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세상과 구별하여 거룩하게, 형제를 더욱 지속적으로 사랑 [살전 4:1-12]
 – 2025년 09월 04일
– 2025년 09월 04일 –
살전 4:1-12 세상과 구별하여 거룩하게, 형제를 더욱 지속적으로 사랑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을 그의 선교팀에게 배웠으니, 그것을 더욱 힘쓰라고 권한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 곧 하나님의 뜻은 거룩함임을 천명한 후, 성적 방종에 대해 길게 경고한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거룩함으로 부르셨음을 상기시키면서, 교회 내적으로 형제 사랑을, 외적으로 존경받을 만한 삶을 갈라고 강조한다.
    
데살로니가전서 2~3장은 바울과 일행들, 데살로니가 성도들 간에 있었던 일을 회상하며 서로 우호를 증진하기 위한 목적을 가진 ‘내러티브’라고 할 수 있다. 4~5장은 본격적으로 구체적인 교훈을 담은 “권면” 부분이다. 본문은 권면의 시작으로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이미 알고 있는 삶의 방식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을 새로운 열정으로 지속해 나가라는 권면이다.
    
    
    
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의 방식(1~2절)
성도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행해야 하고,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하는지 바울의 선교팀에게 배운 대로 행하고 있다. 바울이 권하는 권면의 핵심은 배운 대로 해오던 일을 “더 잘하라(1절)”는 것이다. 바울은 어떻게 행함과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하는지를 배운 대로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임을 암시한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새로운 명령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기억을 되살려 주고 있다(“너희가 알거니와(살전 1:5; 2:1, 2, 5, 11; 3:3, 4)”). 또한 바울은 성도들에게 권면하는 명령이 자신의 권위가 아닌 주 예수의 권위에서 나온 것임을 밝히는 것(‘주 예수로 말미암아’, 2절)도 잊지 않는다.
    
이와 같은 모습은 교회의 공식적인 가르침을 통해 복음을 배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2. 하나님의 뜻은 거룩함(3~8절)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배운 대로 살기 위해 충실하게 애쓴다. 하지만 그들이 온전하게 그리스도의 길에 순종하지 못한 영역이 있었다. 그것은 “성(性)”의 영역이었다. 거룩은 단순하게 세상으로부터의 분리가 아니다. 하나님께 기쁨이 될 수 있는 순결한 삶이다. 하지만 데살로니가 성도 중 일부는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길로 나아갔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곧 너희의 거룩함(3절)”이라고 선언한다. “거룩함”이 무엇인지에 대해 본 단락은 세 단위의 부정사를 통해 제시한다. 첫째, 음란을 버리는 것, 둘째, 자기의 몸을 통제할 줄 아는 것, 셋째, 범죄하여 형제를 기만하지 않는 것이다.
첫째, 음란을 버리는 것(3절)이다. “음란(포르네이아)”은 결혼 밖에서 일어나는 모든 성적인 행동을 가리키는 것으로 간음, 동성애, 소아성애 등을 모두 포괄하는 표현이다. 1세기 당시 그레코로만 시대의 성적 타락은 보편적이었고 사람들 사이에 만연한 것이었다. 성적 부도덕은 매우 뿌리 깊이 박혀 있어서 이를 떨쳐 내기 위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둘째, 자기 몸을 통제하라고 권면한다(4절). 자기 몸을 통제하되 거룩함과 존귀 안에서 하라고 한다. 이와 비교하여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은 색욕 안에서 자기 몸을 다스린다(5절). 이것이 그리스도인과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 사이의 자기 몸을 다스리는 법의 차이였다. “아내(스큐오스)”로 번역된 단어는 다수의 번역본(NIV, NRSV, NET, ESV)에서는 “몸”으로 번역한다. 이는 신약 성경 곳곳에서 자주 나타나는 “자기 자신에 대한 통제, 절제”에 대한 권면(행 21:25; 고전 6:9~10; 엡 5:3; 골 3:5)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처럼 색욕 안에서가 아니라 거룩함과 존귀 안에서 자기 몸을 통제하라는 권면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셋째, 범죄하여 형제를 기만하지 말라고 말한다(6절). 바울은 “이 일에 있어” 분수를 넘어, 혹은 범죄하여 형제를 기만하지 말라고 권면하는데, “이 일”은 성적인 범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남을 유혹하기 위해 술수나 기만을 사용하는 성범죄를 금하라는 명령이다. “분수를 넘어”라는 표현은 가족 구성원과 혹은 이웃의 배우자와 혹은 교회 안의 형제자매와 부적절한 성적 관계를 맺어 로마 사회의 통념조차 위반하는 자들이 있음을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 성도가 이런 행위를 하는 것은 교회의 평판을 떨어뜨려 복음 전파를 방해한다.
    
바울은 이렇게 거룩함에 대한 세 가지 권면을 한 후에 이 권면들을 행해야 할 이유에 대해 하나님께서 이런 모든 일들, 성적 범죄들에 대해 복수자(avenger, 살후 1:8; 롬 13:4)가 되신다고 밝힌다. 더불어 하나님의 복수자 되심에 대한 것은 이미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미리 말하였음을 엄히 경고한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자동으로 심판대에서 무죄 선언을 받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부정한 삶을 살라고 부르신 것이 아니며, 거룩한 삶(하나님께 합당한 삶, 2:12)을 살라고 부르셨다.
    
하나님의 선택 목적은 부정함이 아니라 거룩함이다(7절). 따라서 성도의 이름을 가진 자가 거룩에 대한 명령을 저버리면 바울의 명령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성령을 주신 하나님, 바울에게 진리를 계시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는 것이다. 이러한 성적인 범죄를 일삼는 자는 주 예수님의 보복을 자초하고(6절), 하나님의 부르심의 의미를 퇴색시키며(7절), 하나님께서 보내신 성령의 사역을 조롱함으로써(8절), 삼위일체 하나님을 거부하고 그분의 원수가 되어 심판을 자초하는 자다.
    
    
    
3. 형제 사랑에 관하여(9~12절)
교회 공동체는 가족과 같다. 어린아이, 젖 먹이는 어미가 있으며(2:7), 아비도 있고(2:11), 고아와 같은 이도 있고(2:17), 형제자매도 있다(1:4; 2:1, 9, 14, 17; 3:7 등). 특히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서로를 형제자매로 여기며 사랑하는 모습에 대해 칭찬한다(9절).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마땅함은 하나님께서 서로 사랑하라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앞 단락에서 언급한 성적인 범죄가 교회 구성원 누군가에 의해 일어났으나 데살로니가 교회 공동체의 대다수는 서로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였고, 사랑에 관한 그들의 순종은 데살로니가라는 도시의 경계를 넘어 마게도냐 지역의 형제들에게까지 확장되었다(10절). 그들이 어떻게 사랑했는지는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지만, 가난한 자들을 위한 구제 헌금이나, 여행자들에게 대한 환대나, 여러 선을 행함으로써 형제 사랑을 마게도냐 지역에 나타냈을 것이다. 바울은 4:1에서 밝힌 대로 이미 잘하고 있지만, 더 잘하라고 권면하는 것이다. 참고로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전체에서 형제 사랑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3:12; 4:9; 5:12).
    
11~12절은 3~8절에서 공동체의 거룩함을 해치는 이들과 9~10절에서의 형제자매 사랑을 방해하는 일부 구성원들의 문제를 지적한다. 그들은 일을 하지 않고 재림만을 기다리며 놀고 의존하기만 하여 사회, 경제적으로 피해만 끼친다. 그들은 자신을 더 영적인 사람으로 여기지만, 실제로는 이기적이며 골칫거리이며, 사회 구성원들이 교회에 대하여 적대감을 느끼게 했다. 이에 따라 교회가 불신자들의 신뢰를 잃게 되고 교회 내부의 평안과 거룩함이 훼손된다.
    
성도는 세상에 속하지 않았지만, 세상 안에서 산다. 그러므로 성도는 조용히 자기 일을 자기 손으로 해야 하며(11절), 영적인 것을 추구한다는 명목으로 남에게 손을 벌려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지 말아야 한다(12절; 참고 골 4:5; 고전 5:12~13; 딤전 3:7). 바울은 성도가 외인에 대하여 존경받고 신뢰받는 삶을 살아야 함을 강조한다.
    
    
    
나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어떠해야 할까? 이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은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삶이라고 답한다. 그리스도인은 부정한 세상에서 거룩함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다. 거룩한 삶을 저버리는 것은 거룩한 영을 저버리는 일이다. 거룩은 윤리적으로 음란한 세상의 가치관을 거부하는 것이다. 결혼 관계에서의 성적인 순결을 지키고 자기 몸을 성령이 거하실 거룩한 성전으로 지키는 것이다. 성적인 범죄는 이웃의 삶까지 망가뜨린다. 지금은 쾌락적인 사랑의 기준보다 고리타분할 정도로 거룩한 말씀의 기준을 따라 마음을 지켜야 할 때이다.
    
-거룩한 백성으로 삼기 위해 우리를 부르시고 거룩한 영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길 원하시기에 거룩한 삶을 저버리는 자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것과 같다. 거룩한 삶은 단지 믿지 않는 사람들과의 구별을 넘어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고 순종을 통해 하나님을 닮아갈 수 있다. 내 안에 하나님을 닮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을 행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거룩한 동기가 사라지지 않기를 부단히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배운 일에 힘써야 할 것이다. 매일 묵상하고, 매주 말씀을 듣는 일도 귀한 일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 일에 더욱 힘써야 한다. 요즘 묵상과 설교를 통해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권면 말씀을 붙잡고 행하며 살아내는 삶이기를 결심한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마땅히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많이 배웠고 배운 대로 잘 살아왔다. 그럼에도 바울은 “더욱” 힘쓰라고 권면한다. 앎이 삶이 되는 일은 한순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매우 기나긴 여정이다. 지식이 정보에 그치지 않고 교제로 나아가려면 더욱 힘써 순종해야 하리라.
    
-이에 바울은 성적인 순결을 합당한 삶의 모습으로 제시한다. 당시 마게도냐 지방에서 용인되었던 문란한 성생활과 선명한 구별점을 둔 것이다. 부부관계에서의 순결은 그리스도인이 세상과 또렷하게 구별되는 지점이어야 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그리고 더욱더 신중하게 듣고 지켜야 할 말씀이다.
    
-세상은 성적인 부정에 대해 점점 더 관대해진다. 교회마저도 이 흐름에 동조한다. 일부 국가 일부 지역에서는 동성애 사역자들을 인정하는 등의 충격적인 모습도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시류에 흔들리지 말고, 진리 안에 굳게 서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께서 잊지 않으시고 낱낱이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 있는 거룩한 영을 근심하게 하는 일에 빠지지 말고, 혹시 속해 있다면 일어나 돌이키지 않으면 용서받을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바울은 끝이 없는 형제 사랑을 강조한다. 형제 사랑에 관해서는 바울이 더 쓸 것이 없을 만큼 성도들은 배운 대로 사랑을 실천하고 있었다. 고난 중에 사랑을 유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겠지만, 그 사랑 때문에 거룩할 수 있었고 고난을 이겨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사랑에는 다함이 없고, 더할 나위 없는 사랑도 없다. 그래서 바울은 “더욱” 사랑하고 “지속적으로” 사랑하라고 당부한다. 사랑은 한 번의 사건이나 행사가 아니라 삶의 방식이어야 한다는 의미다.
    
-“더욱”과 “지속적으로” 사랑하는 삶의 방식은 거룩함과 하나 되어 하나님 나라 백성다움을 드러내게 할 것이다.
    
-자신과 이웃을 향한 사랑의 출발점은 게으름과 나태함으로 인해 내가 타인에게 짐이나 부담이 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것을 나누고 어려움을 돕는 것도 중요하지만, 말로만 사랑을 떠들지 말고 자기 할 일을 하여 믿지 않는 자들에게 신세를 지지 않는 것이 외인들을 사랑하는 길이다. 성실하지 않고 요행만 바라는 마음은 그리스도인에게 합당하지 않다.
    
-형제를 사랑하는 첫걸음은 자기 할 일을 성실하게 하는 것이다(11~12절). 데살로니가 교회의 사랑은 마게도냐 전역에 소문날 정도였지만, 정작 교회 안에는 태만하게 굴면서 다른 사람의 수고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렇기에 바울은 남을 사랑하기에 앞서 자신부터 책임져야 할 것을 가르친다. 예수님의 재림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삶의 걸음에서 그날이 오기 전까지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사랑에는 끝이 없다. 평생 그 범위를 넓히고 그 깊이를 더해가야 하는 영역이다.
    
    
    
*주님, 음란한 세상 속에서 거룩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세상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내겠습니다.
*주님, 그것은 사랑임을 압니다. 더욱, 그리고 지속적으로 살아내도록 집중하겠습니다.
*주님, 남을 사랑하기에 앞서 먼저 공동체에 해를 끼치지 않는 성실한 삶이 먼저임을 깨닫습니다. 목사로서 교회 공동체에 짐이 되지 않게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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