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아마샤의 빛과 그림자 [대하 25:1-13]
 – 2025년 10월 14일
– 2025년 10월 14일 –
대하 25:1-13 아마샤의 빛과 그림자
    
에돔과 전쟁을 준비하는 아먀샤는 다른 나라의 협조를 구하고 군대의 병력을 늘리는 것이 전쟁의 승리를 가져올 것으로 판단했다. 그는 전쟁의 승리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그의 뜻대로 행할 때 가능함을 간과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믿음이 약한 아마샤에게 선지자를 보내어 그를 권고하신다. 아마샤는 하나님의 말씀에 힘입어 에돔과 싸워 대승을 거둔다.
    
    
    
1. 아마샤의 통치(1~4절)
요아스의 뒤를 이어 아마샤가 25세에 유다의 여덟 번째 왕이 되어 29년간 다스렸다(주전 796~767년). 아마샤의 통치 기간 대부분(주전 792~767년)은 아마샤와 그의 아들 웃시야의 동동 통치로 계산된다(왕하 14:23; 15:1). 아마샤의 통치 전반은 두 가지 내용으로 소개된다.
    
첫째, 아마샤는 하나님의 눈에 정직하게는 행하였으나 온전한 마음으로는 하지 않았다. 행동은 하나님께 합당했지만, 마음의 태도가 모자랐고 꾸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9, 14, 16, 20, 27절). 아사의 경우와 비슷하다(16:7~12). 역대기는 이런 예를 통해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른 삶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여기에는 감정을 뛰어넘는 의지적인 기쁨과 자발성이 깃든 ‘온전한’ 마음이 동반되어야 함을 일깨워준다(19:9; 대상 29:19).
    
둘째, 아마샤는 아버지에 대해 보복했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그 자녀는 살려주었다. 아마샤는 요아스의 죽음 이후 나라가 기반이 잡히자, 요아스를 죽인 사밧과 여호사밧을 죽였다. 역대기에서는 왕의 암살자들이 이방인임(24:26)을 언급하며 그들이 마땅한 심판을 받았음을 넌지시 드러낸다. 한편, 아마샤는 그들의 자녀는 모세의 율법에 따라 죽이지 않았다. 하나님은 자녀가 아버지의 죄를 대신할 수 없고, 아버지가 자녀의 죄를 대신할 수 없다고 하신다(신 24:16).
    
    
    
2. 아마샤와 에돔의 전쟁(5~13절)
아마샤의 통치 기사는 에돔과의 전쟁(5~12절)과 북이스라엘과의 전쟁(17~22절), 두 가지 사건으로 채워졌다. 에돔과의 전쟁 기사는 역대기에서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열왕기는 한 절로만 요약된다(왕하 14:7). 본문이 전쟁 승리 이전에 아마샤의 불신앙이 믿음으로 전환되는 상황을 보여주며, 이후의 북이스라엘과의 전쟁이 에돔 전쟁에 수반되어 일어났음을 알리는 역할도 한다.
    
아마샤는 왕권이 강화되자(3절), 에돔과의 전쟁을 준비하며 남 유다와 북이스라엘 전체에서 사람들을 모은다. 먼저 유다와 베냐민 지파에서 각 족속에 따라 천부장과 백부장을 세웠고, 20세 이상으로 창과 방패를 다룰 줄 아는 자 30만 명을 소집했다. 아사의 군대가 58만(14:8), 여호사밧의 군대가 116만(17:14~19)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여호사밧 때부터 여러 전쟁(18:28~34; 21:8~10, 16~17; 24:23~24)으로 유다 군대의 규모가 줄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아마샤는 군사의 수를 확보하기 위해 북이스라엘에서 힘 있는 용사 10만 명을 은 100달란트(3.4톤)를 들여 고용했다. 이 금액은 용병 전체에게 지급한 착수금으로 전쟁 후 전리품으로 추가 소득을 얻게 된다. 하지만 나중에 이들이 유다 성읍을 약탈한 것을(13절) 미루어 보면 그리 큰 금액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샤가 북이스라엘 용병을 확보했다는 것은 남 유다가 아합 가문의 몰락 후 예후의 집안과 연합했음을 뜻한다.
    
이때 하나님은 한 선지자(하나님의 사람, 7절)를 아마샤에게 보내 그의 믿음 없음을 책망하시며, 전쟁이 하나님께 속한 것임(20:15)을 일깨우신다. 첫 번째 책망은 아마샤가 북이스라엘과 연합한 것에 대한 것이었다(7절). 하나님은 에브라임 자손, 즉 북이스라엘과 함께하시지 않으시므로, 그 군대가 아마샤와 동행해서는 안 된다고 선언하신다. 북이스라엘이 아합 왕가의 몰락 이후에도 예후 집안 아래에서 우상숭배와 악을 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후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아합 집안을 진멸했고, 바알 숭배자와 우상과 신당을 없앰으로써 이스라엘에서 바알을 진압한다(왕하 9:24~10:28). 그러나 예후와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와 아마샤 당시의 왕이었던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왕하 13:11) 때까지 모두 여로보암의 금송아지 우상숭배를 쫓으며, 하나님의 율법을 전심으로 행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유다 왕과 백성이 이들의 영향을 받지 않기를 원하신 것이다.
    
둘째, 하나님의 선지자는 왕이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지 않음을 지적한다(7~8절). 하나님이 싫어하시는데도 만약 왕이 전쟁에 나가려 한다면 왕은 그의 힘으로 싸워야 한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왕을 적군 앞에서 걸려 넘어지게 하실 것이라고 선포한다.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도울 힘만 있는 것이 아니라 걸려 넘어지게 할 능력도 있음을 일깨운다.
    
아마샤는 다른 나라의 원조와 군사의 많음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하나님만이 신뢰할 분이며, 전쟁의 승패가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깨닫지 못했다. 아마샤는 선지자의 권고를 들었음에도 결국 북이스라엘 군대를 고용하면서 은 100달란트의 손실을 어떻게 감수할 수 있을까 걱정한다. 직전에 하나님이 도울 힘도, 망하게 할 힘도 있음을 들었으면서도 인간적인 계산이 앞선다. 선지자는 하나님이 그보다 더 많은 것을 왕에게 줄 수 있다고 화답하며 안심시킨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느라 감수한 손해는 하나님이 에돔 전쟁의 승리를 통해 공급해 주실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 손해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영적 분별력을 잊은 것 때문에 감수하는 손해이므로 하나님이 손해를 메꿔주지 않으셔도 할 말이 없다. 당장의 손해가 아까워서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다면 손해는 더욱 커질 것이다. 또한 만약 하나님을 신뢰하느라고 손실을 봤다면 하나님이 얼마나 더 기쁘게, 더 많이 채워주시겠는가.
    
하나님의 사람(선지자)의 권고와 경고를 듣고 아마샤는 마음을 돌려 하나님의 명령을 따랐고 승리를 얻었다. 그는 에브라임 군인들을 유다 군대에서 분리하여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40만의 병력에서 10만 명(6절)이나 돌려보내야 했기에 마음이 위축되었겠지만,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며 용기를 냈다. 유다 군인들만 데리고 소금 골짜기에 가서 세일 자손(에돔) 1만 명을 쳤고 세일을 손에 넣었다(왕하 14:7). 유다 군인들은 생존한 사람 1만 명을 추가로 사로잡아 그들을 바위 꼭대기에 데리고 가서 그 아래로 던져 죽였다. 12절에서 적군 모두가 산산이 부서졌음을 언급한 것은 역사적으로 에돔이 유다에게 저지른 악과 폭력에 대한 마땅한 심판임을 암시한다.
    
이 설명은 특히 포로에서 돌아온 역대기 저자와 청중의 원한을 드러내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에돔은 유다가 바벨론의 침략으로 멸망할 때 바벨론의 동맹군이 되어 유다를 침략했었다. 에돔은 예루살렘의 기초까지 헐어버리라고 조롱했다(시 137:7). 그러므로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은 에돔 인이나 바벨론의 어린아이들을 바위에 메어치는 자가 복되다고 할 만큼 그들에 대한 증오가 컸다(시 137:8~9).
    
한편, 아마샤가 세일 자손을 치는 동안 북이스라엘 군인들이 유다 백성을 쳤다. 아마샤로부터 돌아가라는 명령을 받은 북이스라엘 용병들이 전쟁에 나가 전리품을 얻을 기회를 놓쳤으므로 심히 화가 났다. 10절에서는 그들의 화는 ‘심히 노하여’와 ‘분연히’로 표현되어 그들의 화가 극에 달하여 파괴적인 행동으로 이어졌음을 암시한다. 이스라엘 용병들은 사마리아부터 벧호론까지 유다 성읍을 약탈하고, 유다 백성 3천 명을 죽이고 물건을 탈취한다.
    
    
    
나는?
-아마샤는 29년 동안 왕위에 있었다. 이런 장기간의 통치는 그가 하나님 앞에서 큰 잘못을 범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그를 온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행한 사람으로 평가한다. 실제로 부왕을 죽인 자들을 처형하면서도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그 자녀들은 살려준다. 아비의 죄 때문에 죄 없는 자녀들이 억울하게 죽는 일을 금하고 있는 말씀을 지킨 것이다. 왕권을 우상처럼 여겼다면 후환을 없애기 위해 자녀들까지 제거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왕권의 안정이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태도에 달려 있을 뿐이라고 여겼다.
    
-아마샤는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정직하게 행한 부분이 있지만, 온전히 신뢰하지 못한 왕이기도 했다. 에돔을 치기 위해 북이스라엘과 연합하여 10만 군사를 은 백 달란트를 주고 데려왔다. 겉으로는 남과 북이 연합하여 이방 나라에 맞서는 좋은 그림이지만, 하나님의 선지자를 보내 우상숭배 하는 예후 가문과의 연합을 불신앙으로 간주하신다. 여호와를 신뢰하지 않는 그 전쟁의 길에는 여호와께서도 동행하지 않으실 것이니, 아마샤는 유다의 군사만으로 전쟁을 치러내야 한다고 했다. 아마샤는, 이 복잡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만이 이기게도 하시고 패하게도 하시는 분이라는 상식적인 진실을 믿어야 했다.
    
-하나님께 승리와 패배가 달려 있다고 했음에도 왕은 북이스라엘 10만을 돌려보내면서 손해 보게 되는 은 백 달란트를 걱정한다. 그럼에도 아마샤는 걱정하는 마음과 함께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다. 마지못한 순종임에도 하나님은 승리를 주시고 막대한 전리품을 안겨주신다. 그러나 전쟁에 참여하지 못한 북이스라엘 10만 군사는 이에 분을 품고 돌아가는 길에 유다 성읍을 상대로 학살과 약탈을 자행하게 된다. 이런 모습을 통해 하나님께서 왜 북이스라엘 군사와 연합하면 안 되는 존재인지 그들 스스로 증명한 셈이다.
    
    
*절반의 순종은 온전한 순종일 수 없다. 아마샤는 재위 초기 바른길을 걸었지만, 후반에는 아버지 요아스처럼 산당을 제거하지 않음으로 우상숭배의 길을 걷는다(1~2절).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형식적인 순종이 아니라, 온 마음을 다하는 헌신이다. 내가 주님을 처음 만난 날의 사랑과 헌신이 지금도 그대로인가?
    
*사사로운 감정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서면 공의를 바로 세울 수 없다. 다행히 아마샤는 부왕을 죽인 심복들을 처형할 때 모세 율법에 근거하여 그 자녀는 벌하지 않는다(신 24:16). 내 목회의 걸음이 철저히 말씀의 법도를 따르기를 다시금 결심하게 된다. 사사로운 감정으로 공적인 결정에 영향을 끼치지 않아야겠다.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그 어떤 재물이나 군사력보다 더 가치가 있다. 그렇기에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신다면 어떤 손해를 보더라도 당장 그만둘 수 있는 용기가 때로 필요하다. 아마샤는 선지자의 권면을 받아들여 거액을 주고 사들인 용병을 모두 집으로 돌려보낸다. 이렇듯 내 삶에 큰 대가를 치르더라도 포기해야 할 “불신앙의 군대”가 있지 않을까?
    
*무례한 분풀이가 또 다른 비극의 씨앗이 된다. 아마샤가 용기를 내어 에돔을 정복하고 있을 때, 되돌려보내진 북이스라엘 군사들이 전쟁에 참여하지 못한 것에 앙심을 품고 유다 사람 3천 명을 학살한다. 이 사건은 또 다른 전쟁을 유발한다(25:17~24). 감정에 치우치고 무분별한 행동이 가져오는 파장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오늘을 살아가면서 내일의 후환을 만드는 어리석은 결정과 걸음을 걷지 않아야 하리라.
    
*아마샤의 빛과 그림자를 볼 수 있는 본문이다. 나에게도 신앙의 빛과 그림자가 있다. 그럼에도 긍휼과 사랑으로 회복과 성장의 기회를 주시는 주님의 은혜로 오늘을 살아가게 하실 것이다. 그 은혜 안에서 말씀의 힘으로 살아내리라.
    
    
    
    
*주님, 온전하지 못한 순종이라도 긍휼을 베푸시는 주님의 사랑을 봅니다. 그 사랑의 기회가 내일은 더욱 성숙하고 온전한 믿음의 사람으로 이끌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주님, 아마샤처럼, 어떤 때는 순종의 걸음으로, 어떤 때는 불순종의 걸음을 걸을 때가 반복되는 것이 인생인 듯합니다. 그러나 하루하루 지날수록 순종의 순도가 높아지는 성숙의 삶을 추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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