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하나님은 기필코 지키심, 어떤 상황이라도! [시 120,121]
 – 2025년 08월 23일
– 2025년 08월 23일 –

시편 120-121편 하나님은 기필코 지키심, 어떤 상황이라도!

두 시편은 순례자가 예루살렘을 향해 가는 길에서 부르는 노래다. 120편은 원수들의 비방으로 인한 마음의 고통과 절망감을 솔직하게 표현하며, 평화를 원하지만 원수들로 인해 낙심하는 시인이 그럴수록 더 간절히 하나님을 찾는 모습을 보여준다. 121편은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여호와”가 중심 주제다. 지켜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의 고백들로 채워져 있다.

유대 전승은 120~136편까지를 “위대한 찬양시”로 부른다. 이 중에서 120~134편까지 15편이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표제를 가지고 있다. 문자적으로는 “올라가는 노래”로 이해할 수 있다. 흔히 “순례자들의 노래”로 불리는데, ‘미쉬나(유대인의 해석 전승)’에 의하면 이 시편들을 레위 사람들이 성전 계단에서 서서 불렀다고 전한다. 또 단수와 복수형이 자주 교차하는 점을 들어 이스라엘 주요 절기마다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는 길에 부른 노래로 간주한다.

 

1. 120편_부르짖음에 응답하시는 하나님(1~7절)
1~2절은 구원을 청하는 기도다. 시인이 환난 중에 부르짖었더니 내게 응답하셨다고 고백(1절)하며 시작한다. 그의 환난이 어떤 것인지는 불분명하나, “여호와여 나의 생명을 구출하십시오”라는 표현을 볼 때 매우 긴박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긴박한 상황을 알 수 있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거짓된 입술로부터, 속이는 혀로부터”라고 명시한다. 이런 표현이 어떤 특정인을 가리키는 것인지, 전반적인 사회 현상인지도 불분명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런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는 자는 대체로 사기꾼이나 사람을 기만하는 악인들이다. 혹, 생명의 위협을 가할 정도의 거짓과 모함이라면 사회적 지위가 높은 자이거나 집단일 가능성도 있다. 시인은 이런 악한 세력들의 위협으로부터 피하기 위해 하나님의 돌보심을 구한다.

3~4절은 간절하고 긴박하게 구원을 요청하기는 하나, 뒤로 물러서지 않고 속이는 자들에게 당당히 말한다. “너에게 무엇을 줄까, 무엇을 더할까, 속이는 혀여(3절)” 이런 외침이 직접적인 대응을 하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그는 강한 무기라도 얻은 듯 단호하게 외쳤다. 4절의 “용사의 날카로운 화살과 로뎀 나무 숯불”이라는 간결한 외침은 하나님의 심판 예고를 뜻한다. 능숙한 무사가 현란한 기술로 쏘는 화살과 로뎀나무(새번역은 싸리 나무) 숯불로 모조리 태우듯이 하나님이 벌하실 것을 확신한다. “로뎀 나무”는 가느다란 가지를 가졌으나 단단하여 매우 오래 타고, 잎이 많아 순식간에 불이 붙지만, 오랫동안 활활 타는 나무다. 하나님의 심판을 순식간에 타올라 오래 타는 불의 이미지로 드러내며 심판의 확실성을 강조한다.

5~7절에서 시인은 악인들의 심판을 확신하지만, 탄식을 멈추지 못한다. 왜냐하면 시인은 메섹에 잠시 체류하면서 게달의 장막에 거주하고 있기 때문이다(5절). 즉, 현재 나그네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정착하지 못한 채 이곳 저곳을 떠돈다. 당시 메섹은 흑해 남서쪽 산지로서(창 10:2; 겔 38:2), 현재 튀르키예 지역에 해당한다. 게델은 이집트와 에돔 사이를 떠도는 유목민들을 가리킨다(사 21:16~17). 시인이 이들 사이에 체류한다는 것은 성전과 매우 먼 거리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타국에 머물며 예루살렘을 향하는 순례의 여정에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한편 “체류하고 있다”는 것과 달리 평화를 미워하는 자들과 함께 “오래 거주했다”는(6절) 표현에는 체류(물리적인 시간)는 여행자처럼 잠시 머무는 것이지만, 오래 거주했다(심리적 시간)는 말에서 시인의 괴로움의 지점이 어느 지점인지 짐작하게 한다.
나그네의 삶이 호락호락하지 않지만, 평화 그 자체로서 평화의 제물이 되겠다는 강렬한 의지가 엿볼 수 있다.

 

2. 121편_도우시고, 지키시는 여호와(1~8절)
1~2절에서 산을 향해 눈을 들지만,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1절)라는 시인의 탄식으로부터 시가 출발한다. 시인이 왜 산을 바라보며 도움을 바라는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올라가는 노래’라는 표제는 성전을 향한 순례의 길에서 여러 위험과 위협을 염려하는 솔직한 독백이다. 시인은 염려하고 긴장하지만, ‘그 산을 향해’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듯 시온에 있는 산을 최종 목적지로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내가 내 눈을 든다’는 두려움보다는 기다림과 그리움을 상상하게 한다. 시인은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로부터 라고 선언적인 고백을 한다(2절). 시인이 고대하며 기대하는 도움의 주체는 우주를 만드신 하나님이시다. 언약의 이름 여호와의 도움을 절대 신뢰한다.

3~6절은 인칭의 변화가 주목된다. “나에서 너로”바뀐다. 그리고 너를 지키신다를 반복하여 강조한다. “지키다(샤마르)”라는 동사가 마지막 시행까지 여섯 번 반복된다. 어떤 불확실한 상황과 위협이 닥쳐온다 하더라도 안전함을 굳게 약속하시는 것이다. 어떻게 구체적으로 약속하시는가? 먼저 여호와는 실족하지 않게 하시고 졸지 않으신다(3절). 이 표현은 시온 곧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길이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든 언약의 하나님 여호와의 두터운 보호를 확신하는 축복이다. ‘너를 지키시는 분’은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분’이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분은 꾸벅꾸벅졸지도 않거니와 깊은 잠에 빠지지 않는다(4절). 이와같은 표현은 당시 고대 근동 지역의 신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여호와 하나님의 인간다움과 위대함을 동시에 표현한 것이다.

시인은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분’ 을 반복하며, ‘오른편의 그늘, 낮의 해도 밤의 달도 상하지 않게 하신다’라는 표현을 통해 출애굽 당시 구원의 상황을 상기시키며 그때의 하나님이 지금도 이처럼 지켜주고 있음을 강조한다.

7~8절에서는 여호와는 모든 환난에서 ‘너를 지키시는 분’이라고 노래한다. 그가 영혼을 지키시고(7절), (다른 익명의 누군가가) 그대의 들어가고 나옴을 비롯하여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실 것이라고 응답한다(8절). 집을 떠나 어디로 가든 길 떠나는 그대와 함께하시며 지키시고 보호하실 하나님을 노래한다.

 

나는?
-시인을 괴롭히는 대적의 무기는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였다. 샬롬을 미워하고 싸우기를 좋아하는 자들 가운데서 시인은 나그네와 같이 고독하고 고통스러웠다. 거짓말은 삶을 뒤집고, 속임수는 삶을 갉아 먹는다. 오랜시간 성실하고 진실하게 살아온 삶의 이야기를 왜곡하고 비튼다. 세상이 하나님 나라 백성을 상대하는 태도다. 믿음으로 사는 하나님 나라 백성은 이런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않고 고난에 직면하는 순간에라도 기쁨으로 씨를 뿌리는 법을 배워가며 살아내야 한다.

-험난한 광야의 산들을 바라볼 때 시인의 입에서는 탄식이 쏟아져 나오지만, 그 산을 지으신 여호와를 바라보니 평강과 안전을 확신한다. 우리 공동체의 삶도 많은 산들을 넘고 광야를 지날 것이다. 눈을 들어 그 산과 광야를 바라보지 말고 그 위에 계신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보겠다.

-하나님은 항상 나를 지켜주신다. 모든 환난에서 지켜 주신다. 낮이든 밤이든 하나님의 백성은 안전하다. 자기 백성의 아우성에 아무 응답도 할 수 없는 우상과 달리(왕상 18:27),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앞 길을 미리 예비하시고 앞서 인도하시며 곁에서 동행하여 주신다. 하나님께서 나의 그늘이 되어 주신다. “언제까지나” 지켜 주실 것이다. 예루살렘을 떠나 고향에 도착하는 그 순간까지는 물론이고, 영원까지 지켜 주신다.

*하나님은 지키시는 자, 지켜 주시는 자다.

*하나님은 곤경에 빠진 자들의 기도에 응답하신다. 근심 중에 부르짖 자의 기도를 들으시고, 구원해 주신다. 어찌보면 곤경이 있기에 기도하게 되는지 모른다. 하나님이 요나를 깊은 바다도에 던지셨을 때 그는 부르짖으며 구원의 하나님을 경험했다(욘 2:3, 9). 이와같은 말씀은 지금 내가 곤경에 처해있다면 이는 기도하라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기회라는 의미다. 기도해야 산다.

*곤경에 빠뜨리는 사람들을 대적하며 죄를 짓지 말고 하나님 앞에 기도의 자리와 내용으로 데려가자(욥 31:30; 시 109:4; 마 5:44). 기도하라는 기회를 붙잡아야 한다.

*하나님 백성들을 거짓된 입술과 사악한 혀에서 건져 주신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악한 목적으로 그 입술과 혀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장사의 날카로운 화살”과 로뎀나무 숯불”을 받게 하셔서 자기들이 행한 악을 고스란히 받게 하신다.

*세상은 끊임없이 경쟁과 다툼을 부추긴다. 그 속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은 어떻게 평화를 이루며 살 수 있을까? 세상 방식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고통속에서 인내함으로 평화의 길을 지키며 살아야 한다. 불의가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는 유혹에 넘어가지 말고 모드 것을 아시고 마침내 정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묵묵히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마침내 하나님이 의로움을 드러내실 때, 이 길을 걷는 이들에게 찬란한 하늘 영광이 기다린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보호하시기 위해 행동하신다. 121편의 짧은 구절에 “지키시다”라는 동사가 무려 6회씩 등장한다. 인간의 도움이 철저하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보여준다. 우리 걸어가는 인생의 길에 때로는 “산, 비틀거리는 발, 낮의 해, 밤의 달”이 있지만, 나를 눈동자처럼 지켜 보호하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잊지 않아야 하리라.

*121편 내용 중에 성도 개인에 대해 언급하는 “내가, 나의”라는 표현을 통해 천지를 창조하시고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하나님은 각 사람의 하나님이심을 선언하신다.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고백의 중요성이 새삼 결연하게 다가온다.

*우리는 수많은 염려와 불안 속에서 살아간다. 건강, 재정, 자녀, 미래에 대한 걱정은 밤잠을 설치게도 한다. 하지만 하나님 백성이 그런 세상 속 삶에서도 평안할 수 있는 이유를 분명하게 알려준다. 나를 지키시는 하나님께서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기 때문이다. 이 진리를 신뢰할 때 삶의 여러 문제들을 하나님께 맡기고 평안을 누릴 수 있다. 나의 힘이 염려와 불안을 해결하지 못한다. 나의 모든 출입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손길이 우리를 지키신다.

 


*주님, 세상 방식에 순응하지 않고 하나님의 진리에 반응하며 믿음으로 살아내겠습니다.
*주님, 어떤 상황에서든 나를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기에 나의 영혼이 평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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