슥 8:1~13 손을 견고히 하여, 두려워하지 말고
7장에서 벧엘 사람들의 금식 문제 제기에 예루살렘 멸망 이유를 들려주신 후 본문에서 예루살렘 회복에 대한 약속이 나온다. 진리의 성읍이요, 성산이 될 것이라는 예루살렘을 향한 임재의 약속이 나온 후(1~8절) 예루살렘의 번영과 평화를 약속한다(9~13절). 이를 통해 예루살렘 회복에 대한 기대 가운데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신실하게 반응하라는 권고다.
1. 예루살렘의 회복(1~8절)
본문은 7:8-14에서 언약적 저주로 심판을 받아 이스라엘이 포로로 끌려갔으나, 이제 돌아왔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하실 것에 대해 약속한다. 2절에서는 하나님이 ‘질투’하신다는 것을 강조한다. ‘질투하시는 하나님’은 이미 첫 번째 환상에서도 언급되었다. 바벨론이 평안하여 하나님이 없는 듯한 세상으로 보이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이스라엘을 특별히 여기신다는 것을 개념을 ‘질투’로 표현한 바 있다. 본문에서도 여호와의 개입을 강조하며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적인 관계를 확인시키는 표현으로 사용된다.
3절의 ‘돌아와’는 스가랴서의 핵심 구절인 1:3에서도 사용된 표현으로 여호와께서 결국 이스라엘을 회복시킬 것을 가리킨다. ‘예루살렘 가운데 거하리니’라는 표현은 여호와의 임재, 곧 언약의 회복을 가리킨다. 성막과 성전은 여호와가 거한다는 것을 상징하므로(출 25:22; 29:45), 예루살렘 멸망과 성전 파괴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서 떠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제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거하신다는 것은 다시 언약을 회복한다는 뜻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포로에서 돌아온 이후 여호와의 약속과 그들의 실질적인 삶이 불일치하는 쓰라린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진리의 성읍’은 이제 여호와의 약속과 그들의 실질적인 삶이 일치하게 될 것임을 가리킨다. ‘만군의 여호와의 산은 성산’이라고 일컫게 되는 것도 성전과 예루살렘이 거룩함을 온전히 회복하여 ‘성산’이라고 불리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나이 든 사람들에서 어린 사람들까지, 다시 예루살렘은 많은 사람들로 넘쳐나게 될 것이다(4~5절). 다시 말해 성전 파괴와 예루살렘 멸망으로 말미암아 황폐해졌으나 이제 하나님의 회복으로 말미암아 다시 풍요로움을 되찾게 된다는 것을 가리킨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는 6절에 덧붙여 언급함으로써 예루살렘 회복의 놀라운 역사를 재차 강조한다.
7~8절은 1~6절에서 서술한 예루살렘 회복에 대한 약속의 요약적 진술이다. 본문을 통해 예루살렘 회복의 핵심적인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 ‘해가 뜨는 땅과 해가 지는 땅에서부터’는 온 세상을 가리킨다. 이스라엘이 언약을 어기고 죄악을 범할 때 바람을 불어 그들을 흩으셨으나(7:14), 이제 온 세상에 흩어져 있는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인도하시겠다는 의미다.
특히 8절의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진리와 공의로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는 전형적인 언약 공식으로, 언약의 회복을 통해 다시 공식적으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회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진리와 공의”는 하나님의 성품으로, 하나님께서 약속한 바를 신실하게 실행한다는 것을 뜻한다. “공의”는 어떤 기준에 일치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하나님 자신이 그 기준에 부합하게 언약 백성을 보호하는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2. 이스라엘에 대한 권고(9~13절)
9~10절은 곤경에서의 권고에 해당하고, 11~13절은 권고하는 근거로 곤경에서의 회복에 대한 약속을 소개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스라엘은 불순종의 삶에서 돌아와 선지자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시작할 때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바벨론이 페르시아에게 멸망할 때도 아니었고, 포로에서 돌아올 때도 아니다.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의 말씀을 듣고 성전 지대를 쌓던 날이었다(학 2:4, 15~19). 당장 자기들이 살 집도 없었지만, 주의 전을 먼저 짓겠다고 순종했을 때다. 그런데 그런 성전 건축이 중단된 상태다. 그리고 그들의 삶의 안팎에서 회의적인 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었을 때다. 스가랴는 그런 상황에 처해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격려한다. “너희는 손을 견고히 하라(9절)”.
10절의 ‘삯’은 일에 대한 금전적 대가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보상(상급)을 의미하기도 한다(사 40:10). 본문의 사람도 짐승도 삯을 얻지 못한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겪게 될 경제적 위기를 가리킨다. “내가 모든 사람을 서로 풀어주게 하였느니라(직역, 곧 내가 모든 사람을 서로 등지게 했기 때문이다)”도 비슷한 맥락의 경제적인 위기를 가리킨다. 9~10절에서는 곤경 가운데서도 “담대하라”는 격려의 메시지를 전하면서, 11절에서는 “이제는” 이런 곤경에서 벗어나게 하겠다는 약속이 15절까지 이어진다.
이스라엘이 순종하기 시작할 때, 어떤 놀라운 변화가 시작될지를 11~12절이 말해준다. 이스라엘의 순종은 땅과 하늘이 제일 먼저 마음을 바꾼다. 사람과 짐승의 수고를 헛되게 하였던 땅과 하늘이 이제 마음을 바꾸었다. 하나님이 먼저 마음을 바꾸셨기 때문이다. 10절에서는 대적들 때문에 출입이 ‘평안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평안이 찾아온다. 율법이 약속한 대로(레 26:4), 순종한 백성들에게 땅이 풍성한 곡식을 내어놓을 것이다.
순종은 지난 날에는 ‘곡식 종자가 창고에서 끊어졌고,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었지만(학 2:19), 이제 하늘이 이슬을 내리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가득 맺히게 하실 것이다(겔 34:25~27). 이 축복은 “남은 백성”의 몫이 될 것이다. “남은 백성”은 모든 혈통적인 이스라엘이 아니라, 외식적인 금식을 버리고 진심으로 여호와께 배고픈(여호와를 갈망하는) 사람이다. 정의와 진실로 언약을 지키시는 여호와께 진실함으로 화답하는 백성들이 바로 ‘남은 자’다. 여전히 성전 짓기를 비난만 하고 조롱하는 구경꾼들과 훼방꾼들이 있지만, 그들은 이 축복에서 제외될 것이다(레 26:20).
하나님께서는 이방 가운데 저주거리였지만 구원하여 이방이 부러워하는 축복이 되게 하셨으니, 이제 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하신다. 뒤돌아 보지 말고 환상으로 보주신 그 미래를 향해 “손을 견고히 하며”나아가라고 하신다(13절). 이스라엘은 언약에 불순종하여 ‘이방인 가운데에서 저주”받았다가 하나님께서 미리 약속하신 언약대로 ‘너희가 복이 되게’한다고 약속하신다.
나는?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분이시다. 이스라엘 조상들을 바벨론에 포로로 보내셨지만, 그들을 향한 마음까지 변한 것은 아니었다. 언약을 잊어버리거나 폐기하지 않으셨다. 이스라엘만 사랑한 질투하는 사랑, 배타적인 사랑을 하셨다. 예루살렘을 회복하여 하나님이 그 가운데 거하시는 성읍이 되게 하고, 이제 예루살렘은 ‘진리의 성읍’, ‘성산’이 되게 할 것이다. 진실하고 거룩한 공동체가 되게 하실 것이다. 진리와 공의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어주실 것이다.
-진실과 거룩함으로 지금 이곳이 하나님의 사랑이 넘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 자체가 공동체의 중심, 정체성이 되어야 한다.
-아직 완성하지 못한 성전을 바라보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어떤 마음의 자세가 필요할까? 그 하나님의 마음이 담긴 표현이 “손을 견고히 하라”, “두려워하지 말라”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으면 인간의 모든 수고가 헛될 수밖에 없음을 뼈저리게 경험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순종하기 시작했을 때 자신들의 꿈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거나 외식하거나 희생시키지 않고, 하나님의 꿈을 위해 자신들의 꿈을 포기할 때 놀라운 변화가 시작된다. 하나님의 축복은 그렇게 끝까지 하나님 안에 “남은 백성”의 몫이 될 것이다.
-외식적인 금식을 버리고 진심으로 여호와로 배고픈 사람에게, 정의와 진실로 언약을 지키시는 여호와께 진실함으로 화답하는 백성에게 주어질 것이다.
-진리와 진실과 화평이 있는 공동체이어야 한다. 다시 기회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정확히 그들의 열조들이 버렸던 진리, 진실, 화평이다. 진리의 성읍이요 성산이 될 하나님의 공동체는 진실해야 한다. 진실한 재판을 통해 화평(샬롬)을 이루어야 한다. 마음에 악을 품어서는 안 된다. 거짓 맹세로 하나님을 속이고 사람에게 해를 입혀서도 안 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제사가 아니고 제물도 아니며, 흠없는 백성, 사랑의 백성, 정의로운 백성, 정직한 백성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누리는 백성의 합당한 삶이다.
*하나님의 열정은 꺼지지 않으신다. 예루살렘을 떠나셨으나 영원히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셨다. 되돌아오셔서 영광으로 머물러 계신다. 성과 산을 진리의 성읍, 거룩한 산으로 불러 주시며 관계를 회복시키신다.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놀라운 사랑을 보여 주셨고, 오늘도 여전히 죄 때문에 황폐해진 땅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이 거하시는 처소로 삼으시려고 격렬하고 열정적인 사랑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붙들고 계신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한 예루살렘 거리에 남녀 노인들과 소년 소녀들로 가득차게 해주신다. 신구세대가 절묘한 아름다움으로 조화를 이룬다. 우리 사회는 심각한 세대, 성비 불균형의 모습에 다음세대와 시대를 근심하며 바라보고 있다. 사람들의 눈에 회복이 불가능하게 보인다. 하지만 사람의 능력은 불가능하게 보일지라도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일을 이뤄주신다.
*하나님의 통치가 풍성하게 임하는 이 땅에 날마다 새로운 생명의 울음 소리와 더불어 나이 듦의 건강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건강한 축복이 우리 공동체에게 풍성하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의 성전을 짓다가 온갖 장애물과 피곤함으로 두 손을 늘어뜨린 자들에게 힘을 내어 일을 완수할 것을 촉구하신다. “손을 견고히 하라” 전에는 일을 해도 수고의 기쁨을 누리지 못했지만, 이제는 그 대가를 축복 가운데 쏟아부어주실 것을 약속하신다. 주의 일을 감당하다가 낙심했다면 이 약속을 붙들고 다시 힘을 내어야 하겠다.
*이스라엘의 저주를 복으로 바꾸신다. 주의 일에 힘을 내는 자들을 향해 하늘의 이슬을 내려주며 풍요로운 삶의 결실을 누리게 해주신다. 전에는 저주할 때 유대인처럼 되라고 하던 말을, 이제는 축복과 번영을 말할 때 속담처럼 사용할 것이다. 이 하나님의 약속이 구원받은 백성인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기 위해 힘쓰는 우리 더온누리 공동체에게 이워질 것을 믿으며 더욱 충성하여야 하겠다.
*장모님의 장례 일정을 마무리하며 “손을 견고히 하라, 두려워하지 말라”는 주님의 말씀이 큰 위로가 된다. 마치 장모님이 나에게 생생하게 들려주시는 음성처럼 메아리친다. 말씀을 끝까지 사랑하셔고, 기도의 자리를 몸이 굳어가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지키며 하나님과의 교제를 좋아하신 그 모습이 새록새록 생각이 난다. 나의 목양에서 그 모습을 감히 따라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삶으로 보여주셨다. 그렇게 나도 말씀을 더욱 사랑하고 기도의 자리를 사랑하며 주어진 삶과 사람들을 사랑하며 살아가야지…
*잘 되지 않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손을 견고히 하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담대히 떨쳐버리며” 다시, 또 다시를 외쳐야지….
*주님, 진실함과 거룩함으로 믿음을 세워 가겠습니다. 흔들릴 수 있는 믿음의 걸음에 “손을 견고히 하여”, “두워려하지 말고” 담대하게 나아가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