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여호사밧의 각성한 통치 [대하 18:28-19:11]
 – 2025년 10월 06일
– 2025년 10월 06일 –
대하 18:28-19:11 여호사밧의 각성한 통치
    
선지자 미가야의 예언대로 길르앗 라못 전쟁에서 아합은 죽는다. 여호사밧은 죽을 위기에 처했으나, 하나님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다. 예루살렘에 돌아온 여호사밧은 선지자 예후를 통해 악한 아합을 도운 것에 대해 하나님께 큰 책망을 듣는다. 이후 여호사밧은 종교와 사법 분야의 개혁을 실행한다. 그는 유다의 온 성읍에 다니며 백성을 하나님께로 인도했고, 재판관을 세워 공의를 시행하도록 명한다.
    
    
    
1. 길르앗 라못 전쟁(28~34절)
본문은 길르앗 라못 전쟁(18:28~19:3)과 여호사밧의 개혁(19:4~11)을 이룬다. 여호사밧의 통치 기사 전체(17:1~21:1)에서 봤을 때 이 전쟁 단락은 여호사밧의 불신앙과 실책을 보여준다. 아합과 여호사밧은 미가야를 통해 아합의 죽음 예고를 들었음에도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간다. 아합은 이전 전쟁들에서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에 거칠 것이 없었다. 더구나 사백 명의 선지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승리를 장담하며 여호와의 뜻이라고 외쳤으니 미가야 한 사람의 소리쯤이야 신경 쓰지 않았다. 또 미가야 이전 엘리야도 아합의 죽음을 두 번이나 예고했었지만(왕상 20:42; 21:21), 지금도 생존해 있으니 그 교만은 하늘을 찔렀다. 한편, 여호사밧은 하나님의 뜻을, 미가야를 통해 들었음에도 아합을 만류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동행까지 했을까? 혼인 관계로 맺어진 체면과 정치적 고려가 아니면 설명할 길이 없다.
    
그런데 아합은 막상 전투가 시작되려 하자 미가야의 예언이 신경 쓰였던 것 같다. 그래서 자기는 병사로 변장하고, 여호사밧에게 왕복을 입히는 잔꾀를 부린다. 여호사밧은 매우 당황했을 것이다. 한편으로 자신이 죽는다는 예언은 없었기에 거절하기도 어려웠을 듯하다. 3절에서 아합과 동맹을 맺으면서 ‘나는 당신과 같다’라는 말이 현실이 되어 유다의 왕이 이스라엘 왕의 대역을 하고 만다.
    
한편, 아람 진영에서는 벤하닷이 병사들에게 ‘크고 작은 병사와 싸우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 왕만 노리라’고 명령한다. 이로써 아합으로 위장한 여호사밧의 목숨은 더 큰 위기에 처한다. 이내 아람 군대의 병거 지휘관들이 아합을 발견하고서 그를 아합으로 잘못 본다. 집중적인 공격이 시작되자 여호사밧은 혼비백산하여 소리친다. 놀랍게도 아람 군대는 그가 이스라엘 왕이 아님을 눈치채고 돌아선다. 여호사밧의 부르짖음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것이다. 아합은 여호사밧을 전장으로 유인하여(수트, 권하여) 목숨을 위태롭게 했지만(2절), 하나님은 적군을 유인하여(수트, 감동시키사) 목숨을 구하셨다(31절). 반면 병사로 위장한 아합은 아람 군인이 무심코 쏜 화살에 맞아 치명상을 입는다. 그 화살은 갑옷을 강화하기 위해 덧댄 쉿 비늘 조각 사이(갑옷 솔기)를 정확히 뚫고 들어가 아합의 몸에 박혔다. 상처를 입은 아합은 병거를 모는 자에게 전장에서 벗어나라고 명령하지만, 전투가 워낙 격렬하여 꼼짝할 수 없었다. 아합은 별수 없이 적군과 대치하다가 해 질 무렵에 죽는다. 시간이 흘러 상처에서 흐른 피가 병거 바닥에 고였다(왕상 22:35). 이는 그가 큰 고통 속에서 서서히 죽어갔음을 시사한다.
    
아합이 죽자, 이스라엘 군대는 미가야가 본 환상대로 ‘목자 없는 양’처럼 흩어져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16절; 왕상 22:36).
    
    
    
2. 여호사밧을 향한 하나님의 책망(19장 1~3절)
겨우 살아 돌아온 여호사밧을 기다리는 것은 하나님의 책망이었다. 아합은 전쟁에서 “평안히” 돌아올 것을 장담했지만(18:26), “평안히” 돌아온 자는 여호사밧이었다. 그가 예루살렘 궁으로 돌아왔을 때, 하나니의 아들(또는 제자) 인 선견자 예후가 그를 맞이한다. 하나니는 아사가 하나님이 아닌 아람 왕을 의지한 것을 책망했다는 이유로 옥에 갇혔던 사람이었다(16:7~10). 그의 아들이 아사의 아들에게 하나님의 책망을 전하는 장면은 여호사밧이 과연 어떤 태도로 반응할지 주목하게 만든다. 하나님은 여호사밧이 아합을 도와 전쟁에 나간 것에 진노하셨다. 그가 도운 대상이 “악한 자”이며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이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이 일로 여호사밧에게 진노가 임할 것이라고 선언하신다. 하지만 동시에 그가 우상을 제거하고 마음을 굳게 하여 하나님을 찾은 점은 선한 일로 인정하셨다. 여호사밧은 아사처럼 선지자의 책망을 거부하거나 핍박하지 않는다. 그가 악한 자와 어울린 것은 어리석지만(잠 24:1), 이에 대한 훈계를 받아들이는 자세는 지혜롭다(잠 1:7).
    
    
    
3. 여호사밧의 신앙 개혁(19장 4~11절)
본 단락부터 20:30까지는 다시 17장처럼 그의 신실한 믿음과 통치 내용이다. 열왕기에는 등장하지 않은 독자적인 내용도 있다. 4~11절에서는 여호사밧이 종교와 사법 영역에서 하나님 중심의 개혁을 단행하는 모습이다. 그는 재위 3년에 이미 방백들, 제사장들, 레위인들을 유다 전역에 보내, 여호와의 율법을 가르치게 하는 신앙교육 정책을 폈었다(17:7~9). 이번에는 자신이 직접 브엘세바에서 에브라임 산지 지역들까지 유다 전역을 순회하며 백성들을 여호와께로 돌아오게 했다(4절). 또한 “다시 나가서”라는 표현을 통해 여호사밧의 이러한 행보가 처음이 아니었음을 알려 준다. 하나님을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로 칭하는 것은 하나님이 태초부터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택하신 것을 함축하는 표현으로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이 섬기던 하나님이시고,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고 친히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하나님이심을 가리킨다.
    
또, 여호사밧은 유다 전역과 예루살렘에 재판관을 세워 하나님 중심의 사법 체계를 구축한다. 이는 신명기 16:18~20에 이미 명시한 하나님의 명령이었다. 여호사밧은 이를 따르며 재판관으로 세운 이들에게 두 가지를 당부한다. 첫째, 재판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를 위한 것이므로 공정해야 한다. 둘째, 판결의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기억하고 그를 두려워하며 불의함, 치우침, 뇌물을 멀리해야 한다.
    
여호사밧은 예루살렘에 레위인과 제사장, 이스라엘 족장 중에서 사람들을 세워 종교적 분쟁과 주민의 송사를 맡겼다(신 17:1~13). 그들에게도 당부하는데, 첫째, 진실하고 완전한 마음으로 여호와를 경외할 것과 둘째, 공의로운 판결을 넘어서 백성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도록 돕는 역할을 하라고 명령한다. 예루살렘 재판관의 임무에는 다른 성읍에서 일어난 어려운 송사를 해결하는 것도 포함되었다. 저자 에스라는 송사를 위해 예루살렘에 오는 백성을 “너희 형제(10절)”라고 칭함으로 재판관들이 백성을 존중하고 정의롭게 재판할 것을 권면한다. 또 백성들이 하나님께 죄를 범하지 않도록 경고하고 회개로 이끄는 것도 그들의 임무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고 정죄를 받지 않게 도울 수 있었다. 여호사밧의 모든 말은 재판관의 직무가 하나님이 주신 중대한 소명임을 일깨운다.
    
한편, 여호사밧의 명령에 따라 종교적 사건은 대제사장 아마랴가, 민사 사건은 유다 지파 지도자 스바댜가 맡았다. 레위사람들은 관리직으로서 이들을 보조했다. 여호사밧은 각자 맡은 일을 힘써 행하라고 격려한다. 또 여호와를 경외하며 일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임재를 기원한다.
    
    
    
나는?
-아합은 면전에서 미가야의 예언을 무시하고 옥에 가두었지만, 마음으로는 그의 예언을 담아두었다. 그래서 자신은 왕이 아닌 듯 변장하고 대신 여호사밧에게만 왕복을 입힌다. 참으로 비겁하기 짝이 없다. 실제로 아람 왕은 이스라엘 왕을 죽이는 일을 전술의 핵심으로 지시하였기에 이것만 보면 아합의 변장은 지혜롭게 보인다. 아람 병사들을 성공적으로 속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속일 수 없다. 진정한 대책은 민낯으로 순종하는 것이지 변장하여 속이는 것이 아니다.
    
-여호사밧은 자신을 아합으로 오인한 병사들에게 쫓기지만, 여호와께서 도우시고 아람 군사들을 감동시켜 그를 떠나게 하신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여호사밧의 외침에 여호와께서 응답하신 것이다. 하지만 변장의 기술을 통해 안전을 자신하던 아합은 무심코 쏜 아람 병사의 화살에 맞아 절명한다. 우연이 변장을 이긴 것이다. 이를 보면 우연은 하나님의 섭리에 속한 하나님의 지혜로운 전술임이 틀림없다. 진정한 안전은 변장에 있지 않고 우연조차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여호사밧은 선견자 예후에게 하나님의 꾸지람을 듣는다. 여호사밧은 그 소리를 경청하며 받아들인다. 꾸중을 듣고 있는 왕, 어색하기만 하지만, 이스라엘의 왕은 원래 그런 존재다.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의 지도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아합은 이를 거부했다. 아합은 듣기 싫은 소리를 한마디도 수용하지 않았지만, 여호사밧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꾸중을 받아들인다. 아합은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여호사밧은 인정했다. 꾸중을 듣는 왕, 이것이 이스라엘 왕의 정체성이다.
    
-내가 틀릴 수 있음을 매사에 의식하며 살아야 한다. 잘못을 읽을 수 있고, 잘못을 들을 수 있으며, 하나님의 생각이 아니라 단순히 나의 제한적인 생각일 수 있음을 인정하는 모습이 얼마나 중요한가!
    
-꾸지람을 들은 여호사밧은 초심으로 돌아갔다. 아합에게 끌려다니던 삶을 청산한다. 그리고 즉위 초기 순회 교사들을 보내 여호와의 율법책으로 백성들을 가르쳤듯이, 이번에는 직접 브엘세바에서 에브라임 산지까지 두루 다니며 조상의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촉구한다. 그가 길르앗 라못 전쟁 패전에서 배운 것은 군사력의 증강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는 믿음이었다.
    
-여호사밧은 주요 성읍마다 재판관을 두고 재판하게 한다. 재판의 기준은 하나님 말씀이다. 이를 통해 백성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바르게 가르쳐서 하나님 뜻을 알고 그 뜻대로 살게 하려 했다. 예루살렘에도 재판관들을 두어 종교 사건들과 민사소송 건들을 재판하게 했다. 자기 말이 법이 되게 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 아래 모든 백성이 거하게 했다.
    
-공의의 원천은 하나님이시다. 여호사밧은 지방 재판관들에게 하나님을 본받아서 바르게 재판할 것을 권고한다. 예루살렘의 재판관들에게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재판하도록 촉구한다. “진실과 성심을 다하여 여호와를 경외하라”고 당부한다. 하나님 말씀 앞에서 아무도 억울한 사람이 없어야 하고 죄를 짓고도 무사한 사람이 없게 해야 한다. 여호사밧은 하나님이 왕이 되어 다스리시는 나라를 보고 싶어 한 것이다.
    
-여호사밧은 이 모든 좋은 뜻이 실제 효과적으로 이행되도록 행정제도를 정비한다. 여호사밧 자신은 총책임자가 되고 여호와께 속한 일은 대제사장 아마랴에게, 왕에게 속한 일은 가문의 지도자 스바댜에게 맡긴다. 종교적 사건과 민사 사건을 구분하여 담당하게 한 것이다. 또 두 책임자에게 각각 레위인들을 붙여주어 보조하게 한다. 그들에게 용기를 내어 임무를 수행하라고 권고하면서 그런 선한 자에게 하나님의 임재가 있을 것이라고 한다.
    
    
    
*주님, 여호사밧의 경험을 보며 하나님만 더욱 의지해야 함을 깨닫습니다. 깨달은 대로 늘 하나님 의지하며 살겠습니다.
*주님, 여호사밧은 마음으로만 깨닫지 않고 행동으로 순종해 감을 봅니다. 늘 말만 앞서지 않고 행함으로 주님의 길을 걷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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