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여호사밧의 타협, 미가야의 영적 소신 [대하 18:1-27]
 – 2025년 10월 05일
– 2025년 10월 05일 –
대하 18:1-27 여호사밧의 타협, 미가야의 영적 소신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은 악인의 길에 동행하거나 동조하지 않는다. 여호사밧이 북이스라엘과의 화평을 위해 악한 왕 아합과 사돈 관계를 맺고, 군사 동맹을 맺는 어리석음을 보인다. 아합은 길르앗 라못을 함께 정벌하자고 제안하고 이에 따른다. 아합은 선지자 사백 명을 모아 전쟁 여부를 하나님께 묻지만, 이들은 모두 승리만을 장담한다. 여호사밧은 한결같은 선지자들의 신탁에 멈추지 않고 다른 선지자를 구한다. 이에 선지자 미가야를 데려와서 신탁을 듣는다. 미가야는 이 전쟁에서 아합이 죽을 것이라고 선언한다.
    
17장부터 21장 1절까지는 여호사밧의 통치 기사이다. 17장은 그의 신실한 통치를 보여주고, 18:1~19:3은 북 왕국 아합과 동맹한 부정적인 면을 나열한다. 배경은 길르앗 라못 전투이고 여호사밧은 아합의 동맹군으로 참전한다. 이 단락의 내용은 열왕기상 22:2~35과 거의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서론(1절; 왕상 22:1)과 결론(19:1~3; 왕상 22:36~38)을 보여준다.
    
    
    
1. 여호사밧과 아합의 동맹(1~3절)
여호사밧은 하나님을 신뢰하여 부귀영화를 누렸다. 그런데 어리석게도 아합과 동맹관계를 맺고 만다. 여호사밧은 통치 초기 유다 전역에 방어 태세를 갖추고(17:1~2, 12~18),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전쟁 없는 평화의 나라를 이룬다(17:10). 하지만 아들 여호람과 아합의 딸 아달랴를 정략적으로 결혼시켜 동맹관계를 세운다. 이 행동은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자와의 교류이자 신앙적 타락이었다(19:2). 이 선택은 자신의 실수에 멈추지 않고 며느리 아달랴를 통해 유다에 바알 신앙이 펴지게 되고 이후 왕실에 유혈 사태를 몰고 와 다윗 왕조가 진멸될 수 있는 위기까지 이른다.
    
2절의 “이 년 후”의 원문은 “몇 년 후”다. 열왕기 본문에서는 이 시기를 아합과 아람 사이에 전쟁 없이 지내던 “셋째 해(주전 853년)”로 제시한다. 이때 여호사밧이 아합을 방문하러 사마리아로 행차한다. 두 가문은 사돈을 맺은 후 자주 왕래했던 것으로 보인다(왕하 8:29; 9:16; 10:13). 아합은 여호사밧의 방문에 맞춰 성대한 연회를 베풀면서 길르앗 라못 전투에 동참하기를 권한다. “권하다(2절)”로 번역된 단어는 단순한 제안이 아니라 유혹하고 설득한다는 의미가 있다. 이에 여호사밧은 “내가 당신과 같고, 내 백성이 당신의 백성과 같다(3절)”라는 말로 화답하며 동참할 것을 약속한다.
    
열왕기상 20장에 따르면 아합은 아람과의 두 차례 전쟁에서 하나님의 도움으로 승리했었기에 여호사밧은 이번에도 승산이 있다고 봤을 것이다. 하지만 4절과 6절은 여호사밧이 출정을 주저하는 모습과 7, 29절에는 아합에게 끌려가는 듯한 모습을 드러낸다. 또한 여호사밧은 아합이 죽은 이후에도 그의 아들들인 아하시야와 오람과 무역 및 전쟁에 동참하는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19:35~37; 왕하 3장). 신앙적인 분별과 결단이 얼마나 중요한지 여호사밧을 통해 교훈하고 있다.
    
    
    
2. 하나같이 승리를 장담하는 선지자들(4~11절)
여호사밧은 출정에 앞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자고 제안한다. 이에 아합은 선지자 400명을 소환한다. 이는 여호사밧의 요구를 무시할 수 있는 형식적인 대응일 뿐이었다. 아합에게 하나님의 뜻은 중요하지 않았다. 참고로 이전 두 번이 아람과의 전쟁은 하나님이 먼저 선지자를 보내 뜻을 알리셨다. 아합은 하나님께 먼저 그의 뜻을 물은 적이 없다.
    
왕의 앞에 나온 선지자들은 하나같이 출정을 찬성하며 하나님이 길르앗 라못을 아합에게 넘길 것이라고 단언한다(5절). 하지만 여호사밧은 그들의 일치된 언행에 오히려 의구심을 갖는다. 이에 다른 여호와의 선지자를 요청한다(6절). 여호사밧의 이런 모습에서 아합 앞에 나온 선지자들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이 아니라 아세라의 선지자들이었음을 암시한다. 열왕기하 3:13에서 이와 비슷한 상황에서 엘리사는 요람에게 “나에게 묻지 말고 아합의 선지자들과 이세벨의 선지자들에게 물으라”고 조롱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북이스라엘은 아합의 왕후 이세벨이 열렬한 바알 숭배자였다. 이세벨은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색출하여 핍박하던 시기였다(왕상 18:4). 엘리야조차 선지자가 자기 혼자 남았다고 탄식할 정도였다(왕상 18:22). 살아남은 선지자들은 숨거나(왕상 18:4, 13), 감금되거나(25절), 도피 생활을 해야 했다.
    
여호사밧의 질문에 아합은 마지못해 선지자 미가야가 있음을 밝힌다. 하지만 아합은 그가 자신에게 항상 좋은 일이 아니라 악한 일만 예언하여 그를 미워한다고 말한다(7절).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그도 불러 물어보자는 여호사밧의 달램에 아합은 미가야를 부른다. 여호사밧과 아합의 대화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려는 여호사밧과 자기의 뜻을 이루려는 아첨하는 자들의 말만 들으려 하는 아합의 태도를 극명하게 대비시킨다. 미가야를 소환하는 동안 두 왕은 사마리아 성문 입구의 타작마당에 나란히 앉아 선지자들의 예언을 지켜보았다(9절). 선지자 시드기야는 철 뿔을 갖고 나와, 아합이 그 뿔로 아람을 진멸할 것을 여호와가 말씀하셨다고 주장한다. 나머지 모두도 이에 동조하며, 반드시 승리하니 출정하라고 아합을 부추긴다.
    
    
    
3. 홀로 패전을 예언하는 미가야(12~27절)
미가야는 이 전쟁에서 아합이 죽을 것이라고 예언한다. 미가야를 데리러 간 내시는 그에게 ‘다른 선지자들이 한목소리로 말했듯, 좋게(선을) 말하라”고 권했다(12절). 아합의 비위를 맞추라는 협박이었다. 하지만 미가야는 여호와가 하신 말씀만 전할 것이라고 맹세한다. 그런데 뜻밖에도 미가야는 다른 선지자들과 같이 “출정하여 승리를 얻으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진심이 아니다 400명의 선지자의 말을 흉내 낸 것뿐이었다.
    
다른 점이 있는데, 14절의 원문이 다른 선지자들은 “(당신은) 올라가소서”라며 아합에게 말하는 모습을 묘사하지만, 미가야는 “(당신들은) 올라가소서”라며 여호사밧까지 포함했다. 이런 미가야의 모습은 이후 요람과 여호사밧이 엘리사에게 하나님의 뜻을 물었을 때 엘리사가 보인 태도와도 동일하다(왕하 3:14). 당시 선지자들은 악한 왕에게 말하기보다, 신실한 왕 여호사밧을 의식하며 신탁했음을 알 수 있다.
    
아합은 예리하게 미가야가 진짜 의중을 감추고 있음을 간파한다. 이에 진실을 말하라고 채근한다. 그제야 미가야는 이스라엘의 패전과 아합의 죽음을 예고한다. 미가야 선지자가 본 환상은 이스라엘 백성이 목자 없는 양처럼 흩어진 모습이었다. 하나님은 이들을 향하여 “주인이 없으니, 각자 평안히 자기 집으로 돌아가라”라고 하셨다(16절). 아합은 매우 불쾌해하며 미가야가 그럴 줄 알았고 그는 항상 ‘선이 아닌 악’만 예언한다고 말한다. 이에 미가야는 두 번째 환상을 선언한다.
    
미가야가 본 환상은 하늘에서 하나님과 영들의 회의 장면이다(18~22절). 하나님께서는 ‘누가 아합을 꾀어 전장에 나가 죽게 하겠느냐?’라고 물으신다. 이에 여러 의견이 나오고 한 영이 나와 “제가 모든 선지자의 입에 거짓말하는 영이 되겠다”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그 방법이 이루어질 것이라며 그 일을 허락하신다. 아합과 선지자들은 그의 말에 분노한다.
    
시드기야는 미가야의 빰을 때리며 ‘내게서 나간 여호와의 영이 어느 길로 가서 네게 그리 말씀하더냐?’라고 따진다(23절). 이에 미가야는 시드기야의 말이 거짓으로 밝혀지는 날, 그가 사람들을 피해 골방에 숨게 되리라고 예언한다. 아합 또한 미가야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미가야를 사마리아 성주 아몬과 왕자 요아스에게로 끌고 가 가두라고 명한다. 아합은 자신이 “평안히” 돌아올 것을 확신하며, 그때까지 미가야에게 계속 “고난의 떡과 고난의 물”을 주라고 덧붙인다(26절).
    
하지만 미가야는 아합이 평안히 돌아올 것 같으면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말씀하지도 않으셨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거기 모든 백성에게 “다 들을지어다”라고 외치며, 이 예언이 하나님의 참된 말씀임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나는?
-악한 자와의 무분별한 연합은 피해야 한다(1절). 이스라엘의 행위를 따르지 않는(17:4) 여호사밧이 아합 가문과 혼인함으로 인척 관계를 맺었다. 그와 불필요한 연합은 앞으로 유다 왕국에 지속적으로 악영향을 미친다. 여호사밧의 치명적인 실수였고 아름다운 그 생애에 지울 수 없는 오점을 남긴다. 일상의 삶에서 내가 연합하려고 하는 이를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반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연합해야 할 이는 누구일까?
    
-악한 자와의 연합뿐 아니라 그의 악한 일에 동참해도 안 된다(2~3절). 함께 길르앗 라못을 치자는 아합의 제안에 여호사밧은 정중하면서도 우호적으로 대답했지만, 거절할 수 없는 처지에서 어쩔 수 없이 승낙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악한 자와 손을 잡았기에 악한 일을 도울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살다 보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일에 허우적거릴 때가 있다. 그곳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여호사밧은 더 강한 나라, 더 강한 왕 아합의 요구를 무시하지 못한다. 그렇게 동참한 현장에서 하나님의 뜻 묻기를 제안한다. 눈에 보이는 아합과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두 주인을 섬기는 모습이 안타깝다. 신앙이 있지만, 전적이고 진실한 신앙은 아직이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는 마음 없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들을 수 없다(9~11절). 북이스라엘의 선지자 사백 명은 올라가서 싸우라고 하였고 시드기야는 승리의 상징인 뿔을 철로 만들어 이것으로 아람 사람을 찌러 멸할 것이라 장담하였다. 그러니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뜻에 관심조차 없는 아합에게는 그가 듣고 싶어 하는 말만 하는 선지자들만 있었을 뿐이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는 자세가 없다면 아무리 말씀을 묵상한다 해도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없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는 의지는 늘 다지고 놓치면 안 된다.
    
-한편, 아합의 모습에서 듣고 싶은 말이 아니라 들어야 하는 말을 들어야 함을 깨닫는다. 아합은 미가야가 자신에게 좋은 말은 하지 않고 나쁜 말만 한다고 미워했지만, 그만이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선지자였다. 나의 걸음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전해주는 사람을 소중히 여겨야 함을 절실하게 붙잡는다. 아무리 듣기 거북한 말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들어야 한다. 듣고 싶은 말보다 나를 살리는, 들어야 할 말을 들을 수 있는 때가 은혜다.
    
-사백 명의 선지자와 그들을 대표하는 시드기야는 아합이 원하는 대로 승리만을 예언한다. 권력자의 입맛에 맞는 말을 준비한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대변하지 않고 자신을 고용한 이의 뜻을 대변한다. 들어야 할 말이 아니라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전한다. 교회 안에 은혜라는 핑계로 ‘이구동성, 만장일치, 다수결’의 절대성을 강조하면 안 된다. 그것이 항상 주의 뜻을 대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원하고 바라더라도 주님의 뜻이 이에 거스르면 주의 뜻대로가 먼저다.
    
-선지자 미가야는 아합이 보낸 사람에게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를 듣지만, 하나님이 뜻하신 대로 아합의 패배와 죽음을 선언한다. 이스라엘 군대는 목자 없는 양같이 흩어질 것이고 아합은 안전하게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대세가 아닌 하나님의 뜻을 말하고, 또 따라가야 한다(12~17절). 하나님의 뜻은 다수결이나 권력에 의해 결정되지 않으며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말하는 것이 선지자의 역할이다. 미가야는 하나님의 뜻을 명확하게 알았기에 아합왕 앞에서도 주눅 들거나 눈치 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 혹시 하나님의 분명한 뜻을 깨닫고도 대세나 분위기에 휩쓸려 침묵하거나 방조하지는 않는가? 주변의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기 위해서 성령님의 도우심이 절실하다.
    
-하나님은 천상의 보좌에 앉으셔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관하신다(18~22절). 아합을 꾀어 길르앗 라못 전쟁에서 죽게 할 회의를 주재하신다. 하나님은 하늘에서 이 세상의 모든 일을 주관하고 계시며, 이를 수행하도록 심지어 악한 영도 부리시기도 하신다. 사탄의 권세가 아무리 위력을 떨치는 것처럼 보여도 두려워할 이유가 없는 것은 그 힘도 하나님이 통제하시는 범위 안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어떤 권세나 영광도 하나님의 손 아래 있음을 기억하며, 그 모든 일과 모든 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
    
-사백 명의 선지자는 거짓 영의 속임수에 속절없이 넘어가고 만 것이다. 그러나 오직 미가야만은 타협을 거절하며 악한 영에게 넘어가지 않았다.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따라간 것이 아니라 선지자로 부름을 받은 정체성과 사명에 맞게 순종하며 나아갔다.
    
-미가야는 시드기야와 아합에게 처절한 수모를 당한다. 진실이 드러나기 전까지 그 수모와 거짓을 견뎌내야 한다(23~24절). 아합왕과 사백 명의 거짓 선지자들과 한편인 시드기야는 거침없이 미가야의 뺨을 치며 큰소리쳤지만, 그들은 모두 재앙의 날에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진리가 아닌 것이 진리로 받아들여지는 세계를 하나님께서 바로잡으실 날이 올 것이다. 그날을 바라보며 오늘을 인내와 온유로 이겨내야 한다.
    
-선지자를 가둔다고 하나님의 말씀마저 갇히는 것은 아니다. 아합왕은 듣기 싫은 말을 한다며 바른 말을 하는 미가야를 감옥에 가둔다. 아합의 이런 모습에서 듣기 싫은 말씀에는 귀를 막고, 듣고 싶은 말씀만 가려듣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여호사밧은 자신이 처한 상황과 관계 속에서 악한 왕 아합과 타협하고 말았지만, 선지자 미가야는 일방적으로 매도 당하는 상황에서도 올곧게 주님의 뜻만을 분명하고 단호하게 전했다. 나는 어떨까? 상황에 따라 전하는 말씀이 아니라 말씀을 어떤 상황이든 전하고 있는가?
    
    
    
*주님, 악한 자와 연합하지 않겠습니다. 거짓의 영에게 휘둘리지 않도록 분별의 영성이 간절하기만 합니다. 제게 통찰과 분별을 허락해 주십시오.
*주님, 대세나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주의 뜻에 순종하며 인내로 살아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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