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 34:14-33 발견된 말씀이 개혁을 이끄는 말씀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그 말씀을 듣는 자들의 삶을 변화시킨다. 요시야는 제사장이 발견한 여호와의 율법책 말씀을 듣고서 겸비하고 회개했다. 또한 유다 백성으로 하여금 그 율법을 듣게 하고, 그와 함께 하나님과 언약을 맺도록 권면했다. 왕과 백성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 하나님께 순종하기로 결단을 내린다.
성전 수리 중 힐기야가 발견한 율법책은 요시야의 종교개혁에 중요한 전기를 마련한다. 요시야왕은 율법책의 말씀을 듣고 유다의 죄와 임박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 속에 옷을 찢으며 크게 뉘우친다. 그는 여선지자 훌다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확인한 다음, 온 백성들을 예루살렘에 소집하여 언약을 새롭게 한다.
1. 율법책의 발견과 요시야왕의 반응(14~21절)
성전 보수 공사 중에 하나님의 율법책이 발견된다. 이 사건은 요시야 개혁에 큰 기폭제가 되어 언약 갱신과 유월절로 이어진다. 문지기 레위인들이 성전에 들어온 돈을 꺼낼 때 제사장 힐기야가 율법책을 발견한다. 레위인들의 헌금 수거를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은(왕하 22:8) 성전 공사(8~13절)를 상기시키며, 율법책 발견이 요시야의 성전에 대한 헌신 덕분이며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암시한다.
발견된 책의 명칭은 ‘모세의 손을 통한 여호와의 율법책(14절)’, ‘언약의 책(30절)’, ‘모세의 손을 통한 여호와의 말씀(35:6)’, ‘모세의 책(35:12)’이다. 율법책은 모세에 의해 기록되어 여호수아에게 건네졌고(신 31:26; 수 1:8), 이후 필사해서 전해 내려왔으나, 이방인의 침입이나 우상을 숭배한 왕들로 인해 성전 한구석에 숨겨져 방치되었던 것 같다. 힐기야는 그 책을 서기관 사반에게 주었고, 다시 사반은 왕에게 가져간다. 그는 먼저 성전 공사에 대한 경과보고를 한다. 신하들에게 하사된 모든 왕명을 그들이 준행하고 있음을 알린다. 그 증거로는 성전에 들어온 헌금을 수거한 일, 감독자들과 기술자들에게 전달한 일이 제시되었다. 모두 보고한 후 사반은 힐기야가 책을 자신에게 주었음을 알리고, 왕 앞에서 책의 내용을 읽어준다.
19~21절을 발견된 율법책의 내용을 들은 요시야왕의 반응이다. 왕은 율법의 말씀을 듣고 자기 옷을 찢는다(19절). 이 행동은 구약에서 자주 극한 슬픔과 애곡의 표시로 등장한다. 이러한 행동은 하나님 앞에 겸비함과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바라는 요시야의 마음을 나타낸다. 요시야왕은 힐기야를 비롯한 5명의 사신들을 파견하여 율법책에 대하여 하나님께 묻게 한다(20절). 왕의 파견단은 제사장, 서기관, 왕의 시종이라는 고위 관리들로 구성되었다. 이를 통해 요시야왕이 이 사건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를 드러낸다. 요시야는 발견된 율법책이 하나님의 책인지 예언자의 확증을 받고, 구체적인 안내를 받고자 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요시야는 율법의 책 말씀을 듣고, 그들의 조상들이 율법의 말씀을 어겨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켰음을 깨닫게 된다(21절). 21절의 “우리 조상들의 죄”는 므낫세와 아몬 시대의 우상숭배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씀으로 보인다. 열왕기에 의하면 므낫세의 죄가 남 유다 멸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그러나 저자는 므낫세의 죄에 대하여 직접적인 언급을 피한다. 왜냐하면 므낫세가 회개한 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므낫세는 회개하기 전에 행하였던 악행들의 영향이 여전히 백성들 가운데 남아 있는 것을 인정한다.
2. 훌다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22~28절)
22~23절에서 왕이 보낸 사신들이 여 선지자 훌다에게 나아간다. 훌다는 예복을 관리하는 살룸의 아내이며 예루살렘 둘째 구역에 거주했다. 요시야왕이 훌다에게 하나님의 뜻을 물으려고 했던 것으로 보아 홀다는 당시 백성들에게 잘 알려진 선지자였음을 알 수 있다.
24~28절은 훌다가 전한 예언의 말씀이다. 이 단락은 열왕기의 내용(왕하 22:15~20)을 거의 그대로 인용한다. 홀다의 예언은 유다의 운명에 대한 것과 요시야왕에 대한 것으로 구성된다. 훌다는 먼저 유대 백성들에게 임할 임박한 재앙을 선포한다(24절). 24절의 “책에 기록된 모든 저주”는 신명기 28:15~68에 소개되는 언약적 징계를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25절은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게 되는 이유를 제시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을 섬겼기 때문이다. 훌다는 이어 요시야왕의 운명에 대하여 예언을 전한다(26~28절). 하나님께서 요시야의 겸손을 보시고, 그의 간구를 들으셨다고 한다(27절). 하나님 앞에 겸비한 모습을 보인 요시야는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게 될 것이다. 이 말씀은 요시야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하나님의 재앙이 임하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이다(28절). 하나님께서 요시야의 경건을 보시고 유다에 임박한 재앙을 연기하신 것이다. 이는 하나님 앞에 겸비한 태도를 보이는 모든 성도에게도 하시는 약속이기도 하다.
3. 요시야의 순종(29~33절)
훌다의 예언은 요시야가 언약 갱신 의식을 추진하게 만든다. 이 사건은 히스기야의 개혁과 평행을 이룬다(대하 29:10). 요시야는 선지자 훌다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곧바로 유다와 예루살렘 지도자들을 소집하여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올라간다(30절). 이것은 요시야왕이 당시 상황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였음을 방증한다.
그때 ‘유다 모든 사람과 예루살렘 주민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모든 백성’이 요시야왕과 함께 언약을 함께 체결하기 위해 성전에 모인다(30b절). 열왕기 본문과 비교할 때 본문은 참석한 사람들의 목록 속에 레위인들이 언급된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왕하 23:2, ‘제사장들과 선지자들’). 역대기는 레위인들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보인다. 역대기에서 레위인들은 때로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모습은 당시 역사적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당시 예언자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그 대신 그들의 역할을 레위인, 서기관, 율법 교사들의 역할로 대체된다. 요시야왕은 언약 책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낭독하고 언약을 세운다. “언약을 세운다”라는 표현은 깨어진 언약을 다시 회복한다는 의미다. 요시야왕과 백성들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여호와께 순종하고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행할 것”을 다짐한다(31절).
33절은 요시야왕의 사역을 요약하며 소개한다. 저자는 크게 두 가지를 언급하는데, 첫째, 요시야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모든 땅에서 가증한 것들을 다 제거한 것’이다. 요시야의 종교개혁은 유다뿐만 아니라 북이스라엘 지역까지 포함하였음을 의미한다. 둘째, 요시야가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여호와를 섬기게 한 것이다. 이는 앞에서 언급한 언약 체결 의식을 가리킨다.
저자는 ‘요시야가 사는 날에 백성이 여호와께 복종하고 떠나지 아니하였다’라고 끝맺는다. ‘요시야가 사는 날’이라는 표현은 백성들의 순종이 요시야의 사후에 지속되지 못했음을 암시한다.
나는?
-성전을 수리하는 중에 율법책을 발견한다. 하나님께로 가까이 다가가려는 요시야의 발걸음에 하나님께서 한걸음에 달려와 화답하신 것이 아닐까 싶다. 율법책의 발견으로 요시야의 개혁은 더욱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개혁에 정당성을 부여했고 개혁의 근간이 되었다. 개혁의 방향과 목표가 분명해졌다. 단지 더 잘하자는 의욕에만 충실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였다.
-오늘 교회에도 이 말씀이 필요하다. 다들 저마다 자기가 옳다고 하는데, 누가 결정할 것인가? 좋은 의도를 가지고 개혁을 부르짖으며 출발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모든 개혁의 진정한 근거는 “말씀”이어야 한다. 말씀의 회복에서 진행되고 있는 개혁은 단단하게 자리를 잡는다. 말씀의 회복이 개혁의 시작이고 과정이며 완성이 된다. 말씀 없는 비판은 공허하고, 말씀 없는 사랑도 무익하다. 사람이 아니라 말씀이 변화를 주도하게 해야 할 것이다.
-요시야는 율법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에 놀라고 감격했을 것이다. 실제로 율법의 말씀을 듣자, 그는 자기 옷을 찢고 통곡한다. 하나님 앞에서 더욱 겸비해진다. 자신의 죄를 보았고 국가의 죄를 보았으며, 조상들의 죄를 인식했다. 끈질기게 이어지고 광범위하게 잠식한 죄에 대해 하나님의 큰 진노를 예상했다.
-말씀이 발견되지 않았으면 상대적인 비교를 통해 안심하였거나 우월감을 가졌을지 모른다. 자신에 대한 평가에도 관대했을 수 있다. 그러나 이제 기준이 명확하게 세워졌다. 잣대가 분명하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그림과 하나님 백성의 그림을 비로소 볼 수 있었다.
-요시야왕은 사람을 보내 유다와 예루살렘 장로들을 모두 소집한다. 그리고 율법책을 들려준다. 왕 자신부터 이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되 온 마음을 다해 준행하겠다고 다짐한다. 이 새로운 결단에 온 백성의 참여를 독려한다. 지도자는 명령하는 자가 아니라 몸소 보여주는 자다. 자신이 전하는 말이 진정으로 진리임을 자신에게 먼저 보여주어야 한다.
-삶의 땀과 눈물, 피가 담긴 산 언어들로 말씀을 살아내야 할 것이다. 진리인 말씀을 진정성 있게 담아 살아내는 걸음이어야 하리라.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말씀하신다. 성전을 수리하는 과정에 율법책이 발견되었다(14~19절). 그동안 이스라엘은 이 율법책을 잊어버리고, 잃어버린 채 살고 있었다. 율법책(말씀)은 제 마음대로 살려는 이에게는 거추장스럽고 불편한 책이다. 하나님이 그 책을 통해 말씀하시며 선지자를 통해 말씀을 해석해 주신다. 홀다는 권력자 앞이라고 그의 의중을 살피지 않고 가감 없이 전한다. 듣기 좋은 말만 하지 않고 있는 대로 전한다.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말씀에 대한 나의 태도, 말씀을 전하는 나의 태도는 어떠한가? 혹 말씀을 가리고, 골라서 전하고 듣지 않는가?
*일상에 파묻혀 말씀을 잊고 살지는 않는가? 혹시 다른 세상의 소리와 지식을 추구하느라 이미 주셨던 말씀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는가? 주님께서 어느 날 말씀을 기억나게 하고, 다시 찾게 하실 때 나는 어떻게 반응할 것 같은가? 일상에서 말씀을 덮어두는 어리석음에서 이제는 벗어날 때다.
*요시야는 말씀의 뜻을 물었다(20~22절). 하나님의 말씀을 듣다가 그 말씀을 더 잘 실천하기 위해 여 선지자 훌다에게 사람을 보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묻는다. 때로 말씀을 읽다가, 묵상하며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할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주저 없이 묻고 배울 수 있는 말씀 사역자가 곁에 있음에도 외면하면 더 깊은 말씀의 은혜로 들어갈 수 없다.
*또한 요시야는 자기가 깨달은 말씀을 모든 백성에게 선포하여 온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삶을 결단하게 했다. 그 결과 요시야가 사는 날 동안에는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고 떠나지 않았다(29~33절). 말씀에 반응하는 삶은 변한다. 더욱 말씀으로 살아내기 위해 변한다.
*개혁의 기초는 말씀이다. 말씀이 지금 나의 현주소를 보게 하고 나아갈 방향을 알려준다. 다 잘하고 있다고 여길지라도 말씀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아무리 종교 생활을 열심히 한다 한들, 삶에서 말씀이 잊혔거나, 말씀을 잃어버렸다면 아무 소용 없다.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고 선포될 때, 그리고 그 깊은 뜻을 구하고자 찾고 또 찾을 때, 삶의 참다운 갱신과 성숙으로 이어질 것이다.
**말씀 앞에 늘 겸손한 목사가 되어야지… 이만하면 됐다 여기면 여지없이 한 없이 나약한 모습 일깨워 주시는 것이 비참함이 아니라 은혜임을 믿는다. 말씀 앞에 겸손해야 말씀의 은혜를 누릴 수 있다. 또한 혼자 만의 감동에 멈추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주님의 뜻인지 늘 확인하고 확인해서 공동체가 말씀 앞에 더욱 바로 서도록 이전투구 해야 할 것이다.
**늘 먼저 본을 보이는 리더이어야 함을 요시야가 깨우쳐 준다. 말씀에 대한 이토록 적극적인 반응이 얼마나 리더에게 중요한지 모른다. 말씀에 무감각 해지려는(그저 편안해지려는) 나태함의 유혹이 날마다 말씀이 주는 도전으로 물러감을 감사한다. 그래서 나에게 매일 아침 묵상이 힘이다! 묵상이 마치 율법책을 듣고 낭독하는 요시야와 같은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해 주신다. 더욱 민감하게, 더욱 힘을 다하여, 더욱 뜻을 분별하기 위해 주님을 찾고 또 찾게 한다.
**단지 “인생추억”을 만드는 이벤트와 같은 말씀의 감동이 아니라 “인생역사”를 다지는 생명력의 말씀임을 믿는다. 나에게 말씀이 역사해야, 말씀과 함께 일평생 하나님을 따를 수 있다. 말씀의 발견이 내 인생의 현주소를 깨닫게 하고 내가 해야 할 일을 결단하게 하여 나의 삶을 이끌어 가도록 내어 주어야 한다.
*나는 매일 묵상을 통해 말씀을 발견하여 나의 영적이고 육적인 현주소를 깨닫고, 나의 삶의 걸음을 말씀에 걸고 결단하며 걸어가도록 해야지… 오늘도 이렇게 나를 이끌어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한다. 내가 섬기는 공동체가 그렇기에 “말씀”이 변화와 회복을 주도하도록, 내 자신부터 말씀 앞에 겸손히… 더욱 겸손히 서기를 간절히 결심해 본다…
**주여 말씀 하옵소서… 종이 듣겠나이다…. 주여 말씀을 주옵소서… 종이 순종하겠나이다….”말씀 앞에 서다!. 듣다!. 찾다!. 결심하다!” 오늘도 되뇌어 지는 믿음의 고백이다. 이 아침에 이 말씀을 되뇌이도록 감동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주님, 종교 생활이 아니라 말씀의 삶을 살겠습니다.
*주님, 세상의 말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 의미를 올바로 깨달아 감당하며 살겠습니다.
*주님, 말씀을 듣고, 찾아, 결심하여 결행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