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36편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심이로다
하나님이 하신 일은 위대하고 놀랍다. 성도의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다. 하나님은 지혜로 세상을 창조하셨으며, 애굽에서 기이한 재앙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셨고, 홍해를 갈라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건너게 하시고, 광야에서 인도하셨다.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신 일에 나타난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영원하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이스라엘의 역사에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셨고 그들을 인도하여 광야를 통과하게 하셨다. 그들을 공격하는 열왕들을 죽여 이스라엘을 보호하셨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그 땅을 기업으로 주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양은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끊이지 않는다.
시편 136편은 한마디로 축약하자면 “감사의 노래”다. 135편처럼 창조와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행하신 열심을 회고하며 감사한다. 이 시는 추측하기로 바벨론 포로민이 예루살렘으로 귀향했을 때로 추측된다. 그리고 이 시는 다른 시에 비해 구성이 독특하다. 가장 큰 특징은 “감사하라”는 명령형과 함께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가 후렴구처럼 반복된다. 이와 같은 반복은 인도자와 회중이 교독문을 읽듯 교창 형식으로 구성되었다. 또 하나의 특징은 “~하신 이(4~10, 13, 16~17, 25)”라는 분사의 반복을 통해 하나님의 속성과 성품을 드러내고 찬양할 때 주로 사용된다.
1. 신들 중에 뛰어나신 하나님께 감사(1~3절)
처음 시작은 “여호와께 감사하라”는 부름이다. 이렇게 부르면서 감사의 이유를 두 가지로 말한다. 하나님이 선하시기 때문이고,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기 때문이다(1절). “감사하라(호두)”는 명령어는 “고백하라, 찬양하라”라는 말로 번역할 수 있다. 본 시편은 감사하라는 부름과 이에 대한 이유를 온 회중이 주고받으며 노래하도록 구성되었다. “인자하심(헤세드)”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 관계의 핵심이며, 하나님의 신실하고 견고한 사랑을 말한다. 언약은 상호 간에 충성과 서약이 필요한데, 본 시편은 이스라엘 공동체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기념하면서 충성 서약을 하는 듯한 분위기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기에 백성이 감사하며 그의 인자하심을 반복하며 노래하는가? 시인은 “신들의 신” 곧 최고의 신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외치며 이유를 제시한다. “왜냐하면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기 때문(2절)”이다. 시인은 계속해서 “주들의 주” 곧 뛰어난 주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기 때문이라고 반복한다(3절). 하나님이 최고의 신이듯 가장 높으신 주인임을 선포한다.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비교 불가한 하나님을 “신들의 신, 주들의 주”로 표현한 것이다.
2.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 감사(4~9절)
이 단락은 창조주 하나님을 높이는 것에 초점을 둔다. 시인은 감사해야 할 하나님의 창조 행위에 대해 몇 가지를 추려서 노래한다. 첫째, 홀로 크고 기이한 일을 ‘행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이는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시기 때문이다(4절). 사람의 상식과 이성적인 수준을 넘어서 누구의 도움도 없이 홀로 비범한 일을 행하신 하나님을 향한 찬미다. 둘째, 지혜로 하늘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기 때문이다(5절). “지혜(테부나)”는 지성과 총명함 또는 이해력과 기술 같은 능숙함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창조는 지성적이고 기술적이며 예술적인 활동이었음을 드러낸다. 셋째, 땅을 물 위에 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시기 때문이다(6절). 고대인들에게 범람하는 물은 두려움이다. 그 위에 땅을 펴셨다는 것은 시적인 표현으로 마치 물을 밟아 평평하게 만들어 두려움을 제거하셨다는 의미로 읽힌다. 넷째, 큰 빛들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기 때문이다(7절). “빛들”이라는 표현으로 낮의 해, 밤의 달과 별을 주관하시는 이에게 감사하라는 8~9절과 연결된다.
3. 애굽에서 구원하신 분께 감사(10~16절)
우주를 창조하시고 질서를 수립하신 하나님은 이스라엘 조상과 맺은 약속을 지키셨다. 이제부터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과 그 역사를 회고한다. 첫째, 시인은 애굽의 장자를 치신 이에게 감사하라고 한다(10절). 역시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라는 구절이 후렴구처럼 반복된다. 사백여 년의 길고 긴 시간 동안 억압과 고통 가운데 노예의 삶을 살았던 이스라엘 조상(아브라함의 후손, 야곱의 후손들)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셨다. 시인은 온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행하신 열 가지 재앙 중에서 마지막 장자의 죽음만 언급한다. 이 재앙은 당시 애굽의 태양신 “레”의 아들이자 화신으로 여기고 있었던 바로의 장자가 포함되었기에 애굽의 명맥을 끊는 것이고, 하나님이 만물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일깨우는 절정의 재앙이었다. 둘째, 이스라엘을 그들 중에서 끌어내신 이에게(11절), 셋째, 강한 손과 편 팔로 끌어내신 이에게(12절), 넷째, 홍해를 가르신 이에게(13절), 다섯째, 이스라엘을 그 가운데로 통과하게 하신 이에게(14절), 여섯째, 바로와 그의 군대를 홍해로 쓸어 버리신 이에게(15절), 일곱째, 그의 백성을 인도하여 광야를 통과하게 하신 이에게(16절) 감사하라고 한다. 이는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기 때문이다.
시인은 애굽에서 나오기까지 주권적으로 행하신 하나님을 찬미하도록 외친다. 나오게 하여 광야 40년의 삶을 살아내게 하실 때, 그곳은 생명을 위협하는 곳이었지만, 한순간도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은 순간이 없었음을 노래한다. 가장 척박한 생명을 위협하는 땅에서도 하나님이 함께하심으로 생명의 삶을 누릴 수 있었다.
4. 왕들을 죽이시고 기업을 주신 분께 감사(17~22절)
이 단락은 광야를 통과하면서 겪은 이민족과의 전투에서 이스라엘을 승리로 이끄시고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신 이를 회고하며 외치는 감사와 찬양이다. 역시 가사의 외침마다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심이로다”가 반복된다. 시인은 먼저 큰 왕들을 치신 이에게 감사하라고 한다(17절). 이어서 유명한 왕들(특히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고 한다(18~20절). 시인은 그들의 땅을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고 한다(21~22절).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가나안으로 행진하는 과정에서 방해되는 권력자들을 제거하여 약속이 성취되게 하셨다. 이후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이스라엘은 여호수아의 지도력 아래 31명의 왕을 죽인다(수 12:7~24). 이스라엘은 노예들이었다. 조직적인 전투부대가 아니다. 전투 훈련을 받은 것도 아니다. 광야 40년은 생존의 시간일 뿐이었다. 무기도 변변치 않았다. 그들의 손에 쥔 것은 무기라고 할 수 있는 것조차 없었다. 그렇게 치른 전쟁에서 거둔 승리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다. 또한 하나님은 백성들이 땅을 차지하고 경작하며 후손들에게 유산(기업)을 남길 수 있게 하셨다.
이방의 무수한 왕들은 이스라엘을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 권능의 희생자로 보일 만큼, 전쟁을 주관하신 하나님은 “그들의 땅” 일부를 자기 백성이 차지하도록 도우셨다.
5. 지키시고 먹이신 분, 하늘 하나님께 감사(23~26절)
이 단락에서 시인은 이스라엘을 “우리”로 바꾸어 하나님 은총에 감사하며 인자하심을 표현한다. 우리의 비천한 상황을 우리를 위해 기억하신 이에게 감사하라(23절). “그가 기억하셨다”라는 말은 구원과 바꿔 써도 될 만큼 강력하다. 기억은 과거의 은혜를 현재로 재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기억은 자기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라는 언약의 지속성을 함축한다.
또 본문에서는 개역개정이 번역하지 않은 “우리를 위해(라누)”라는 표현의 반복을 통해 공동체성을 강조한다. 24절은 “우리를 우리의 대적에게서 건지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번역되었지만, 직역하면 “그가 우리 대적들로부터 우리를 끌어내셨다. 이는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기 때문이다”이다. 하나님은 창조-출애굽-가나안 정복-정착 과정에서 그의 끝없는 돌보심과 사랑, 즉 그의 “인자하심”이 언약의 핵심임을 보여주신다.
25절에서도 모든 육체에 먹거리를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고 한다. 이는 우주를 창조하시고 온 피조물, 곧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동식물까지 책임지시는 보편적인 은혜를 가리킨다. 이미 2~3절에서 “신들의 신, 주들의 주”라는 표현과 26절의 “하늘의 하나님”이라는 명칭을 통해 우주적이고 보편적인 하나님 사랑과 은총을 기렸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은 과분한 사랑이다. 이스라엘이 역사 내내 불순종과 심판과 회복을 거듭했지만, 그때마다 한 번 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구원을 기대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인자하시고 선하신 성품을 신뢰했기 때문이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시는(사 42:3, 마 12:20)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믿었기 때문이다. 하나님 아버지는 기어코 완악한 우리를 새롭게 바꾸어 하나님을 사랑하는 백성으로 새롭게 지으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견줄 수 없다. 하나님에 견줄 만한 신은 없다. 그것은 실제 신적인 존재가 아니라 모두 피조물이 만든 헛된 우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나님만이 홀로 이 세상과 역사의 주인으로 다스리시고 주관하신다. 비록 하나님을 모르는 이들과 함께, 때로는 그들에게 조아리며 살아야 할지라도, 오늘 하루만이 아니라 일생 내내 우리가 끝까지 순종해야 하고, 또 우리를 끝까지 책임져주시는 분은 하나님 한 분뿐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창조와 돌봄의 사랑이다. 하나님은 홀로 큰 지혜로 세상 창조라는 엄청난 기사를 행하셨다. 하늘과 땅도 빛도 해와 달과 별들도, 그것들의 질서도 모두 하나님이 손수 지으셨다. 그리고 보기 심히 좋은 인간도 지어내셨다.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믿지 않는 자들도 창조의 아름다움에 경탄하기도 하지만, 믿는 우리는 그 피조 세계 너머에 계신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알고 찬양할 수 있으며, 이 세상과 그 안에 사는 우리 인간이 그 하나님의 인자하심 때문에 유지되는 것을 믿고 감사할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랑은 언약에 신실한 사랑이다. 하나님의 신실한 사랑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역사 내내 신실하게 지키시는 모습으로 드러났다. 출애굽이 절정이다. 400년 전의 약속을 기어이 이루셨다.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인자하심 때문이다. 그 인자하심으로 우리를 사탄의 매임에서 해방하시고 죄의 구렁텅이에서 건져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셨다. 이렇게 우리는 참으로 위대한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영광스러운 백성이다.
-하나님은 광야를 지나게 하신 분이다. 광야로 인도하신 분도 하나님이고, 광야를 지나는 동안 앞서 가면서 이스라엘을 지키시고 안전하게 통과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다. 고난 없는 순탄한 삶이 형통은 아니다. 고난 중에도 하나님이 같이하시는 삶이 형통하고 부족함이 없는 삶이다. 광야는 약하디약한 우리 자신과 직면하는 공간이며, 구체적인 간섭과 공급하심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내시는 하나님과 만나는 자리다. 그 광야를 통과하지 않고는 약속의 땅에 이를 수 없다. 내 가능성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가능성에 나를 맡기는 법을 배우는 곳이다. 하나님은 그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오늘 우리를 창조하신다.
-하나님은 땅을 기업으로 주신 분이다. 애굽에서 건져 광야를 지나 결국 약속대로 가나안 땅에 이르게 하심으로 유랑하던 민족에게 안식을 주셨다. 죄에서 건짐을 받아 광야를 지나는 우리에게도 언젠가 영원히 주의 품에 안식할 하나님 나라를 약속하셨다. 광야에서 갖가지 은혜를 경험했지만, 결국 그곳은 광야일 뿐 가나안 땅이 없이는 소망도 없다. 오늘 우리도 광야를 걷지만, 오늘 여기서 하나님 나라를 누릴 뿐만 아니라 영원히 거할 완성된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소망으로 갖고 있기에, 지금 여기에서 주님을 의지하며 살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비천한 자를 기억하신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비천할 때 기억하시고 대적에게서 건지셨다. 사랑받을 구석이 전혀 없는 우리가 제 맘껏 죄에 취하여 살 때 먼저 손 내밀어 주시고 시시때때로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오늘을 살고 있다. 생명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 생명을 유지하도록 도우셨다. 우리의 쓸 것을 공급하셨다. 신앙은 우리가 그렇게 주님의 돌보심과 공급하심의 은총으로 산다는 것을 인정하는 삶이다.
*주님, 창조에서부터 지금까지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영원한 인자하심 때문에 오늘을 주님의 은혜 안에서 살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저 감사합니다.
*주님, 여호와께 감사하겠습니다. 그 선하심을 감사하겠습니다. 그 영원하신 인자하심에 감사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