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결국 악은 멸망하고 하나님의 평화는 이뤄진다. [슥 6:1-15]
 – 2025년 08월 11일
– 2025년 08월 11일 –

슥 6:1-15 결국 악은 멸망하고 하나님의 평화는 이뤄진다.

마지막 여덟 번째 환상(1~8절)이다. 9~15절은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면류관을 씌운다. 이를 마지막으로 1:7부터 시작된 환상 시리즈가 종결된다. 이 상징 행위를 통해 여호와의 성전이 도래할 메시아적 인물 “싹”과 “먼 데 사람들”을 통해 건축될 것이라는 여호와의 말씀이 선포된다.

 

1. 여덟 번째 환상_두 진 사이에서 나온 네 병거(1~8절)
여덟 번째 환상은 여러 면에서 첫 번째 환상(1:7~17)과 비슷하다. 첫번 째 환상에서 말이 사방을 두루 다니는 것을 통해 하나님이 온 세상을 주관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말했다. 마지막 환상도 말과 병거가 온 세상을 두루 다닌다. 결국 첫째 환상이 보여주듯 세상에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세상을 주관하며 통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마지막 환상은 병거와 함께 말의 모습을 자세히 묘사하며 전쟁을 준비하는 모습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1절의 “네 병거”에서 숫자 4는 네 방향을 가리키며 온 땅에 권위가 미치고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두 번째 환상(1:18~21)에서도 네 뿔과 네 대장장이를 통해 숫자 4를 강조했었다. 5절에서는 이를 “하늘의 네 바람”이라고 다시 확인한다. 1절의 구리산도 산이 하나님의 위엄 가운데 나타나는 임재 장소를 상징하기에 뻗어 나오는 네 병거와 함께 하나님의 온전한 심판과 회복이 분명하게 이루어지는 것을 의의미한다. 2~3절에서 네 병거가 각 종류의 말들과 연결되어 등장하는데, 말들은 첫 번째 환상에 이어 마지막 호나상을 마무리하는 데도 등장한다.

4~8절은 여덟 번째 환상의 의미 및 장면에 대하여 부연 설명을 이어간다. 5절에서 “병거’를 ‘하늘의 네 바람’이라고 확인해준다. 이런 부연 설명은 네 병거가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도구임을 더욱 분명히 한 것이다. 2:6에서는 직유법으로 “하늘 사방에 바람같이”라고 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묘사했었다. 본문에서도 숫자 4는 하나님의 영향력이 사방에 미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말들이 ‘땅에 두루 다니며(1:10-11)’ 하나님의 영향력이 안 미치는 곳이 없음을 환상을 통해 시각적으로 보여주었었다. “두루 다니다” 동사 역시 마지막 환상(6:1~8)에서도 표현되어(6:7) 여호와의 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음을 보여준다.

8절의 ‘북쪽’은 반드시 바벨론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북쪽의 다른 나라들을 가리킬 수도 있다(렘 46:10; 50:9).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 표현이 추방의 땅, 혹은 적들이 쳐들어오는 방향을 지칭하기도 한다. 본문은 포괄적으로 북쪽 방향의 적들을 가리킨다. 또, ‘북쪽에서 내 영을 쉬게 하였느니라’라는 표현은 1~8절에서 점차 주제가 발전해가며 절정에 이르는 가운데 마지막 결론적 언급으로 강조된다.
그동안 북쪽에서 하나님은 활발하게 역사하셨다. 유다를 언약적인 저주로 멸망하게 하셨으며 바벨론에 의해 포로로 끌려가게 하셨다. 그리고 페르시아 왕 고레스를 일으켜 바벨론을 멸망하게도 하셨다. 그런데 북쪽에서 하나님의 영이 쉬게 됐다는 것은 이런 활발한 하나님의 역사가 쉬게 되었다는 의미다. 문제가 해결되었고 평화가 찾아올 것에 대해 예고하는 표현이라 할 수 있겠다.

 

2. 스가랴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_성전을 지을 “싹”의 도래(9~15절)
여러 환상을 보여주신 후 이제 구체적인 현실로 메시지가 옮겨간다. 면류관을 만들어 대제사장에게 씌우는 행위와 싹에 대한 언급은 미래에 구체적으로 성취될 것을 기대하게 한다. 먼저 면류관을 만들어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씌우는 행위는 상징적인 행동으로 “기념”, 즉 “기억나게 하는 행위”다. 당시는 이런 상징적인 행위가 성전 건축 완성의 메시지로 모어지지만, 동시에 “싹”이라는 인물(메시아)를 통해 미래적 관점을 기대하게 하기도 한다. 이는 성전 건축이 역사의 최종 목표가 아닌 미래를 위한 첫 단계임을 깨우치시는 것이다.

9~15절은 현재와 미래라는 이중적 의미가 다분하다. 스가랴 3장과 4장이 여호수아와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환상이 전개되면서 동시에 “싹”이나 “두 감람나무” 등을 통해 이 두 역사적 인물과 연결시키며 미래적 관점에서 장래의 성취를 기대하게 했다. 이러한 흐름을 이어받아 본 단락은 일차적으로는 일련의 환상 메시지와 함께 최종적으로 성전 건축을 독려하고, 이와 같은 현실적인 행위에 상징을 담아 미래적 관점도 바라보게 한 것이다. “싹”은 스룹바벨이나 여호수아가 아니라 미래적 인물(메시아)를 기대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10절에서 등장하는 “헬대와 도비야와 여다야”는 바벨론에서 막 돌아온 자들이며, 추측하기로 요시아의 집에 잠시 머무르고 있었다. 이 셋은 스룹바벨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인물들로 보이고, 또 등장하는 ‘스바냐’는 바벨론에 의해 포로로 끌려간 제사장이다(왕하 25:18). 요시아는 스바냐의 아들인데, 그도 역시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인물임을 알 수 있다. 본문의 맥락에서 헬대와 도비야, 여다야는 바벨론에서 돌아올 때 성전에 쓰기 위하여 귀중품을 가져왔고, 요시아는 이런 귀중품을 관리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1절의 면류관은 성전 건축을 통해 회복될 제사장의 권위를 인정해주는 행위일 것으로 추측한다. 실제 구약에서는 왕뿐 아니라 영광의 의미로 관을 씌우기도 했다. 예를 들어 에스더서에 등장하는 모르드개에게 왕관을 씌워 그의 공적을 인정하고 권위를 부여하는 행위가 이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대제사장에게 금으로 만든 관을 씌우는 것은 매우 의외의 일이다. 전례상 흰 세마포로 관을 만들어 착용했지만, 금으로 만들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12절의 “싹”은 이미 3:8에서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별개의 인물로 확인되었다. 본문에서도 마찬가지로 스룹바벨이 “싹”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문법상 ‘싹’에는 정관사가 붙어있지 않음으로 구체적인 인물을 가리키지 않는 것으로 정리된다. 한편 만일 스룹바벨이 싹이었다면 4:9에서 스룹바벨이 성전의 기초를 놓고 그의 손이 또한 마칠 것이라고 했으므로 본문에서 스룹바벨을 다시 언급하거나 정관사를 붙여 표현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싹”은 정해지지 않은 인물, 혹은 미래적인 인물임을 알 수 있다.

더구나 본문은 “싹”을 다윗의 후손 혹은 메시아적 인물로 언급하며 그를 통하여 성전 건축을 언급하는데, 이는 미래적 관점에서의 성전 건축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런 맥락으로 13절의 “이 둘 사이에 평화의 의논이 있으리라’는 일차적으로 여호수아와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한 성전 재건을 지칭하지만, 미래적 관점에서는 장차 제사장과 왕의 직위 결합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신약은 이 두 직위가 그리스도 안에서 결합되는 것을 언급한다(딤전 6:15; 히 8:1; 계 19:16).

15절은 결론적인 메시지로 여호와의 전 건축과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 것을 권면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는 것이다. 성전 건축은 언약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뜻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러므로 성전 건축이 가지는 중요한 의미는 하나님의 임재 의식이다. 이스라엘은 언약 공동체이기에 하나님 중심의 삶, 하나님의 임재를 늘 의식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15절의 ‘멀리 있는 사람들’은 북쪽, 즉 바벨론에 아직 머무르고 있는 사람들로 생각할 수 있지만, 꼭 그렇게 규정할 수는 없다. 스가랴서의 기록 특징은 특정 용어나 표현을 구체적으로나 한정적으로 사용하기보다는 포괄적이며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본문도 바벨론에서 돌아온 자들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가리킬 수 있고, 보편적인 의미에서 이방인들이 여호와 앞에 나와 하나님을 인정하게 되는 미래적인 상황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이 싸우실 것이다. “말과 병거”는 전쟁의 상징이다. 네 병거와 말의 역할은 하나님의 통치를 선포하고 아예 복종하지 않는 이들을 심판하는 일일 것이다. 두번 째 환상에 나오는 네 대장장이처럼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열국의 뿔을 꺾을 뿐 아니라 아예 그들이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도록 심판하는 역할도 하나님의 영이 감당할 것이다.

-이스라엘은 한 시도 맘 편한 날이 없었다. 하지만 하나님 안에 있으면 어느 한 순간도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도록 하셨다. 이스라엘이 무너진 것은 열국의 말과 병거를 하나님보다 더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친히 당신의 명예를 위해서 싸워주겠다고 약속하신다.

-이스라엘을 지배하던 나라에서 돌아온 자들이 여호와의 마음을 시원하게 할 것이다. 그들이 무슨 소식을 가져왔는가? 그 땅에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악이 모두 제거되었다는 소식이다. 이제는 하나님의 평화로운 통치가 시작될 준비가 다 되었다는 소식이다. 하나님의 경고에 굴복한 자들은 주께 돌아올 준비가 된 자들이고 끝내 하나님을 외면한 자들은 심판하였다는 소식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아무도 우리의 영혼을 넘어뜨릴 수 없다고 믿을 때 우리의 마음에 자리잡고 있던 근심과 불안이 떠나갈 것이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평강의 선물은 “믿는 자”에게 주어진다.

-바벨론에서 가져온 금으로 만든 면류관을 정치 지도자 스룹바벨이 아닌 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씌운다. 이것은 이 여호수아가 예표하는 메시아가 바로 왕이면서 동시에 대제사장의 역할을 모두 수행할 것이라는 예언이다(시 110:4; 히 7:1~3). 그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고 영광을 받으시고 왕위에 올라서 다스리실 것이다.

-한 메시아 속에서 전혀 갈등없이 두 직분이 조화를 이룰 것이다. 그것을 “이 둘 사이에 평화의 의논이 있으리라”라고 표현한다.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제사장 같은 왕으로서 예수님의 직분에는 다툼이 없고 평화와 조화로움의 “샬롬”만 있을 것이다. 나아가 온 땅의 죄악이 모두 제거되면, 예배와 통치가 하나 된 나라가 세워질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부리시는 영들을 통해 온 세상 역사를 다스리신다. 평안 가운데 있던 악의 도성들에게 심판을 행하시고, 그 땅에 하나님의 영이 자리 잡게 하신다. 특히 네 병거 중 북쪽으로 간 병거는 그곳의 악을 평정하여 세상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영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는 놀라운 보고를 올린다. 오늘도 변함없이 이처럼 우리 가운데 평화의 도성을 세우시고 찬송받게 하시기까지 쉬지 않고 말씀을 보내시는 하나님의 열심이 내가 평화를 누리게 했다. 온 세상 속에 평화의 공동체인 교회가 세워지게 하셨다. 어찌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다윗의 후손으로서 메시아이신 “싹(순, 사 11:1,10; 53:2)”을 돋아나게 하셔서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고,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며, 평화의 통치가 오게 하신다. 역사적으로는 당시 통치자인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통해 성전을 재건하고 백성들에게 평화가 임할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말씀의 진정한 성취는 메시아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두 직분이 통합되어 이뤄질 것을 보여주신다.

-우리의 왕이시며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지배 아래 오늘 불신과 세상적인 삶을 내려 놓을 때 참 평화와 죄 사함의 은혜를 누릴 수 있다. 나는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세상적인 삶의 가치와 방식을 내려놓고 하나님 나라 복음을 붙들고 진정한 통치자와 구원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며 따라가고 있는가!

 


*주님, 주님께서 이루신 놀라운 구원과 통치의 은혜와 능력이 있기에 오늘도 하늘의 샬롬으로 살아감을 고백합니다. “샬롬”의 은혜를 우리의 진정한 통치자되시고 구원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굳게 붙잡고 나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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