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전 5:12-28 그가 이루시리라
데살로니가전서의 마지막 단락은 여러 개 독립적인 권면으로 이루어진다. 이 권면들은 다른 서신서에서도 발견된다는 점에서 어느 교회에나 적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내용들이다. 특히 바울은 교회 안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갈등 상황을 어떻게 예방할 수 있는지 가르쳐준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성도들이 다양한 역할을 하며 함께 교회를 든든하게 세워갈 길을 제시한다.
1. 마지막 권면들(12~22절)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한 핍박이 있었고 바울의 선교팀이 예정보다 일찍 떠나야 했던 상황이 있었으므로, 데살로니가 교회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지도자들의 리더십 확립이 중요했다. 지도자들의 리더십 아래 회중의 믿음이 견고해져서 환란을 잘 통과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따라서 바울은 성도들에게 그들의 영적 지도자들에 대한 존경과 사랑과 감사를 표현함으로써 그들을 지지해 주라고 한다.
12절에서 교회 지도자들의 특징이 세 가지로 나타난다. 첫째,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자기 영광을 추구하는 자들이 아니며 목양하는 성도들의 필요를 채우는데 아주 열심히 하는 자들이다. 또한 설교와 가르침과 돌봄에 있어서 최선을 다한 자들임을 암시한다. 둘째, “주 안에서 다스리는 자들”이다. “다스리다(프로이스테미)”는 “돌보다”의 의미도 있다. 즉, 당시 로마 시대의 후원자(patron)처럼 성도들을 잘 이끌고 돕는 지도자를 가리킨다. 이런 지도력과 돌봄을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 안에서 행하는 지도자들이다. 셋째, “너희를 권하는 자들”이다. 개역 개정은 “권하다”로 번역되었지만, 영어 번역들은 “경고하다, 훈계하다”로 번역한다. 복음 선포에 있어서 훈계와 경고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긍정의 복음만이 아니라 나태한 영혼을 위한 따끔한 채찍과 같은 말씀이 필요하다.
12절에서 이들을 ‘알라’고 한 바울은 13절에서 이들을 “사랑 안에서 가장 존귀하게 여기라”고 권한다. ‘사랑’은 그리스도인 간에 나타내야 할 가장 중요한 모습이다(1:3; 3:12; 4:9). 교회의 지도자들이 수고와 다스림과 훈계의 사명을 신실하게 감당하고 있다면, 회중은 “그들의 역사 때문에” 교회가 얻은 유익 때문에라도 마땅히 그들을 알아주고, 가장 귀히 여겨줌으로써 그들에게 지지와 격려를 보내야 한다. 지도자가 회중을, 최선을 다해 섬기고 돌보며, 회중이 지도자를 최고로 귀하게 여김으로써 교회 안에서 모든 성도 간의 화목을 성취해야 한다(13b절). 하나 됨과 화목은 교회가 세상에 대해 반드시 보여주어야 할 덕목 중에 하나다. 교회가 하나 되지 못하면 세상에 결코 선한 영향을 줄 수 없고, 교회가 전하는 복음을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14절부터 바울은 교회 회중에 대한 권면을 이어간다. 여기에서 권면의 대상으로 표현되는 이들은 “게으른 자들”을 제외하고 현실에 존재하는 특정한 무리였는지에 대해서는 확실치 않다. 먼저 “게으른 자들”은 자기가 맡은 일을 하지 않고 자기 식량도 벌지 못해 말썽과 혼란을 일으키는 자들이다. 이들은 자기들의 직업을 버리고 영적인 행동만을 하며 재림을 기다리는 자들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노동 거부로 인해 더 구제가 필요한 자들에게 피해를 주며, 교회의 재정 운영에도 피해를 준다. 바울은 노동을 거부하면서 재림을 기다리는 자들을 책망하며, 자기 손으로 일을 하여 먹으라고 분명히 경고했었다(4:11).
“마음이 약한 자들”은 원어상으로 “작은 혼을 가진 자들”이라는 뜻인데, 교회 안팎의 사람들과 사건으로 인해 의기소침해지고 풀 죽어 있는 자들을 가리킨다. 특히 교회가 경험하고 있던 압박과 핍박으로 인해 믿음이 약해진 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들에게는 그리스도와 그의 백성의 최후의 승리를 상기시킴으로써 낙심치 않도록 격려해야 했다.
“힘없는 자들”은 몸이 병들고 연약해진 자들을 가리킬 수 있고, 영적으로 연약하여 우상숭배 혹은 성과 관련된 죄에 빠진 자들을 가리킬 수 있다. 하지만 바울의 강조점은 영적으로 연약한 자들에 더 방점이 있다. 영적으로 성숙하고 강한 자들은 영적으로 연약한 자들을 도와주어야 한다. 특히 이방인 중에 그리스도를 믿어 교회 구성원이 된 경우 이방인의 생활 방식에서 그리스도인의 생활 방식으로 변화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약육강식의 원리가 지배하는 세상과 달리 교회는 연약한 자를 붙들고 지지하여 함께 성숙하고 성장하는 길로 가야 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포괄하여 서로 “오래 참으라”고 권면한다. “오래 참음”은 성령의 열매(갈 5:23)이며, 성급한 직설이 난무하는 세상을 닮아가는 오늘날 교회에 매우 필요한 성품이 아닌가 싶다.
“악으로 악을 갚지 않는 것(15절)”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성도에게만 아니라 불신자에게도(“누가 누구에게든지”) “선을 행함”으로써 그들을 도전하고 감화시켜야 한다. 복수를 포기하고 도리어 선을 행하는 모습이야말로 불신자들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상식을 뛰어넘는 선행이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선행이다.
바울은 공동체적 성품(14~15절)을 다룬 후에, 영적 성품(16~18절)을 다룬다. 그리고 이후에 성령의 역사(19~22절)로 이어간다. 16~18절은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불리는 성도의 영적 자질 세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항상 기뻐하는” 것이다(빌 4:4; 롬 14:17; 갈 5:22). 성도의 삶은 기뻐할 일만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환난을 만나더라도 그것이 영적 성숙(인내)을 가져옴을 기억한다면 의지와 소망으로 기뻐할 수 있다(롬 5:3). 둘째,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다(엡 6:18). 성도가 고난 중에 기뻐할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방법은 기도하는 것이다. 셋째, “모든 상황 속에서 감사하는” 것이다(빌 4:6). 성경은 종종 기도와 감사를 연결한다(고후 1:11; 빌 1:3~4; 골 1:3). 하나님이 고난 중에 있는 성도를 방치하지 않으시며 돌보고 계심을 믿고 감사할 때 고난은 유익이 된다. 이와 같은 성도의 영적 자실 세 가지는 데살로니가전서 3:10에서 “너희 믿음이 부족한 것”으로 인한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이 단락에서 제시한 것이다.
그리고 바울은 성령이 이끄시는 예언은 격려가 되지만, 동시에 거짓된 예언이 있음을 상기시키며 주의를 요청한다(19~20절). 영적인 현상을 다 좋은 것으로 여기지 말고 전부 테스트를 한 후에 좋은 것을 취해야 한다(21절). 테스트를 통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그것은 틀린 것일 뿐 아니라 악한 것이다(22절). 따라서 이런 악하고 위험한 영적인 현상을 공동체에서 제거하여 성도들에게 영적 피해가 없도록 막아야 한다.
2. 마무리 인사(23~28절)
바울은 헬라 서신의 전형적 종결 방식대로 서신을 마무리한다(23절 기원 혹은 기도, 26절 문안 인사, 28절 축복). 평강의 하나님이 그들을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길 기원하고(롬 15:33; 16:20; 빌 4:9), 그들의 영과 혼과 몸이 흠 없이 보전되기를 기원한다(23절, 약 1:4; 행 3:16). 여기에 바울은 몇 가지 당부를 보탠다. 23절에 재림 때까지 흠 없게 보전될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삶, 24절에 그리스도인의 삶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역사, 26절에 형제 사랑의 중요성이 재차 강조되며 이어진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의 재림이 분명히 있을 것을 상기시키면서, 성도가 그날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말고 온 존재가 거룩한 모습으로 보전되어 있으라고 한다. 성도를 부르시는 분은 미쁘시므로 결코 성도의 삶이 실패하도록 방치하지 않으신다(24절, 롬 8:30; 고전 1:8~9; 빌 1:6). 따라서 바울은 미쁘신 하나님의 일하심에 순종하여 그분의 최종적 판단 앞에서 흠이 없다고 인정받는 성도와 교회 공동체가 되라고 엄숙히 명령한다.
나는?
-종말을 살아가는 성도의 삶은 무엇인가? 먼저 지도자를 향하여서는 우리를 위해 수고하고 권하며 다스리는 지도자를 잘 알고,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는 것이다. 교인 간에 화목을 도모하는 것도 지도자를 위한 길이다. 바울 일행을 향한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사랑과 지지가 이들을 환난 중에도 살게 했듯이, 지도자는 사랑과 격려를 주고 받는 공동체를 통해서 만들어진다. 지도자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과 “사랑 안에서” 귀히 여기는 것은 다르다.
-먼저 1세기 당시 초대교회의 상황 속에서 살펴보면, 당시 데살로니가 교회에서는 야손과 같이 부유한 상류 계층의 사람들이 자신의 집을 교회로 주로 사용하며 지도자적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들의 사역을 인정하고 존중할 것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목회자를 존경하라는 의미로 적용하는 무리다. 공동체 안에서 희생의 폭과 깊이를 기꺼이 감당하며 공동체를 이루어가기 위해 헌신하는 지도자적 자질을 가진 무수한 섬기는 이들을 인정하며 격려해 주라는 바울의 권면이다.
*지도자를 귀히 여기며 격려하는 것은 지도를 받는 사람의 마땅한 의무다. 좋은 지도자와 좋은 공동체는 함께 자라기 마련이다.
-지체를 향하여서는 연약한 지체를 향한 우리의 태도를 먼저 점검하라고 한다. 삶이 무질서한 자를 징계하고, 소심한 자를 격려하라고 한다. 믿음이 연약한 자를 붙들어주고 나와 생각이 다른 자를 참아주고 기다려주라고 한다. 이해가 충돌할 때 손해 보는 쪽을 택하고 악에 대해서도 선으로 맞서라고 한다. 이것이 종말에 합당한 성도의 삶이다.
-각 사람의 상태에 맞게 적절한 도움을 주라는 의미다. 바울은 게으르고 무질서한 이들을 경고하고, 소심한 이들을 위로하며, 마음이 나약한 이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잡아 주라고 권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모든 사람에 대해 “오래 참으며 악을 선으로 갚아라.”라고 말한다. 우리 더온누리 공동체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가? 각 사람의 상황을 잘 헤아리며 적절하게 돕고 있는가?
-고난의 상황 속에서는 고난과 핍박 중이더라도 항상 기뻐하고 쉼 없이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종말에 합당한 성도의 삶이다. 그것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하는 하나님의 뜻이다. 이런 삶은, 삶을 이 땅이 아닌 하늘의 시간에서 보고, 오늘이 아닌 영원의 시각에서 보며, 내 중심이 아닌 하나님 중심으로 볼 때 가능하다. 또한 말씀을 깨닫게 하고 거룩한 삶을 가능케 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를 의지할 때만 가능하다. 평강의 하나님의 미쁘심을 의지할 때만 가능하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도 기뻐하고 기도하며 감사하는 믿음의 삶을 살길 원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을 늘 기뻐하면서 모든 것을 기도로 하나님께 아뢰고, 모든 일에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기를 바라신다. 지금 우리의 삶에는 하나님으로 인한 기쁨과 하나님을 향한 기도와 감사가 풍성한가?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거룩한 삶을 가능하게 하시는 성령님의 사역을 막거나 방해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내가 취해야 할 좋은 것은 무엇이고, 또 버려야 할 악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약속을 반드시 이루시는 신실한 분이시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을 벌주고 멸망에 처하게 하실 것이다. 하지만 사랑으로 택하시고 부르신 자들은 끝까지 거룩하고 흠 없이 지켜주셔서 당신의 나라와 영광에 들어가게 하실 것이다. 구원과 거룩함을 약속하시고 성취하시는 미쁘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주님의 다시 오심을 준비하며 살아내는 공동체에는 그에 따르는 건강한 지표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영적 권위가 존중받는 공동체, 다양한 영적 필요를 채우는 공동체, 성령에 순종하여 거룩함을 유지하는 공동체가 그것이다. 더온누리 공동체에 속한 성도들의 삶이 이와 같은 지표들이 세워져 가는 건강한 신앙이기를 기대해 본다.
*주님, 공동체를 위하여 수고하고 애쓰는 지도자적인 이들을 존중하고 격려하며 사랑하겠습니다. 이들이 없으면 공동체가 건강하게 설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그들에게 힘을 주십시오.
*주님, 각 사람에게 각 상태에 적절하게 돕기 위해 공동체가 진실해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나의 시선과 기준보다 그들이 처한 상황과 여건, 그 마음을 깊이 헤아릴 수 있는 성숙한 시선과 마음을 주십시오. 잘 돌보겠습니다.
*주님, 어떤 상황이든 기뻐하고 기도하며 감사하겠습니다. 거룩한 삶을 살아내기 위해 성령님의 도우심을 철저하게 의뢰하겠습니다. 악을 선으로 이기겠습니다. 도와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