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 22:1-12 아하시야와 아달랴의 아합의 길, 여호사브앗의 다윗의 길
부전자전(父傳子傳)이다. 여호람의 뒤를 이은 아하시야는 그의 아버지와 동일한 길을 걷는다. 아합 왕가에 여전히 휘둘렸고, 결국 예후가 일으킨 쿠데타로 목숨을 잃고 만다. 여호람과 아하시야로 이어지는 이런 삶은 결국 아합과 이세벨의 딸 아달랴 때문이었다. 그는 북 왕국 요람과 동맹을 맺고 아람과 전투하는데, 승전하기는커녕 요람이 다치고 만다. 예후는 쿠데타를 일으켜 요람과 아하시야를 살해하고 북 왕국의 왕위에 오른다. 남 왕국에서는 아합과 이세벨의 딸, 여호사밧의 며느리이자 여호람의 아내, 그리고 아하시야의 어머니인 아달랴가 왕자들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다. 그 와중에 요아스만 기적적으로 구출된다.
1. 이어지는 악_아하시야의 통치(1~6절)
여호람이 세상을 떠난 다음 ‘예루살렘 주민들’이 여호람의 막내아들을 왕위에 올렸다. 이는 블레셋과 구스에 인접한 아라비아 사람들이 유다를 침공하여 여호람의 자녀들을 탈취해 갔기 때문이었다(21:17). 저자는 그 와중에 막내아들만 살아남아 그를 왕위에 올리는 것 외에 달리 방도가 없었다고 말한다.
아하시야는 예루살렘에서 1년 동안 유다를 다스렸다. 그는 고작 23세에 세상을 떠난 것이다. 아하시야의 어머니는 아달랴다. 그녀는 ‘오므리의 손녀’ 즉 아합과 이세벨의 딸이다. 아하시야는 여호람을 따라 아합의 길로 행했다. 저자는 그 까닭을 그의 어머니 즉, 아달랴가 그를 꾀어서 악을 행하게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저자는 3~4절에서 동일한 의미의 말(아합의 집)을 반복하여 표현함으로써 그가 조상들의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아합 가문의 영향을 더 받았음을 드러낸다. 아하시야는 아합의 아들 이름과 동일하다. 아하시야는 자기 외숙의 이름을 따서 지은 이름인 것이다. “아합의 집”을 따랐다는 것은 “아합의 집같이 악을 행하였다”는 의미다. 역대기는 아합의 집 길이 필망의 길임을 여러 차례 밝혔다.
5절에서도 아합의 집 가르침을 따라갔음을 밝힌 저자는 그 길을 가다 패망에 이르는 과정을 소개한다. 아하시야는 북 왕국의 요구를 따라갔다. 마치 여호사밧이 아합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고 길르앗 라못 전투에 참여한 것처럼, 북 왕국 요람의 요청을 따라 길르앗 라못 전투에 참여하여 아람 왕 하사엘과 전투한다. 그런데 이때, 여호사밧 때처럼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북 왕국 요람이 아람 군인들에 의해 상처를 입는다. 그는 전투에서 입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요단 서편 갈릴리에 있는 이스르엘로 간다. 길르앗 라못은 요단을 건너 동편에 있는 사막과 접한 국경도시였다. 상처를 입은 요람은 가장 가까운 곳이기도 하고 여름 궁전이 있는 이스르엘로 물러나 치료를 받으려고 한 것이다. 이때 요람의 생질(누이의 아들)인 아하시야는 그를 병문안하기 위해 이스르엘로 향한다.
2. 예후가 쿠데타를 일으키다(7~9절)
사실 아하시야가 요람과 함께 길르앗 라못 전투에 참여하여 아람 사람과 싸우는 과정에서는 여호사밧처럼 어려움을 당하지 않는다. 그는 무사히 전투가 끝나고 예루살렘에 돌아갔을 것이다. 그런데 사건은 이스르엘에서 일어난다. 저자는 아하시야가 요람의 병문안을 가서 해를 당하는데, 이는 결코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일어난 일이라고 말한다. 6절은 요람은 전투에서 얻은 부상을 치료하기 위해 이스르엘로 갔고 아하시야는 그런 숙부를 병문안 하기 위해 이스르엘로 향하는데, 이때 북 왕국의 군대 장관 예후가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이 일은 하나님이 예후가 아합의 집을 심판하게 하신 섭리에 따라 일어난 일이다. 열왕기하 9장에서 예후는 요람 왕을 죽인 후에 자기가 임명한 군대 장관 빗갈에게 이 일은 엘리사의 예언대로 나봇의 죽음을 신원하기 위해 아합의 집을 멸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때 예후의 군대는 아합의 집 사람들은 물론이고 그들과 함께 한 남왕국 사람들, 즉 아하시야와 함께 요람을 병문안하기 위해 이스르엘로 온 유다 방백들과 아하시야의 형제들의 아들들, 즉 그를 섬기는 조카들까지 모두 죽인다.
한편, 아하시야는 그 살육의 현장을 가까스로 벗어나서 사마리아로 피신한다. 그러나 예후와 그의 군사들이 사마리아로 와서 아하시야와 다른 사람들을 찾기 위해 수색을 벌였고, 결국 아하시야는 발각되어 죽임을 당한다(열왕기에서는 므깃도에서 죽임을 당했다고 기록한다). 예후는 아하시야가 여호사밧의 아들이라는 점을 참작하여 잘 묻어 준다. 예후와 그의 군사들은 여호사밧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여호사밧을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던 여호사밧’이라고 칭한다. 저자도 예후를 하나님이 아합 가문을 멸하기 위해 기름 부으시고 택하신 사람이라고 하는데, 열왕기의 기록은 예후가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 큰 사람으로 소개한다. 이런 배경으로 예후는 여호사밧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남 왕국 유다는 아하시야가 죽은 후 당장 왕위를 계승할 만한 사람이 없어서 국가적으로 위기를 맞게 된다. 아하시야의 형제들은 전쟁 때 다 죽임을 당했고, 아하시야의 조카들도 예후의 군사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기 때문에 왕위를 계승할 사람이 없었다.
3. 아달랴가 왕의 자리에 오르다(10~12절)
그런데 아하시야가 죽임을 당한 후에 그의 어머니 아달랴가 신속하게 취한 행동은 매우 놀라운 것이었다. 그는 왕위 계승의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다윗 가문의 남자들을 모두 죽인다. 이렇게 하여 “유다 집의 왕국의 씨를 모두 진멸했다.” 아달랴의 행적은 놀랍기만 한데, 8년 동안은 여호람의 왕후로, 1년 동안은 아하시야의 어머니로서 왕태후로 살았다. 그리고 정변을 일으켜 6년간은 자신이 직접 여왕의 자리에서 통치한다.
정변의 살육 속에서 요아스가 살아남는데, 여호사브앗(열왕기에서는 여호세바)이 요아스와 그의 유모를 몰래 빼내어 성전에 숨긴다. 여호사브앗은 여호람 왕의 딸이고, 아하시야의 누이다. 그리고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내였다. 여호사브앗이 여호람 왕의 딸이라면, 아달랴의 딸일 가능성이 큰데,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내이기에 아달랴에게 동조하지 않은 것으로 추측할 수밖에 없다. 저자가 여호사브앗의 남편이 여호야다라고 밝힌 것은 앞으로 벌어질 일을 위한 복선이다.
아달랴가 스스로 왕의 자리에 올라 나라를 다스리는 6년 동안 요아스는 성전에서 숨어 지낸다. 다윗 왕조를 위기에서 극적으로 구한 사람이 제사장이고, 또 요아스가 숨은 곳이 성전이라는 사실은 성전과 제사장의 역할을 중요하게 여기는 저자의 독특한 관점을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나는?
-아하시야는 아라비아의 침략에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음에도, 하나님의 길이 아니라 하나님을 떠난 아합의 길을 따른다. 이는 분명 어머니 아달랴의 영향이었을 것이다. 조상의 하나님을 가까이하기보다는 어머니의 나라, 북이스라엘의 길을 따르다가 비극적인 최후에 이른다. 내가 환경을 결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내가 누구에게 영향을 받을지는 결정할 수 있고 책임이 따른다.
-과거로부터 배우지 못하면 또다시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게 된다. 아하시야는 왕이 될 때 제사장으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고 하나님의 종으로 백성들을 통치할 것을 언약했지만, 통치하는 순간부터 언약을 깨고, 아합의 길을 통치 이념으로 내세우고 만다(1~4절). 아라비아와의 전쟁통에 유일하게 자신을 살려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아버지 여호람이 갔던 잘못된 길을 그대로 따라간 것이다. 아버지의 실패로부터 어떤 것도 배우지 못하고, 아버지가 갔던 그 길을 갔기에 아버지의 운명이 곧 그의 운명이 될 것이다.
-나는 지금 어떤 길을 걷고 있는가? 죄의 길을 걸으면서 나만은 괜찮을 거라고 착각하거나 기만하고 있지는 않는가? 실수가 반복되면 실패를 낳고 실패가 반복되면 필멸을 부른다.
-하나님은 오므리 왕가를 무너뜨리기 위해 예후를 사용하신다. 그를 통해 북이스라엘의 요람은 물론이고 요람을 문병하러 온 유다 사절단을 모두 죽인다. 할아버지 여호사밧처럼 여호와를 전심으로 구하지 않은 아하시야는 고작 1년의 통치를 끝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얻을 것이 없다는 것을 왕의 자리에 있는 이들은 왜 잘 깨닫지 못하는 것일까? 이 땅의 지도자들에게 비범한 겸손과 통찰력을 주셔서 겸손한 지도력이 무너지지 않기를 기도해야 할 것이다.
-요람과 아하시야가 예후의 손에 죽게 함으로, 동맹자들의 최후를 우상 숭배자와 같게 하셨다. 결과적으로 아하시야의 요람 병문안은 예후의 손에 두 사람을 함께 죽이려는 하나님의 무섭고도 효과적인 전략이었다. 문안길이 초상길이 되고 말았다. 아무리 강한 악인과 함께 있는 한 안전한 장소는 없다. 좌와 연합하는 자가 죄와 같은 운명을 맞이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진리다. 비록 할아버지 여호사밧을 기억하는 예후의 손에 의해 장례가 치러지지만, 아하시야 가문은 풍전등화의 위기에 직면했다. 우리의 삶에서 불의하고 부도덕한 자와 함께 있지는 않은가? 혹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자리에 분별치 못하고 앉아 있지는 않는지 돌아볼 일이다.
-이세벨의 딸 아달랴는 유다 왕가의 씨를 진멸하고 자신이 왕 노릇 하려고 시도했지만, 신실한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내 여호사브앗은 조카 요아스를 6년 동안 길러서 다윗 왕조의 명맥을 잇게 한다. 한 여인은 남을 희생하여 자신을 세웠지만, 다른 한 여인은 자신을 희생하여 남을 살리고 하나님 나라를 살린다.
-천하는 아달랴의 세상이 된 듯하지만, 저자는 아달랴를 결코 공식적인 왕으로 소개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진정한 왕은 성전에서 자라고 있음을 밝혀주고 있다. 진리와 말씀을 말살하려는 아달랴와 같은 이들의 형통과 강성함과 부요함을 부러워할 이유가 없다. 그들은 남을 짓밟고 일어서는 것에 익숙하지만, 하나님 나라 백성은 여호사브앗처럼 자신을 희생하여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통로를 지켜낸다. 이 얼마나 흥분되는 일인가?
*모두가 아합 집의 길로 갔다. 그런데 여호사브앗은 아니었다. 여호람, 아하시야, 이달랴…. 모두 하나님이 심판하는 길인 “아합 집의 길”로 갔다. 그런데 여호사브앗은 달랐다. 분명히 아달랴의 딸이니 “아합의 집” 사람이었지만, 그녀는 아합 집의 길로 함께 가지 않는다. 그녀는 자기 혈통의 길이 아니라 제사장 여호야다가 걷는 하나님의 길을 간 것이다.
*결국 선택의 문제다. 아달랴는 여호람과 결혼하여 그 무수한 시간 동안 시아버지 여호사밧의 모습을 통해 얼마든지 “하나님의 길”로 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바알과 아세라를 남 유다에 뿌리내리겠다는 일념으로 꿋꿋하게 “아합 집의 길”을 걸어갔다. 어머니 이달랴의 “아합 집의 길”의 가르침을 거부하고 남편 “여호야다”의 하나님을 섬기는 길로 걸은 것이다. 역시 믿음과 신앙의 삶은 선택과 결단의 문제인 것이다. 혈통의 문제가 아니다. 환경의 문제는 부수적이다.
*여호사브앗와 여호야다는 온 나라가 “아합 집의 길”에 휘둘려 그 길에 빠졌을 때, “하나님의 길”을 꿋꿋이 고수하였다. 성전 안에서 무려 6년을 견뎠다(12절). 요아스가 성전에서 6년을 보낸 것은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의 성취이다. 다윗의 후손에게 왕위를 잇게 하시겠다는 약속을 스스로 지키셨다. 이를 지키시기 위해 “아합의 집”의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지키셨다. 하나님의 신비한 역사요. 은혜다!
*악인을 심판하시는 것,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이다. 그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 안에 거하는 것은 이를 믿는 이의 인내와 신실한 믿음에 달려 있다. 여호사브앗은 이를 선택했다. 아하시야나, 아달랴나…. 그런데 여호사브앗이 더 은혜로운 아침이다! 아합 집의 길이 아무리 세상이 끌리는 길이라도 나는 하나님의 길을 걷겠다. 세상이 아무리 외면하더라도…. 오히려 핍박하고 고난을 주더라도…. 이 길이 생명의 길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거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그 길이 널찍하여서,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너무나도 좁고, 그 길이 비좁아서, 그것을 찾는 사람이 적다.”(새번역_마 7:13-14)
*주님, 실패를 통해 배우지 않은 교만이 결국 종말을 맞이하게 함을 봅니다. 실수가 반복되면 실패를 낳고 실패가 반복되면 필멸을 부름을 기억하고 늘 겸손하게 실수하지 않도록 은혜를 구합니다.
*주님, 지금 눈으로 보기에 흥왕한 아합의 길이 아니라 보이지 않아도 끈질기게 준비되어 이미 임하였고, 완성된 하나님 나라 가치대로 살아내겠습니다. 아합의 길의 유혹을 예리하게 걸러내겠습니다.
*주님, 아달랴의 딸임에도 여호사브앗의 다름이 다윗 왕조를 이어가게 했습니다. 늘 신실하게 하나님의 섭리를 따르는 삶이 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