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 13:1-14:1 아비야와 여로보암의 전쟁_하나님의 편에 섰는가?
아비야와 여로보암의 전쟁은 하나님이 다윗과 맺은 언약을 재확증하고 솔로몬의 기도(6:28, 34~35)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실행됨을 보여준다. 아비야는 전쟁에 앞서 북이스라엘이 다윗 언약과 하나님의 예배 규례를 지키지 않음으로써 하나님을 버렸다고 꾸짖는다. 이에 반해 유다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다윗의 후손으로 나라가 유지되며, 그의 성전에서는 적임자들이 규례에 따라 하나님께 제사한다.
1. 왕이 된 아비야(1~2절)
여로보암 제18년에 르호보암의 아들 아비야(아비얌)가 유다의 두 번째 왕이 된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3년간 다스렸다(주전 913~910). 어머니는 마아가(미가야)인데, 11:20~22(왕상 15:2)에서는 압살롬(아비살롬)의 딸로 나오고, 13:2에서는 ‘기브아 사람 우리엘의 딸’이라고 나온다. 정리하면 마아가는 압살롬의 딸 다말(삼하 14:27)과 기브아 사람 우리엘의 딸이며 압살롬의 ‘손녀’다.
2. 아비야와 여로보암의 전쟁(2~21절)
역대기의 아비야에 대한 기록은 13:1~14:1(총 23구절)이며, 열왕기(왕상 15:1~8) 기록보다 훨씬 길다. 아비야 재위 기간 대표적인 사건은 여로보암과의 전쟁이다. 열왕기는 유다와 북이스라엘과의 전쟁이 계속되었다는 내용만 언급한다(왕상 15:7). 또 역대기는 이 사건을 통해 아비야를 하나님을 신뢰하여 승리한 왕(18절)으로 묘사하지만, 열왕기는 그를 악한 왕으로 결론 내린다(왕상 15:3). 저자 에스라는 그런 악한 왕이라도 한때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도했음을 보여준다. 또 하나님이 다윗 언약을 어떻게 지켜가며 하나님을 신뢰한 아비야에게 어떻게 응답하시는지 보여준다.
2~12절은 여로보암과의 전쟁에서 전투에 임하기 전 연설로 기선을 제압하여 싸움을 중지시키려 하는 아비야의 모습을 묘사한다. 유다와 북이스라엘의 군대가 대진한 곳은 벧엘의 동북쪽 8km에 있는 에브라임 산지 ‘스마라임 산’이다. 아비야의 군대는 40만 명, 여로보암의 군대는 80만 명으로 두 배가 많았다. 아비야는 스마라임 산 위에서 북이스라엘을 주목시키고 “하나님이 이스라엘 나라를 다윗에게 영원히 주셨음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5절)”라고 외친다.
아비야는 이스라엘 나라를 다윗 왕조에 변치 않는 “소금 언약”으로 주셨음을 강조한다. “소금 언약”이란 “다윗 언약(대상 17장)”을 지칭한다. 하나님의 다윗과의 언약이 소금처럼 변하지 않음을 뜻한다(레 2:12). “소금 언약”이란 어구는 민수기 18:19에 등장한다. 하나님이 예배자가 드린 거제를 “레위인과 그 자손이 먹을 수 있는 제물”로 지정하시면서 이 약속이 영원히 변치 않을 것임을 뜻하며 부른 명칭이다. 소금처럼 변하지 않고, 상하지 않으며, 녹아 없어지지 않는 성질을 대변한다.
아비야는 이처럼 다윗 언약을 중심으로 하여 연설의 첫 부분(5~8절)에서 북스라엘이 하나님의 언약을 버렸음을 꾸짖는다. 이와 관련된 그들의 죄는 첫째, 여로보암이 자기 주인 솔로몬에게 반역을 저질렀다(6절). 아비야는 여로보암이 혈통적으로 느밧의 아들, 신분적으로는 왕의 신하로서 하나님이 약속한 이스라엘 나라의 왕 자격이 없음을 지적한다. 둘째, 여로보암에게 쓸모없는 자들이 모여들었고, 이들이 다윗의 자손 르호보암에게도 맞섰다며, 여로보암을 따르는 백성을 ‘난봉꾼’이며 ‘잡배’의 무리라고 깎아내린다(7절). 아비야는 르호보암이 분열될 당시 어리고 마음이 약해서 그들을 저지하지 못했다며 변호한다. 셋째, 지금 북이스라엘은 또다시 다윗의 자손 아비야와 그의 나라를 공격하려 한다고 하면서 이 나라가 여호와의 나라(8절; 대상 28:5)임을 확인시킨다.
아비야의 두 번째 연설 부분인 8~13절은 성전과 예배를 중심으로 외친다. 먼저 첫째, 북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율법과 예배를 버렸다고 꾸짖는다. 아비야는 여로보암과 백성의 배역을 비난한다. 하나님은 다윗 언약을 따라 솔로몬이 건축한 성전에서 그의 백성 유다와 함께하시지만(12절), 북이스라엘은 금송아지들과 함께하고 있다(8절). 나라가 분열된 후 여로보암은 자기 백성이 예루살렘에 제사하러 가는 것을 막으려고 북이스라엘의 남(벧엘)과 북(단)에 두 송아지를 두어 섬기게 하였다(왕상 11:26~30). 이처럼 북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버렸으나(11절), 남 유다는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섬겼다(10절). 둘째, 여로보암과 백성은 하나님의 규례를 어겼다. 제사장과 레위인을 쫓아낸 점, 우상 섬길 제사장을 따로 세운 점, 율법을 따르지 않은 점이 지적된다. 북이스라엘에서는 백성 중에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 제사장이 되었고, 그들은 임직식을 흉내 내어 어린 수송아지 한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를 끌고 와서 임명을 받았다(9절). 이와 비교해 북이스라엘에서 쫓겨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11:13~15)은 하나님의 규례대로 임명된 레위인과 아론의 자손들이었다(10절). 그들은 솔로몬 때와 마찬가지로 조석으로 번제를 드리고 분향하며(8:12~13), 정결한 상에 진설병(4:19)을 놓고 저녁마다 금 등잔대(4:20)에 불을 켰다. 이처럼 예루살렘 성전은 “하나님께 제사하는 곳(7:12)”이며, 유다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켰고(11절), 그를 버리지(배반하지) 않았다.
끝으로 아비야는 하나님이 유다의 선두에 서서 자신들과 함께하심을 표명하며, 유다와 싸우는 것은 여호와와 맞서 싸우는 것이라고 선언한다(12절). 아비야는 북이스라엘을 “이스라엘의 자손들”로 부르며 다같이 아브라함에게서 난 한 가족임을 암시한다. 또한 하나님을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라 칭하여, 그 하나님이 지금 유다를 위해 싸우실 것임을 각인시킨다. 유다와 싸우는 것은 여호와의 군대와 여호와께 대항하는 것임을 각인시킨다. 그러므로 북이스라엘은 여호와와 싸우지 말아야 한다. 그들이 싸운다면 형통하지 못할 것이다(12절).
3. 전쟁의 결과(13~21절)
아비야의 연설은 북이스라엘에서 통하지 않았다. 드디어 전투가 시작되고 하나님은 유다에게 승리를 안겨주신다. 여로보암의 군대는 유다와 대진하고 뒤에도 복병을 두는 전략을 짰다. 유다. 군대는 뒤를 돌아보고서야 자신들의 상황을 깨닫고 여호와께 부르짖었다. 제사장들이 공격의 나팔을 불고(14, 12절) 군대도 전투 시작의 함성을 질렀다. 전투가 시작되자 하나님은 그들의 부르짖음을 듣고 아비야와 유다 앞에서 여로보암과 북이스라엘을 치셨다(15절). 아비야의 말대로(12절) 하나님이 유다의 선두에서 그들과 함께하심이 증명된다.
하나님이 북이스라엘을 넘겼으므로 그들은 도망쳤다. 군사 80만 중 50만이 죽어 북이스라엘은 완전히 제압당한다(17~18절). 유다는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대승을 거둔다(18절). 아비야의 말대로 북이스라엘은 형통하지 못했다. 형통하지 못한 것은 여로보암도 마찬가지였다. 19~21절은 여로보암과 아비야의 대조적인 최후를 서술한다. 아비야는 여로보암의 뒤를 쫓아 북이스라엘의 남부 지역 중 금송아지가 있던 벧엘을 비롯해 여사나, 에브론과 같은 그 동네들을 빼앗는 데 성공한다. 이후 여로보암은 다시 힘을 회복하지 못한다.
그와 온 이스라엘을 치심으로(나가프, 15절) 북이스라엘을 심판하셨던 하나님은 여로보암을 다시 쳐(나가프, 20절) 죽게 하심으로 그를 심판하셨다. 아비야의 힘은 강성해졌다. 이는 하나님이 다윗에게 약속하신 것처럼 그의 후손들이 견고하게 왕권을 이어가고 있음을 함축한다. 아비야는 열네 명의 아내와 아들 스무 명, 딸 열여섯 명을 두었다. 많은 자손을 낳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며, 여러 아들은 왕위가 견고히 지속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4. 아비야 통치 종결부(22~14:1)
아비야의 남은 행적은 르호보암의 역사 자료(12:15)에도 언급된 선지자, 잇도의 주석 자료에 기록되었다(22절). 아비야는 죽어 다윗성에 안치되었고, 아사가 왕위를 계승했다. 왕의 통치 종결부는 보통 후대 왕을 소개하며 끝나는데, 아사의 경우는 그의 시대에 땅이 10년 동안 평안했음을 덧붙인다. 평안한 땅은 전쟁이 없음을 의미한다. 이는 유다가 르호보암과 아비야의 통치 20년 동안 끊이지 않았던 북이스라엘의 전쟁이 드디어 휴식기를 맞았음을 나타낸다.
아비야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아사”가 왕이 되어 십 년 동안 평안했다.
나는?
-유다 왕 아비야는 여로보암에 비해 객관적인 전력상 크게 불리했지만(40만 VS 80만),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그는 전쟁의 승패는 군사 전력에만 달려 있지 않고 하나님이 누구 편에 서는지에 달려 있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우상 숭배하는 이스라엘이 아니라 자신들 편임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이제 그가 백성들에게 알려야 할 것은 가장 탁월한 전략인 하나님을 의지하므로 하나님의 승리를 확신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정하신 나라라는 정통성이 정신전력을 형성하는 핵심 요인이었다.
-전쟁의 승패는 객관적인 전력이나 상황이 아닌 하나님께 달려 있다. 군사적으로도 이스라엘은 80만이었고, 이를 통솔하는 여로보암은 18년이나 통치한 노련하기 짝이 없는 백전노장이었다. 아비야는 이제 겨우 3년밖에 통치하지 않은 애송이었다. 하지만 아비야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 모든 열세를 뒤집고 큰 승리를 거둔다. 전쟁의 승패는 조건과 전력, 상황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달려 있다.
-아비야는 누가 더 많은 군대를 거느렸는지를 비교하지 않는다. 누가 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를 드렸는지를 비교한다. 이스라엘은 우상을 섬겼고, 뇌물로 제사장을 세웠다. 하지만 유다는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고 율법대로 아론의 후손들로 제사장을 세워 날마다 정해진 대로 예배하였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유다의 머리가 되어 친히 싸우실 것이라고 자신했다.
-하나님이 내 편이신지 궁금한가? 그러면 내가 하나님의 편이 되어 그분께 합당한 예배의 삶을 살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이 여로보암과 이스라엘을 치심으로 유다에게 승리를 주셨다. 40만이 80만을 이겼다. 저자는 이 승리는 아비야가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밝힌다. 하나님은 여로보암까지 쳐서 죽게 하시지만, 아비야의 나라는 점점 더 강성하게 하신다. 그의 신실한 면을 아들 아사가 이어받아 르호보암 때부터 끊이지 않았던 전쟁이 멈추고 10년 동안 평화의 시기를 구가한다. 전쟁 같은 인생이지만, 결국 여호와를 의지하는지가 모든 것을 가른다는 평범한 진리를 기억해야 한다. 주님을 의지하는 곳에 평화가 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 능력을 나타내신다. 비록 선한 왕은 아니지만(왕상 15:3), 하나님을 의지하는 아비야와 유다 사람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들의 편에 서서 여로보암과 온 이스라엘을 치셨다. 하나님은 모든 예상을 뒤엎고 아비야가 승리하게 하셨을 뿐 아니라 그를 점점 더 강성하게 하셨다. 이에 반해 여로보암은 죽기까지 점점 약해지게 하셨다. 몇 번을 강조해도 남음이 없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승리의 요인이다.
*주님, 주님만 의지합니다. 삶의 승리가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기억하며 언제나 하나님과 같은 편에 서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