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 1:1-11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에스라는 역대하 36장에서 언급된 고레스 칙령으로 시작한다. 이로 인해 에스라와 역대기가 서로 연결된 듯한 인상을 주고, 결정적으로 에스라의 활동 시대가 고레스 통치기로 오해할 수 있으나, 그는 아닥사스다의 통치기에 귀환했다. 예레미야 선자자의 예언대로, 바벨론 70년의 포로 생활이 고레스 왕의 조서를 통해 끝난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은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고, 이는 이스라엘 역사의 새로운 장이 열렸음을 의미한다.
고레스 왕은 고대근동에서 급격한 정치적 변화를 꾀했다. 그는 주전 550년에 메데를 복속시킨 후에, 주전 539년에는 바벨론 왕 나보니두스를 부찌르고 바벨론 통치의 종말을 고한다. 이때부터 약 200여 년간 지속된 페르시아 제국이 시작된다. 고레스 왕의 피지배 민족에 대한 정책은 바벨론과 달리 조상들의 나라로 돌아갈 수 있는 거주의 자유와 조상의 신을 섬길 수 있는 종교의 자유를 허락하였다. 에스라 1장에 소개된 조서의 내용(2~4절)은 정확하게 이 정책과 일치한다. 19세기 말 발견된 고레스 실린더에 고레스 칙령 전문이 기록되어 있다.
1. 고레스 칙령(1~4절)
1절은 예레미야 예언의 성취를 보여준다. 에스라서는 고레스 원년에 있었던 바벨론 포로에서의 귀환이라는 역사적 사건으로 시작한다. 이 때는 바벨론에 이어 페르시아 제국이 출발한 해다. 에스라는 이 귀환을 예레미야가 서포했던 예언의 성취로 간주한다(1a절). 예레미야는 바벨론이 얼마 동안 여러 나라들을 지배한 후 다른 세력에게 멸망당할 것을 예언했다(렘 50:9, 51:11은 이를 ‘메데의 왕’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70년 차면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에서 돌아오게 될 것을 예언했다(렘 25:11; 29:10). 예레미야가 선포한 70년이라는 햇수에 대한 해석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단순히 충분한 시간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숫자(7*10)로 해석하는 것이다. 둘째, 다니엘 1:1~2과 역대하 36:5~7에 근거하여 여호야김 3년(주전 605년)부터 538년까지 대략 70년으로 보는 견해다. 셋째, 성전 파괴(주전 587년)부터 성전 재건(주전 516년)까지 70년으로 보는 것이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두 번째 견해를 지지한다.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70년의 시간이 차자 메대-페르시아의 왕 고레스가 칙령을 내려 이스라엘 백성의 귀환을 허락한다. 본문은 이 사건을 “여호와께서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신 것”으로 해석한다(1b절). 하나님께서 고레스를 도구로 사용하여 이스라엘 고토로 돌아오게 하셨다. 참고로 이사야 선지자는 고레스를 “여호와의 목자,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라고 불렀다(사 44:28; 45:1). 고레스의 등장과 이스라엘의 귀환은 세계 역사를 주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개입이었다.
2~4절은 고레스 조서 내용이다. 주로 예루살렘 귀환과 성전 건축을 주 내용으로 한다. 약속의 땅으로의 귀환을 손꼽아 기다리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고레스 칙령은 “복음(기쁨 소식)”이었다. 고레스는 먼저 자신이 내린 칙령의 배후에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이 자리하고 있음을 밝힌다. “하늘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하늘과 땅을 만드시고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의미한다. 고레스는 온 우주의 주권자가 되시는 여호와가 자신에게 세상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고 예루살렘 성전 건축을 명령하셨음을 밝힌다. 고레스는 여호와가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데(3b절), 이것은 성전이 하나님의 집이라는 고대근동의 사상을 반영한다. 고레스는 이어 남아 있는 백성들의 책임을 명시한다(4절). “남아 있는 백성”은 원래 다른 곳으로 잡혀 가지 않고 그 땅에 생존해 있던 사람들을 가리킨다(왕하 25:11; 렘 24:8). 그러나 본문은 바벨론에 끌려와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킨다. 그 ‘남은 자들”의 역할은 성전 건축에 필요한 물품을 제공하고, 성전 제의에 사용될 예물을 공급하는 것이다(4b절). 고레스의 마음을 움직이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움직여 성전 건축의 과업을 이루게 하신다.
2. 이스라엘 백성의 귀환(5~11절)
5절은 고레스의 조서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보여준다. 고국으로 돌아가 성전을 건축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일어나서 귀환 공동체를 구성한다. 그들 중에는 유다와 베냐민의 족장들, 제사장과 레위인들, 그리고 자발적으로 참여한 백성들이 포함되어 있었다(5a절). 이들은 후에 귀환 공동체의 중심을 구성한다. 본문의 의도는 예루살렘으로의 귀환이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한 자발적인 운동이었음을 밝히는 것이다. 자신들이 오랫동안 정착한 삶의 터전을 떠나 폐허인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귀환 공동체는 신앙을 위해 기꺼이 희생을 감수한다.
6~8절은 주변 이웃들과 고레스가 유다 백성의 귀환을 어떻게 지원했는지를 보여준다. 바벨론에 거주하는 유다 백성의 이웃들이 자원하여 물질로 돕는다(6절). 각종 기물들과 예물로 귀환민을 지원한 ‘사면 사람들은’은 유대인들의 정착촌 주위에 살고 있던 이방인들이다. 이 사건은 모세의 출애굽 사건을 연상케 하는데(출 12:35~36),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사람들의 물품으로 성막을 지음같이, 귀환민들은 바벨론 사람들이 공급한 물품으로 성전을 재건하게 된다. 또한 고레스는 옛적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가져온 성전 기물들을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낸다(7절). 성전 기물들은 창고지기(재무장관) 미드르닷을 통해 유다 총독 세스바살에게 넘겨진다(8절).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유다 총독의 자리는 스룹바벨에게 넘어간다(학 1:1; 스 2:2; 3:2; 느 12:1). 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이 성전의 기주들을 메고 포로에서 돌아올 것을 예언했는데(사 52:11~12), 고레스 왕을 통해 성전의 기물이 다시 원래의 위치로 돌아오게 된다. 문맥상 성전 기물들의 복귀는 앞으로 있게 될 예루살렘 성전의 회복을 예고한다.
9~11절은 고리스 왕이 미드르닷을 통해 세스바살에게 건넨 성전 기명들의 규모다. 대접들을 포함하여 모두 5,400개(11a절)다. 이 단락에서 성전 기명들을 언급한 이유는 이전의 성전(솔로몬 성전)과 제2성전(스룹바벨 성전)의 연속성을 강조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성전 기물들은 과거의 성전과 앞으로 세워질 성전을 연결하는 기능을 한다. 이를 통해 에스라는 스룹바벨 성전의 합법화와 귀환 공동체의 정통성을 강조한다. 세스바살은 귀환민들의 대표자로서 ‘사로잡힌 자들’을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간다(11b절). 특히 “데리고 가다(헤엘라)’로 번역된 “알라(올라가다)”의 신적 수동태로, 귀환이 하나님의 전적인 역사임을 암시한다. 또한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가다”라는 서술은 “애굽 땅에서 약속의 땅으로 데리고 나왔다(출 33:1)”와 유사한 구문을 선택했다. 바벨론 포로 귀환 사건이 또 하나의 출애굽 사건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제2의 출애굽으로서의 포로 귀환 사건은 출애굽의 목적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었듯이(출 9:1), 바벨론에서의 귀환 목적도 예루살렘에 성전 중심의 신앙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었다(4절).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사람들로부터 물품을 가지고 나왔듯이(출 12:36), 바벨론에서 나올 때도 역시 은금을 비롯한 성전의 기물들을 가지고 나온다(5~11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출애굽이나 바벨론 포로 귀환 사건이나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다. 이러한 선명한 성격이 드러났어도 예언의 완전한 성취는 미래적인 차원으로 유보된다.
나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을 건축하도록 허락한 고레스의 포용 정책은 예레미야를 통해 약속하신 말씀(렘 25:11, 12; 29:10)을 성취하시려는 하나님의 역사였다. 고레스의 고백대로 하나님은 참 신이며 세상 만국의 어떤 권력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얻을 수 없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내가 살아가고 있는 역사에 늘 관심을 갖고 참여해야 할 뿐 아니라, 이 역사를 하나님의 절대 주권의 시각에서 바라보면서, 지나친 낙관으로 너무 큰 실망도 하지 말고 지나친 비관으로 책임을 외면하지도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귀환의 약속을 기필코 성취하셨다. 그 하나님을 신뢰하며 인내의 걸음을 걸어야 할 때다.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고레스는 조서를 통해 성전 건축을 허락했을 뿐 아니라, 바사 백성들에게 돌아가는 이스라엘 백성을 재물과 물건과 짐승을 지원하고 성전 건축에 필요한 자원도 즐거이 공급하도록 명령한다.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마치고 나올 때 애굽 백성에게 예물을 받았던 사건과 연결된다. 에스라는 출바벨론을 제2의 출애굽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성경은 이 구원은 메시아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 나라의 도래와 우리를 성전으로 삼는 사건으로 성취된다고 말한다(요 1:14).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면 하나님께서 친히 공급하신다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한다. 예리미야를 통해 해주신 약속을 이방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하셔서 약속 성취의 통로로 사용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신비롭기만 하다. 그 신비로운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하신 모든 과정에도 역사하고, 제2의 고레스, 3의 고레스와 같은 이들을 통로 삼아 하나님 나라 복음이 이어지게 하셨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구원의 은혜가 한없이 크고 크시도다.
-고레스의 조서에 즉각적으로 반응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있었다. 이미 안정적으로 정착된 곳을 떠나 폐허인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일은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그들은 계산하지 않고 대의를 위해 하나님의 감동하심에 응하기로 한 것이다. 특히 지도자들이 먼저 나선다. 고레스는 약탈했던 성전 기명들을 돌려준다. 그것은 단순한 그릇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다. 백성의 죄악으로 하나님의 영광은 예루살렘을 떠나 이방 신당에 유배되는 수치를 당했는데, 이제 그 영광이 회복될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나의 삶에도 하나님의 임재가 회복되고 그 영광의 빛이 비칠 때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을 것이다.
*고레스는 자신의 마음을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명령에 그대로 순종했다(1~3절). 예레미야를 통해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렘 25:11, 12; 29:10) 고레스의 마음과, 바사의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이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세상 나라들과 왕들을 동원하셔서 자신의 뜻을 이루어 가심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이 더디게 느껴질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잊지 않고 계시다는 거승ㄹ 기억하자.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 가심을 신뢰하자. 오늘 아침 내 마음을 감동케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더욱 순종하며 살아내기를 결심해본다.
*또한 하나님께 감동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일을 성취하려고 모두 떠날 채비를 했다(5절). 말씀에 감동받은 나부터 하나님의 일을 시작함으로써 하나님 나라를 내 삶의 영역에 더욱 드러내기 위해 솔선수범해야 하리라.
*바사 백성들은 자신들의 일도 아닌데 성전 건축을 위해서 값진 것들을 아낌없이 후원했다. 재가 직접 하는 일은 아니지만, 하나님 나라를 위해 수고하는 이들(국내 사역자든, 해외 선교사든)을 힘써 도와야 할 일을 감동 주실 때 순종하는 걸음이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집에 있어야 할 기구들이 제자리로 돌아간다. 백성들의 범죄로 빼앗긴 성전 기구들을 제자리로 돌이킨 것은 하나님의 승리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우리의 실패와 범죄로 손상된 하나님의 것들을 회복하시는 은총 가운데, 오늘도 연약함 중에 승리를 가져다 주실 하나님의 손길을 기대해도 좋겠다.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약속의 말씀을 성취하시는 하나님,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자원하고 헌신하는 백성들… 하나님의 나라는 이렇게 감동과 자원함으로 세워지고 채워간다. 오늘 하루도 주님의 감동이 나의 마음과 발걸음에 자원함의 기쁨으로 순종하며 나아가리라.
*주님, 약속하신대로 이루실 때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며 일하시는 모습에 감탄이 나옵니다. 저에게도 감동 주실 때 늘 믿음으로 순종하겠습니다.
*주님, 말씀이 나를 감동 시킬 때,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에 적극 헌신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