슥 9:9-17 평화를 가져오는 겸손의 왕
본문은 여호와의 임재라는 주제를 다룬다. 언약에 근거하여 여호와의 임재로 말미암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예언한다. 9~10절은 시온의 왕을 다루고, 11~15절은 전쟁 승리를 통한 화평함을, 16~17절은 소산물의 축복을 통한 땅의 화평을 이야기한다.
9~14장은 “여호와의 날(그 날에)”이라는 주제가 강화된다. 여호와의 날은 전형적으로 여호와께서 임하셔서 심판과 회복을 이루시는 날이다. 9장도 마찬가지인데, 여호와의 임재라는 주제로 시종일관 이어진다. 여호와의 심판은 온전한 여호와의 임재가 실현되게 하는 준비과정이다. 1~8절을 통해 여호와의 임재를 준비하고, 9~17절을 통해 여호와의 임재로 이루어질 일들을 예언한다.
1. 왕을 통한 여호와의 임재(9~10절)
스가랴서는 학개서와 함께 성전 재건이라는 주제를 다룬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성전 재건이 옛 유대교의 부활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언약을 재확립하는 기초로서의 성전 재건이다. 성전은 이스라엘에서 단순히 종교 활동의 영역만이 아니다. 여호와가 이스라엘의 중심이 되는 것을 상징한다. 따라서 성전 재건은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중심으로 하는 신앙생활을 회복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바벨론에 의한 성전 파괴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떠났다는 것을 상징한다. 즉 언약에 불충실함에 대한 저주가 이루어진 셈이다. 그러나 성전 파괴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완전한 관계적 단절이 이루어졌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에게 혹독한 포로기의 시련은 다시 하나님과의 더 깊은 관계로 나아가는 계기가 된다. 성전 재건은 이스라엘과 여호와의 내적 관계가 외적 형식으로 드러난 것을 상징적이고 가시적으로 보여준다.
9절의 ‘시온과 예루살렘”은 바벨론 이후 폐허가 되었던 시온이자 예루살렘, 곧 여호와가 떠나셨던 예루살렘이 다시 여호와의 임재로 활기를 띠는 것을 보여준다. 9절의 ‘왕’은 여호와의 임재를 대변하는 왕이지만, 궁극적으로 메시아적 인물이다. 다윗 언약(삼하 7장)에 따라 다윗의 혈통으로 올 왕을 가리킨다. 9절은 이 왕을 묘사하고 이어서 예루살렘에 올 왕이 행할 일들을 기록한다. 초반 내용은 전쟁이 그칠 것을 묘사하지만, 이는 겸손하게 올 왕의 이미지와 조화를 이룬다.
10절에서 ‘에브라임’은 예루살렘이 유다를 대표하듯 북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지파이며, 이스라엘을 대신해서 사용되기도 했다. ‘에브라임의 병거’를 언급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북이스라엘과 암유다의 통일을 의미한다. 이는 불화없는 온전한 평화의 상태를 가리킨다. 전쟁을 일으키는 왕이 아니라 겸손하게 세상에 화평을 가져다주는 왕이다. 그 왕의 통치는 세상 곳곳에 미칠 것이다. 이 화평은 이방 사람에게도 전해질 것이라고 하는데, 이는 이미 스가랴서에서 자주 반복된 주제다.
9~14장에서는 여호와의 날에 이루어질 종말론적인 일들을 묘사할 때 온 민족이 나오는 것으로 강조된다(14:17). ‘바다에서 바다까지’와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라는 표현은 광범위한 지역을 포괄하는 의미로 사용됐다(미 7:11~12). 이는 통치의 범위가 온 지역에 미친다는 것을 강조한다.
2. 시온의 회복_승리를 통한 화평(11~15절)
언약적인 축복에서 언약에 순종할 때 얻게 되는 전쟁의 승리는 빈번하게 등장하는 주제 중 하나다(레 26장, 신 28장). 여기서 전쟁에서의 승리는 곧 하나님이 친히 싸워 이스라엘에게 화평을 가져다준다는 것은 언약의 회복이라는 관점으로 이해해야 한다.
11절의 ‘네 언약의 피로 말미암아’라는 표현은 시온의 왕을 통한 회복이 하나님과의 언약에 근거한 것임을 보여준다. ‘물 없는 구덩이’는 물이 있는 구덩이에 비해 위험한 상황에 처하나, 일말의 희망을 갖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포로기를 거치고, 성전 재건이 중단될 정도로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였음에도 이스라엘에게는 아직도 실낱같은 희망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즉, 하나님의 언약적인 저주는 최종적인 멸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돈독하게 하려는 데 최종적인 의도를 둔다.
‘구덩이’가 이스라엘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비유하는 것처럼, 12절의 ‘요새’는 여호와가 마련하는 피난처를 가리킨다. 곧 여호와께로 돌아오라는 의미다. 13절의 ‘유다를 당긴 활로 삼고 에브라임을 끼운 화살로’삼는다는 표현은 유다와 에브라임(북이스라엘을 대표)을 무기로 삼는다는 비유다. 유다와 에브라임이 스스로 전쟁을 치르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가 이들을 무기로 삼는다고 강조한다. 그러므로 여호와는 현재 어려움에 처한 이스라엘을 그들의 힘으로가 아니라 여호와의 힘으로 회복하실 것이라 약속하신다.
14~15절은 여호와의 임재로 인해 전쟁에서 승리하고 그로부터 얻은 기쁨을 묘사한다. 특히 ‘주 여호와께서 나팔을 불게 하시며’라는 표현은 철저하게 여호와의 주권 아래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질 것을 의미한다. ‘회오리바람’은 여호와의 개입으로 파멸이 일어난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나타낸다(사 29:6; 렘 30:23). ‘물맷돌’을 밝는다는 표현은 적의 무기를 무력화해 철저하게 정복할 것을 가리킨다. 15절의 ‘동이와도 같고 … 제단 모퉁이와도 같을 것이라’라는 표현은 제사장이 바칠 희생 제물로 인해 피가 가득할 것을 묘사한다. 이 역시 전쟁의 승리로 인한 결과를 묘사한다고 할 수 있다. “동이(미즈라크)”로 번역된 단어는 일반적인 용기를 뜻하기도 하지만, 보통은 희생 제의에 사용되는 용기를 가리킨다(왕상 7:40에서는 여호와의 전에서 사용하는 기구 가운데 하나인 ‘물두멍’을 가리킨다). 본문은 ‘제단 모퉁이’와 병행구로 사용되므로 더더욱 희생 제의에서 사용되는 ‘동이’임을 알 수 있다. 제단 모퉁이에서 제사장이 희생 제물의 피를 뿌린다. 그러므로 ‘동이’에 담은 피를 ‘제단 모퉁이’에 뿌리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3. 시온의 회복_땅의 화평(16~17절)
언약에 순종할 때 언약적인 축복으로 소산물의 풍요로움을 얻게 된다는 것도 자주 등장하는 주제 중 하나다(레 26장; 신 28장). 여기서도 소산물의 축복을 언약 회복의 신호로 보아야 할 것이다. 16절의 ‘그 날에’는 특히 스가랴서에서 자주 나오는 표현으로, 여호와께서 궁극적으로 임재하실 “여호와의 날”을 가리킨다.
특히 12~14장에서는 더욱 빈번하게 이 표현이 나오며, 미래적 관점에서 여호와의 날을 강조하면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권고한다. 17절의 ‘곡식’과 ‘새 포도주’는 땅의 대표적인 소산물을 가리킨다. 본문에서도 소산물의 풍요로움이 사람들에게까지 미치는 것을 표현한다.
나는?
-평화를 가져올 겸손한 왕은 누구인가? 예루살렘을 안전하게 지키시는 그 구원자가 누구인가? 그는 나귀를 타고 오시는 평화의 왕이요, 구원을 베푸시는 분이시며, 공의롭고 겸손한 왕이시다. 영원히 안전하고 평화로운 나라를 만들 왕이라면 강력한 통치자여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왕은 이 세상을 무력으로 조용하게 한(1:11) 열국의 왕들과 다르다. 교만한 블레셋 왕과도 다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겠다고 했을 때 실망했던 제자들처럼, 스가랴 시대의 사람들이 기대하던 강력한 정치, 군사 지도자의 모습은 아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새 이스라엘의 왕은 “겸손한 왕”이요, 힘을 남용하지 않는 ‘공의로운 왕’이다. 그 왕이 세상을 섬기고 사랑하여 평화를 가져다 줄 것이다.
-여호와의 귀환, 그리고 평화의 왕의 오심은 죽은 자에게는 생명을, 갇힌 자에게는 해방을 의미했다. 그것은 값없이 주는 은혜요, 용서다. 따라서 깨어진 관계의 회복을 가져올 사건이 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피로 맺은 언약을 기필코 이루시는 신실하심의 표현이 될 것이다(11~12절). 그렇게 돌아온 자들로 세워진 새 이스라엘, 하나님 나라, 교회를 왜 포악한 자가 다시는 죄의 종으로, 악의 종으로 삼지 못하는가?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용사가 되어 자기 백성을 위해 대적과 싸우실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친히 목자가 되어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고, 또 그들에게 형통한 복을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대적을 향해 친히 용사가 되어 자기 백성을 호위하시고 강건한 무기로 사용하시지만, 자기 백성을 행해서는 자상한 목자가 되어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목자이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물 없는 웅덩이에서 건져주실 것이다. 양들을 위해 목숨을 내주신 선한 목자 예수님의 모습을 미리 예견하고 있다. 자기 양들을 회복하여 ‘왕관의 보석 같이 여호와의 땅에 빛나게’ 하실 것이다.
-겸손하고 공의로우신 평화의 왕이 다스리는 나라는 한창 성장할 나이의 소년과 소녀가 곡식과 새 포도주로 강건해지듯이 더욱 강건해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크게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권리와 이유를 주신다(9~10절). 그것은 하나님이 친히 자기 백성에게 한 왕을 세워주셔서 구원을 베푸시기 때문이다. 그 왕은 사람이 세운 이 세상 왕과 달라서, 하나님의 의로우심으로 자기 백성에게 자유를 주시며, 겸손하심으로 우리 고통을 깊이 체휼해주시며, 참 평화를 가져다주시는 평강의 왕이시다.
*마태는 그 왕이 오늘 우리에게 오셨다고 선언한다(마 21:1~5). 이것만으로도 하나님 나라 백성이 기뻐하고 또 기뻐할 수 있다. 사방으로 압박당하는 고통을 겪고 있더라도, 우리 안에 이 왕을 모시고 있다는 사실에서 어떤 위로보다 큰 위로(고후 4:8)를 누려야 하리라.
*한번 언약을 맺은 백성을 결코 잊지 않으시고 끝까지 구원해주신다(11~12절).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이스라엘과 맺은(출 24:4~8) 그 언약을 지키시려고 포로 생활의 절망에 빠진 백성들을 건져내시어, 하나님이 친히 성곽이 되어 지켜주시는 강한 요새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신다.
*짐승의 피로 맺은 옛 언약 백성도 이처럼 보호해주시는 하나님이,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맺은 새 언약 백성인 교회를 지키시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소망을 잃지 말아야 한다. 지금은 이 세상에서 포로된 것처럼 답답할지라도, 반드시 영광으로 구원에 이를 소망을 품은 이들이 바로 하나님 나라 백성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승리를 가져다주시는 전사이시다. 양 떼처럼 평안으로 인도하시는 목자가 되어주신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거룩한 전사로 부르셔서 대적들에 대하여 최종적이고 완전한 승리를 얻게 하신다. 뿐만 아니라 거룩한 땅에서 풍요로운 양 떼같이 이끄심으로 평화와 번영을 누리게 하신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자들은 발 밑에 밟힌 물매 돌처럼 되지 않고, 왕관의 보석들처럼 영원히 빛날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이토록 영광스러운 번영이 온 세상에 임하도록, 교회 공동체가 하나님의 손에 들린 좋은 무기가 되어 세상을 이기게 해달라고 간청하며 나아가야 한다.
*어제가 광복 80주년이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재명 대통령의 ‘평화 공존의 시대’를 함께 열자고 북에게 던진 말이었다. 남과 북으로 나뉘어 80년이 흐른 지금 적대와 증오를 거두고 평화와 상생을 주문하는 메시지가 오늘 묵상 본문과 묘하게 겹친다. 바벨론에서 돌아온 유다 백성은 성전을 재건하지만, 그보다 전에 앗수르에게 망해 흩어진 북이스라엘(에브라임) 백성의 귀환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북이스라엘(에브라임)을 포기하지 않으셨다. 유다 백성들은 잊고 있었어도 하나님께서는 에브라임(북이스라엘)의 귀환을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은 온전한 귀환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지금 대한민국의 상황과 묘하게 겹치지 않는가? 현 세대는 통일에 무관심이다. 오히려 적대적이라고해도 무방하다. 그런데 지금의 지도자는 통일의 가치를 넘어서 평화와 상생의 가치를 부르짖었다. 잊고 있었던 가치의 불씨를 되살리고 있다. 광복 80주년인데, 진정한 제2의 광복을 꿈꾸게 했다.
*세상은 더 높은 자리, 더 강한 힘, 더 많은 소유를 성공의 척도로 삼는다. 하지만 우리의 왕 예수 그리스도는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오셨다. 하나님 나라 백성은 세상처럼 더 높아지고, 더 강해지고, 더 많이 소유하려고 하지 않고 더 낮아지신 예수님을 닮아가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무기부터 내려놓게 하신다(10절). 진정한 평화는 외부의 적을 제압하는 것부터가 아니라 자기 백성의 무기부터 없앤다는 것이다. 내부의 공격성을 먼저 내려놓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평화를 추구한다면 먼저 평화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여전히 힘의 논리, 돈의 논리로 문제를 해결하고 삶의 방식을 정하려고만 한다면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과 무관하다. 평화를 세우는 힘은 칼을 휘두르는 힘이 아니라 먼저 내 칼을 내려놓는 힘이다. 내가 내려놓아야 할 칼(병거와 활)은 무엇일까?
*내가 칼을 내려놓으면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번개 같은 화살을 쏘시며 싸우신다. 하나님이 용사되어 자기 백성을 지켜주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싸우시고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항상 이기게 하시는 분이시다(고후 2:14).
*주님, 평화의 왕, 겸손의 왕, 공의로운 왕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
*주님, 이 땅 위에 진정한 통치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온전하게 승리하며 나아가게 하실 줄 믿습니다.
*주님, 나의 무기를 내려놓고 주님께서 나를 위해 싸우시는 것을 신뢰하겠습니다. 내가 싸우려하기보다 주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을 신뢰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