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멸망, 온전한 회복의 첫걸음 [대하 36:1-23]
 – 2025년 10월 31일
– 2025년 10월 31일 –
대하 36:1-23 멸망, 온전한 회복의 첫걸음
    
하나님은 유다의 멸망 속에서도 다윗과의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셨다. 유다의 마지막 네 왕들(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은 기울어가는 유다의 운명을 돌이키지 못한다. 왕을 비롯하여 유다의 지도자들과 백성들은 모두 하나님께 죄지음으로써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킨다. 하나님께서는 갈대아 왕의 손을 통해 범죄한 이스라엘을 징계하신다. 그렇지만 유다의 멸망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이루어진 것처럼 이스라엘의 회복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 이루어질 것이다. 유다의 멸망은 왕과 백성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신 대로, 70년이 지나 이스라엘 백성을 포로 위치에서 돌아오게 하심으로써, 유다를 회복시키셨다.
    
    
    
1. 여호아하스의 통치(1~4절)
하나님의 예고대로(34:24~25) 유다의 멸망이 임박했다. 요시야의 죽음 이후 멸망까지 네 왕과 23년의 세월이 남았다. 요시야가 갑작스럽게 죽자, 백성들은 요시야의 넷째 아들인 여호아하스(=살룸[렘 22:11])를 왕으로 삼았다. 백성들은 여전히 다윗 후손을 왕으로 삼는 데 지지를 보냈다(22:1; 26:1; 33:25). 그러나 백성이 왕을 세우는 일도 여호아하스가 마지막이 된다. 그가 23세에 유다의 열일곱 번째 왕이 되어 다스린(주전 609년) 지 3개월 만에 유다를 장악하고 있던 애굽의 느고가 그를 폐위한다. 느고는 이와 함께 유다에게 은 100달란트(3.4톤)와 금 1달란트(34kg)의 전쟁배상금을 부과한다. 그리고 요시야의 다른 아들 여호야김을 유다의 왕으로 세우고, 여호아하스를 애굽으로 끌고 갔다. 예레미야의 예언대로(렘 22:11~12), 그는 애굽에서 죽었다(왕하 23:34).
    
    
    
2. 여호야김의 통치(5~8절)
요시야의 둘째 아들 여호야김(=엘리야김[왕하 23:34])은 25세에 열여덟 번째 왕이 되어 11년 동안 다스렸다(주전 609~598년). 그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 느고의 꼭두각시가 된 여호야김은 백성에게서 세금을 징수하여 그에게 조공을 바쳤다(왕하 23:35). 느고는 이후 2차 갈그미스 전투(주전 605년; 렘 46:2)에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주전 605~562년)에게 패한다. 이때 느부갓네살이 유다를 침략하여, 여호야김과 왕족 등(6절; 단 1:1~2)과 성전의 온갖 기구들을 바벨론의 신당으로 옮겨갔다(7절). 사로잡힌 여호야김은 다시 유다로 돌아온 것으로 추측된다(렘 22:19; 36:30). 이후에 바벨론이 애굽과의 전쟁에서 패하자(주전 601년), 여호야김은 친애굽 정책으로 다시 돌아섰다. 이에 느부갓네살이 다시 유다를 침공하게 된다(왕하 24:1~2).
    
이렇게 이어지는 재앙은 여호야김과 백성들의 배역과 악행의 결과다. 왕은 심판을 외치던 우리야 선지자를 죽였고(렘 26:20~23), 예레미야가 바룩을 시켜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을 신하들이 만류하는데도 모두 불에 태우는 등(렘 36:1~25) 서슴지 않고 죄를 저질렀다. 백성들 또한 선지자들의 회개하라는 권유에 순종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바벨론에 의해 유다를 망하게 하여 70년간 포로가 될 것을 예고하셨다(렘 25장). 여호야김은 예루살렘 문밖에 던져져 나귀같이 매장을 당했다(렘 22:19).
    
    
    
3. 여호야긴의 통치(9~10절)
여호야김의 아들 여호야긴은 8세(열왕기에서는 18세로 기록, 왕하 24:8)에 유다의 열아홉 번째 왕이 되어 약 3개월 동안 다스렸다(주전 597년), 그는 고니야(렘 22:24), 여고냐(대상 3:16), 여고니아(렘 27:20)로도 불린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그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왕하 24:9). 당시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포위했으며, 여호야긴은 예레미야의 예언대로(렘 22:24~30)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옥에 갇혔다. 그와 함께 그의 어머니와 아내들, 신복과 방백과 내시들, 백성들, 용사들 총 1만 명, 공장과 대장장이 1천 명이 끌려갔다(왕하 24:10~18; 겔1:1~2).
    
하지만 놀랍게도 그가 잡혀간 지 37년 만에 느부갓네살이 죽고 그의 아들 에월므로닥(주전 562~560)이 즉위한 해에 옥에서 풀려났다(왕하 25:27; 렘 52:31). 바벨론 왕은 그에게 친절을 베풀고 그의 지위를 높여주며, 의복을 바꿔주고, 왕 앞에서 먹게 하며, 정규적으로 필요한 것을 평생 제공받게 해주었다(왕하 25:28~30; 렘 52:32~34). 하나님은 유다 멸망 전에 여호야긴을 미리 바벨론으로 안전하게 옮기시고, 그곳에서 그와 그의 후손들을 지키셨다. 이렇게 함으로써 다윗 자손의 등불을 꺼지지 않게 보존하셨다(21:7). 다윗과의 언약을 지켜주신 것이다(대상 17:14). 나중에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이스라엘을 유다로 돌려보냈을 때, 여호야긴의 손자인 스룹바벨이 다윗의 후손으로서 무리와 함께 돌아올 수 있었다(스 2:2).
    
    
    
4. 시드기야의 통치와 유다의 멸망(11~21절).
유다는 그들의 악행으로 결국 멸망하고 말았다. 이 단락은 왕의 죄(12~13절)와 제사장과 백성의 죄(14~16절)를 집약함으로써, 죄가 유다의 멸망을 불러왔음을 드러낸다. 동시에 하나님이 진노하는 응징(17~20절)을 기록하여, 유다의 멸망이 그의 심판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유다의 스무 번째 왕이자 마지막 왕은 요시야의 셋째 아들 시드기야(=맛다니야[왕하 24:17])다. 그는 21세에 왕이 되어 11년 동안 다스렸다(주전 597~586). 직전의 왕들과 마찬가지로 시드기야도 계속 여호와의 눈에 악을 행했다. 유다가 바벨론에게 멸망할 것이라고 예레미야가 예언했지만, 그 앞에서도 겸비하지 않고 도리어 그를 감금했다(렘 32:2~5). 예레미야는 바벨론에게 항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전했고(렘 38:17~18), 느부갓네살도 자신에게 충성할 것을 요구했다(13절).
    
그러나 시드기야는 바벨론을 배반하고 방백들의 말을 따라 친애굽 정책을 폈다(렘 38장). 그는 계속 목을 곧게 하고, 마음을 완강하게 하여,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았다. 한편, 왕만 아니라 모든 제사장의 우두머리와 백성들도 크게 불충실했다. 그들은 이방의 가증한 일들을 따라 우상을 섬겼고(겔 8:6), 성전에서 온갖 곤충과 짐승과 우상을 섬겼으며, 장로 70명이 그 앞에서 분향하며, 여인들은 담무스를 위해 애곡하고, 태양을 숭배했다(겔 8장). 그럼에도 하나님은 사자들을 보내 돌아올 기회를 주셨다(15절). 하나님이 그의 백성과 성전을 긍휼히 여기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성들은 선지자들을 조롱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렸다. 왕과 백성의 완악함에 하나님의 진노가 회복될 수 없을 때까지 올라왔다.
    
하나님은 느부갓네살을 이용하여 시드기야 제9년에 예루살렘을 포위하고(주전 588년), 제11년(주전 586년)에 함락하게 하셨다. 우상의 소굴이 되었던 성전에서 청년들이 칼로 죽임을 당하고 노인과 병자들도 다 죽임을 당했다.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긍휼을 베푸셨으나(15절), 바벨론(갈대아) 왕은 그들에게 긍휼을 베풀지 않았다(17절). 바벨론 왕은 성전의 그릇과 보물, 오아과 방백들의 보물을 모두 바벨론으로 가져갔다. 성전과 왕궁을 불사르고, 예루살렘 성벽을 헐었다. 생존자들은 포로로 잡아가 왕과 그이 자손의 노예로 삼았다(20절; 왕하 25:1~17).
    
하나님을 배반하고 말씀에 불순종할 때 포로가 되고 성전이 파괴될 것이라는 경고와 예언이 현실이 되었다(7:19~22; 왕하 20:17~18).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통해 예고하신 대로 유다 땅이 황폐하여 70년을 채울 때까지 안식했다.
    
    
    
5. 고레스 칙령(22~23절)
말씀대로 유다가 멸망했으며, 말씀대로 유다가 회복된다. 바벨론을 멸하고(주전 539년) 페르시아의 왕이 된 고레스(주전 539~529년)를 하나님이 감화시켜 유다 백성의 귀환을 명령하게 하셨다(22~23절; 스 1:2~4). 이방 왕을 통한 ‘유다의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는 명령은 하나님이 온 세상의 주권자로서 열왕을 통치하심을 나타낸다. 이 명령은 이스라엘의 정체성이 하나님의 언약 백성임을 함축하고 있다.
    
고레스는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기원하며, 유다 백성에게 올라갈 것을 명령한다. 역대기의 마지막 말은 “그는 올라갈지어다”는 “성전/예루살렘에 올라가라”는 의미를 암시한다. 이와 같이 고레스의 조서는 하나님의 성전과 예배의 회복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하나님의 성전과 예배의 회복을 중심으로 이스라엘의 언약 백성으로서의 회복, 하나님이 주신 땅의 회복, 다윗 언약과 자손의 회복,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이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역대기의 시작이 아담부터 포로 귀환까지의 족보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증명했듯이, 마지막 또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계속됨을 증명한다.
    
    
    
나는?
-요시야 이후 유다의 왕들은 애굽과 바벨론의 틈바구니에서 줄다리기 외교를 펼치면서 자신들의 안전을 도모하려 했다. 하늘의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자신의 외교적 판단을 의지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강대국의 손아귀에 넘기셨다. 그들의 운명은 강대국이 결정했다. 남 유다의 패망은 외교정책의 부재가 아니라 외교정책의 과잉과 신앙의 부재 때문이었다. 혼란스러운 시대 하나님 외에 의지할 자가 어디에 있겠는가!
    
-결국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은 유다를 하나님은 바벨론에 넘기신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오래전에 예언한 대로 되었다. 그들의 멸망은 하나님의 패배가 아니다.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다. 그들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다. 그들의 죄악은 하나님과 사람을 향한 죄악이었으며 동시에 땅을 향한 죄악이었다. 땅은 그들의 불순종과 탐욕으로 인해 안식을 누리지 못하였는데, 이제 70년 포로 기간 동안 약속의 땅은 안식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이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하게 하셔서 유다 백성들의 귀환과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명령하게 하신다. 놀랍게도 고레스는 여호와를 하늘의 신으로 인정한다. 이제 선지자들이 약속한 대로 포로로 잡혀가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때가 되면 제국 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안전하게 고토로 돌아올 것이다. 모든 백성이 돌아오지 않고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는 자들만 돌아올 것이다. 선지자들을 통한 하나님의 귀환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이제 백성들은 여호와께서 역사의 주인이 되심을 인정해야 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극진하게 사랑하셨다. 그래서 수도 없이 선지자를 보내셨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주님을 떠났다(1~14절). 하나님의 심판은 그들을 떠나보내는 것이었다. 요시야 죽음 이후 등극한 네 명의 왕은 하나같이 인질이 되어 애굽이나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비운을 겪는다.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고 하나님을 떠난 결과가 무엇인지 유다의 말로를 보며 잊으면 안 되리라.
    
*하나님은 부르시고 보내신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가려 뽑으신 유다가 애석하게도 바벨론에 패망한다(15~20절). 그것은 하나님을 멀리한 필연적인 결과다. 하나님은 부지런히 사람을 보내어 타이르고, 나무라셨다. 부르실 때 듣지 않았고, 보내셔도 거부했기에 먼 나라로 보내 버리신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보냄을 받느냐,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보냄을 받느냐 하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때로는 강제로 안식을 주신다. 70년 포로 생활은 심판의 성격도 있지만, 땅을 정화하는 회복의 성격도 있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이 안식 누리기를 원했고, 이스라엘을 안식의 공동체로 부르셨다. 그들이 먼저 안식을 누리고, 또 누리게 하는 삶을 살라고 선택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땅을 착취하고 사람을 학대했기에 그만큼 땅이 쉬도록 떠나야 했다. 하나님의 안식을 누리며, 그 안식을 끼치는 삶은 하나님 백성의 사명이다.
    
*하나님은 또 강제로 사명을 회복하게 하신다. 이스라엘은 본래 성전 공동체로서 하나님의 임재를 온 세상에 드러내는 공동체가 되라는 부르심을 받았다. 그렇기에 성전으로 시작한 역대기는 성전을 다시 건축하라는 명령으로 끝난다. 비록 나라는 사라지고, 유배지에서 포로로 살았더라도, 사명만은 변하지 않은 것이다.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은 여전히 유효하다.
    
*오늘날 하나님 백성의 사명 따라 살아내도록 성령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에 거하신다. 성령께서 거하실만한 마음의 성전을 이루어가는 것 또한 사명 따라 살아낼 삶의 중요한 초석이다. 거룩한 성전으로 세워지기를 늘 추구하고 순종해야 하리라.
    
*사명 따라 살지 못하고 사명을 가리고, 무너뜨리는 삶이 철저하게 무너지는 멸망이 오히려 온전한 사명의 삶을 회복하는 첫걸음이다. 멸망을 결론 삼지 말고, 약속하신 대로 다시 시작하실 하나님의 회복을 바라보아야 한다.
    
 
**어쩌면… 이리도 허망할까…. 요시야의 감격이 식기도 전에…. 악이 더 뜨거워져서 결국 불타버렸다!가만 살펴보면 여호아하스를 백성들이 세운 이유가 있을 것이다. 본문에서는 여호아하스에 대한 평가만 없다. 없다고 해서 그가 선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 그리고 열왕기의 기록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비슷한 통치 기간인(3달, 3달 10일) 여호야긴에 대한 평가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고 했을 때 적어도  그가 악한 길로 갔다면 기록을 했을 터이다. 만약 여호아하스가 좀 더 통치했다면 어땠을까? 하지만 이런 가정법은 별로 유익이 없다. 지금 현재 나의 상태와 모습이 중요하다.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롭게  유지되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고 중요하다’
 
**어제 잘하였다고 자만하지 말고 내일 잘하겠다고 오늘을 태만히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요시야가 잘하였다고 해서 후대 왕들이 잘할 수 없다. 역사가 증명한다. 자기 자신의 상태와 결단이 중요하다.
 
**역대기 묵상이 마무리됐다. 신실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특히나 “찾다”, “듣다”의 영성이 내 영혼을 깊게 울렸다. 또, 남 유다 20여명의 왕들중 히스기야와 요시야… 좀더 확대하자면 여호사밧 정도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통치 했음을 볼 때, 남 유다의 역사가 얼마나 하나님을 찾다 떠났다를 반복하며 암울했는지를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사사기를 논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 혼란한 시간들 속에서 왕과 백성들은 이리 저리 휩쓸리며 혼란했지만, 하나님은 확고 부동하게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 나라 백성들을 향해 변하지 않으셨음을 보았다.
 
**그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오늘 나에게 까지 이르렀다!
 
    
    
*주님, 솔로몬의 화려한 성전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도리어 걸림돌과 폐해가 되어 무너뜨리셨음을 깨닫습니다. 하지만 역대기를 마치면서 다시 성전을 건축하라고 사명을 일깨우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제가 달려갈 사명의 삶에 다시 마음을 다잡습니다. 사명 따라 살겠습니다.
*주님, 마음의 성전을 허락하신 주님의 십자가 은혜와 부활하심을 늘 기억하여 저의 삶을 통해 주님의 이름이 덕스럽게 드러나도록 사명 따라 살아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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