슥 9:1-8 하나님의 말씀이 언제나, 어디에나
스가랴 1~8장이 포로 귀환 이후 회복과 성전 재건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면, 9장부터는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의 도래, 즉 메시아의 오심과 그 나라의 확장을 강조하며 드러낸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주변 이방민족들을 심판하실 것을 예고하며, 이를 통해 예루살렘을 보호하시고 회복하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강조한다.
여호와의 말씀 심판이 아람과 두로, 시돈, 그리고 블레셋의 도시들에게 임한다. 여호와께서 조상들에게 말씀하셨던 이스라엘의 이상적인 영토를 소유하시며, 그들의 남은 자들도 하나님께 돌아와 그의 백성이 된다. 여호와께서 대적들의 공격으로부터 그의 집을 지키실 것이다.
1. 이웃 나라들에 대한 심판(1~8절)
1~8절은 이웃 나라 곧 온 민족에 대한 심판을 선포하며, 9절 이후에서 본격적인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메시지가 이어진다. 하나님은 자신의 거룩함이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온 땅에 전달되고 그런 거룩함을 닮아 거룩한 모습이 열방에게서 드러나기를 바라신다. 온 민족이 거룩함과 거리가 먼 삶을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알리지 못한 이스라엘의 책임이기도 하다. 복의 근원이 되어 전달해야 하고 제사장 나라가 되어 하나님과 연결 시키는 역할을 해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열방에 대한 심판 선언을 단순하게 이스라엘을 세워주기 위한 방편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이스라엘이 이스라엘 답지 못함으로 주변 열방이 하나님을 제대로 알아갈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다.
1~2a절은 북쪽 나라 하드락, 다메섹, 하맛에 대한 심판 선언이다. 하드락은 다메섹 북쪽에 위치한 시리아와 아람 지역의 도시다. 다메섹은 시리아의 수도이기도 하고, 페르시아 제국 시대에는 유다 지역을 다스리는 총독이 거주했던 도시다. 하맛은 시리아의 주요 도시이고 본문에서는 다메섹의 접경지대에 하맛이 위치한 것으로 소개된다. 이방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가 임했다는 것은 이 가운데 하나님의 주권이 미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2b~4절은 지중해 해안(북쪽) 두로, 시돈에 대한 선언이다. 두로와 시돈은 베니게(페니키아) 지역에서 중요한 두 도시로 나란히 등장한다. 두로는 요새를 건축하고 금과 은을 쌓으며 지혜롭게 굴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의 지혜로움은 소용 없게 되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두로는 앗수르의 강력한 공격을 두 번이나 저지할 정도로 강력한 요새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런 명성은 여호와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될 것이다(4절, 주께서 그를 정복하시며). 두로의 명성은 금과 은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것도 주님께서는 “티끌과 진흙”과 같다고 과장하여 말씀하신다.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없다. 주님은 “그를 정복하시며… 그의 권세를 바다에 쳐넣으시리니”라는 표현을 통해 두로는 틀림없이 정복당하여 무너질 것을 강조하신다.
5~8절은 블레셋 도시들에 대한 심판 선언이다. 아스글론, 가사, 아스돗, 에그론이다. 지중해 북쪽 도시들에 대한 심판 메시지와 다르게 블레셋 도시 국가들에 대한 심판 메시지는 그들이 당하는 고통의 내적인 심경을 강조한다. 두로와 시돈의 멸망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심적인 고통이 표출된 것이다. 6절의 ‘잡족’은 아스돗이 다른 민족에게 멸망당하거나 쫓겨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만’은 사람이 자랑하거나 영광을 돌리는 것을 가리킨다. 이는 모두 블레셋 도시들이 지금까지 쌓아온 영광이나, 자랑 모두를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이것들을 반드시 끊으신다.
7절은 온 민족의 심판과 더불어 구원을 동시에 알린다. 이미 8:20~23에서도 밝혔듯이 열방이 여호와 앞에 나와 예배하는 장면과 일치한다. ‘가증한 것’은 우상에 바친 제물로 본다. 이는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바친 자들이 나누어 먹음으로써 이 사이에 낀 상태를 묘사한다. ‘제거하리니’라는 표현도 블레셋에게서 가증한 것을 제거함으로써 ‘그들도 남아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그 결과를 보게 된다. 곧 블레셋도 하나님이 구원하실 것임을 뜻한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뿐 아니라 온 민족을 구원하시겠다는 종말론적 메시지에 해당한다. ‘유다의 한 지도자 같이 되겠고’라는 표현은 블레셋을 구원하는 것을 점진적으로, 그리고 최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죄와 우상을 제거하고, 남은 자를 남겨두고,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유다에 합류하여 지도자까지 되는 일을 예언한다. 이방인과 유대인의 경계가 곧 무너질 것(롬 11:17~18)이라는 의미다.
7절의 여부스 족속은 산지에 살았으며(수 11:3), 다윗이 쫓아내기 전까지는 예루살렘 성읍을 차지했었다. 나머지 여부스 족속은 유다 족속에게 흡수되어 일꾼이 되었다(대하 8:7~8). “여부스 사람 같이 되리라”라는 표현은 여부스 족속이 유다 족속이 아니었으나 그들이 이스라엘에 흡수된 것처럼 블레셋도 이와 비슷한 운명이 될 것을 시사한다.
나는?
-하나님은 심판 중에서도 보호하시는 분이다. 열국을 심판하시는 가운데서도 자기 백성은 아무도 왕래하지 못할 만큼 철통같이 지켜주실 것이다. 이것은 그들의 왕이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심으로 가능해질 것이다. 9장은 열국의 왕이실 뿐 아니라 자기 백성의 왕이 되시는 하나님, 대적을 심판하실 뿐 아니라 언약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 자기 백성을 향해서는 겸손한 왕이시며 목자이시지만 대적을 향해서는 강력한 용사이신 하나님을 동시에 우리에게 소개한다.
-나는 어떤 하나님을 기대하고 소망하는가? 이는 내가 지금 그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모시고 있는지에 달려 있다.
-심판의 도구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열국을 향한 심판은 하나님이 주도하신 심판이지만 또 다른 강대국을 사용하실 것이다. 하지만 내가 블레셋 사람의 교만을 끊겠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그것은 강대국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이다. 역사 변혁의 주체는 민중도, 영웅도, 강대국도 아니다.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시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열국은 잠시 번영과 안정을 구가했다. 하지만 이제 단숨에 그들을 멸망의 구덩이로 빠뜨릴 심판이 북쪽에서부터 남쪽으로 내려올 것이다.
-이렇게 열국이 심판을 당하는 이유는 온 열방을 향해 하나님의 통치가 임했지만, 그 주권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세상 모든 것이 여호와의 통제 아래, 다스림 아래 있는데, 앞으로 심판을 받을 나라들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교만했던 것이다. 심판은 세상 권력이 얼마나 덤불 같은지를 깨닫는 기회이자 참된 구원의 기회이다. 그들은 선민 이스라엘이 아니기에 심판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심판받았다.
*여덟 개의 환상을 통해 궁극적으로 보여주신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신다. 그 나라의 시작은 먼저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원수를 심판하시고 진멸하시는 것과 함께한다. 나와 공동체 안에 하나님이 영광으로 머물러 계시기 위해, 먼저 내 안에 남아 있는 죄와 악을 남김없이 제거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의 손길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묵상해야 하겠다.
*하나님 앞에서는 그 어떤 힘과 지혜도 사람을 구원하지 못한다. 두로와 시돈이 자랑하던 막대한 부와 강력한 도성이 그들을 보호하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소유한 부가 자기들을 보호줄 것으로 착각한다. 심판의 날에는 그 어떤 것도 우리를 보호해주지 못한다.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암암리에 스며든 세상 가치들, 하나님 없이 쌓아 올린 모든 부와 교만한 지혜를 엄히 심판하시는 이 말씀 앞에 겸손하고 또 겸손해야 하리라.
*한편 엄중한 심판의 와중에 하나님의 백성은 철저하게 지켜주신다. 경제력과 군사력이 우리의 보호막이 아니라 전능자의 그늘이 우리의 참된 요새시며 안식처임을 알아야 한다. 전능자의 그늘 아래 우리가 늘 거하고 있음을 믿음으로 누려야 하리라.
*하나님의 말씀은 이스라엘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보여주신다. “여호와의 말씀이 하드락, 다메섹, 하맛, 두로와 시돈에도”, “내리며, 머물며, 임하겠고, 임하며” 그 대상은 “아스글론, 아스돗, 에그론, 여부스”까지 이른다고 선언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무관하게 살아왔고, 나름 “매우 지혜롭고, 자기를 위해 요새를 건축하고 은을 티끌같이, 금을 거리의 진흙같이 쌓은 자”들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런 자들에게 “주께서 내리시는 정복하시”는 역사로 나타난다. 세상 어느 나라, 강대국도 망하지 않은 곳이 없다. 하나님께서 “그의 권세를 바다에 쳐넣으며, 그가 불에 삼켜지며, 소망이 수치가 되며, 임금이 끊어지고, 주민이 없게” 하시는 것으로 드러난다. 그들의 “교만을 끊으신다”. 이것이 하나님이 역사를 주관하고 말씀하시는 내용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어느곳이나 늘 있다. 그 말씀이 세상을 이끈다.
*주님, 그렇습니다. 전능하신 아버지의 그늘 아래 오늘도 살아내겠습니다.
*주님, 어느곳이나, 언제나 말씀으로 세상을 통치하고 있음을 기억하며, 말씀따라 살아가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