있는 것을 본다. 천사는 이것을 “그 악(리쉬아)”이라고 규정하고 즉각 행동을 개시한다. 여인을 에바의 중앙으로 던지고 납의 돌을 그 입구로 던진다. 즉, 악으로 상징된 여인을 가두는 것이다.
9절은 천사가 다시 “내가 나의 눈들을 들어 보았다. 보라!”가 반복된다. 이에 스가랴는 “나오는 두 여인들”을 본다. 본문은 특히 두 여인이 가지고 있는 날개에 대한 묘사에 집중되는데, 그들의 날개에는 바람(영)이 있었고, 그 날개들은 학의 날개와 같다고 설명한다(9절). 그 두 여인들이 에바를 땅과 하늘 사이로 들어 올린다. 그 모습을 본 스가랴가 그 에바를 어디로 가게 하느냐고 묻자, 천사는 “그녀를 위한 집을 시날 땅에 짓기 위함이라. 그리고 그것이 세워지면 거기서 머물게 되리라(11절)”고 대답해준다.
이 환상은 곡식의 측량 단위(바구니)인 “에바”를 먼저 보여주며 시작했기에 단위를 속이며 상업적인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것을 금지한 신명기 25:14~15의 말씀과 연결된다. 포로에서 귀환한 백성 사이에서 다섯 번째 환상에서 지적한 도둑질과 거짓 맹세, 그리고 본문의 환상을 통해 보여주는 속임수가 자행되고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런 맥락을 통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 안의 “그들의 눈(그들의 죄)”로 설명된 에바와 그 속의 여인이 온 땅에서 제거되어야 할 것을 명령하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거되어야 할 “에바”와 “여인”은 무엇을 지칭할까? 이는 과거 조상들이 섬긴 ‘아세라’와 같은 여신의 존재를 상기시킨다(렘 44:17~19).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들이 탐욕으로 인해 행한 상업적인 부정함이 우상숭배와 다름 없음을 지칭하는 것이다(참조, 골 3:5). 에바 속의 여인이 옮겨지는 시날 땅은 바벨론을 가리키고(창 11:2; 사 11:11; 단 1:2), 앞으로 여호와께서 성전(그분의 집)에 돌아와 머무시듯이, 여신으로 상징되는 유다 땅의 만연한 죄가 바벨론, 시날 땅으로 옮겨져 그 여인을 위해 지어지는 집에 머물 것이다.
즉 이제 성전 재건이 완성되면 여호와께서 돌아와 머무시고, 그곳에 만연한 부정과 죄악을 예루살렘과 유다 땅에서 바벨론 시날 땅으로 떠나 보내실 것이라는 메시지다. 이 일을 행하는 두 여인들은 그들이 가진 학과 같은 큰 날개와 그 날개의 바람(영)으로 신속하게 이 일을 수행할 것이다. 여호와의 신실하심으로 이 일을 이루실 것이다.
나는?
-스가랴가 본 두루마리는 이스라엘의 현재 상황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성전 건축이 중단된 이유이기도 하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저주를 받아 마땅한 죄악에 물들었기 때문이다. “온 땅에 내리는 저주”라는 표현을 통해 그 죄악이 얼마나 만연하고 있는지 짐작하고도 남게 한다. 대표적으로 “도둑질과 거짓 맹세”의 죄를 직접적으로 언급한다. 십계명의 여덟째와 셋째 계명을 어긴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자신과의 관계(셋째 계명, 거짓 맹세)뿐 아니라, 언약 공동체를 훼손하는 죄악(여덟째 계명, 도둑질)도 동일하게 저주의 이유로 밝히신다. 성전 재건의 과업보다 이와 같은 죄악을 청산하는 것이 먼저임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교회 건물을 새롭게, 더 크게, 더 아름답게 지으면 부흥할 것이라는 착각을 속히 버려야 한다. 그것은 믿음이 아니다. 또한, 생활이 나아지면 신앙도 나아질 것이라는 우매한 믿음도 버려야 한다. 그것보다 먼저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회복되어야 하는 것이고, 일상에서 이웃을 속이는 일을 멈춰야 하는 것이다.
-에바는 측정 도구다. 이는 언약의 기준에 비추어 이스라엘이 올바르게 살고 있는지를 가늠하게 하는 잣대다. 에바 속에 한 여인이 있다. 온 땅에 가득한 죄악을 의인화 한 것이다. 죄는 단지 죄를 범한 행동이나 결과에 그치지 않고 세계와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미혹하는 힘과 영향력을 갖고 있다. 하나님은 이 여인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무거운 둥근 납으로 막으셨다. 그런데 죄의 유혹에 빠지면 스스로 그 납 뚜껑을 열어 이 여인을 밖으로 나오게 할 수 있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아무리 이스라엘이 돌로 된 성전을 완성한다 해도 이 여인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긴다면 하나님은 이 성전에 거하실 수 없다.
-여호와 하나님은 여인이 든 그 에바를 시날 땅(바벨론)으로 옮기는 환상을 보여주신다. 이스라엘에 만연한 죄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자들이 주도한듯 보인다. 바벨론에서 우상과 함께 살던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돌아와서도 우상숭배의 관습을 유지한듯 보인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시 그들을 우상의 본거지인 바벨론으로 보내시는 환상을 보여주신 것이다.
-이 일에 “두 여인”을 사용하신다. 두 여인은 하나님의 신실하고 의로운 종이다. 그 여인들은 여인이 든 에바를 들어 먼 시날까지 바람의 도움을 받아 옮긴다. “바람(영, 루아흐)”은 하나님의 영을 가리킨다. 성전을 합당하게 하기 위해 이 땅에서의 죄악을 제거하는 일은 성령께서 행하실 것이다.
-이 땅의 교회와 성도를 정결하게 하는 영이 우리를 새롭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영이 한국교회를 정결하게 해주실 것이다. 거룩함으로 회복되지 않고 여전히 죄악을 품고 있는 교회는 하나님의 심판 대상일 뿐이다.
*건축 과정에서 가장 먼저 기초를 다지는 것부터 시작하듯, 진정한 성전 재건의 출발은 죄악의 제거이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 공동체를 이루어가는 걸음도 여러 과정들이 있을 수 있겠으나, 그 모든 과정의 기초는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거룩한 삶의 기초는 하나님의 성품을 따라 죄악 가득한 세상속에서 죄를 따라 가는 것이 아니다. 죄를 거슬러 살아가는 것이다.
*오늘 나의 삶 속에 영적으로 시날 땅에 날려보내야 할 죄악의 모습을 깨우쳐 주시고, 성령의 은혜외 능력으로 날려보내기를 소원한다.
*2025년 8월 9일 낮 12:10…. 사랑하는 장모님이 하나님의 품에 안기셨다. 믿기지 않는 상황 속에서 우리 가족의 마음에 큰 구멍이 뚫렸다…. 주님 품에 안긴 평안한 죽음을 보았으나 그저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은 그만큼 받은 사랑을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리라. 우리 가정의 천사가 다시 하늘로 올라가신 그날, 하나님은 선명한 무지개를 보여 주시며 위로해주셨다. 아내의 눈에서 눈물이 마르지 않는다…
*주님, 두루마리에 빼곡하게 적인 죄악이 우리 가운데서 분별되어 제거되기를 구합니다. 여전히 제 마음속에 에바 속 여인처럼 세상 가치와 방식을 동경하게하여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게 하는 것이 있다면 성령께서 떠나보낼 것을 확신합니다. 죄악과 구별된 삶을 위해 고분분투하도록 능력을 주십시오.
*주님, 사랑하는 아내와 우리 아이들의 마음을 보여 주신 무지개처럼 평안케 해주시기를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