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 30:1-12 여호와께 돌아오라
하나님이 제정하신 유월절의 의미를 깨닫고 규례대로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히스기야와 방백들과 예루살렘 회중은 의논 끝에 유월절을 지키기로 했다. 이에 온 이스라엘과 유다가 유월절에 참여하라는 초청을 받았다. 비록 소수의 북쪽 지파 사람들이 이 요청에 응했지만, 이 사건으로 분단 이후 처음으로 이스라엘은 연합을 이루게 된다.
주전 722년 북이스라엘 사마리아가 함락되고 북 왕국이 사라진다. 이 사건은 다윗과 솔로몬 이후 처음으로 이스라엘에 한 왕이 존재하게 된 사건이 된다. 역대기는 히스기야 왕 아래 종교적으로 재통합된 남북 이스라엘을 보여주는 데 특별한 관심을 둔다. 이스라엘 회복의 중심에는 무성보다도 제의적 신앙 회복이 있었다. 히스기야 아래에서 이스라엘은 한 왕과 한 성전을 가질 뿐 아니라 부분적이지만 북이스라엘이 회복을 경험하게 된다.
1. 유월절 준수 결정(1~5)
1절은 1~12절의 내용을 요약 진술한다. 히스기야는 예루살렘에서 유월절을 지킬 것을 계획하고 온 백성을 초대한다. 초대 대상에는 남 유다 백성뿐만 아니라 북쪽 지파 사람들(에브라임과 므낫세)까지, 포함한다. 원래 유월절은 제1월 14일에 시작하지만, 히스기야는 방백들과 예루살렘 회중과 의논하여, 한 달 후인 제2월 14일에 지키기로 한다. 이렇게 결정하게 된 모습에 담긴 특별한 점과 의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왕과 지도자들이 백성과 함께 의논함으로써 화합을 이루었다.
둘째, 왕과 회중의 합의를 통한 올바른 결정과 선포가 주목받는다. 4절의 “이 일이 왕과 온 회중의 눈에 “좋게 여기고(정직했다, 옳았다)” 표현은 사사 시대의 각자 옳은 대로(삿 21:25)가 아닌 여럿의 이견이 조율되고 통합되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한편, 르호보암(10:8~14)이나 요아스(24:21)처럼 히스기야가 신하들의 잘못된 의견에 빠지지 않았으며, 지도자와 백성도 왕에게 바르게 조언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온 나라에 명을 내려 공포한 주체를 원문에서 “그들”로 소개하고(5절), 편지도 “왕과 방백들”이 보낸 것으로(6절) 기록되었는데, 이는 후속 조치를 단행할 때도 한마음이었음을 암시한다.
셋째, 왕과 회중은 하나님이 정한 절기를 성결하게 지키는 데 집중한다. 날짜 변경은 “제의적으로 부정하거나 여행 중이라 유월절을 못 지킨 자들은 제2월 14일에 지키라(민 9:10~11)”는 규정을 적용한 것이다. 이렇게 유월절을 미룬 이유는 성전, 제사장, 백성 모두 성결하게 되어 규례에 맞게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다. 성전 안팎을 온전히 정결하게 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실제 성전 청결은 제1월 1일에 시작했지만, 결국 16일에 마감하였으며 본래 유월절 날짜를 맞출 수 없었다(29:17). 또한 유월절을 거행하기에 제의적으로 요건이 갖추어진 제사장이 충분치 않았기에 그들을 준비시켜 성결의식을 수행하도록 위함이었다(3절). 왜냐하면 성전 봉헌식 때에도 제사장들의 수가 부족했었다(29:34). 제사장들의 주요 직무가 제사이므로 이 수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했다. 무엇보다 백성 또한 제의적으로 정결하게 하고 날짜에 맞춰 예루살렘으로 오도록 돕기 위해서다(3절). 솔로몬 때에 온 백성이 낙성식과 장막절 절기에 맞춰 예루살렘에 올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점들이 사전에 고려됐기 때문이다(5:2~3; 7:8~9). 유월절을 지키려는 의도가 정직하고 올바르므로(4절), 이 결정은 ‘여호와의 눈에 정직한(29:2)’ 결정이 된다.
넷째, 히스기야와 회중은 영적 각성을 통해 온 나라가 하나님께 돌아가야 하며, 이 일이 시급함을 인지했다. 이때가 히스기야 통치 제1년이었으므로 기회가 적절했다.
다섯째, 유월절이 하나님의 구원을 상징하므로 이 절기를 통해 선조들의 죄악에 내린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키게 하고(29:10), 백성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할 기회로 삼을 수 있었다.
여섯째, 이 기회에 북이스라엘과의 영적 연합을 꾀했다. 멸망한 북이스라엘에 남은 자들(30:6)을 내버려두지 않고 하나님의 한 백성 이스라엘로 결합하기를 추구했다. 히스기야는 온 이스라엘과 유다에게 초청 편지를 보냈다. 특히 1절과 5절은 편지의 요약이 적혀 있으며 내용은 서로 보충적이다. 초청 대상은 “온 이스라엘과 유다”이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5절)”의 이름으로 이스라엘과 유다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연합된 백성임을 암시한다. 지리적으로도 “브엘세바에서 단까지(남에서 북까지)” 빠짐없이 초청했다. 특히 북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편지를 보냈다는 언급과 10~11절에 언급된 북쪽의 여러 지파의 이름은 이스라엘 전체의 연합을 강조하려는 의지로 읽힌다.
2. 유월절에 초대(6~12절)
왕과 방백들의 편지는 보발꾼들에 의해 온 이스라엘과 유다에 전해졌다. 왕의 명령으로 전달되었으나, “왕과 방백들”의 편지(6절)임을 언급하며 예루살렘 회중이 의논하고 합의한 내용(2절)임을 확실하게 밝힌다.
이 편지의 내용(6~9절)은 “여호와께 돌아오라”로 요약된다. 내용 전체는 “돌아오다(슈브)”라는 단어의 언어유희로 가득하다. ‘이스라엘 자손(6절)’이 돌아와야 할 대상은 아브라함과 이삭의 하나님이시다. 이스라엘 전체의 조상들을 언급함으로써 그들이 하나님의 하나 된 언약 백성임을 계속 상기시킨다. 특히 북이스라엘에 관한 관심을 ‘남은 자, 앗수르 왕의 손에서 벗어난 자’로 부르며 북이스라엘의 멸망으로 인해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과 본국에 남아 있는 자들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상황은 암울하나 이들이 여호와께 돌아오면 하나님도 그들에게 돌아오실 것이다.
하나님께 돌아오려면 먼저 죄를 깨달아야 한다. 그들의 조상들과 형제들은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므로” 불충실했다(7절). 그들이 계속해서 하나님을 배역하고 말씀에 불순종하자 하나님은 그들이 앗수르의 포로가 되는 것을 막지 않으셨다. 남은 자들은 이를 분명히 목격했다. 그러므로 이제는 경각심을 가지고 조상이나 형제의 악행을 따르지 말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
하나님께 돌아오려면 겸비해야 한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목이 곧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스스로 겸비하고, 하나님께 ‘돌아와(직역, 손을 주고, 8절)’, 하나님의 성전에 와 섬겨야 한다. 그러면 진노가 그들에게서 돌아설 것이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하나님께 돌아오면, 하나님께서는 포로로 잡혀간 형제와 자녀들을 돌아오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은혜롭고 자비하시므로 이를 행하실 수 있다. 또 남은 자들이 하나님께 돌아오면 그의 얼굴을 그들에게서 돌이키지 않으실 것이다.
한편, 이 초청의 말씀이 보발꾼을 통해 전해졌을 때 백성들은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10~12절). 먼저 북이스라엘 각 성읍의 여러 사람은 그들을 조롱하고 비웃었다. 그러나 아셀과 므낫세와 스불론 중 몇 사람들은 스스로 겸비하여 초청에 따라 예루살렘으로 왔다. 이들이 스스로 겸비했다는 점은 하나님께 돌아왔음을 암시한다. 유다에는 하나님의 손(도움)이 임하여 왕과 방백들이 전한 명령을 준행하도록 한마음을 주셨다. 저자는 특히 이 명령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것(12절; 29:15)’이었음을 밝힌다. 이는 왕과 백성의 유월절을 지키려는 계획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임을 시사한다.
나는?
-유월절은 출애굽 때 열 번째 재앙인 ‘죽음’이 어린 양의 피를 바른 이스라엘의 집을 넘어간 것을 기념하고,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는 절기다. 오랫동안 유월절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은 은혜에 대한 망각과 순종의 결여를 의미한다. 히스기야는 유다 백성뿐 아니라 모든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편지를 보내 예루살렘으로 초청한다(1~5절). 망각했던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기억하고 함께 감사하기 위해서였다. 혹시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있지는 않는가? 우리 더온누리 공동체는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기억하며 감사하는 공동체인가?
-자신의 게으름이나 부족함 때문에 하나님의 일에 지장을 주지는 않는가? 성결하게 된 제사장들이 성전을 정화하는 시간이 부족하여 어쩔 수 없이 유월절을 제때 드리지 못하고 한 달 후에 지키게 된다(3절). 결정적인 문제는 제사장의 수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제사장이 성결하지 못해서였다. 오늘날 성도와 사역자와 교회는 많지만,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만큼 성결하지 못하다는 것이 문제이지 않을까? 하나님이 필요하실 때 언제든지 쓰임 받을 수 있도록 성실하고 성결하게 자신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히스기야는 남 유다는 물론이고 북이스라엘까지 유월절에 참여하도록 편지를 보낸다. 하지만 모두 모이기에는 시간이 촉박하고 성결한 제사장도 부족함을 알고 왕은 방백들과 예루살렘의 온 회중과 의논하여 유월절 준수를 한 달 연기하기로 한다. 히스기야는 절대권력을 행사하여 명령만 하는 왕이 아니라 백성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왕이었다. 앞서 번제 짐승들의 가죽을 벗기는 제사장의 일을 레위인들로 하여금 돕게 하였듯이, 이번에도 가장 중요한 유월절의 준수 날짜를 연기할 만큼 구약은 문자주의를 추구하지 않고 문자를 주신 의도를 따라서 지켰음을 보여준다. 율법의 자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왕과 백성 사이의 소통과 합의였다.
-왕은 편지를 통해 온 이스라엘과 유다는 여호와께 돌아오라고 촉구한다. 조상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범죄하여 여호와께서 멸망하도록 버려두신 증거는 지금도 볼 수 있다고 한다. 이제 온 이스라엘이 할 일은 목을 곧게 하지 말고 거룩하신 여호와께 돌아와 그분의 거룩한 전에 들어가 섬기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도 돌아오시고 사로잡혀 간 자들도 이 땅으로 돌아오고 그들에게서 돌이켰던 하나님의 얼굴도 다시 그들을 향할 것이다. 자비로우시고 은혜로우신 여호와께 대한 앎과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호소였다.
-하나님은 은혜롭고 자비하신 분이시다. 그래서 회개하고 돌아와 손을 내민 자에게서 결코 얼굴을 돌이지 않으신다(6~9절). 지금이라도 돌아오면 진노를 멈추시고 관계를 회복하시며, 사로잡혀 간 형제와 자녀들도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고 선포하신다. 늦었다고 여길 때가 가장 절박하게 하나님께 돌아가야 할 때이다. 지금은 언제나 가장 적합한 때다!
-에브라임과 므낫세와 스불론 사람들은 대부분 히스기야의 제안에 조롱과 비웃음으로 반응한다. 대제국 앗수르를 이기고 자기 백성을 돌아오게 하실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아셀과 므낫세와 스불론 중에서 몇 사람은 겸손하게 유월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에 이른다. 하나님의 손이 유다 사람들을 감동을 주사 그들이 한마음으로 지키게 하셨다. 돌아오는 자에게는 돌아오는 그 걸음을 지켜주실 것이다. 이 시대 하나님의 백성이 더욱 주께로 온전히 돌아와야 한다는 소리에 조롱하고 비웃으려는가? 겸손한 마음으로 돌아오려고 결단하여 결행하겠는가?
*주님, 은혜롭고 자비로우신 주님께 신속히 돌이키고, 기쁜 마음으로 주님의 부르심에 따르겠습니다.
*주님, 늦었다고 생각되어 스스로 포기하지 않고, 그런 때일수록 더욱 간절히 주님을 찾아 돌아올 수 있는 영적 기민함을 늘 갖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