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 5:1-14 완공된 성전, 언약궤를 들임으로 비로소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 되었다.
성전 완공 후 봉헌 예식을 거행하는데 첫 순서로 여호와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가 시온성에서 예루살렘의 완공된 성전으로 메어 올려졌다. 솔로몬은 이 일을 위해 전국에서부터 모든 지파의 대표들을 소집한다. 이는 언약궤에 대한 경외심을 표하는 동시에 모든 민족에게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고취하기 위함이었다. 지성소 그룹 날개 아래 언약궤를 안치하는 순간, 하나님의 영광이 구름으로 나타나 성전에 가득하였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두실 곳으로 인정하셨음을 보여준다.
1. 성전 완공(1절)
‘모든 일이 끝났다(1절; 왕상 7:51)’라는 문장으로 성전 건축물과 기구의 제작이 완료되었음을 알린다. 저자는 솔로몬과 다윗을 성전 건축의 공로자로 언급한다. 솔로몬은 성전에 필요한 모든 기구를 만든 자로 소개되어 건축의 전반이 그의 지휘 아래 이루어졌음을 시사한다. 다윗이 하나님의 성전을 위해 헌납한 보석, 전리품은 성전 건축 비용을 담당한 실제적인 동력이었다. 그의 봉헌물은 건축을 마친 후 성전의 재무를 위해 저장될 수 있을 만큼 넘쳤다.
성막을 제작하는 데 이스라엘이 자원하여 드린 헌물과 헌신(출 35:21~29), 모세와 이스라엘의 순종(출 39:42; 40:17~33)이 있었듯이, 성전을 건축하는 데도 다윗의 아낌없는 봉헌과 헌신, 솔로몬의 순종과 추진력이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 모든 배후에서 함께하신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를 빼놓을 수 없다. 다윗의 아들이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건축할 것이라는 예고대로(대상 17:12), 하나님은 그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셨다. 그와 같이 하나님이 다윗에게 약속하신 영원하고 견고한 왕국(대상 17:12~14)이 성취될 것이다.
2. 언약궤를 성전으로 옮김(2~10절)
성전 완공 후 솔로몬은 여호와의 언약궤를 성전으로 옮기는 행사를 시작으로 성전 봉헌식(낙성식)을 거행한다. 성전 공사 기록(3:1~5:1)은 열왕기상 6~7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게 기술되었고, 법궤 운반 및 성전 봉헌 내용(5:2~7:22)은 열왕기상 8:1~9:9보다 상세하게 기록되었다. 또한 역대하 3~4장의 성전 공사 기록에 비해서도 비중 있게 다뤄진다. 언약궤 운반에 대한 기록은 다윗의 언약궤 운반(대상 13, 15~16장)과 모세 때의 성막 제작과도 긴밀하게 연결된다.
2~3을 통해 솔로몬이 그가 왕위에 올라 기브온에 올라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을 때처럼(1:2~3), 이스라엘 장로들과 각 지파 지도자를 소집하여 언약궤를 옮기고 낙성식을 거행하는 일에 동참하게 하는 모습을 소개한다. 솔로몬이 지도자들을 소집하였을 때는 제7월(에다님월)이었다(3절; 7:8~10; 왕상 8:2, 65). 성전 완공이 솔로몬 제11년(주전 959) 제8월(불월)인 점(왕상 6:38)을 감안하면 낙성식은 그다음 해 제7월에 거행되었다.
여호와의 언약궤는 규례에 따라 레위인들(고핫 자손)이 어깨에 메고 운반했다(4~5절). 본문에서는 레위 제사장이 궤를 올렸다는 설명을 세 번 반복한다(4, 5, 7절). 궤의 고리를 빼지 않고 고리에 채를 꿰어 옮겼음을 언급하여(9절), 솔로몬이 다윗의 잘못과 불순종을 반복하지 않고 하나님의 정하신 규례에 순종했음을 보여준다. 이와 더불어 법궤뿐 아니라 기브온에 있던 회막과 회막의 기구들(1:3~6; 대상 16:39~40)도 성전으로 운반해 보관한다. 이것은 다윗의 당부(대상 22:19)에 대한 이스라엘과 솔로몬의 순종을 잘 보여준다. 덧붙여 광야 때 지은 성막이 새로 지은 성전에 합류됨으로써 하나님의 임재가 새 성전에 자리 잡을 것을 함의하기도 한다.
솔로몬과 회중은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마침내 궤를 성소에 안치한다. 이날 이스라엘이 제사를 통해 하나님께 바친 양과 소는 기록할 수도,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았다(6절). 솔로몬과 이스라엘의 아낌없는 감사와 헌신을 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언약궤는 그 본연의 자리인 지성소 안 두 그룹 날개 아래에 자리 잡는다(7절). 언약궤는 지성소 안의 그룹의 편 날개 아래 완전히 덮인다. 이는 다윗이 알려준 양식(대상 28:18)을 따른 것이다. 궤의 고리를 꿴 채는 그 길이가 길어서 지성소 앞에서는 보이나 밖에서는 보이지 않았다(9절).
궤 안에는 두 돌판, 즉 십계명이 적힌 돌판만 들어 있었다(10절). 모세 당시에는 돌판 외에도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만나 항아리가 있었으나(히 9:4), 이제는 돌판만 남아 있었다. 출애굽기의 기록에 따르면 돌판은 궤 안에(출 25:16), 지팡이와 만나는 궤 앞에 놓았다(출 16:33~34; 민 7:10). 하지만 광야에서 법궤를 운반할 때는 돌판과 더불어 지팡이와 항아리도 함께 넣어 운반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지팡이와 만나를 담은 항아리가 언제 어떤 과정을 거쳐 소실되었는지 알 수 없다.
3. 성전에 임한 여호와의 영광(11~14절)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지성소에 안치하고 나오자, 레위인들이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하며 하나님을 찬양한다. 음악을 담당한 레위인은 모두 다윗이 레위 자손에 따라 반열을 나누어 연주와 찬양의 직무를 맡긴 자들이다. 다윗이 언약궤를 옮긴 후 아삽과 그에 소속된 자들은 시온성 법궤 앞에서 찬양을 담당했고(대상 16:37), 헤만과 여두둔과 그들에게 소속된 자들은 기브온에 있던 성막에서 찬양 직무를 담당했다(대상 16:41~42). 각 다른 장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던 자들이 새 성전에 모여 120명의 나팔 부는 제사장들과 ‘하나가 되어, 한목소리를 내며(13절)’, “하나님은 선하시며 그의 인애가 영원하시다(13절)”를 고백하며 감사하며 찬양한다.
레위인들의 찬송 소리에 하나님의 전이 구름으로 덮였다. 성전에 가득한 구름은 “여호와의 영광” 즉, 하나님의 임재를 가시적으로 나타낸다(7:1). 하나님이 구름 가운데 나타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 대로다(레 16:2; 출 40:34~35). 새 성전에서 엄청난 광경을 목격한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임재에 압도되어 맡은 일을 수행할 수 없었다.
하나님의 영광으로 인해 성막이 거룩해지고 거주하시게 된 것처럼(출 29:43~45), 이제 하나님의 영광으로 덮인 이 성전도 거룩해졌고 하나님이 영원히 거주하실 처소가 되었다.
나는?
-성전 봉헌과 성전으로 옮겨지는 언약궤 안치 예식을 함께 하기 위해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각 지파의 수장들이 모두 모였다. 솔로몬의 건축 완공 축하와 다윗의 준비 공로를 치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만든 성전에 임재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리는 자리였다. 그렇기에 이스라엘 모든 백성의 신앙 정체성을 확인하는 교훈과 가르침의 자리이기도 했다(2~4절).
-예전에 부 교역자 시기에 내가 주도적으로 담당한 사역들이 인정받거나 보상받지 못해서 공동체는 기뻐하는 데 내 자신은 흔쾌히 기뻐하지 못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반대로 내가 담당하지 않았기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거나, 돕지 않았던 모습도 떠오른다.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감당하는 과정에서 드러나지 않아야 할 연약한 모습일 것이다. 그런데 본문의 모습은 이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기뻐하며 솔로몬의 즉위 감사 예배에 함께 한다. 하나님 나라 공동체가 이래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공동체를 꿈꾸며 사역하리라.
-솔로몬은 다윗이 했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다윗은 기럇여아림에서 언약궤를 옮길 때 레위인이 짊어져야 할 언약궤를 소가 끄는 수레로 옮기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경험했었다(대상 13:7~11). 솔로몬은 언약궤를 옮기는 방법부터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모든 순서에 이르기까지 말씀의 가르침을 따라 진행했고 레위인과 제사장들은 이 과정을 차질 없이 감당해 주었다.(4~9절).
-사역하다 보면 내가 생각해 낸 방법이 빠르고 효율적일 수는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속도와 이익이 아닌 순종과 질서를 기뻐하신다는 것을 안다면, 기꺼이 내 방법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언약궤 안에 말씀을 기록한 두 돌판을 보존해 주셨다.(10절). 언약궤와 함께 두었던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만나를 담은 항아리는 남아 있지 않았다. 오직 언약의 돌판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이것은 하나님의 통치가 지금까지 말씀(언약)으로 지속되어 왔고, 앞으로도 여전히 말씀으로 다스려질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 손에 쥐고 있는 온갖 소중한 물건들은 언제라도 빼앗기거나 사라질 수 있다. 하지만 나의 마음에 새겨진 말씀은 빼앗지 못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날마다 내 삶을 다스려가도록 기쁨으로 말씀을 순종할 때, 순종한 그 말씀이 곧 마음에 깊이 새겨진다.
-성전을 완성하고 첫 번째로 행한 일은 언약궤를 성전으로 드리는 것이었다. 언약궤가 없는 성전은 아무리 화려하더라도 빈 껍데기일 뿐이다. 궤 안에 든 두 돌판에는 언약해 주신 하나님의 통치 원리가 기록되어 있고, 이스라엘 백성과의 언약이 새겨져 있었다. 성전이라는 건물이 여호와의 임재와 이스라엘의 안전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 언약에 충성하고 순종하는 여부가 여호와의 임재를 결정할 것이다.
-말씀과 순종이 없는 교회는 건물만 유지할 뿐이다. 마음 판에 새겨진 새 언약의 말씀(렘 31:33)을 따라 사는 자녀들이 있는 곳에 주님이 임재하셔서 그곳이 곧 성전이 된다. 하나님의 임재와 다스림이 드러나는 곳, 그곳이 하나님의 은혜가 머무는 곳, 곧 성전 아니겠는가!
-이런 의미에서 우리 마음에 임재하신 성령께서 거하시는 것은 단지 거하심을 표현하는 말에 그치면 안 된다. 말씀과 순종이 함께 어우러져야 진정한 마음의 성전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고 순종하기 위하여 애쓸 때 함께 하시는 성령께서 은혜를 베푸실 것이다.
*주님, 지어진 화려한 건물이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것은 결국 말씀으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 말씀에 충성과 순종을 다할때임을 깨닫습니다. 오늘의 삶을 말씀이 일깨우고, 이끌어 말씀과 동행하는 삶이 되기를 우직하게 순종하겠습니다.
*주님, 말씀의 통치를 통해 거룩하신 하나님과 동행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