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 29:20-36 히스기야의 성전 재봉헌, 속죄와 감사
성전이 정화되어 성전의 거룩함이 회복되어 성전 예배가 회복된다. 히스기야는 회중과 더불어 하나님께 성전 봉헌의 제사를 드렸다. 레위인들은 찬양하고, 백성들은 감사의 제물을 드렸다.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섭리 아래, 규례와 순서를 따라 진행되었다. 말씀에 순종하여 예배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예비하심과 기쁨이 함께했다. 역대기에서 히스기야는 제2의 솔로몬으로 묘사된다.
히스기야는 부왕 아하스 당시 이루어진 앗수르와의 예속관계를 청산하고자 독립 정책을 시도한다. 히스기야는 자주화 정책을 먼저 종교적 차원에서 구체화했다. 부왕 아하스 때에 여호와는 유다에서 거의 제2의 신으로 전락했다. 그렇지만 이제 히스기야를 통해 이스라엘은 여호와 제의를 회복하고 신앙의; 주권을 되찾는다. 특이한 것은 히스기야의 회복 운동이 북이스라엘까지 포함되어 진행되었다.
1. 성전의 재봉헌(20~36절)
성전 정화가 완료됨에 따라 히스기야는 성전을 재봉헌함으로써 성전 예배를 재개한다. 솔로몬의 성전 봉헌식은 성전 완공을 축하하면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지성소에 안치하고,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와 봉헌의 기도를 드린 행사였다(5~7장). 반면 히스기야의 봉헌예식은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속죄를 구함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20~21절은 성전 정화 완결에 대해 보고받은 직후, 히스기야는 성전을 다시 봉헌하기 위해 예루살렘의 방백들과 함께 성전으로 올라간다. 봉헌예식은 먼저 속죄제로 시작한다. 레위기의 제사법에 따르면, 속죄제는 오염된 성소를 정결케 하는 제사다(레 4장). 아하스의 통치 아래 왕실과 제사장, 그리고 유다 백성이 총체적으로 범죄하여 성소를 더럽혔기 때문이다(대하 28:22~25). 이제 속죄제를 통하여 깨끗하게 해야 한다. 히스기야는 나라와 성소와 유다를 위해 제사장들이 주도하여 속죄 제물로 수송아지 7마리, 숫양 7마리, 어린 양 7마리, 숫염소 7마리를 드린다. 히스기야는 성전 정화 작업을 주도하지만, 제사 지내는 일만큼은 제사장들에게 맡김으로 웃시야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22~24절에서 제사장들은 먼저 수소를 잡아 그 피를 제단에 뿌린다. 22절에는 수소를 잡는 주체가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34절에 근거하여 제사장으로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레위기 규정에 따르면, 제물을 도살하는 일은 헌제자(제물을 드리는 자)의 몫이다(레 1:4~5). 하지만 본문의 경우는 이 제사가 특정 개인의 제사가 아니라 국가를 위한 것이므로 예외적으로 제사장이 도살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참고로 저자 시대에 제물의 도살을 제사장이 직접 도살을 맡았던 상황도 반영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제사장들은 제물의 피를 받아 제단에 뿌린다(22절). 이는 죄로 오염된 번제단을 깨끗하게 하는 의식이었다. 23~24절은 숫염소를 속죄 제물로 드리는 의식을 설명한다. 앞의 경우와 달리 숫염소를 왕과 회중 앞으로 끌어와서, 그들이 안수하게 한다(23절). 이 의식은 앞의 의식이 번제단을 깨끗하게 하는 의식이었다면, 이 의식은 왕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깨끗하게 하는 의식이다. 또 속죄제를 드린 후 번제를 드렸다. 속죄제로 정결케 되었기 때문에, 감사와 헌신을 의미하는 번제를 드리게 된 것이다. 저자는 히스기야가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렸음을 언급하여 히스기야의 개혁이 북이스라엘 지파를 포함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25~28절은 제사장들이 제사를 집전하는 동안 히스기야는 레위 사람들을 세워서 악기를 연주하게 하고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게 한다. 25절에 언급된 비파와 제금과 수금은 ‘다윗의 악기’로 소개된다(26절). 저자는 25절의 ‘다윗과 왕의 선견자 갓과 선지자 나단이 명령한 대로’라는 구절을 통하여 레위 찬양대의 기원을 다윗 시대로 돌린다. 성전 내 찬양대에 관한 내용은 열왕기 평행 본문에는 나오지 않은 역대기 특수자료다. 저자는 이렇듯 다윗의 제의, 특히 레위인과의 관계에 많은 관심을 보인다. 이는 저자 당시의 레위인의 역할에 합법성(혹은 신적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하는 의도일 것이다. 저자는 성전 제의에 대한 다윗의 규정이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계시된 것으로 간주한다(참조, 대상 28:19). 히스기야의 명령에 따라 번제를 드릴 때, 레위 찬양대는 여호와의 시로 노래하고 나팔을 불며 악기를 연주한다(27절). 온 회중은 하나님께 경배하며, 찬양대의 음악은 번제가 끝날 때까지 계속된다. 이 장면은 솔로몬 시대에 있었던 성전 봉헌식을 연상케 한다. 저자는 이를 통해 히스기야를 다윗, 혹은 솔로몬 같은 인물로 묘사한다.
29~30절에서는 번제를 마칠 때 히스기야 왕과 함께 그 자리에 참여한 사람들이 엎드려 경배한다. 29절의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은 문맥상 예루살렘 성읍의 방백들(20절)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이 말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에 지도자들이 본을 보였음을 의미한다. 히스기야는 레위 사람들을 명령하여 다윗과 선견자 아삽의 시로 여호와를 찬송하게 한다(30절). 저자는 아삽을 ‘선견자’로 부르고 있는데, 성전에서 찬양하고 악기를 연주하는 행위도 넓은 의미에서 예언적인 행동으로 간주한다. 레위인들이 부르는 찬송은 번제가 끝난 이후 드리는 송영을 가리킨다. 이것은 원래 순서에는 없었는데 히스기야가 감동하여 즉흥적으로 결정한 조치로 추측된다.
31~34절은 예배를 마친 후 히스기야는 회중을 향하여 명령한다(31절). 속죄제와 번제를 드림으로 예루살렘 성전이 제의 장소로 다시 회복된다. 그리고 회중이 정결케 되었으므로 마땅히 하나님께 제물을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히스기야의 명령에 따라 회중은 많은 양의 제물을 하나님께 드린다. 그들이 드린 번제물로는 수소가 70마리, 숫양이 100마리, 어린 양이 200마리(32절), 화목제물로는 소가 600마리, 양이 3,000마리다(33절). 33절의 “구별하여 드린(하코다쉼)”은 문자적으로 “거룩한 것들”인데, 35절에 언급된 화목제물을 가리킨다. 32~33절에 언급된 많은 제물의 숫자는 회중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풍족히 드렸음을 의미한다. 회중이 바친 번제물이 너무 많아서 재사장들이 그 일을 다 감당할 수가 없게 되었다(34절). 이때 레위인들이 나서서 번제물의 가죽을 벗기는 일을 돕는다. 저자는 “레위인들의 성결하게 함이 제사장들보다 성심이 있었다”라는 말로 레위인들의 헌신을 높이 평가한다.
35~36절은 재봉헌 의식의 종결을 묘사한다. 많은 제물로 인해 제사 지내는데 어려움이 생기기도 했지만, 레위인들의 헌신으로 성전 제의가 끝났다. 35절에서 저자는 다시 한번 제물의 풍성함을 언급하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복 주셨다는 것과 온 이스라엘이 기쁨으로 하나님께 헌신하였음을 강조한다. 동시에 저자는 그러한 일들이 제의 규정대로 이루어졌음을 밝힌다. 짧은 기간에 이루어진 일이지만, 이 일은 하나님께서 도우심으로 가능하게 되었으며, 이것을 목격한 왕과 백성들이 함께 기쁨을 누린다(36절).
이렇게 해서 아하스 왕 때 중단되었던 예루살렘 제사가 온전히 회복되고, 성전 제의는 정상화된다.
나는?
-히스기야의 언약은 아마도 성전 정화와 속죄 제사의 회복을 다짐하는 언약이었을지 모른다. 히스기야는 앞장서서 나라와 성소와 유다를 위하여 제사를 드린다. 번제와 속죄제를 드린다. 거룩하고 성결한 예배 회복이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의 출발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우리의 필요를 구하기 전에 우리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 그분에게 감사와 경배드리고 있는가?
-온 회중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물 드리는 일에 참여한다. 번제와 함께 찬양과 시와 악기를 동원한 경배가 시작된다. 백성들은 엄청난 양의 제물을 가져온다. 짐승을 도살할 제사장이 부족할 만큼 자원하여 많은 제물을 드렸다. 마음에서 솟아나는 기쁨과 진심 어린 감사의 표현이었으리라. 형식적인 예배나 외식하는 예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이 자원하는 마음과 기쁨이다.
-도살할 제사장이 부족해지자 왕은 이미 성결의 과정을 마친 레위인을 투입한다. 아무리 급해도 성결의 절차를 거치지 않은 제사장을 쓰지는 않았다. 레위인들은 본래 자기 일이 아니지만, 제사장을 도와 제사가 원활히 이뤄지도록 도움으로써 온 백성이 예배의 기쁨을 누리도록 해준다. 율법을 지켜야 하지만 율법의 본래 정신과 의도를 따라서 융통성 있는 적용할 수 있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 나라는 공동체다. 히스기야는 선대에 행한 죄악에 대해서 자신과 무관한 일로 여기지 않고 자신이 속한 이스라엘 공동체의 죄악으로 인식했다(20~22절). 히스기야의 민감한 죄의식은 그만큼 절실하게 성전 정화와 재봉헌으로 이끌었다. 내 목회의 현장에서도 민감한 죄의식을 유지해야 한다. 민감하게 죄를 분별하여 싸울 때 더욱 거룩하게 공동체를 이루어 갈 수 있으리라.
*수송아지, 숫양, 어린 양, 숫염소 각 일곱을 속죄 제물로 드린다. 재사장들은 그 제물을 잡아 피를 잡아 제단에 뿌린다(22~24절). 피는 생명을 의미하기에 제물의 피 흘림은 제물의 죽음을, 다시 말해 내가 흘려야 할 피를 대신 흘림으로써 내 죄의 문제가 해결되었음을 의미한다. 이 모든 일은 예수님의 피 흘림에 대한 그림자다. 예수님의 죽음은 나의 죄를 지시기 위한 죽음이었으며, 그 죽음으로 말미암아 내 죄가 씻겼음을 감사하고 찬양하리라.
*감사는 받은 은혜에 대한 당연한 반응이다. 히스기야는 속죄 제사를 드린 후에 온 회중에게 감사 제물을 드리라고 명령했고, 이에 회중은 자원하는 마음으로 넘치도록 하나님께 예물을 드렸다(31~33절). 크신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어떤 마음과 태도로 감사하고 있을까? 베풀어 주신 은혜에 진심으로 반응하면 전심으로 감사한다.
*직분이 무엇이든 자신을 성결케 하는 자가 주의 일에 쓰임을 받는다. 제물을 준비하는 일에 제사장들로는 손이 모자라 레위 사람들이 돕는다(34~35절). 제사장이 맡아야 할 일이었지만 자신을 성결케 한 제사장의 숫자가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쓰임 받는 사람은 성결한 사람이다.
*모든 것을 예비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히스기야의 등장과 그로 말미암은 종교개혁은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일 같지만, 하나님의 예비하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나님의 예비하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나님의 뜻이 반드시 이루어지며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 이미 필요한 것을 예비해 두셨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주님, 히스기야의 철저한 종교개혁이 성전 봉헌식의 감격으로 나타납니다. 주님을 예배하고자 성전을 회복하고 봉헌을 올리는 히스기야의 마음을 본받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