슥 12:1-14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
12~14장은 여호와의 날을 본격적으로 소개한다. 본 장의 1~9절에서 여호와의 날은 무엇보다 하나님 백성이 구원받는 날임을 선포한다. 특히 4~8절은 여호와의 날이 애통의 날로 소개된다. 즉, 여호와의 날은 무조건적인 구원의 날이 아닌 애통함으로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가 회복되는 날이다.
1. 구원의 날(예루살렘의 구원, 1~9절)
여호와의 날이 구원의 날인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여호와의 날을 단지 구원만으로 설명할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는 출애굽의 구원이 더 큰 목적을 이루기 위한 첫걸음인 것과 마찬가지다. 출애굽을 시작으로 이스라엘은 가나안 정착, 온전한 하나님 나라의 성장을 향해 나아갔다.
1절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소개다. 예루살렘이 에워싸는 상황과(2절), 천하 만국이 예루살렘을 치기 위해 모여드는(3절) 상황에서 지도자와 예루살렘 주민들의 공고한 단결(5절)과 여호와가 어떤 하나님인가에 대한 인식은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확신은 닥쳐오는 어려움과 고통 가운데서 그를 의지하고 승리를 확신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세상과 사람을 창조하신 분이시고,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약속하신 분이시다.
2~4절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강하게 하여 승리하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2절의 ‘취하게 하는 잔’은 심판의 잔을 의미하고(사 51:22~23), 예루살렘이 취하게 하는 잔이 된다는 것은 3절의 ‘무거운 돌’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말미암아 공격하는 나라들이 비틀거리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돌의 무게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들어 올리려 했지만, 오히려 그가 돌의 무게에 짓눌려 상하게 될 것이다.
5~6절은 지도자와 예루살렘 주민의 협력으로 승리를 얻게 되는 것을 말한다. 11장에서 언급된 것처럼 목자와 양 떼의 갈등속에서 목자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여 양떼들이 피해를 보는 상황과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7절은 유다 장막이 우선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을 예언한다.유다 장막, 다윗의 집, 예루살렘 주민은 유다 지도자들과 예루살렘 성안에 산다는 이유로 더 안전하다고 느끼는 특권 의식을 지닌 계층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유다 장막은 일반 백성을 의미하며 이들을 먼저 구원하겠다는 것은 지도자와 특권 계층 사람들보다 일반 백성을 우선시하겠다는 의미다.
8절의 “다윗과 같겠고”라는 표현은 다윗의 통치 시기와 같이 강한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다윗이 통치하던 시기는 전례 없는 군사적 승리와 더할 나위 없는 안정을 구가했다. 이스라엘을 둘러싸고 있던 대적들은 자취를 감추었고, 이스라엘은 국가로서의 든든한 기반을 다지게 되었다. 유례 없는 경제적 풍요로움으로 백성들의 삶의 질은 높아져 갔다.
9절에서는 예루살렘의 철저한 승리와 이스라엘의 구원이 약속된다. “그 날에” 이뤄질 예루살렘 구원의 완전성을 강조함과 동시에 단락을 매듭짓는 역할을 한다.
2. 애통의 날(10~14절)
여호와의 날은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회복에 초점을 두는 날이다. 그러므로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그의 백성은 정결하고 거룩해져야 한다.
10절의 애통은 개인에 대한 애통이라기 보다 하나님의 심판과 관련된 애통을 가리킨다. 이 애통은 11절에서도 반복되고 12~14절에서도 중요한 화두로 등장한다. 13:1~6의 회개 주제와 깊게 연관되어 발전해 나간다. ‘독자를 위하여, 장자를 위하여’라는 표현은 소중히 여기는 자들을 잃은 슬픔을 통해 애통의 깊이를 강조한다.
11절의 “하다드림몬”은 므깃도 골짜기의 구체적인 지명으로 이곳에서 유다 왕 요시야의 죽음을 애도했다(대하 35:20~27). 특히 대하 35:25에서 예레미야는 그의 죽음을 위해 애가를 짓고 대대적으로 애통하며 그에 대한 기억이 오래 전해진 것이 기록되었다. 이런 맥락을 통하여 스가랴가 “기억할 만한” 애통을 예로 든 것으로 여겨진다.
12~14절은 예루살렘 거주자뿐 아니라 온 땅의 사람들이 애통에 참여하게 되는 것을 강조한다. 온 땅이 구원을 받기 전(14:10, 16),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애통하고 회개하며 정결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12절의 나단은 선지자가 아닌 다윗의 아들을 가리킨다(삼하 5:14). 그리고 시므이는 레위의 자손이다(출 6:17 민 3:21). 따라서 여러 족속을 언급하는 듯하지만, 실상은 다윗과 레위 족속, 그리고 거기에 속한 몇몇 족속을 언급한 것이다.
나는?
-하나님은 위대하신 창조주이시다(1절). 하늘과 땅을 세우고 사람 안에 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호흡을 주시고 모든 나라와 경계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정하시고 보존해 가신다. 우리가 삶의 한 부분으로 이루며 살아가는 교회공동체도 이와같아야 하지 않을까?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그 능하신 손으로 다루고 계심을 신뢰하며 찬양해야 하리라.
-하나님의 백성에게 힘의 근원이 되어주신다. 예루살렘을 에워싼 대적들은 예루살렘을 쳐서 자기 소유로 삼으려고 했으나 하나님이 그들을 멸하셔서 예루살렘에 승리를 주셨다. 사방으로 에워싸여 고통당하는 자기 백성에게 눈을 떼지 않으시며 그들을 괴롭히는 대적의 눈을 멀게 하셔서 구원을 베풀어 주신 것이다.
-어느 시대이든 주의 백성을 삼키려는 악한 세력은 존재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하나님의 눈’이 우리를 지켜보시는 한 승리는 영원히 우리 것이다.
-연약한 유다에게 먼저 승리를 주셔서 좀 더 강한 예루살렘을 겸손케 하신다. 또한 하나님의 구원하심이 모든 사람에게 임할 수 있게 하신다. 세상에서 아무리 미약하고 비천한 자일지라도 하나님의 구원을 입으면, 다윗과 하나님의 천사처럼 강해질 수 있다. 누구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려고, 지금도 약한 자들과 없는 자들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잊지 말아야 하겠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은총과 자비를 구하는 영을 부어주셔서 저마다 하나님 앞에서 회개케 하신다. 하나님이 회개하는 영을 부어주실 때 사람들은 비로소 자기들 안에 있는 죄를 보고 하나님의 자비와 은총을 구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찔러 죽인 이를 바라보며 한없이 애통하며 애곡한다. 자기들이 죽인 자가 실은 하나님이 보내신 자였으며, 자기들의 행동은 하나님을 대적한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모습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그대로 성취되었다(요 19:37). 그러나 주님은 자신을 죽인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용서해 주셨다.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나 때문에 죽으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죄를 회개해야 한다.
*역사의 주관자이자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때가 되면 이 작은 도시 예루살렘을 열방 앞에 ‘취하게 하는 잔’과 ‘무거운 돌’이 되게 하실 것이다. 사면의 모든 민족이 손쉽게 예루살렘을 삼키겠지만, 곧 그들은 독주에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고 정신을 잃을 것이다. 서로 겨루듯 누가 더 예루살렘을 빨리 먹느냐, 누가 더 잔인하게 유린하느냐를 겨루던 열국이 무거운 돌을 들다가 그 돌에 깔린 사람처럼 혼쭐이 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일어날 일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의 전능함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어떻게 예루살렘이 그토록 강해졌을까? 하나님께서 아무도 예루살렘을 이기지 못하게 하실 것이다. 대적들의 모든 말과 그 말을 탄 자를 치실 것이며, 자기 백성 유다를 지키실 것이다. 누구든지 그것이 만군의 여호와의 역사인 것을 알아볼 만큼 기적적인 승리를 주실 것이다. 그리고 그 날이 되면 하나님은 그렇게 여호와의 능력을 고백하는 그 유다의 지도자들을 통해서 열국을 심판하실 것이다.
*놀랍게도 성전이 있고 성곽이 있고 왕의 궁전이 있는 예루살렘보다 변변치 않은 성곽도 없고 늘 외침에 취약한 유다를 먼저 회복시키시고, 더 영광스럽게 하신다. 이를 통해 다윗 왕국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적인 나라를 재건하려는 꿈을 아예 싹부터 자르고 계신다. 그 나라는 약한 자를 먼저 사랑해주시는 “은혜의 나라”가 될 것이다.
*약하고 겸손한 자가 일어나고, 강하고 오만한 자가 무너지는 나라가 될 것이다.
*예루살렘은 애통할 것이다. 이것은 자신들이 하나님께 행한 일을 생각하여 회개하는 애통이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애통은 온 땅으로 퍼질 것이다. 형식적이고 거짓된 돌아옴이 아니라 장자를 잃은 슬픔으로 애통할 것이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다 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백성이 될 것이다.
*성전 자체가 회개를 보장하거나 용서를 보장하지 못한다. 애통의 마음, 상한 심령을 주님은 제물로 받으시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역사 속 예루살렘도 다른 도시와 다름 없이 흥망성쇠를 거듭했다. 한때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보인 성이었지만, 속절없이 파괴되는 것을 보는 유다 백성은 절망했다. 하지만 마지막 종말론적인 전쟁의 때에 예루살렘은 “취하게 하는 잔, 무거운 돌”이 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즉, 누구든지 예루살렘을 도발하고 시비할수록 오히려 당하게 될 것이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을 보호하시는 이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오늘날 교회를 하나님께서 이렇게 함께 하시며 지키신다. 성도가 강해서가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기 때문이다. 전능하신 주님을 몸과 마음으로 진심으로 의지하며 나아갈 때 세상은 교회를 앝잡아 보지 못한다. 지금 교회에 이런 야성서린 영성이 필요하다.
*더온누리공동체를 섬기는 전체 교역자가 워크샵중이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주시는 이 말씀이 특별하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며 충직하게 공동체를 섬기며 나아갈 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더온누리공동체를 세상이 결코 쉽게 여기지 못하도록 지켜주실 것이다. 내가 먼저 하나님께 집중하고 신뢰의 걸음으로 나아갈 때 세상은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쉽게 여기지 못한다. 어느 누구도 얕잡아 보지 못한다.
*우리는 연약하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강하시다. 전능하시다!
*주님,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이 얼마나 큰 힘과 능력이 되는지 깨닫습니다. 늘 주님과 함께 하는 은혜안에 있겠습니다.
*주님, 측량할 수 없는 은혜 안에 있기에 담대하게 믿음의 걸음 걷겠습니다.
*주님, 전능하신 은혜 아래 있음을 잊지 않고 담대하게 믿음의 걸음을 걷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