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솔로몬의 지혜 반의반만이라도 있었다면…. [대하 10:1-19]
 – 2025년 09월 27일
– 2025년 09월 27일 –
대하 10:1-19 솔로몬의 지혜 반의반만이라도 있었다면….
    
이스라엘이 두 나라로 분열되고 만다. 백성들은 솔로몬의 과중한 세금과 노역에 힘들었으므로, 그의 아들 르호보암에게서 관대함과 호의를 요구한다. 하지만 르호보암은 원로들의 지혜로운 회유책을 버리고, 대신 젊은 신하들의 강경책으로 그들에게 대답한다. 백성은 자신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지도자를 원치 않았다. 결국, 북쪽 열 지파는 여로보암을 왕으로 삼았고, 유다와 베냐민 지파는 르호보암을 왕으로 세운다.                                                                           
    
이스라엘 백성이 과도한 세금과 힘든 노역에 대해 불만을 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르호보암은, 이 문제에 대해 젊은이의 혈기와 야망으로 대처하며 하나의 나라가 두 나라로 분열되게 하였다. 엄밀히 언급하면 이러한 분열의 씨앗은 이미 다윗 때에 뿌려졌는데(삼하 20:1), 솔로몬의 강력한 리더십에 의해 발아하지 못하고 있다가, 마침내 르호보암 시대에 이르러 꽃을 피운 것이다.
    
    
    
1. 북쪽 지파들의 요구(1~5절)
온 이스라엘이 세겜에 모였다(1절). 과거 여호와께서는 솔로몬에 대한 징계로 선지자 아히야의 옷을 열두 조각으로 찢게 하신 뒤 여로보암에게 열 조각을 주시고 한 조각, 즉 한 지파를 예루살렘을 위해 남겨놓겠다고 말씀하셨었다(왕상 11:31~32). 예루살렘을 위한 한 지파는 유다 지파다. 그렇다면 나머지 한 지파는 누구일까? 대부분의 학자는 유다 지파 남쪽에 자리 잡고 있어 지리적으로 북 왕국에 속할 수 없었던 시므온 지파라고 말한다. 한편으로 시므온 지파는 이미 유다 지파에 흡수되어 그 영향력이 매우 미미해져 있었기에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기에 구태여 계산될 필요가 없는 한 조각으로 남았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세겜에 모인 온 이스라엘은 유다와 시므온을 뺀 나머지 자파들을 가리킨다.
    
한편 베냐민 지파가 초기에는 르호보암의 명령을 받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11:1~2). 이 역시 베냐민 자파가 남 왕국과 북 왕국 사이에 끼어있으므로, 초기에는 르호보암을 따르는 성향이 강했으나, 그 이후 남북 왕국의 세력 판도에 따라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이런 모습은 베냐민 지파에 속한 사울 가문과 다윗 왕국 사이의 오래된 갈등이 원인이 될 수 있었다. 열왕기는 유다 지파만 다윗의 집을 따랐다고 기록하고, 여로보암이 제단을 세운 벧엘은 원래 베냐민 지파의 성읍이었다(수 18:21~22; 왕상 12:20).
    
애초에 온 이스라엘은 르호보암을 왕으로 세우려는 의도를 하고 있었다(1절). 하지만 그것은 “조건적”이었다. 그들에게는 강력한 왕 후보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는 선지자 아히야에 의해 북 왕국의 왕으로 지명받은 여로보암이었다. 솔로몬을 피하여 애굽에 망명해 있다가 돌아온 인물이었다(2절; 왕상 11:31, 40). 온 이스라엘은 에브라임 지파 사람 여로보암을 대표로 삼아 르호보암에게 자신들의 요구 사항을 전달했다(3절).
    
그들의 요구는 솔로몬이 부과했던 세금과 노역을 가볍게 해달라는 것이다(4절). 로호보암도 부인하지 않은 것처럼, 솔로몬은 다양한 건축 사업을 위해 과중한 부담을 백성들에게 떠안겼다. 그리고 이후 솔로몬 왕국의 번영에서 생겨나는 혜택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유다 지파에게로 집중되는 성향이 있었다. 그러므로 유다 지파와 나머지 지파들 사이에 경제적이며 정치적인 불균형이 점차 심화하였는데, 여로보암과 온 이스라엘의 요구는 이와 같은 불균형을 시정해 보려는 의도가 담겨있었다. 르호보암은, 이 요청은 삼 일 뒤에 다시 이야기하자고 하면서 그들을 돌려보낸다(5절).
    
    
    
2. 원로들과 청년들의 조언과 르호보암의 답변(6~15절)
먼저 르호보암은 솔로몬 때부터 왕을 섬겼던 원로들에게 자문한다(6절). 원로들은 백성들을 잘 대하여 그들을 기쁘게 하고, 그들에게 유익이 되는 내용으로 대답하라고 충고한다(7절). 그러나 르호보암은 그들의 충고를 따르지 않고 자신과 함께 자라났던 청년 신하들에게 다시 조언을 구한다(8~9절).
    
청년 신하들의 조언은 “르호보암의 새끼손가락이 솔로몬의 허리보다 굵다(10절)”였다. 이는 비유적인 표현으로, 르호보암은 솔로몬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할 수 있는 자격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솔로몬이 무겁게 한 멍에를 더 무겁게 하고, 솔로몬은 가죽 채찍을 사용했지만, 이제는 전갈을 사용하여 그들을 고쳐나가겠다고 답변하라고 조언한다(11절). 채찍은 중한 상처를 주지만, 전갈은 죽음을 줄 수 있는 것이다. 11절의 “치셨으나(야사르)”로 번역한 단어는 ‘말을 잘 듣지 않고 떼쓰는 어린이에게 매를 때려서 그의 나쁜 행동을 고친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즉, 솔로몬의 뒤를 이은 르호보암은 의로운 교사의 자격으로 행동이 불량한 백성들에게 벌을 주어 자기 뜻에 맞게 고쳐 나가려 한다는, 오만하고 독선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12~15절은 르호보암의 답변을 소개한다. 그는 청년 신하들의 조언을 따라 포학한 말로 답변하였다(13절). 르호보암이 이렇게 완강하게 행동한 것은 그 자신이 어리고 미숙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모든 일의 배후에서 하나님께서 역사를 이끌고 계시기 때문이다(15절). 하나님께서는 르호보암의 완고함을 이용하셔서, 자기 뜻을 이루시고, 자신의 말씀을 견고하게 세우신다. 르호보암의 실책만을 부각하는 열왕기와는 달리 저자는 역사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3. 북쪽 지파들의 반란(16~19절)
르호보암에게 일말의 기대라도 품고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은 그의 독선적인 태도에 크게 실망하여 다윗의 왕국을 떠나기로 한다(16절). 이때 백성이 함께 외친 말은 과거 다윗에 대하여 반란을 일으켰던 세바의 말과 동일하다(삼하 20:1). “우리가 다윗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 이 말은 “우리가 다윗의 왕국에서 우리 몫을 찾을 수 있느냐? 라는 뜻이다. “우리가 이새의 아들에게서 받을 유산이 없다”라는 말도 “우리가 이새의 아들에게 받아서 유산으로 삼을 만한 것은 없다”라는 뜻이다.
    
이후 르호보암은 유다 성읍들에 사는 이스라엘 자손의 왕이 되었다(17절). 단지 유다 지파라고 하지 않고 유다 성읍들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이스라엘의 분열이 현실적으로 지역적 구분에 기초하여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일단 국경선이 형성되면, 그 지역 안에 사는 사람들은 지파의 구분을 초월하여 자신이 사는 지역을 다스리는 왕국에 속하게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 속한 대표적인 지파가 시므온과 베냐민 지파다.
    
르호보암은 백성들의 부역을 감독하는 하도람을 보내서 이들의 이탈을 막으려고 했다(18절). 하지만 하도람은 돌에 맞아 죽는다. 이런 백성들의 행동에는 르호보암에 대한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음을 설명해 준다. 이에 르호보암은 공포에 빠져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예루살렘으로 도망친다. 백성들을 설득하거나, 다른 대안들에 대하여 협상하는 것조차 생각하지 못하는 무지하게 짝이 없는 옹졸한 왕이었다.
    
한편, 이유가 어찌 됐든 나라를 분열시킨 것은 다윗의 집에 대한 배반이었다(19절). 왜냐하면 다윗 가문은 기도의 통로이며, 예배의 장소가 되는, 즉 하나님의 통치를 받을 수 있게 하는 성전을 건축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윗의 집이 이스라엘을 실망하게 했다고 하더라도 그 가문으로부터 더 큰 은혜를 받았음을 기억해야 했다. 성전이 자신들에게 가져다주는 은혜를 귀하게 여긴다면, 이 일에 좀 더 신중해야 했다.
    
    
    
나는?
-솔로몬은 부유하고 강했다. 하지만 인간사에서 모든 것이 좋을 수 없다. 번영에 동원된 백성은 많은 토목공사로 인해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예루살렘과 유다 지파를 중심으로 한 솔로몬의 왕권이 북부 지파들의 불만을 샀다. 요셉 지파의 감독관이었던 여로보암이 솔로몬을 배신한 것도 혹독한 건축 정책과 편파 정책 때문이었다(왕상 11:26~28; 9:24). 정치적으로 하닷 르손이 에돔과 아람 지역에서 이스라엘을 대적하기 시작했다. 이런 기류 속에 여로보암은 솔로몬을 배반했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열 지파의 왕을 약속하셨다. 이런 상황들은 백성들의 민심이 급속히 흔들리게 했다(왕상 11:14~28). 솔로몬이 죽고, 독보적인 후계자가 된 르호보암 앞에 남겨진 것은 이런 복잡한 상황이었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것은 세상에 없다. 세상만사 언제나 그림자가 서리기 마련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이런 세상을 하루하루 걸으며 살아낸다. 그러므로 늘 하나님과 동행하는 민감함이 없으면, 얼마든지 신앙의 이름으로 자기 탐욕을 만족시키면서 타인의 고통을 외면할 수 있는 것이다.
    
-르호보암은 백성들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라는 원로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자기와 함께 자란 젊은 신하들의 조언대로 강경책을 고수하다 나라가 두 동강이 나는 파탄을 맞이하고 만다. 그에게 조언은 요식행위일 뿐 듣고 싶은 말을 들으려는 절차에 불과했다. 그는 하늘의 입장은 물론이고 백성들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지 않는 어리석은 왕이었다.
    
-역사상 가장 지혜로운 왕 솔로몬의 지혜가 백성들의 마음을 듣는 것이었음을 르호보암은 깨닫지 못했다. 듣지 않는 귀는 지혜 없음의 출발점이다. 에휴… 그의 아비 솔로몬의 지혜가 반의반만이라도 그에게 있었더라면…
    
-르호보암의 명백한 실책임에도 저자는 이 일을 그냥 두고 보신 하나님의 섭리가 배후에 있다고 기록한다. 인간의 실책만이 전부라면 인간 역사에는 소망이 없다. 나라가 둘로 나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일 리 없겠지만, 번영에 취해 하나님을 망각한 나라가 되느니 번영을 잃더라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나라가 되는 것이 더 나았다. 이제 서로 가시 같은 존재를 가까이 두고 늘 영적으로 긴장하며 살게 하심으로써 세상의 안정과 부요를 추구하기보다 하나님을 의식하는 백성으로 다시 창조하기를 원하셨을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주관하신다(15절). 언약에 따라 복을 주셔서 솔로몬의 통치를 통해 이스라엘을 영화롭게 하셨지만, 하나님을 떠난 솔로몬의 잘못을 벌하셔서 이스라엘을 나누어 북쪽 열 지파를 여로보암에 주신다. 언약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뜻 안에 거하는 백성을 형통하게 하시지만, 말씀을 떠나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백성을 징계하신다.
    
*솔로몬의 화려한 영광 뒤에는 누적된 과중한 세금과 고된 노역의 어두운 그늘이 있었다(4절). 하나님은 선한 동기와 목적으로 사람들의 합당한 권리를 무시하거나 부당한 의무를 지우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혹시 우리 공동체가 형제와 이웃의 형편을 고려하지 않고 과중한 요구로 짐을 지우고 있지 않는지 돌아볼 일이다.
    
*참된 권위는 억압이 아니라 섬김에서 나온다. 원로들은 백성들에게 후대하여 그들을 기쁘게 하라고 권면하지만(왕상 12:7), 르호보암은 젊은 신하들의 조언을 따라 백성을 더욱 억압하는 폭군의 길을 선택한다. 신명기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의 길은 자신을 낮춰 겸손히 섬기는 종으로 일하는 것(신 17:14~20)이며, 예수님께서 그 본을 온전하게 보여주셨다.
    
*나는 혹시 주어진 직분과 권한을 어떤 자세로 어떻게 사용하고 있을까? 원로들이 간곡하게 부탁한 대로 “성도들의 마음을 기쁘게”하는 데 선용해야 하지 않을까? 권위를 내세우는 그런 목사 되지 않아야지….
    
*지혜는 겸손하게 그리고 바른말을 “듣는” 것이다. 솔로몬이 듣는 마음을 주시도록 구한 것과 달리 르호보암은 처음부터 백성들의 요구에 귀를 닫았고, 마음을 닫았다. 물론 나라가 둘로 나뉘게 된 것은 솔로몬의 우상 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이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르호보암의 잘못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지도자에게 중요한 자질은 하나님의 뜻과 공동체의 소리를 듣는 마음이다.
    
*나는 지금 들으려 하기보다 내 생각을 관철하려고 쓸데없는 힘을 쓰고 있지 않는가? 하늘의 지혜가 하나님과 성도들의 마음을 듣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주님, 솔로몬의 영화가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역사상 가장 지혜로운 통치자의 다음이 이렇게 덧없이 나라의 분단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며,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며 걸어가는 걸음의 성실함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성실의 은혜를 구합니다.
*주님, 쓸데없이 권위와 힘을 의지하고 남용하는 르호보암의 철없는 모습이 제게도 나타나지 않도록 늘 주님의 뜻과 성도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먼저 듣는 지혜를 구합니다. 듣는 지혜를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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