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 17:1-19 다윗의 길로 행한 여호사밧
아사의 뒤를 이은 여호사밧은 다윗의 길로 행하여 하나님을 찾았다. 하나님이 여호사밧과 함께하시니 유다가 평안하고 부강했다. 여호사밧은 나라의 방비만큼이나 백성의 영적 상태를 살폈다. 우상을 제거하고, 레위인들과 방백들을 유다의 성읍과 예루살렘에 보내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게 한다. 무엇보다 그가 하나님을 찾고 계명을 지켰다. 하나님은 그가 이방 나라로부터 높임을 받게 해주셨다.
여호사밧(주전 869~848)은 북 왕국의 아합(주전 874~853)과 거의 시대를 같이한다. 당시 아람에는 벤하닷(아마도 2세)이 다스리고 있었다. 여호사밧은 초기에 성공적으로 국력을 키워, 그 시대에 블레셋과 아라비아가 유다 왕국에 조공을 바쳤다. 또한 여호사밧은 내부를 결속하기 위해 우상을 제거하는 한편, 관리들을 파견하여 전국에서 율법을 가르치게 하였다. 처음 몇 년 동안 북 왕국의 침공을 대비하여 요새를 강화하기도 했다.
여호사밧이 처음 즉위하였을 때 그는 북 왕국과 항상 대립 관계에 있던 부친 아사의 영향을 받아 이스라엘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았으며, 모든 요새에 군대를 주둔시켜 놓았다. 그는 다른 면에서도 아사의 영향을 크게 받았는데, 과감한 종교개혁을 시도하고, 전국에서 율법을 가르침으로써 하나님께 인정받았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부귀 영광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시간이 갈수록 그의 힘을 강하게 만들어주셨다.
1. 여호사밧 소개(1~6절)
여호사밧이 아사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을 때는 북 왕국 아합왕 제4년이었다(왕상 22:41). 여호사밧은 즉위 후 이스라엘을 대항하여 세력을 키웠는데(1절), 이것은 아합왕과 사돈 관계를 맺기 이전이다. 정략적 혼인을 통해 평화를 누리는 것도 국력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유다의 모든 요새에 군대를 상주시키고, 유다 땅과 아사가 정복한 에브라임 성읍들에 수비대를 두었다(2절).
여호와께서는 여호사밧과 함께하셨다(3절). 역대기에서 여호와께서 함께하셨다는 표현은 다윗, 솔로몬, 아사, 그리고 여호사밧에게 나타난다(대상 17:2; 대하 1:1; 15:9; 17:3). 이것은 하나니의 특별한 은혜와 사랑이 그 왕들에게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호사밧이 이 같은 은혜를 받은 이유는 그가 다윗의 처음 길로 행하여 바알들을 찾지 않았기 때문이었다(3절).
또한 여호사밧이 구한 하나님은 자기 아버지 아사의 하나님이라고 불린다(4절). 아사와 여호사밧 당시에는 종교개혁, 건축, 군사력 증강 등 유사한 점들이 나타난다. 아사가 등장하는 것은 아사의 전체 생애가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비록 역대기는 아사의 몇 가지 아쉬운 점을 언급하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크게 받은 사람이라고 인정받고 있다. 여호사밧은 자기 부친의 경건한 삶을 본받아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살았다. 특히 그 당시 아합이 지배하고 있던 북이스라엘에서는 바알과 아세라가 만연하였는데, 여호사밧은 아합 가문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도 그들의 종교로부터 영향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여호사밧의 손에 맡겨두신 왕국을 견고하게 하셨다(5절). 그의 부귀와 영광은 대단하였는데, 이러한 표현은 역대기에서 다윗, 솔로몬, 여호사밧, 그리고 히스기야에게 적용된다(대상 29:28; 대하 1:12; 18:1; 32:27). 여호사밧의 영광이 특별한 이유는 그가 유다 사람들의 전적인 지지를 얻었다는 점에 있다. 유다 무리가 바치는 예물은 세금이라기보다는 존경과 사랑을 담아 자발적으로 드리는 예물을 뜻한다.
여호사밧의 가장 큰 장점은 그가 여호와의 길을 걷는 것을 자랑스러워하였다는 것이다(6절). 그러므로 많은 저항이 있었겠지만, 주저 없이 산당과 아세라 목상들을 제거할 수 있었다. 이것은 그의 첫 번째 개혁이었는데, 유다 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그도 아사처럼 생의 끝부분에서 산당을 철거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20:33).
2. 전국적인 율법 교육과 주변 나라들의 굴복(7~11절)
7~9절에서 여호사밧은 율법 교육을 통하여 여호와 신앙과 민족정신을 고취했다. 역대기는 여호사밧이 율법 교육을 위해 자신의 통치 제3년, 단독으로 통치한 첫해에 유다의 모든 성읍으로 파견한 관료들, 레위인 그리고 제사장들의 이름을 길게 나열하고 있다. 이것은 저자가 나라의 운명은 왕 개인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제사장을 비롯한 많은 지도자, 심지어 백성들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려는 의도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가르치는 율법책은 모세의 다섯 권의 책을 가리키는 것이며, 이미 여호사밧 시대에도 모세의 책들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10~11절을 통해 여호와께서 주변의 모든 나라들에 여호사밧의 하나님 여호와에게 대한 두려움을 주셨고(10절; 14:13; 20:29), 그들은 여호사밧과 싸우려는 마음을 품을 수 없었다. 오히려 자발적으로 굴복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블레셋은 예물과 함께 은으로 여호사밧에게 조공을 바쳤고, 아라비아 사람들은 많은 짐승의 떼로 조공을 바쳤다. 이처럼 여호와에 대한 두려움이 주변 나라들에 미쳤을 때, 유다는 큰 평안을 누릴 수 있었다.
3. 여호사밧의 군대(12~19절)
여호사밧은 시간이 갈수록 강해졌다(12절). 그는 유다에 성을 많이 건축하고, 그 성들에 전쟁에 필요한 많은 물자를 비축한다(13절). 그리고 예루살렘에는 지파와 가계를 따라 편성한 용사들을 배치한다(14~18절).
우다 지파에는 세 명의 지휘관이 있었는데, 큰 용사 30만 명을 이끄는 아드나, 28만 명을 이끄는 여호야난, 큰 용사 20만 명을 이끄는 아마시야다. 아마시야는 “여호와께 자신을 즐거이 드린 자”라고 불리는데, 그 정확한 의미는 알 수 없다. 베냐민 지파에는 두 명의 지휘관이 있었는데, 활과 방패를 잡은 자 20만 명을 이끄는 큰 용사 엘리아다와 싸움을 준비한 사람 18만 명을 이끄는 여호사밧이다. 이들의 수를 모두 합하면 116만 명에 달한다. 이 수치는 아비야, 아사, 아마샤, 그리고 웃시야의 군대보다 훨씬 크다. 역대기에서 군대의 크기는 왕의 경건에 대한 하나님의 보답에 비례한다. 그러므로 이 숫자는 여호사밧의 경건이 탁월했다는 것을 드러낸다.
이 모든 군대가 언제나 예루살렘에 배치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각 부대의 사령관들은 직업군인들로 구성된 적당한 규모의 부대를 이끌고 예루살렘에 머물러있고, 그들의 부대원들 대부분은 자기들의 성읍에서 일상적인 생활을 영위하면서 동원령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왕을 모시는 자들이란 왕 가까이서 왕의 명령을 직접 하달받은 사령관들을 가리킨다(19절). 예루살렘에 배치된 군사들 외에 유다의 다른 견고한 성읍들에 배치된 사람들도 있었다(19절).
나는?
-여호사밧 왕은 계명을 행하는 왕이었다. 그는 아버지 아사 왕의 말년 불순종의 길에서 떠났다. 그는 바알을 의지하지 않고 여호와를 의지했다. 스스로 나라를 강하게 하기도 했지만, 여호와께서 그 나라를 견고하게 하시도록 했다. 그는 전심으로 여호와의 길을 걸어서 여호와께서 자신의 나라를 책임지시게 하였다. 백성들도 그 권위를 인정하여 그에게 예물을 바쳤고, 그는 부귀와 영광을 구가하였다. 물 흐르듯 모든 관계 속에 평화가 깃들어 있는 시기였다. 이 모든 것은 어디서부터였는가? 바로 왕이 자신에게 진정한 왕이 있음을 인정한 데서부터 모든 평화가 시작되었다.
-여호사밧은 계명을 가르치는 왕이었다. 여호사밧 왕은 방백들을 백성이 있는 곳으로 보내서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는 일을 관장하게 한다. 누가 가르치는가? 왕은 레위인들을 유다 각지로 보낸다. 그리고 제사장도 함께 보낸다. 그들이 여호와의 율법책을 갖고 가게 한다.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되 준비된 전문가들을 통해서 가르치게 하고, 국가적인 차원에서 행정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여호사밧의 이와 같은 통치는 이 나라가 자기 뜻이 관철되는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가 되게 하기 위함이다. 자기만이 아니라 백성들도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더온누리교회는 성도들에게 어떤 전략과 내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있을까?
-여호사밧은 사람을 세우는 왕이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왕의 나라에 하나님은 유다 주변 사방 곳곳마다 두려움을 주셔서 유다를 넘보지 못 하게 하고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여 주셨다. 이제 여호사밧 왕이 할 일은 하나님이 주신 이 복을 잘 관리하는 일이었다. 그는 사람을 적재적소에 두어서 축복이 온 땅에 두루 미치고, 평안의 때에 위기의 시기를 대비하였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쓸데없는 곳에 힘을 빼지 않아도 되고, 욕심을 버리면 바른 분별력으로 두루 유익을 주는 지도자가 될 수 있다.
*여호사밧이 왕이 되어 처음 한 일은 스스로 강하게 하여 이스라엘을 방어하는 것이다. 국제 정세가 심상치 않으니 어쩔 수 없었다. 믿음이란 무엇일까? 하나님을 의지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기대하는 만큼 최선을 다해 준비하는 것이다. 여호사밧은 하나님을 믿고 나라를 방어하기 위해 충실하게 준비하였다.
*앞서 믿은 이들의 성공과 실패를 거울로 삼아야 한다. 여호사밧은 아버지 아사의 실패를 보고 사람을 구하거나 우상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구하며 하나님과 함께했다. 신앙 선배들의 성공과 실패로부터 교훈을 받아야 할 것이다.
*순종뿐 아니라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도 힘써야 한다. 여호사밧은 율법 교육을 국가의 중요한 근간으로 여기고 방백들, 레위 사람, 제사장을 보내 성읍들을 두루 다니며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게 했다. 다른 어떤 것보다 말씀을 가르치는 일을 늘 우선에 두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길을 걷는 자들을 견고하게 하신다. 여호사밧이 오직 하나님만 구하며 율법을 지키고 가르치자, 그에게 부귀와 영광을 주시고 나라를 견고하게 세워주셨다. 또한 주변 나라들에 두려움을 주셔서 함부로 침공하지 못 하도록 하셨고, 많은 예물과 조공을 통해 나라가 부강해지게 하셨다.
*하나님은 다윗의 길로 행한 여호사밧에게 다윗에게 허락하셨던 복을 내려주신 것이다. 나 역시 다윗처럼 전심으로 하나님을 따르는 믿음의 길이 참된 복의 길임을 믿으며 나아가리라.
**자신이 다윗의 처음 길로 성실하게 순종하니, 백성과 나라가 함께 했다. 지도자의 선택과 통치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나도 그래야지.. 누구보다 더 말씀을 따라 살아내어, 함께 이 길을 걷는 이들을 하나님의 신실한 은혜 안에 거하도록 모범이 되어야지… 앞서 살아내어 함께 세워 나가야지…
**그런데 이 길은 “전심으로” 걸었다고 기록한다. 적당히는 안된다. 눈에 보이는 산당만 없애서는 변화되지 않았다. 아세라 상을 찍어 내었다고 순전하게 되지 않았다. 그래서 말씀이 내 마음에 굳게 서 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한다. 형식, 외형을 바꾼다고 개혁의 영향력은 나타나지 않는다. 마음의 변화, 지속적인 유지, 이를 위한 날마다 공급되는 말씀의 은혜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따라가려면, 건물보다 더 필요한 것이 있다.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것, 말씀이 마음에 세워지는 것”이다. 그것은 “가르침”에서 판가름 나고, 그 가르침을 “들음”에서 향방이 갈린다. 형식적으로 세워져 언젠가 다시 스러질 것인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단단히 새겨져 굳건하게 마음을 붙잡아 든든히 세울 것인가?
**건물을 세우는 것보다 중요한 것 마음을 세우는 것이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견고하게 붙잡고 서 있게 하는 마음을 다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그렇게 살아낼 때, 하나님이 우리를 견고하게 세우신다. 주위의 어떤 이들도 함부로 하지 못한다. 그렇게 살아가는 이들에게서 하나님의 이름의 권위, 즉 경외함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나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이 존중받을 수 있다. 그것은 철저하게 말씀으로 살아낼 때 일어난다. 그뿐이랴….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삶의 확연한 변화, 부요함으로 드러난다. 하나님께서 경영하시는 인생이기에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 그 열매가 하나님의 이름을 존중받게 하는 삶으로 드러난다. 나의 삶이 이런 삶이기를 바란다.
**또, 국가의 질서가 확연하게 정리되고 잡히는 것을 보게 된다. 통치 조직, 특히 군대의 군기가 서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하나님을 경외하니 이것 또한 신속하게 자리 잡힌다. 즉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에는 무질서가 없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는 혼란이 없다. 정돈되고 정립되어 선명한 길로 선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향방 없는 인생이 아니라, 지금 하고 있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분명하게 깨닫고 감당한다. 하나님의 시선, 지혜가 덧입혀져 우선순위를 정립하고 진행하여 질서 있게 국가를 세운 것과 같은 이치다.
**단순히 군대를 정비하고 군사를 늘리고 배치하는 것을 보면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한 마음으로 “함께”하니 모든 자리가 구별과 차별이 없는 하나님 나라의 자리…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의 자리가 되는 것이다. 이를 깨닫고 어찌 허투루 시간과 공간을 채울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마음을 따르는 성실함이 꽉 채워져 나타나는 것이다.
*주님, 세상(바알) 의지하지 않고 여호와만 의지하겠습니다. 다윗의 길로 행하겠습니다.
*주님, 어떤 상황이든 더욱 주님의 말씀을 붙잡고 믿음의 길을 충성되게 걷겠습니다.
*주님, 하나님 나라 일꾼을 세우고, 적재적소에 말씀을 가르치기 위한 지혜를 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