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32-134편 하나님, 이웃과 연합하고 향기로운 공동체를 꿈꾸다
시편 132편은 다윗이 법궤를 끈질긴 수고 끝에 예루살렘에 안착하고 왕과 제사장과 백성이 감격하며 찬양하는 모습을 묘사한다. 하나님은 다윗과 언약을 맺고 그와 그 후손이 하나님께 순종하면 그들에게 영원한 왕권을 주겠다고 약속하신다. 다윗의 성 시온을 하나님의 거주지로 삼고 그곳에서 다윗과 백성을 다스릴 것을 선언하신다. 133편은 형제들이 하나가 되어 거주하는 모습이 얼마나 선하고, 즐거운 일인지를 노래한다. 가족과 사회 공동체 간의 관계, 개인과 하나님 간의 관계에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한다. 134편은 밤에 예루살렘 성전에 모인 제사장과 무리가 하나님을 송축한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마땅히 그를 송축하므로,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축복으로 응답하실 것이다.
1. 시편 132편
1~9절은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하는 다윗의 모습을 볼 수 있다. 1절은 ‘여호와여 다윗을 위하여 그의 모든 겸손을 기억하소서’로 시작한다. 2~9절에서 이 고난은 다윗이 왕이 된 후 하나님의 성전을 지으려는 열망과 법궤를 예루살렘에 옮기기를 갈망하며 겪은 낮아짐을 가리킨다. 다윗의 헌신과 고난을 기억해달라는 요청은 결국 하나님의 지속적인 관심과 은혜, 다윗 왕조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을 촉구하는 간구다.
2~9절에서는 다윗이 하나님의 처소를 마련하는 데 힘쓴 것을 기록한다. 처소 준비는 넓은 의미에서 성전 건축이다. 좁은 의미는 법궤를 예루살렘에 옮겨오는 일이다. 다윗은 야곱의 전능자 하나님의 처소 준비 전에는 장막이나 침상에 눕지 않고, 잠과 졸음을 내쫓겠다고 맹세한다(3~5절). 다윗이 얼마나 이 일에 헌신했고,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는지를 보여준다. 6~9절은 하나님의 법궤와 함께한 즐거운 예배를 묘사한다. ‘에브라다 야알의 들’은 법궤가 머물렀던 ‘기랏여야림’을 기리킨다. 다윗은 그곳의 오벧에돔의 집에서 예루살렘 장막까지 법궤를 옮겼다. 다윗과 백성들은 하나님의 임재가 가득한 그곳, 그의 발등상 앞에서 예배하기를 갈망했다(7절). 8~9절은 법궤를 장막으로 옮기는 행진을 묘사하고, 이날에 다윗, 제사장,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백성은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배했다(9절). 제사장들로 의를 옷 입게 하시길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처소 앞에서 말씀대로 본분을 수행할 것을 암시한다.
10~18절은 시온에 임재하신 하나님을 묘사한다. 10절은 1절과 같은 다윗의 기도다. “외면하지 마옵소서”라는 그의 간구는 1절의 ‘기억하소서’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지속적인 은혜와 고나심과 개입을 촉구한다. 11~12절은 하나님이 다윗에게 주신 언약이다. 하나님과 다윗 간의 헌신과 성실함은 다윗 언약(삼하 7장; 대상 17장)을 기초로 요구된다. 하나님의 성실하심은 다윗의 후손을 통해 계속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11절은 하나님이 솔로몬(네 몸의 소생)을 통해 성전을 짓도록 허락하심이 암시되었다(삼하 7:12~13). 12절은 다윗의 후손들도 계속해서 하나님의 언약과 교훈에 순종해야 함(신 17:18~20)과 하나님이 다윗 왕조에 영원한 왕권을 허락하심을 부각한다(삼하 7:14~16).
다윗과 언약을 맺은 하나님은 시온을 그의 거처로 삼아 그의 백성과 함께하실 것을 선포하신다(13~14절). “거처로 삼다”에서 “거처”는 원래 “의자”의 뜻이므로, 하나님이 왕좌에 앉아 통치하시는 의미가 있고, “삼다”는 “간절히 원하다”, “갈망하다”의 뜻이다. 그러므로 시온을 거처로 택하신 것은 하나님의 자발적이고 의지적인 일임을 함축한다. 하나님의 시온 선택은 다윗이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를 갈망하고 찾은 것(5~8절)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다. 또한 다윗이 하나님께 법궤와 함께 “쉴 곳(평안한 곳, 8절)”으로 들어가기를 요청했었는데, 하나님은 시온을 잠시 거하는 곳이 아니라 “영원히 쉴 곳”이라고 응수하신다(14절).
하나님이 시온에 거주하기로 작정하신 이유는 다윗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함이 아니라, 그가 친히 시온을 간절히 원하셨고(14절) 사랑하셨기 때문이다(시 78:68). 또한 시온은 다윗 언약과도 관련이 있다. 언약을 통해 하나님의 성전이 시온이 위치해 있는 예루살렘에 건축되었기 때문이다(대하 3:1). 시온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므로 그의 축복이 백성(15~16절)과 왕(17~18절)에게 약속된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물질적으로나(15절), 영적으로(16절) 넘치게 축복하실 것이다.
2. 시편 133편
1절은 형제가 연합함에 대한 칭송이다.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의 열세 번째인 본 시편은 공동체의 연합에 대한 칭찬과 이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을 노래한다. “형제”는 육체적 가족의 테두리를 넘어 사회적, 영적 가족으로 확대 해석해도 무방하다. 본 구절의 강조점은 공동체의 연합과 함께 거주하는 것의 유익에 있다. “연합”은 하나되는 것인데, 같이 있든지 떨어져 있든지 이들을 하나로 묶는 이유가 존재하기에 연합할 수 있다.
창세기는 연합보다는 분열의 이야기다.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려고 바벨탑을 쌓았지만, 이로 인해 오히려 흩어졌다(창 11:1~9). 아브람과 조카 롯은 함께 갈대아 우르에서 나와 가나안으로 왔지만(창 12:31; 13:1), 소유가 많아지면서 연합과 동거가 깨지고 만다(창 13:5~12). 야곱과 에서도 헤어졌다(창 36:7). 그런데 본 시편에서 공동체가 연합하여 함께하게 된 근본 이유를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 예배하려는” 공통 목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각 가정과 친척과 지파에서 온 사람들이 함께 예루살렘 여정에 오르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각자의 터전으로 돌아오게 된다(시 122:4). 이처럼 순례길의 연합과 동거는 즐거움을 주고 큰 격려가 된다. 시인은 이런 모습이 선하고 아름답다고 노래한다.
2~3a절은 형제가 연합함에 대한 비유다. 두 가지의 비유로 설명된다. 첫째, 아론의 머리로 내린 보배로운 기름과 같다. 이는 영적인 비유다. ‘보배로운 기름’을 직역하면 기름의 질과 가치가 높다는 뜻의 ‘선한(최상의) 기름’이다. 기름은 식용이나 약용으로 쓰이고, 성막/성전의 예배나 의식의 성별된 재료로 쓰인다. 또 손님에 대한 환대의 표시 등으로 사용되었고, 하나님의 축복(호 2:22)의 상징이다. 2절에서는 이 기름을 아론과 연결하여 하나님을 예배하러 가는 공동체의 영적 차원을 염두에 둔다. 아론은 이스라엘의 첫 제사장으로 제사장의 대표이자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의 대표로 등장한다. 기름이 수염에 흘러 겉옷의 옷깃까지 흘러 내려가는 모습은 공동체 연합의 부단한 지속성, 향기로운 영향력, 한계 없는 확대 등을 기대하게 한다.
둘째, 시온의 산들 위에 내린 헐몬의 이슬같다고 비유한다. 이슬도 아론의 기름처럼 그 가치와 흘러내림과 풍요로움이 암시되었다. 헐몬산은 갈릴리 동북쪽에 자리 잡은 이스라엘의 북쪽 경계로 해발 2,850m의 산이다. 이 산의 세 봉우리에 늘 눈이 쌓여 있고, 여기서 물이 흘러 남쪽 지역의 식수원 역할을 한다. 이런 지형적인 특색으로 밤에 많은 이슬을 내려 동식물만 아니라 경작에도 큰 도움을 준다. 강수량이 적은 이스라엘 지역에 이슬이나 비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여긴다(창 27:28; 슥 8:12). 하나님의 축복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려 생명과 풍요를 공급하듯 형제의 연합도 마찬가지다.
3b절을 통해 하나님이 연합하는 공동체에게 영생의 축복을 명하신다. 좋은 기름과 이슬의 근원지가 하나님이심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은 아론을 대표로 하는 거룩한 성도와 하나님이 택한 시온에 거주하는 그의 언약 백성인 연합된 공동체에게 생명을 공급하여 그들을 성장, 풍요로움, 선, 아룸다움의 공동체로 이끄신다.
3. 시편 134편
1~2절에서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 모인 자들이 하나님을 송축한다. 133편은 예루살렘 순례길에 동행하는 무리가 연합하여 함께하는 것을 경축하고, 134편에서 그들이 연합한 목적을 따라 성전에 올라와 하나님을 함께 송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연합의 선함과 아름다움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선함과 아름다움으로 연결된다. 1절을 통해 예루살렘에 모인 자들은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중심으로 함께 모여 하나님의 성소를 향해 그를 송축한다. 2절의 ‘성소를 향하여’는 ‘성소에서’로 번역해도 무방하다. 어떤 번역이든지 하나님 앞에서 그를 송축하라는 의미로서, 함께 모인 무리의 예배와 송축의 대상이 오로지 하나님임을 암시한다.
3절은 이처럼 여호와를 송축하는 무리에게 제사장의 축도가 따른다.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3절)”. 본문에서는 “송축하다”와 하나님의 “복 주다”가 각각 다른 단어로 번역되었으나 원문은 둘 다 “축복하다”의 뜻인 바라크 동사다. 여호와를 송축하는(바라크) 자에게 하나님의 복 주심(바라크)으로 화답한다. 이 화답은 제사장을 통해 이루어진다.
백성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원하는 것은 제사장의 임무 중 하나다(민 6:23~26). 하나님이 그의 백성에게 축복을 주시려는 적극적인 의도가 나타난다. 이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을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 “시온에 계시는 하나님”으로 소개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피조물이자 언약 백성이 된 점을 함축한다. 창조주와 왕이신 하나님을 송축하며 기도하는 것은 여호와의 종으로서 마땅한 자세다.
성전에 올라온 발걸음은 마지막에는 온 세상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자의 발걸음이 될 것이다. 또한 하나님이 시온에서(시 132:13~14) 주시는 풍성한 축복은 시온의 거주지를 넘어 이스라엘과 온 땅 구석 구석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에게 임할 것이다(슥 14:9~11, 16; 미 4:6~8).
나는?
-시편 132편은 성전을 향한 다윗의 근심을 기억해달라고 기도한다. 다윗은 자신이 백향목 궁에 거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궤가 휘장 가운데 있는 것을 슬프게 여겼다. 그래서 하나님을 위한 안식처를 마련하기 전에는 자거나 쉬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하나님은 그런 다윗의 계획을 허락하지 않으셨지만, 다윗의 몸에서 날 자를 통해 영원히 견고한 집을 지어주시리라 약속하셨다. 시인은 이 약속을 이루어 달라고 간구한다.
-오늘날 우리와 나는 어떤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예수님의 구속의 은혜로 하나님이 거하실 성전이 된 우리들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고 하나님 나라가 온전히 완성되기를 구하는 기도를 드리고 있는가? 그저 먹을 것과 입을 것, 쓸 것을 구하기 위해 전력하고 있지는 않는가?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하신 주님의 음성이 쟁쟁하다.
-블레셋에게 빼앗긴 법궤가 하나님의 개입으로 돌아왔다. 이에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에서 기뻐하며 다시 하나님이 이스라엘 중에 권능으로 임재하시도록 경배한다. 시인은 그때의 감격을 회복하고 싶어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곳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한다. 하나님께서 일상에 임재하여 함께 하시고 그저 그 발 아래서 즐거이 경배하는 그곳에 참 평화와 생명이 있지 않겠는가!
-시편 133편에서 하나님의 성 예루살렘을 향해 각처에서 올라온 이스라엘 백성이 한 가지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광경이 어찌나 합당하고 아름다운지, 아론이 대제사장으로 임명되는 장면을 비유로 노래한다. 향기로운 기름을 머리에 붓자 기름이 하나님의 은혜의 중재자 아론의 흰수염을 타고 내려가듯이, 향기로운 하나님의 은혜가 한마음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공동체에 흘러내린다. 하나님 백성 간의 참된 하나 됨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향기로운 은혜가 가득하다.
-하나님께 한 마음으로 예배하는 이스라엘 무리의 모습을 헐몬 산에 가득 내린 이슬이 하나님의 산 시온에도 풍성하게 내려 산이 싱싱하게 원기를 회복하는 모습에 비유한다. 생명은 사랑으로 연합된 관계에서 나온다. 언약 공동체 안에서 사랑의 율법에 순종하는 자만이 그 공동체 안에 거할 수 있고,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때에만 영생(복)을 누릴 수 있다.
-시편 134편은 긴 순례를 마치고 마침내 예루살렘 성전에 도착한 순례자들(여호와의 종들)이 성전 뜰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늘을 향해 손을 들고 성소를 향해 찬양하고 있다. 수만의 백성이 제사장의 지시에 따라 부르는 찬양은 참으로 장엄하고 영광스러웠을 것이다. 하나님이 하나님으로 인정받는 그곳에 “복”이 있다. 생명이 있다.
*형제와 자매의 연합이 있는 곳에 생명을 주신다(시 133:3). 언약 공동체 안에서 사랑의 율법에 순종하는 자만이 그 공동체 안에 거할 수 있고,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때만 “영생(복)”을 누릴 수 있다. 오늘날 많은 성도가 교회가 실망스럽다고 교회 공동체를 등진다. 하지만 이것은 오히려 언약공동체를 통해 흘러넘치는 하나님의 복과 단절되는 것이다.
*때가 악하지만, 더온누리공동체는 더욱 말씀과 성도의 교제가 살아 숨쉬는 생명력 있는 공동체가 되도록 더욱 기도하며 함께 참여해야 하지 않을까?
*하나님의 향기로운 은혜가 하나님을 한가지로 예배하는 공동체에 흘러내린다. 우리 더온누리공동체는 어떤 향기일까? 향기로 표현하자면 어떤 향기일까? 부디 향기로운 향기로 세상 속에서 은은한 감동을 드러내는 공동체이기를 바란다. 부디 하나님께서 우리의 향기를 흠향하실만한 삶과 공동체이기를 갈망한다.
*하나님께 한 마음으로 예배하는 공동체는 시온 산에 헐몬의 이슬이 가득 내려 산 전체를 싱싱하게 회복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더온누리 공동체와 가정이 아침 이슬을 머금은 식물처럼 활력이 넘치는 공동체가 되기를 기대한다.
*긴 순례를 마치고 예루살렘 성전에 도착한 순례자들이 성전 뜰에서 하늘을 향해 손을 들고 찬양한다. 수만 수천의 백성들이 제사장의 지시에 따라 부르는 찬양은 참으로 장엄하고 영광스러웠을 것이다. 오늘 우리도 이처럼 하나님만 주목하여 찬미하는 예배를 드려야 하리라.
*주님, 우리 가정과 공동체가 사랑으로 연합하여 허나님이 주신 영생을 누리겠습니다.
*주님, 사랑 향기, 믿음 향기, 소망 향기가 진동하되 은은하게 퍼져 감동을 주는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삶이기를 추구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