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 29:1-19 히스기야의 종교개혁, 회개-정화-정돈-내다 버림
하나님이 거룩하시므로, 그가 거하시는 성전과 그에게 드리는 예배도 성결해야 한다. 히스기야는 왕이 되자 먼저 성전 종사자들을 불러 성결케 하고 성전을 정화하도록 명령했다. 이로써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정결하게 된 성전에서 하나님께 예배할 준비가 완료된다.
1. 성전 정화가 왜 필요한가? (1~11절)
히스기야의 통치 기록은 역대하 29~32장까지다. 분열 왕국의 왕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저자는 특히 성전과 예배에 대한 히스기야의 헌신을 높게 평가한다. 다윗과 솔로몬의 기록서 가장 두드러지게 묘사되지만, 히스기야의 통치에, 이에 못지않게 서술된다. 29~31장까지는 히스기야의 성전 정화와 재봉헌, 유월절, 성전과 신앙 정비에 집중하고, 32장에는 전쟁에 대처하는 그의 믿음과 선한 업적을 중심으로 기록하면서, 그의 교만과 실추도 함께 소개한다.
히스기야는 25세에 유다의 열세 번째 왕이 되어 29년을 다스린다(주전 715~687). 또한 여호사밧(17:3)에 이어 다윗의 길을 따른 왕으로 소개된다. 그는 여호와의 눈에 정직하게 행하였다. 이와 같은 평가는 이스라엘 왕들의 길을 따른 그의 아버지 아하스와 구별된다(28:1~2). 히스기야는 왕이 되자 성전 정화를 시도하여 예배의 회복을 갈구했다 첫 해 첫 달에 아하스가 닫았던 성전의 문들(28:24)을 열고 문들을 수리했다.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성전 앞 동쪽 광장에 모으고 그들에게 성전 정화의 필요성을 알리고, 그들이 해야 할 일을 일러준다.
먼저 첫째, 레위인들은 자신을 성결하게 하고 전을 성결하게 하라고 명한다. 거룩한 성전에서 오염을 제거해야 하는 자가 성결하지 못하면 성전을 더럽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레위인들에게 회막에 들어갈 때나 직분을 행할 때 수족을 씻어 죽기를 면하라고 명령하셨다(출 30:18~20). 성결 의식에는 이처럼 제의적이고 상징적인 외적 의미가 들어있지만,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내적 의미도 담겼다. 성전 정화 작업에는 성전을 성결하게 하는 일과 성전에서 더러운 것을 제거하는 일이 포함된다. “더러운 것”은 우상 또는 우상에게 사용된 것 등 제의적으로 불결한 것을 뜻한다.
둘째, 성전 정화가 필요한 이유를 설명한다. 이유는 두 가지다. 사람이 하나님께 악을 행했고, 그 결과 하나님이 진노하셨기 때문이다. 히스기야는 “우리 조상들”이 죄를 범했음을 직접 언급하여 아하스만 아니라 선왕과 선조들이 하나님께 충실하지 못한 점을 지적한다. 이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했으며, 그 악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버린 데 있다. 하나님과 그의 성전을 향해 얼굴을 돌려야 호의와 보호를 받을 수 있으나 여호와의 거처로부터 그들의 얼굴과 등을 돌렸다. 그들은 성전의 낭실(3:4, 현관) 문을 닫아 성소의 출입을 막았다. 이에 따라 성소의 등잔대에 늘 켜져 있어야 할 등불이 꺼져 있었다. 또 분향단 위에 향기로운 향도 태울 수 없었다. 규례에 따르면 등불을 항상 켜두고 저녁부터 아침까지 제사장이 정리해야 했으며(레 24:3~4), 등불을 정리하거나 켤 때 향을 태워야 했다(출 30:7~10). 그러나 성소의 문이 닫혀 제사장도 직임을 다할 수 없었다. 또한 놋제단 위에서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지 않았다. 아하스가 놋 제단을 옮겨 방치하고 다메섹에서 본 단을 본떠 만든 제단을 성전 뜰에 두었으며, 그 제단 위에서 우상에게 제사를 드렸다(왕하 16:10~16). 이때 제사장 우리야는 아하스가 시킨 대로 제단을 만들고 그 위에 제사하였다. 이처럼 성전은 우상의 신전이 되었고, 제사장들도 부패하여 하나님을 저버렸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했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렸으므로 여호와도 그들을 버리셨다. 하나님은 아하스 당시 아람, 북이스라엘, 에돔, 블레셋, 앗수르를 보내 유다를 낮추셨다(28:5, 17~20). 유다와 예루살렘은 이방에게 두려움과 놀람과 비웃음거리가 되었다. 백성들은 칼에 죽고 아내와 자녀들이 사로잡혀갔기 때문이다. 히스기야가 언급하는 이 내용은 아하스 통치 시기에 북이스라엘이 쳐들어와 유다 백성이 포로로 잡혀간 사건의 내용과 유사하다(28:5~15).
셋째, 히스기야는 이제 회개의 결단을 제안한다. 그는 하나님과 언약을 세울 마음이 있음을 밝힌다. 하나님께 얼굴을 향하여 회개하고 언약을 수행할 의지를 전달함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바랐음을 알 수 있다. 히스기야는 언약을 통해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가 떠나기를 갈망한다.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내 아들들(11절)”로 부르며 그들에게 태만하지 말 것을 독려한다. 아울러 하나님이 그들을 하나님 앞에 세워 그를 섬기게 하려고 택하셨음을 상기시키신다. 이들은 그동안 성전이 제구실을 못 해, 그들의 직임을 다하지 못했다. 이제 하나님과 언약을 통해 관계를 회복하여, 그를 수종 들고 분향하는 일 등 하나님이 그들에게 맡기신 하나님께 받은 소명과 직무를 성심으로 감당하기를 격려하고, 또 그렇게 될 날을 고대한다.
2. 정화되는 성전(12~19절)
성전 정화의 당위성을 들은 레위인들은 왕의 말에 순종하여 본격적으로 성전 정화에 나선다. 12절의 “이에 레위 사람들이 일어나니”라는 문장은 단지 뒤를 이어 등장하는 참여자들의 명단을 소개하려는 것뿐 아니라, 성전 정화에 대한 동의와 결의도 포함한다.
12~14절에 소개된 참여자들은 열네 명의 지도자들로서, 크게 레위인을 대표하는 자들과 찬양과 악기를 담당하는 아삽, 헤만, 여두둔의 자손들로 나뉜다. 먼저 레위인을 대표하는 레위의 세 아들, 그핫(고핫)과 므라리와 게르손 가문이며, 여기에 엘리사반 가문이 추가되었다. 엘리사반은 그핫의 손자로서, 그핫인 가족과 종족의 족장이었다(민 3:30). 엘리사반 자손은 다윗 때 언약궤를 옮길 때 참여한 명단에서도 레위의 세 아들 뒤에 소개된다(대상 15:8). 이 네 가문에서 각 두 명씩 총 여덟 명이 기록된다. 다음으로 찬양과 악기 연주를 담당하는 아삽, 헤만, 여두둔의 자손들인데, 역시 각 두 명씩 총 여섯 명이 열거된다. 이 열네 명의 지도자들은 성전 정화 작업을 위해 자기들의 형제를 모았고, 먼저 자신들을 성결하게 한다. 그리고 성전을 깨끗하게 했다. 히스기야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명한 모든 지시(5절)에 순종했음을 나타낸다.
성전 정결 작업을 할 때 레위인들은 성전 외부인 뜰을 깨끗하게 한다(15절). “깨끗하게 했다”라는 말은 제의적 부정을 씻어내고 정결하게 했다는 뜻이다. 제사장들은 성전 본체 내부인 지성소와 성소를 깨끗하게 했다(16절). “성전 안”이란 지성소를 뜻하고, 규례에 따라 레위인들의 출입이 제한되었으므로 제사장들이 들어갔다. 제사장들은 또한 성소에 있는 모든 더러운 것을 뜰로 끌어냈다. 끌어낸 우상이나 관련 기물들을 예루살렘 동쪽 성벽에 있는 기드론 시내로 가져가서 제거했다. 이 장소는 아사 왕 때에도 태후가 숭상했던 우상을 찧고 빻아서 불태운 곳이다(15:16).
성전 정결 작업은 제1월 1일에 시작하여 16일간 진행되었다. 첫 8일은 성전 뜰에서 낭실까지 성결하게 했으며, 다음 8일은 성전 본체와 내부를 성결하게 했다. 1일에 시작하여 16일에 마쳤다는 것은 제1월 14일에 시작하는 유월절 절기를 염두에 두어 그 전에 성전을 성결하게 하려 했음을 추측하게 한다.
모든 작업을 마치고 레위인과 제사장들은 히스기야 왕에게 가서 성전 정화에 대한 경과를 보고하고 작업이 완료되었음을 알린다. 그들은 성전 외부와 내부, 아하스가 치워 둔 번제단, 모든 그릇과 진설병 탁자 그리고 관련 그릇들을 다 깨끗하게 했다. 또한 아하스가 죄를 범할 때 성전에서 제거한 그릇의 오염을 씻어내고, 다시 정리하고 성결하게 했다. 아하스는 다메섹 단을 세우고, 놋 제단을 옮겼으며, 물두멍 받침의 옆판을 떼어냈고, 놋 바다를 소 장식 위에서 떼어 다른 데로 옮기는 등 성전 기물을 훼파하거나 마음대로 옮겼다(왕하 16:14, 17). 레위인들은 이런 것을 다 보수하고 제대로 정돈하여 여호와의 제단 앞에 두었다. 이로써 우상과 부정의 자취를 성전에서 다 제거한다.
이렇게 성결하게 된 하나님의 성전에서 다시 예배의 회복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히스기야는 왕위에 오르고 자신의 나라가 처한 현실을 냉철하게 분석했다. 그리고 인정했다. 정확한 진단이 정확한 치료의 시작이다. 진단된 문제의 핵심에 닫힌 성전, 더러워진 성전, 멈춘 번제가 있음을 지적한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나라임에도 하나님께 버림받아 세상 앞에 놀람과 비웃음거리가 되고 있음을 똑똑히 보고 있다.
-뼈아픈 현실을 뼈아프게 본다. 하나님의 피눈물을 보고 탄식 소리를 듣는다. 히스기야의 통찰력이 예민하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문제도 정확한 진단이 정확한 치료의 시작이 될 것이 분명한데, 정확한 진단에 애써 눈을 돌리는 듯이 보이는 것은 왜일까? 최근 마무리된 주요 교단 총회에서 교회를 교회답지 못하게 한 몇몇 인물들에 대한 분명한 평가와 대책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대표적이다. 진단조차 정확하게 내리지 못하는 수준이 되어 버린 교회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통탄스럽다. 성경적인 기준으로 보면 너무도 단순하고 명확한 것을 왜 그렇다고 인정하지 못할까? 맘몬에 휘둘리고, 주술에 잠식된 교회가 어찌 교회일 수 있겠는가! 오직 하나님 말씀의 거울 앞에 정직하게 바라보고 처절하게 떨쳐내야 할 때가 아닌가!
-무엇보다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유화하는 것이다. 코에 붙이면 코걸이 귀에 붙이면 귀걸이가 되는 말씀을 무분별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니 몇몇 유명한 인물들은 이를 악용하여 말씀으로 자기 권세, 자기주장을 휘두른다. 그런데 그런 것에 분별과 판단조차 시도하지 않는 혹세무민(惑世誣民, 세상을 현혹하고 백성을 속인다)의 교회가 되고 말았다. 그런 교회가 더럽혀진 성전과 다른 것이 무엇일까? 오히려 교회는 하나님의 복음으로 “홍익인간(弘益人間,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 혹은 “제세이화(濟世理化, 세상을 구제하고 도리로써 다스린다)의 교회여야 하지 않겠는가!
-히스기야는 하나님과 언약하고 싶어 한다. 이미 언약 관계 아래 있는 그가 다시 언약을 맺겠다는 것은 회개를 전제로 한 것이다. “회개(return)한 후 리셋(reset)”해야 할 만큼 나라의 상황이 심각하다고 본 것이다. 그래야 하나님의 맹렬한 노가 이 땅에서 떠날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자신들이 겸비하여 주님을 찾으면 다시 만나주시고 용서하시고 회복해 주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은 왕이었다. 그러고는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을 “내 아들(11절)”로 부르며 그들에게 게을리하지 말라고 독려한다. *자신과 함께 가장 먼저 회개해야 할 대상으로 종교 지도자들을 꼽은 것이다.
*이런 히스기야의 모습에서 오늘날 교회가 교회 되기 위해, 필요한 모습을 보게 된다. 목사와 장로부터 교회 안에서 거룩함으로 바로 서기 위해 늘 회개의 영성을 갈고 닦아야 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지도자가 먼저 본이 되지 않으면 결코 바로 서지 못한다. 세상 속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전하고 온전하게 순종하며 나가야 세상은 하나님의 하나님의 되심을 비로소 알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게 살아온 그리스도인의 삶을 먼저 회개해야 한다.
-왕의 명령을 따라 레위인과 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몸을 성결하게 한다. 그리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여호와의 전도 깨끗하게 한다. 내다 버렸던 성전 그릇들을 다시 정돈하고 성결하게 하여 여호와의 제단 앞에 둔다. 번제단과 떡 상을 갖춘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간다. 하나님을 향해 간다. 하나님을 맞을 준비를 그렇게 철저하게 해 나갔다.
-한편으로 이 모든 것이 이토록 망가졌고 제멋대로인 상태에서도 유다가 멸망하지 않은 것이 더 신기할 정도다. 하나님의 인내와 사랑이 놀라울 뿐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직히 행해야 한다(1~9절). 히스기야가 아버지 아하스를 따르지 않고 종교개혁에 앞장선다. 하나님께 돌아가 온 마음으로 예배하는 것이야말로 개인과 국가가 회복되는 길이라고 믿었기에 망설임 없이 개혁을 명령한다. 오늘 이 땅의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아닌가! 어떤 영역보다도 우리 하나님께만 예배하는 순전함이 회복되어야 하기에, 일상의 삶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답게 거룩한 삶으로 회개 되어야 한다.
*혹시 나의 가정에, 교회 안에 버리고 척결해야 할 우상적인 요소가 없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가증스럽게 여기시는 것이 전통이라는 미명하에 자리 잡고 있지는 않는지 살펴야 한다. 오직 하나님 외에 그 어떤 것도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되며, 우선이 되어서도 안 된다. 지금 나와 교회의 중심과 우선에 누가 있는가?
*개혁은 자신을 거룩하게 하는 것부터 시작이다. 히스기야가 성전 청결의 필요성을 역설하자, 레위 사람들이 일어나 먼저 자신들을 정결하게 한다(12~15절). 아하스 왕 시절 우상숭배에 직간접으로 관여되었기에 제도적이고 제의적인 개혁에 앞서 자신을 먼저 성결하게 하는 과정을 밟는 것이다. 이 땅의 교회와 성도들에게 얼마나 묵직하게 던지는 메시지인지, 시대와 교회의 문제점을 고치는 일도 필요하나, 먼저 우선하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개혁은 자신의 임무를 감당하며 서로 협력하며 진행해야 한다. 히스기야는 제사장과 레위인들에게 각각의 임무를 부여했고, 이에 따라 제사장들은 성소 안을, 레위인들은 성소 밖을 청결하게 한다. 제사장들이 안에서 더러운 것을 꺼내면 레위인들이 그것을 받아 기드론 시내로 옮겨 갔다. 자기 영역을 지키면서도 서로 협력하며 성전 청결 사역을 감당한 것이다.
*나의 일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일도 중요하다. 하나님의 일은 협력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될 것이다.
*제사장과 레위인들은 성전을 깨끗하게 했고, 아하스가 버린 그릇들을 다시 가져와 정돈하고, 또한 더러운 것들을 내다 버렸다. 정화, 정돈, 내다 버림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나의 삶에서, 그리고 우리 공동체에서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이며,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나의 삶을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성결하게 지속해야 할 것이다.
*지난 주간 더말씀으로 가을 사경회를 통해 주신 말씀을 통해 나 자신을 정화하고, 다시 정돈하며, 말씀으로 인해 들춰진 버려져야 할 것을 미련 없이 버리는 삶을 이어가야 하겠다.
*주님, 버려야 할 것들을 버리고, 본질을 회복하고, 더욱 깨끗하고 성결하게 거룩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세상 속에서 꿋꿋이 살아내겠습니다.
*주님, 늘 저의 안의 더러움부터 보게 하시고, 저부터 거룩함의 삶을 살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주님, 결국 홀로 개혁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공동체가 함께 거룩하고 진실한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회개의 정화, 다시 정돈함, 버려야 할 것을 내다 버림을 함께 감당하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