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백성 앞에서 여호와께 부르짖는 솔로몬, 나의 왕은 여호와이십니다 [대하 6:12-25]
 – 2025년 09월 21일
– 2025년 09월 21일 –
대하 6:12-25 백성 앞에서 여호와께 부르짖는 솔로몬, 나의 왕은 여호와이십니다.
    
솔로몬은 봉헌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성전 건축을 이루심으로서 다윗에게 한 약속을 지키셨음을 찬양한다. 이제 성전이 완공되었으므로, 솔로몬은 앞으로 하나님이 다윗의 후손을 통해 견고하고 영원한 왕권을 허락하시기를 간청한다. 이 하나님의 성전은 하나님의 이름이 영원히 자리할 곳이며, 하나님으로부터 기도가 응답되며 죄 사함의 은혜가 베풀어지는 장이 될 것이다.
    
성전 완공까지의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를 간증(6:1~11)한 후에 하나님께 봉헌 기도를 드린다. 14~42절(왕상 8:22~53)까지 이어지는데, 다윗 언약에 대한 지속적인 은혜(14~17절), 하나님의 응답과 죄 사함(18~21절), 여러 상황에 따른 중보기도(22~39절), 하나님의 지속적인 임재와 은총에 대한 간구(40~42절)로 나뉜다.
    
    
    
1. 이스라엘 앞에서 기도하는 솔로몬(12~13절)
솔로몬은 놋 제단 앞 대(연단)에 올라서서, 이스라엘 온 회중이 바라보는 앞에서 무릎을 꿇고 하늘을 향해 손을 펴고 하나님께 기도한다. 솔로몬이 올라선 놋 연단은 높이가 3 규빗(1.4m)으로 성전 뜰 가운데 놓였다. 이 정도 높이에서 기도하기 때문에 수많은 회중이 그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거나 기도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솔로몬이 이스라엘 앞에 무릎을 꿇고 양손을 뻗쳐 기도하는 모습은 무엇보다 그가 이스라엘 백성의 왕이기 전에 하나님을 섬기는 자임을 나타낸다.
    
기도의 내용에서도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14, 16, 17절)”, “나의 하나님(19, 40절)”으로 부르며,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왕이자 자신의 왕이심을 분명히 드러낸다. 자신과 다윗을 “주의 종(15~16, 17, 19, 20, 21, 42절)”으로, 왕을 포함한 이스라엘 백성을 “주(당신)의 백성(21, 24~25, 27, 29, 32~34, 39절)”, “주(당신)의 종들(14, 23, 27절)”로 불러 다윗이나 자신이 하나님의 종이며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하나님과 백성 앞에서 주저 없이 선언한다.
    
솔로몬의 이러한 모습과 기도에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 순복, 겸손이 잘 드러난다.
    
    
    
2. 다윗에게 약속하신 것을 들어주시기를 간구함(14~17절)
하나님을 향한 솔로몬의 기도는 찬양으로 시작한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분이며, 언약과 은혜를 온 맘으로 그 앞에서 행하는 종들에게 베푸신다고 찬양한다(14절).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 이스라엘에게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심을 상기시킨다(출 6:2~9). 하나님이 언약과 은혜를 베푸신 것은 다윗에게 한 약속(대상 17:11~14; 22:6~16)을 지키심으로써 증명되었다(16절). 그 내용은 솔로몬이 왕이 되고 성전을 건축했으며, 하나님의 은혜가 성전에 임한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그의 입으로’ 다윗에게 말씀하신 것을 ‘그의 손으로’ 지키고 이루셨다(15절). “이루다(말레)”로 번역된 단어는 “최고 수준으로 이루신 것을 의미한다. 아들 솔로몬이 성전을 짓게 만드시겠다고 약속하셨고, 그대로 성취하셨음(대상 17:11~12)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또 다른 하나는 영원한 왕조의 약속, 즉 다윗을 위해 집을 세우시겠다는 것이다(대상 17:10).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후손 가운데 이스라엘 왕이 영원히 끊어지지 않을 것(삼하 7:16)을 약속하셨다.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성전 건축의 약속을 이루셨으므로, 영원한 왕조의 약속 또한 이루어주시기를 간청한다(16절). 솔로몬의 이와 같은 간청은 성전 건축이라는 자신의 공적에 근거하여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요구할 자격이 없다. 단지 다윗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해서(“다윗을 위하여”, 16절) 이 약속 이루어주시기를 소망한다. 한편, 이 언약은 사무엘서에서는 무조건적인 약속으로 제시되었으나, 역대기 저자는 이 약속에 “내(하나님의) 율법을 지킨다면(16절)”이라는 조건을 붙여 놓았다. 이는 유다 왕국의 멸망에 대한 저자의 경험을 반영하고 있다. 왕조가 영원할 것이라는 점에서는 무조건적인 약속이다. 그러나 유다 왕국의 멸망을 겪은 저자는 율법에 대한 순종이 없다면 왕조의 단절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솔로몬은 다윗에게 약속하신 것을 확실하게 하여 주시기를 구한다(16~17절).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약속하신 것은 부귀영화였다(대하 1:12). 성전과 왕조에 대한 약속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항상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해서 기도할 뿐이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하신 약속을 확실하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 자신이 확실하여 변하지 않으시는 ‘신실한’ 분이시며(신 7:9; 사 49:7), “아멘”이시기 때문이다(계 3:14).
    
    
    
3. 자기 기도 들어주시기를 간구함(18~21절)
일찍이 솔로몬은 하나님의 성전을 “주께서 영원히 계실 처소(6:1~2)”라고 했다. 그런데 본문은 “하나님이 참으로 사람과 함께 땅에 계시리이까 보소서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 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성전이오리까(18절).”라고 묻는다. 하나님은 하늘이나 땅이 품을 수 없는 크신 분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문자 그대로 성전에 있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곳에 거룩한 이름을 두셨다. 그러므로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하면서 간절히 부르짖는 기도는 두 가지다.
    
첫째, 하나님께서 성전 안에 거주하여 주시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항상 성전을 지켜봐 주시기를 기도한다(20절). 둘째, 자신과 이스라엘 백성의 기도 들어주시기를 기도한다(21절). 사실 이 두 가지는 한 가지 기도라고 해도 무방하다. 주야로 하나님께서 성전을 보신다는 것은 기도에 밤낮으로 응답하신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성전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처소인 하늘에서 기도에 응답하여 주실 것이다.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한 뒤 그것을 근거로 자신의 부귀영화를 구하지 않았다. 그가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성전을 기도의 장소로 인정해 주시는 것이다.
    
한편, 솔로몬은 기도를 들으시고 용서하여 주시기를 구한다(21절). 여기서 ‘용서’는 어떤 구체적인 내용이 아니다. 단지 솔로몬이 고백한 기도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가 죄에 대한 고백이며, 죄로 인한 고난에서 구원을 간구하는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솔로몬은 다윗에게 말한 약속을 지키셨고 앞으로도 지키실 하나님은 새로 건축된 성전에 거하시며, 이곳에서 사람들이 부르짖는 기도를 들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간구한다.
    
한편, 19~39절까지의 간구 중에는 “들으시옵소서”가 자주 반복된다(19, 20, 21*3, 23, 25, 27, 30, 33, 35, 39절). 또한 “사하소서”(21, 25, 27, 30, 39절)도 반복하여 등장한다. 하나님 앞에서 죄짓는 인간의 연약한 근본과 현실을 드러내고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수적임을 암시한다.
    
    
    
4. 여러 상황에 대한 중보기도(22~25절)
22~39절은 백성들의 기도에 나타날 일곱 가지 구체적인 내용들을 제시한다. 각 상황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신 율법을 비롯하여 레위기 26:14~45과 신명기 28:15~68에 기록된 저주의 상황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첫 번째 기도는 법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시비에 관한 것이다(22~23절).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맹세하는 것과 관련하여 의로운 판결을 내려주시기를 기도한다. 고대 근동의 법정에서는 증거가 분명하지 않은 사건에 대하여 당사자들 사이의 맹세가 중요했다. 신들 앞에서 하는 맹세와 함께 진술되는 내용은 사실로 받아들여졌는데, 만약 그것이 거짓 맹세라는 것을 밝히기는 매우 어려웠다. 이처럼 사람이 판단하기 어려울 때는 하나님께서 판단하시기를 구해야 한다. 하나님의 판단은 가장 정확하고 의롭기 때문이다. 여기서 하는 맹세는 만일 자신이 정말 죄를 지었다면 저주를 받겠다는 형식의 맹세다. 이런 맹세는 자원하여 하기보다 강요 때문에 하게 된다. 그러므로 맹세 약속을 지키는 사람은 자신의 큰 피해에 대해서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는 상황에 처하여 마음의 아픔을 감내하게 된다. 반면에 맹세하는 사람 역시 매우 절박한 상황에서 불안과 좌절을 겪게 된다. 이런 경우에 하나님만이 의인에게는 보상을, 죄인에게는 심판을 주실 분인 것이다. 이 모든 사례는 실제 증거나 증인 없어 정의로운 심판을 내리기 어려울 때, 하나님이 하늘에서 이들의 맹세를 듣고 죄인은 벌을 받고 의인은 신원 되도록 간섭하시기를 절실히 요청한다.
    
두 번째 기도는 포로에서 자유롭게 되기를 원하는 기도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죄를 지어 전쟁에서 패배했을 때 대한 기도문이다(24~25절). 전쟁에서 패배하면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가게 된다. 그때 남아 있는 사람들이 성전으로 와서 하나님의 이름을 인정하고 기도하면서 은혜를 구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죄를 용서하시고 잡혀간 사람들을 돌려보내 주시기를 기도한다. 주님의 이름을 인정한다는 것은 자신들이 겪고 있는 고난이 하나님에게서 왔다는 것, 고난을 주신 그분은 의로우시다는 것, 그리고 고난에서 구원하실 분도 하나님뿐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나는?
-솔로몬은 성전의 존재가 약속한 것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그분의 은혜 증거라고 고백한다. ‘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손으로 이루셨다’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단지 정보가 아니라 반드시 행동과 사건으로 일어나는 창조의 도구라는 의미다. 그렇기에 솔로몬은 이스라엘의 왕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지켰을 때 주께서 그 나라를 지켜주시겠다고 했던 약속도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는다고 고백한다.
    
-솔로몬에게 성전은 단지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분의 신실하심과 말씀의 창조성을 입증하는 증거였다. 말씀하심으로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 기록된 말씀(성경의 이야기)에서 생생하게 증거한다.
    
-솔로몬은 성전을 지은 후 자신이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 성전이 결코 하나님을 용납할 수 있다고 여기지도 않았다.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달라고 구하지도 않았으며, 오로지 그 성전을 기도의 장소가 되게 해달라고 구했다. 자기뿐 아니라 주의 백성들이 이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 언제든 하나님께서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시고, 언제든 관계가 회복되는 곳이 되게 해달라고 구했다. 공간 자체를 숭배하거나 공간 안에 하나님을 가두기보다는, 소통과 회복의 장소로 사용되기를 바랐다.
    
-이 성전 앞에서 참과 거짓, 정의와 불의를 심판해 주시도록 간구할 때 주님은 악한 자를 심판하시고 정의로운 자의 공의를 실현해달라고 청한다. 또한 자기 백성이 훗날에 범죄하여 타국으로 포로로 잡혀가서 그 땅에서 뒤늦게 죄를 깨닫고 이 성전이 있는 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 그렇게 죄가 쌓이고 쌓여서 더는 가망이 없어서 하나님께서 극단적인 심판을 하신 후에라도, 백성이 주님을 기억하고 기도하면, 기도를 들어달라고 청한다.
    
-성전은 은혜와 자비의 장소다. 하나님의 성품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장소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성전을 향한 솔로몬의 기대와 간구를 성취해 주셨다.
    
    
-완공된 성전 앞에서 드리는 솔로몬의 기도는 자기 생각을 관철하는 기도가 아니었다. 그의 기도는 언약을 지켜 자기 백성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만을 의지한다는 신앙 고백적 기도였다(12~14절). 솔로몬의 이런 모습이 백성들에게 얼마나 본보기가 되었을까!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무릎 꿇는 왕의 모습은 백성들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참된 왕이 누구인지 가르쳐주는 훌륭한 신앙교육이 되었을 것이다. 혹시 기도하는 시간, 내가 하고 싶은 말만 쏟아내고 있지는 않는가!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기도를 통해 어떤 사람을 기뻐하시고 또 함께하시는지 분명하게 가르치신다. 아버지 다윗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이 자신에게 이행되길 소원한다면 솔로몬은 다윗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지켜 행하면 된다(15~17절). 이와 관련하여 나는 혹시 말씀대로 살아가는 삶에는 관심 없고, 은혜만을 하나님께 요구하고 있지는 않는가? 정직하게 나의 신앙을 되돌아볼 때다.
    
-솔로몬은 다윗에게 약속하신 영원한 왕조의 약속을 지켜달라고 하나님께 호소한다. 무례하게 보일 수 있지만, 이는 사실상 그 조건으로 말씀하신 “하나님의 율법 준수” 약속(16절)을 자신도 지키겠다는 뜻이며 하나님은 언약에 신실하신 분임을 신뢰한다는 의미이기에, 무례한 기도가 아니라 믿음의 기도다. 우리는 종종 말씀(약속)하시는 하나님을 의식하지 못한 채 내 필요만 구하고 있지 않은가? 약속의 말씀을 들어 믿음으로 기도해야 할 것이다.
 
-세상 만물보다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이시다(18절).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는 세상 모든 공간을 동원해도 담아낼 수 없고, 가장 진귀한 보화를 가져와도 비교할 수 없다. 솔로몬의 성전이 수많은 공력을 쏟아부어 완성되었더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담아낼 가치가 없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사람이 만든 성전에 임재하신 것은 외형을 취하지 않으시고 중심을 보셨기 때문이다. 작고 초라한 나를 거룩한 성전 되게 하시고 사랑의 교제로 함께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크고 크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을 돌아보신다(19~25절). 성전에 하나님의 이름을 두신 것은(6절) 백성들이 그 이름을 부르게 하기 위함이다(시 9:10). 온갖 죄와 허물이 있어도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을 찾아 용서를 구할 때 외면하지 않으시고 용서해 주신다. 요즘 나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무엇을 간절히 소원하고 있는가!
    
-회개는 용서를 가져온다. 자신의 죄로 인하여 고난을 받는 중에라도,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기도하면 고난에서 구원하신다. 그리고 그들의 기도를 들어 주신다. 기도 응답은 관계 회복의 중요한 신호다. 기도 응답이 없는 삶이 죽음이나 다름없음은 과장된 표현이 아닐 것이다.
    
    
    
*주님, 솔로몬의 믿음의 기도가 제 마음을 때립니다. 저도 약속의 말씀을 근거하여 호소하고, 신실하게 이루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늘 주님을 찾고 또 찾겠습니다.
*주님, 약속(말씀)을 따라 행하는 순종의 삶에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또 기뻐하심을 깨닫습니다.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에 마음이 고정되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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