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대비되는 순종과 불순종의 길 [대하 11:1-23]
 – 2025년 09월 28일
– 2025년 09월 28일 –
대하 11:1-23 대비되는 순종과 불순종의 길
    
나라는 분열되었으나 하나님은 르호보암과 남 유다에게 은혜를 베푸심으로 다윗과의 언약을 신실하게 지켜가신다. 르호보암은 북쪽 지파들의 배반에 무력을 행사하려 했지만,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전쟁을 포기한다. 이후 르호보암은 유다와 베냐민 지파를 위해 방비 태세를 갖추어, 그들에게 안전한 삶을 제공하려 힘쓴다. 르호보암 가정에는 자손의 축복이 임하고, 그의 지혜로운 행동으로 왕실의 평안이 도모된다.
    
르호보암은 41세에 왕이 되어 17년 동안 유다를 다스렸다(주전 930~913년, 왕상 14:21). 그는 당연히 자신이 아버지 솔로몬의 왕국을 그대로 이어받을 것으로 예상하였는데, 여로보암이 열 지파로 나라를 세우고 왕이 되자 크게 당황하면서 분노하였다. 여로보암의 반란 세력을 격퇴하고 나라를 되찾으려는 시도는 선지자의 개입으로 무산되었다. 그리고 여로보암의 탈선에 반대하여 유다로 내려온 사람들의 도움으로 처음 3년 동안 나라를 강하게 만들어 나갔다.
    
    
    
1. 통일을 위한 전쟁 시도(1~4절)
르호보암이 여로보암과 싸워서 나라를 하나로 합치려고, 유다와 베냐민 사람들을 소집했는데, 18만 명이 모였다(1절). 이때는 여로보암이 아직 왕권조차 갖지 못한 때였고, 당연히 왕국의 체제가 효율적으로 정비되지 않았을 때였다(왕상 12:20~25). 그러므로 두 왕국 사이에 끼어있는 베냐민 지파에 속한 많은 인원이 르호보암의 재빠른 동원령에 머뭇거리지 않고 순종한 것도 이러한 상황 때문이었다. 이때 르호보암의 계획대로 전쟁이 일어났다면 여로보암의 왕국은 제대로 시작하지 못한 상태에서 멸망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지자 스마야를 통해 전쟁하지 말고 돌아가라고 말씀하셨다(2~4절). 전쟁하지 말아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왕국의 분열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여호와께서 북 왕국을 유다의 “형제”라고 부르신다(4절). 분열은 솔로몬의 죄에 대한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었다. 서로 전쟁하는 것은 자기들의 욕심에 따른 이기적인 행동일 뿐이다. 남과 북 왕국은 언젠가 다시 하나가 되기를 소망해야 한다(참고, 겔 37:16~22). 그리고 그때까지 한 신앙 안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평화로운 공존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하나님의 주권과 뜻을 분별하지 않고, 선지자를 통해 전해지는 뜻에 순종하지 못했다면, 이스라엘의 역사에 씻지 못한 피의 내전이 일어날 뻔했다.
    
    
    
2. 성읍들의 요새화(5~12절)
르호보암은 적국이 공격해 올 때를 대비하여 방어를 위한 성읍들을 요새화했다(5절). 이 도시들은 대부분 유다 지파에 속했고(6~10절), 대부분 예루살렘의 남쪽과 남서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위치상으로 보면 르호보암은 블레셋과 애굽의 공격에 대비한 것으로 추측된다.
    
또 하나의 목적은 남쪽 지역을 중심으로 중앙정부에 대해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킬 수 있는 지방 세력들을 사전에 제압하고, 각 지역에 중앙 관리를 파견하여 왕국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함으로 볼 수 있다. 즉, 르호보암은 이스라엘과의 무모한 전쟁보다 유다와 베냐민을 중심으로 왕국의 안정을 도모한 것이다.
    
르호보암은 요새의 기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일련의 조치를 취한다(11절). 그것은 “나기드”라고 불리는 최고 신분을 가진 관료를 파송하여 정치 및 군사적인 힘을 부여하고, 식품과 기름, 그리고 음료를 비축하게 하며, 방패와 창을 많이 갖추어 매우 강하게 만들었다.
    
    
    
3. 유다로 내려온 제사장들과 레위인들(13~17절)
제사장과 레위인들은 이스라엘 전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었다. 그들은 여로보암을 중심으로 한 북이스라엘의 백성이 되기를 거부하고 남쪽으로 내려온다(13절). 여호와를 섬기기 위해서라면 자신들의 고향과 가업조차 기꺼이 다 버릴 수 있었다. 그들이 내려와야만 했던 큰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여로보암과 그 아들들이 자신들의 제사장 직분을 박탈했기 때문이다. 그의 아들들까지 이 일에 앞장섰다는 사실은 그의 가문이 아히야가 약속했던 축복(왕상 11:38)을 누리게 될 가능성이 전혀 없음을 보여준다. 둘째, 여로보암이 송아지와 숫염소 우상을 섬기도록 강요했기 때문이다(15절). 송아지와 숫염소는 애굽 사람들이 흔히 숭배하는 신이다. 여로보암은 예루살렘의 성전에 종속되어 있다고 여겨지는 아론의 후손 제사장들을 축출하고 자신의 명령에 따라 우상을 숭배할 수 있는 새로운 제사장 계급의 형성하기를 원했다.
    
여로보암은 북이스라엘 백성이 남쪽 예루살렘으로 내려가 예배드리지 못하도록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 신전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섬기게 하였다. 북 왕국에 속한 모든 지파 가운데서도 레위인들을 따라 예루살렘으로 내려오는 경건한 사람들이 있었다(16절). 그들은 진실한 마음으로 여호와를 찾으며, 조상의 하나님께 제사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었다.
    
신앙을 위해 고향과 산업을 버리고 내려온 제사장, 레위인, 그리고 다른 경건한 사람들이 르호보암의 왕국을 3년 동안 강성하게 만들었다(17절). 왜냐하면 왕과 백성이 그동안 다윗과 솔로몬의 길을 따랐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윗뿐만 아니라 솔로몬도 경건한 삶의 모범으로 제시된다. 왜냐하면 저자의 관점에서 경건은 성전 중심의 삶을 뜻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여로보암을 포함한 북 왕국의 모든 것을 배격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 중에 종교 공동체를 발전시키는 데 일조한 사람이라면 적극적으로 환영한다는 의식을 보여준다.
    
    
    
4. 왕의 가족과 후계자(18~23절)
르호보암의 첫째 아내 마할랏은 다윗의 아들 여리못의 딸로서, 르호보암 자기 사촌 누이다(18절).여리못은 다윗의 아들 목록에는 등장하지 않는다(대상 3:1~9). 르호보암의 둘째 아내 마아가는 다윗의 아들 압살롬의 손녀이며, 르호보암의 조카다(20절).
    
르호보암에게는 18명의 아내와 60명의 후궁이 있었다. 그들로부터 아들 28명과 딸 60명을 얻었다(21절). 고대에는 왕들의 경우, 많은 아내와 많은 자녀들은 그들의 권력과 부귀의 척도였다. 또, 고대 왕가의 근친혼 특징도 엿보인다. 르호보암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아내(추측하기로, 가장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마아가의 아들 중 장자인 아비야를 후계로 삼는다. 그러나 아비야는 모든 아들 중 맏아들은 아니었기에 르호보암은 그를 왕자들의 우두머리로 정했다. 그가 공식적으로 후계자(나기드)라고 공식 선포하여 그의 지위를 확실하게 만든다.
    
장자가 아닌 아들이 후계자가 되면, 왕자들 사이에 왕위 계승권을 노리는 다툼이 생기고, 심지어 반란이 발생하기까지 한다. 르호보암은 이러한 상황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왕자들이 함께 모의하지 못하도록 나라의 각 요새에 흩어져 살게 하였다. 그리고 그들에게 양식을 풍부하게 공급하고 아내들도 많이 구해줌으로써 불만을 품지 못하도록 했다. 요새를 견고하게 하고 파견된 ‘나기드’ 중의 일부는 이렇게 반란 모의를 불가능하게 만들려고 르호보암이 각 요새에 흩어버린 왕자들이었다.
    
    
    
나는?
-신앙이 고향과 삶의 기반보다 더 중요한 이들이 드러났다(13~14절). 여로보암이 우상숭배로 돌아섰을 때, 그의 배교에 실망하고 여호와 신앙을 지키기 위해 성전이 있는 남 왕국으로 내려온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마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신앙 하나 위해 모든 것을 버렸다. 하나님이 산업이 되어주실 줄 아는 믿음이 그들의 결단과 행동으로 이끌었다.
    
-한 사람(여로보암)의 욕심은 공동체 전체를 파멸의 길로 이끌 수도 있다. 여로보암은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을 폐하고 산당을 짓고, 금송아지와 숫염소 우상을 세워 절하게 함으로써 백성들을 우상숭배의 길로 이끌었다. 여로보암의 심중에는 자신의 왕국만 지키려는 욕심만 있었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도,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의 뜻을 섬기는 자라는 자의식도 없었다. 이에 따라 북이스라엘은 계속해서 타락의 길을 걸어서 결국 멸망한다.
    
-혹, 나의 이익과 욕심으로 인해 내가 속한 공동체를 어지럽히며 어렵게 만들지는 않는가?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길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길인가? 내 욕심을 따르는 길인가? 끊임없이 질문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한편, 르호보암은 여로보암의 세력을 무너뜨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만났다. 하지만 그는 인간적인 생각을 접고 선지자 스마야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 르호보암은 정치적으로는 미숙했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권위에 복종하는 신앙의 사람임을 알 수 있게 한다. 때로 자기 생각과 달라도 하나님의 말씀이면 복종해야 한다. 훗날 르호보암이 애굽의 바로 시삭의 공격을 받고도 멸망하지 않고 구원을 얻은 것은 바로 이런 순종 때문이었다(12:12).
    
-자기 뜻보다 여호와의 뜻을 따르는 순종이 삶의 걸음을 이어가게 한다.
    
-하나님은 스마야를 통해 이스라엘을 군사적으로 공격하여 왕권을 찾으려는 여로보암의 계획을 막으셨다. “형제”인 이스라엘이 서로 싸우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분열은 한 공동체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원래 계획에서 벗어난 것이다. 분열의 책임을 서로에게 돌리고, 정죄하며 다툼을 일삼는 것은 더욱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 아니다.
    
-르호보암은 스마야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더 큰 파국을 면할 수 있었고, 통치 초기 3년 동안 강성해질 수 있었다. 혹, 하나님의 뜻을 묻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보다 내 생각과 힘으로, 내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는 않는가? 한발 물러서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고, 공동체와 하나님 나라를 위해, 가정을 위해 하나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여로보암에게도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면 그를 위해 견고한 집을 세우겠다고 약속해 주셨다. 하지만, 여로보암은 스스로 더 견고한 왕국을 세우려고 우상을 만들어 섬기도록 강요한다. 그것이 자신의 나라를 멸망으로 이끄는 길임을 알지 못하고, 온 힘을 여기에 쏟는다.
    
-여로보암의 우상화 정책에 삶의 기반을 잃은 제사장, 레위인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온다. 여로보암의 우상숭배에 동조할 수 없었던 신실한 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하나님을 찾아 예배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었다. 이들이 남 왕국 유다 부흥의 원동력이 되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온전하게 섬기기 위해 일상에서 마음을 굳게 해야 할 것을 더욱 굳게 해야 할 것을 도전받는다.
    
-강성함의 조건은 막강한 요새와 성읍을 세우고 군비를 강화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순종과 성결과 지혜에 있음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북쪽 열 지파의 배반에 분노가 치밀었겠지만, 선지자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는 르호보암에게 파국이 아닌 강성함을 부어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외부의 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한 방비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울타리가 되어주실 것을 의뢰하는 마음을 굳건하게 세우고 지키는 것이다.
    
-형식적인 명분으로 불순종을 정당화하는 것보다, 단순한 순종으로 말씀의 능력을 경험하는 삶이 되고 싶다. 또한 여로보암의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지혜와 권력이 얼마나 치명적이고 위험한지 알아야 한다. 세상에서 뛰어난 지혜와 처세보다 하나님과 진리와 의의 편에 서는 순전한 지혜를 늘 구하는 걸음이어야 하리라.
    
    
    
*주님, 제 생각과 욕심을 주님의 뜻보다 더 앞세우지 않겠습니다. 주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더욱 담대하겠습니다.
*주님, 여로보암은 정치적으로는 탁월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 앞에서 어리석음을 감출 수 없습니다. 르호보암은 정치적으로 어리석었지만, 신앙의 모습은 지혜로운 것을 봅니다. 지혜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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