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기쁨이 넘친 유월절 준수 [대하 30:13-27]
 – 2025년 10월 22일
– 2025년 10월 22일 –
대하 30:13-27 기쁨이 넘친 유월절 준수
    
예배는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소통과 화답의 창구다. 유월절 절기에 백성들은 하나님께 예배와 찬양을 드린다. 이에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기쁨과 축복으로 화답하신다. 온 회중이 7일 동안 절기를 지켰고, 또다시 7일을 연장하여, 하나님과 교제의 기쁨을 누렸다.
    
히스기야는 자주독립적인 정책의 하나로 종교개혁을 단행하게 되는데, 유월절 절기 준수는 그 중심에 있었다. 그가 유월절 행사에 북 왕국 이스라엘의 유민들을 초청한 것은 주전 921년에 분단된 민족을 다시 하나로 통일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이와 같은 히스기야의 남북 이스라엘의 통합과 회복에 대한 의지는 요시야왕에게로 이어진다. 히스기야는 온 이스라엘을 예루살렘으로 소집하여 대대적인 유월절 의식을 거행한다. 이 의식은 참석한 사람들의 자발적인 헌신으로, 제의 규정에 따라 진행된다. 일주일간의 무교절 축제는 참석한 회중의 자발적인 결의로 기쁨과 찬양 가운데 추가로 연장되었다. 이때 그 땅에 우거하는 이방인까지 참여하는 거국적인 성회로 진행된다.
    
    
    
1. 유월절 절기를 지킴(13~22절)
13절은 모든 준비를 마치고 히스기야가 둘째 달 14일에 유월절 의식을 거행하고자 온 회중을 예루살렘에 소집한다. 본문은 이들이 “무교절을 지키기 위해” 모였다고 기록한다. 무교절은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먹는 절기로 유월절 이후 7일간 즐기는 축제다. 무교절은 원래 농사와 관련된 절기로 유월절과 그 기원이 다르다. 무교절은 유월절 다음날부터 일주일간 지키기 때문에 이 두 절기가 세월이 지나면서 하나의 절기로 여기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13절의 무교절은 유월절을 포함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해석해도 무방하다.
    
14절은 그렇게 무교절에 예루살렘에 모인 무리들이 일어나 예루살렘 성읍에 남아 있는 제단과 향단들을 제거하며 성읍 전체의 개혁을 진행한다. 이들은 아마도 유월절 전에 도착하여 행사를 준비했을 것으로 보인다. 히스기야의 부친 아하스는 성전을 폐쇄하고 예루살렘 성읍 구석마다 제단을 쌓고 유다 각 성읍에 산당을 세웠다(대하28:24~25). 히스기야 때까지 예루살렘의 거리에는 아하스가 세운 이방 제단들이 존재했다. 히스기야 왕이 실제로 이 일을 계획하고 진행했을 수 있으나, 본문은 “무리”가 이 일을 주도적으로 추진한 것으로 묘사한다.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정화했다면(대하 29:15~17), 이제 총회에 모임 무리들이 성읍 전체의 개혁을 시행한다. 이들은 성결한 상태에서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성읍에 남아 있는 부정한 요소들을 제거하고자 한 것이다. 저자는 이 일에 백성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음을 강조한다. 그들의 열심과 열정은 “제사장과 레위 사람이 부끄러워(15a절)”할 정도였다.
    
15~16절에서는 드디어 둘째 달 14일에 유월절 행사가 시작된 것을 알린다. 원래 유월절은 정월 14일이지만, 한 달 늦게(30:2~3) 유월절 양을 잡는 일로 행사를 시작한다. 이전과 달리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모두 성결한 상태에서 의식을 진행하였는데(30:3), 백성들이 보여준 헌신이 그들에게 자극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제사장들은 레위 사람의 손에서 피를 받아 제단에 뿌린다. 저자는 그들이 모세의 율법에 나온 제의 규정에 따라 제사를 드렸다고 강조한다(16절). 율법의 제사 규정에 따르면(레 1:5; 민 18:3), 제단에 피를 뿌리는 일은 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17~18절은 유월절 의식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를 소개한다. 이 문제는 예기치 않은 것이었는데, 예루살렘에 모은 사람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아직 성결케 되지 않은 상태로 참여한 것이다. 유월절 규정에 따르면, 유월절 희생제물은 백성들이 잡게 되어있다(신 16:5~6; 출 12:3~6, 21). 그런데 회중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제의적으로 부정한 상태였기 때문에, 레위인들이 그들을 대신하여 이 일을 수행하게 된다. 이렇게 한 이유는 모든 백성으로 언약 백성의 의무(민 9:13)인 유월절 의식에 참여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또 하나의 문제가 생기는데, 북쪽 지파 사람들이 깨끗하지 않은 상태에서 유월절 양을 먹음으로써 제의 규정을 어긴 것이다. 구약의 제의 규정은 부정한 상태에서 성물을 먹는 것을 엄격하게 금한다(레 22:1~6). 북쪽 지파 사람들의 행동은 자칫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켜 회중 전체에 재앙이 임할 수 있는 심각한 문제였다.
    
18b~20절은 이런 상황을 알게 된 히스기야의 중보기도다. 히스기야는 그들이 비록 부정한 상태에서 부지중에 성물을 먹음으로 규정을 어겼지만, 여호와를 향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용서해달라고 간곡히 요청한다(19a절). 이 기도는 역대하 7:14에 등장하는 솔로몬의 봉헌기도를 연상하게 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겸손히 자신을 찾는 자에게 그 죄를 용서하시고 그 땅을 고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이다. 기도 내용이 등장하는 “구하다”, “사하다”, “고치셨더라”와 같은 표현에서 이 약속을 암시해 준다. 히스기야는 무엇보다 죄 용서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여 북쪽 지파들의 잘못을 용서해 주실 것을 요청하고 있다. 저자는 히스기야가 예기치 않고 절대 가볍지 않은 문제에 대해 지혜롭게, 그리고 신앙적으로 잘 처리한 것을 보여주며 그를 다윗, 솔로몬과 같은 경건한 인물로 부각시킨다.
    
21~22절에서는 예기치 않았던 문제들이 레위인들의 헌신과 히스기야의 중보기도로 무마되고, 이에 따라 회중 가운데 큰 기쁨이 임했음을 알린다. 이제 회중들은 유월절에 이어 7일간의 무교절을 지키며 여호와를 찬송하고 하나님께 감사한다. 히스기야는 이러한 일에 헌신한 레위 사람들을 격려하고 칭찬한다(22a절). 22절의 “여호와를 섬기는 일에 능숙한” 사람들은 레위인에 대한 호칭으로 레위인들을 향한 저자의 특별한 관심을 반영한다. 7일 동안 회중들은 화목제를 드리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감사드리며 기쁨의 잔치를 벌인다. 온 회중이 하나가 되어 함께 기뻐하는 공동체를 맛보게 된다. 이 모습이 저자가 바라보는 이상적인 공동체의 모습이었다.
    
    
    
2. 확대된 절기(23~27절)
이 단락은 원래 무교절이 7일간 지키게 되어있었지만, 회중들의 요청으로 일주일간 연장된 모습을 보여준다. 이처럼 백성들의 요청으로 절기가 연장된 일은 이스라엘 역사상 전례가 없었다. 이는 히스기야 왕 때 지킨 유월절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었는지를 보여준다. 히스기야 왕과 방백들도 이들의 결정을 기뻐하고, 축제에 필요한 제물들을 공급한다(히스기야 왕은 수송아지 천 마리와 양 7천 마리를, 방백들은 수송아지 천 마리와 양 일만 마리). 이에 따라 예루살렘에 큰 기쁨이 임하였다. 저자는 이 기쁨이 다윗의 아들 솔로몬 이후에 없었던 기쁨이라고 표현한다.
    
역대기에 의하면 히스기야의 유월절 의식은 여러 면에서 솔로몬의 봉헌식 행사와 유사하다. 축제의 연장, 회중의 자발적인 참여, 축제의 흥겨운 분위기는 이스라엘 역사의 절정기였던 솔로몬 시대를 연상케 한다. 저자는 이를 통해 히스기야를 제2의 솔로몬으로 묘사하고자 한 것이다.
    
히스기야의 유월절 행사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축복기도로 끝맺는다. 이들의 축복기도는 민수기 6:22~27의 제사장적 축복을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27절은 그들의 기도가 하나님께 열납 되었음을 밝힌다.
    
    
    
나는?
-죄의 가장 심각한 증상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다. 자기합리화에 능하다. 따라서 회개의 중요한 징후는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의 회복이다. 유월절 의식에 참여한 백성들은 우상의 제단과 향단들을 기드론 시냇가에 버렸고, 제사장과 레위 사람 중에는 자신이 여전히 유월절 의식에 참여할 만큼 성결하지 못하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자들이 생겨났다. 오늘 우리 공동체는 어떠한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자리에서 내 삶의 부족함을 크게 뉘우치는 마음이 일어나는가? 부끄러움에 몸 둘 바 모르는 영적 민감함이 생동하는가?
    
-성결 의식을 거친 후에 유월절에 참여하는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부지중에 깨끗하지 않은 채 음식을 먹는 사람이 생겨났다. 이에 히스기야 왕은 하나님을 구하는 그들의 마음을 보시고 용서해달라고 기도한다. 하나님께서 왕의 기도를 들으시고 백성들을 고쳐주신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맹목적인 순종이 아니라 율법의 의미와 정신을 따라 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회개의 기도를 들으시고 죄 사하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성결의 규례를 어긴 백성을 대신하여 회개한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이 화를 입지 않게 해주셨다. 오랫동안 유월절을 지키지 못해 규례에 익숙하지 않은 백성의 마음을 헤아려 그들의 죄를 용서해 주셨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시기에 부정과 죄악을 간과할 수 없으시지만, 죄를 뉘우치고 돌아오면 즐거이 용서하신다. 내 형편과 처지를 헤아리시고 용서하시는 하나님께 고백해야 할 죄는 없는가?
    
-규범을 넘어선 관용과 중보기도의 중요성을 보게 된다. 북쪽 이스라엘에서 참가한 사람들이 성결케 하지 않은 채 유월절 양을 먹는 규례를 어긴다. 이에 히스기야는 정죄 대신 오히려 사죄를 구하는 기도를 드려 하나님께 용서를 받는다. 기쁨으로 하나 된 공동체가 되려면 경직된 규범 주의나 과도한 비판, 영적 우월 의식에서 나오는 정죄 의식을 경계해야 한다. 거룩함과 정의를 위해 엄격해야 하지만, 형제 사랑이 우선이어야 한다. 관영이 날 선 비판을 대신하고, 뜨거운 기도가 냉정한 정죄를 대신할 때, 진리와 사랑의 공동체는 세워질 수 있다.
    
-온 이스라엘은 유월절을 통하여 하나가 되었다. 그 자리에는 레위인, 제사장, 유다 백성뿐만 아니라 북쪽의 이스라엘 사람들, 심지어 그들과 함께 사는 나그네들, 즉 이방인들도 포함되었다. 그들은 모두 한 하나님을 섬기는 일로 하나가 된 것이다. 하나가 된 곳에 기쁨이 있었다. 유례없는 예루살렘의 기쁨이었고, 이것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배제와 차별이 없는 곳에서 맛볼 수 있는 기쁨이었다. 교회는 인종, 신분, 성별을 넘어서 유월절 희생양 되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인 공동체다.
    
-예배의 기쁨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비례한다. 예루살렘에 모인 백성들은 7일 동안 크게 즐거워하며 기쁨으로 유월절을 지켰고, 너무 기쁜 나머지 다시 7일을 연장하여 절기를 지키며 하나님을 찬양했다. 화목제를 통해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했기 때문이다. 또한 왕은 모인 회중을 위해 많은 가축을 내어놓고, 방백 또한 그리했다. 하나님과의 회복된 관계 속에서 절기를 지키는 것은 번거롭고 괴로운 일이 아니라 자원하는 헌신이요 멈출 수 없는 은혜다. 나의 예배와 섬김은 어떤가? 무덤덤하거나 부담스럽다면 혹시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졌기 때문은 아닐까?
    
-하나님과의 화목은 이웃과의 화목으로 이어진다. 하나님 안에서 큰 기쁨을 누린 온 회중은 하나가 되어 서로 축복한다. 이스라엘에서 온 회중과 유다에서 온 회중뿐 아니라 이방인으로서 이스라엘과 유다에 사는 나그네조차 모두 함께 즐거움을 누렸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은 일어나 백성을 즐거이 축복했다.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할 때, 이웃과의 관계도 회복하며 이를 통해 기쁨과 샬롬을 누리게 된다. 나는 이러한 기쁨과 샬롬을 누리는가? 우리 공동체는 하나 되어 하나님께 예배하며, 소리 높여 서로 축복하는가?
    
-기쁨이 더욱 커질 수 있었던 것은 자발적인 나눔과 베풂의 실천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온 회중은 자원하여 무교절 절기를 칠 일 더 지키기로 한다. 그러나 히스기야와 방백들은 기쁨으로 제물을 제공한다. 예루살렘에는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이 가득했고, 백성들은 남과 북으로 분단된 이래 하나 된 기쁨을 맛보았다. 공동체가 하나 된 뜨거운 사랑을 경험하는 곳이 되게 하려면 더 가진 형제가 기꺼이 자기 것을 내놓는 나눔과 베풂이 있어야 한다.
    
-고위층과 서민, 부자와 가난한 자, 자국민과 타국인, 남자와 여자, 어린아이와 노인, 장애인과 비장애인 등 남녀노소, 빈부귀천이 구별되지 않는 공동체로 살아가는 것은 주님의 오랜 꿈이었다. 주님의 이름 아래 기쁨과 축제의 공동체로 살아가도록 교회 공동체는 부름을 받았다.
    
    
    
*주님, 우리 더온누리 공동체가 한마음으로 주님을 예배하게 하시고 예배의 기쁨과 감격을 맛보게 해주십시오.
*주님, 주님의 이름으로 주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얼마든지, 언제든지 기쁨과 즐거움의 공동체가 될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는 공동체에 주신 참 기쁨임을 압니다. 우리 공동체에 이런 기쁨이 넘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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