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전 2:17-3:13 고난 가운데 풍성한 믿음과 사랑의 위로 소식
고난의 파도가 너무 높아 잠시 피했지만, 자기 양 떼를 버린 목자라고 비난이 넘쳐났다. 사랑하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두고 베뢰아로 떠나야 했던 바울의 심정은 어땠을까? 모함에 빠뜨리는 대적들의 비난에 어떻게 대응했나?
1. 바울은 남아 견디기를 원했다(2:17~20).
유대인들의 핍박과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말한 바울은(14~16절) 이 단락에서 데살로니가 성도들에 대한 애정의 언어를 쏟아낸다. 특히 가족과 관련된 언어들(자녀(7절)- 젖 먹이는 어머니(8절)-아비(11절)-형제들, 고아(17절)) 을 사용하여 데살로니가 성도들에 대한 목양 일념을 나타낸다.
바울과 일행들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떠난 후로 고아 같은 신세가 됐다고 말한다. 그들과 떨어지는 것은 단순한 분리가 아닌 큰 고통임을 시사한다. 헤어진 지 짧은 시간이었지만, 바울에게는 길게 느껴졌음을 알 수 있다. 바울은 이 헤어짐이 몸으로는 헤어짐이지만, 마음으로는 아님을 알기 바랐다. 이러한 마음은 자연스레 재회의 열망으로 이어지고, 바울의 데살로니가 재방문을 열정적으로 추진하게 했다. 하지만 사탄의 방해로 바울의 뜻은 성취되지 못한다.
“가로막다(엥콥토)”는 도로에 홈을 파서 말이나 수레의 통행을 금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탄의 방해는 추측하기로 데살로니가에서의 박해거나 바울 자신의 질병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사탄의 방해가 있었음에도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영적 성장과 열매가 분명하게 드러났고 바울은 이를 자랑스러워했다. 19절에서 바울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바울에게 소망과 기쁨과 자랑의 면류관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임을 밝혔다. 바울은 그들 때문에 면류관을 받을 것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그들이 면류관이라고 말한다.
복음을 위하여 분투하고 땀 흘린 바울과 일행들에게 그들을 통해 구원하신 영혼들 자체가 하나님이 주시는 면류관이다. 20절은 바울이 그의 일행들이 데살로니가 성도들로 인해 영광과 기쁨을 이미 얻었음을 재확인하면서, 동시에 종말에는 더 충만한 영광과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2. 디모데를 보냄과 그 목적(3:1~5)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다시 보고자 하는 간절함 마음을 사탄의 방해로 이루지 못했다(2:17~20). 당시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초신자가 많아 신학적인 지식이 충분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그곳에서 일어난 박해가 생각보다 심했다. 이 상황에서 바울은 자신은 아테네에 남아 있고 디모데를 데살로니가로 보내 그들의 형편이 어떤지 알아보고 그들을 영적으로 격려하는 일을 맡기기로 했다. 그리하여 “우리 형제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의 동역자인(2절)” 디모데를 파송한다.
바울은 자신과 일행이 전한 복음을 “우리의 복음(1:5), 하나님의 복음(2:2, 5)에 이어 “그리스도의 복음(2절)”이라 부른다. 디모데를 파송한 목적은 분명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믿음을 강하게 하고 격려하기 위함이었다(2절). 바울은 사탄이 그들의 믿음을 흔들 때 무너지지 않도록 그들을 ‘강하게’ 만들기 원했고, 시련 앞에 믿음을 지키도록 ‘격려하기’ 원했다. 바울은 박해로 인해서 아무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돕는 것이 그들이 세움받은 목적이라고 밝힌다(3절).
바울은 일행들에게만 아니라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도 “환난”을 예견했고(살전 1:6; 3:3; 2:14) 실제로 박해가 찾아왔다(4b절). 5절은 바울이 디모데를 보낸 목적을 한 가지 더 제시하는데, “너희 믿음을 알기 위하여”서였다. 시험하는 자, 즉 사탄이 박해를 통해 그들을 시험하지만, 그들이 시험을 이겨내고 우리 수고를 헛되지 않게 하려고 디모데를 파송한 것이다. 이후 아테네와 고린도에서 디모데가 가져오는 소식을 기다렸다.
3. 디모데가 가져온 소식(3:6)
마침내 디모데가 돌아왔다(행 18:5). 이 구절을 근거로 데살로니가전서가 디모데의 귀환 직후에 고린도에서 쓰였을 것을 짐작하게 한다. 마음에 근심과 걱정하고 있던 바울은 디모데가 가져온 좋은 소식을 듣고 환호성을 질렀을 것이다. 디모데가 가져온 소식은 두 가지다.
첫째,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영적으로 믿음과 사랑이 충만하다는 것이다. ‘믿음’은 데살로니가전서에서 8회, ‘사랑’은 7회 등장한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삶이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삶에 충실했음을 짐작게 한다. 둘째,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바울과 일행들에 대한 “좋은 기억”을 계속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어쩔 수 없이 떠날 수밖에 없는 과거 상황에 대하여 충분히 이해하고, 나쁜 감정이 있지 않았다. 더 나아가 디모데는 그들이 바울과 선교팀을 간절히 보고 싶어 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4. 주 안에 굳게 선 성도들(3:7~8)
데살로니가 성도만이 아니라 바울과 일행도 ‘궁핍과 환난’을 겪었다. 그런 바울과 일행에게 디모데가 좋은 소식을 전해주었을 때 큰 위로를 받았다. 8절은 “데살로니가 성도 여러분이 주 안에 굳게 서 있다는 것을 이제 알았으니 우리는 이제 살맛이 난다.” 정도로 의역이 가능하다. 믿음 안에 굳게 서는 것의 중요성을 바울은 언제나 강조했다. 성도들이 핍박에 굴복하지 않고 믿음 안에서 인내하였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을 때 바울은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5. 바울의 넘쳐나는 열망과 기쁨(3:9~10)
바울과 일행은 그들이 느끼는 감사를 하나님께 보답할 길이 없다고 말한다. 9절은 “우리가 기뻐하는 모든 기쁨”이라는 표현을 통해 기쁨을 극대화한다. 여기에 바울의 간구가 이어진다(10절). “너희 믿음이 부족한 것을 보충하기” 원한다고 말한다. 이 표현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문제가 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믿음이 지속적으로 성장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그 부분을 돕기 원한다는 표현이다.
6. 바울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돌아가 도울 수 있기는 간구함(3:11~13절)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한 소원을 아뢴다. 간구의 내용은 세 가지다. 첫째, 데살로니가를 다시 방문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길을 인도해달라는 것이다. 둘째, 데살로니가 성도 서로와 모든 사람에 대해 사랑이 차고 넘치게 해달라는 간구다(12절). 셋째, 첫째와 둘째 기도가 이루어진 결과 그들의 마음이 흠 없도록 종말에 하나님 앞에서 세워지기를 간구한다(13절).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와 “거룩함에 있어서”라는 표현을 통해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마음이 “성도”라는 이름답게, “거룩”하게 준비되기를 바라고 있음을 보여준다. 바울의 감사와 간구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격려와 교육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들이 핍박을 받는 중에 믿음을 잘 지켜온 것에 대해 격려하면서도, 그들이 완벽하지 않음을 상기시키며 성도와 모든 사람을 향한 사랑을 통해 더욱 성장한 믿음을 가지고 주님의 재림을 맞이해야 한다고 권면한다.
나는?
-바울의 데살로니가 교회와 성도들을 향한 모습을 보며 목양 일념의 중요한 내용들을 깨우치게 된다. 먼저 지도자의 사명은 믿음으로 고난을 받는 성도들을 흔들리지 않게 붙잡아주는 일이다. 바울은 자신이 직접 데살로니가를 방문할 수 없게 되자 디모데를 보내 성도들을 위로한다. 또 성도들의 믿음 상태를 파악하여 고난에 굴복하도록 시험하는 자들에게 넘어지지 않게 돕고자 했다. 성도에게 고난은 마땅한 바이고, 하나님은 그런 성도들을 위하여 지도자를 세우셨다.
-성도는 만남을 통해 힘을 얻는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다시 방문하려고 애셨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서 디모데를 보내 그들의 믿음을 굳세게 하고자 했다. 바울은 로마로 가는 길에 숱한 위험과 고난을 맛보았지만, 로마의 성도들을 만나자마자 담대한 마음을 얻었다(행 28:15). 성경은 서로 권하여서 모이게 힘써야 한다고 거듭 가르친다(히 3:13; 10:25). 혼자서도 잘할 수 있다는 생각에, 또는 귀찮다는 이유로 성도의 교제에 소홀하지는 않은가?
-바울은 주님 앞에 서게 될 성도들을 자신의 영광이자, 자랑의 면류관으로 여겼다. 그렇기에 바울은 사욕 없이 성도들을 사랑으로 품고 사역한 것이다. 나는 바울처럼 나를 섬겨준 사랑의 손길들을 기억하여 기도의 자리에서 환대하며 갚는 목회자이어야 하리라.
-데살로니가를 다녀온 디모데가 전해준 소식을 듣고 바울과 일행들은 기쁨이 넘쳤다. 여전히 궁핍과 환난 중에 있었지만, 믿음의 동지들이 믿음과 사랑으로 산다는 소식에 족한 위로를 받았다. 고난 중에 있는 성도들을 생각하며 자기 일처럼, 아니 자기 일보다 더 가슴을 졸이는 바울의 모습이 도전될 수밖에 없다. 지도자의 마음속에 있지만 드러나지 않는 이런 애타고 가슴 졸이는 심정으로 걱정하는 심정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나님께서는 서도들의 마음을 굳건하게 하시고 주 안에서 굳게 세우신다. 하나님은 박해와 시험 속에서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돌봐주시고 굳게 세우심으로 바울의 수고가 헛되지 않게 하셨다. 바울이 하나님께 감사드리면서 동시에 간구하는 이유는 믿음과 사랑과 소망이 모두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줄 알기 때문이다. 나의 삶에서 하나님께 드릴 열매를 늘 바라보며 사역해야 할 것이다.
-바울은 성도들의 믿음이 건강한 것을 모두 하나님의 돌보심 덕분으로 돌린다. 바울은 이 기쁨을 주신 하나님께 무엇으로 보답할지 라고 되뇐다. 실제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쉼 없는 기도뿐이었다. 이를 통해 성도의 미흡한 부분이 채워져 그들이 더욱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할 수만 있다면 데살로니가를 직접 방문하여 부족한 것을 채워주고 싶었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아 이렇게 편지를 써 보내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더욱 온전한 사랑과 흠 없는 삶을 위한 기도만은 멈추지 않는다. 자신이 바라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당장 할 수 있는 것(기도)부터 신실하게 감당하는 사도의 모습에서 지금 여기에서 감당하며 나아가야 할 목회자의 모습을 보게 된다.
*주님, 바울의 모습과 태도를 본받아, 제게 맡겨주신 더온누리 공동체를 바울처럼 사랑하며 섬기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