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 2:1-70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사람들
포로에서 돌아온 귀환자들은 칠십여 년 전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자들의 자손이다. 이들은 고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자기들 삶의 터전을 포기해야만 했다. 본문은 이들이 바로 새로운 역사의 주인공들이요, 회복된 이스라엘의 주역임을 밝힌다.
참고로 본문의 귀환민들의 명단은 약간의 숫자적 차이 외에 느헤미야 7장의 목록에 거의 그대로 반복된다. 에스라서의 전반부(2장)와 느헤미야서의 후반부(7장)에 등장하는 귀환민들의 명단은 에스라-느헤미야 전체 구조에서 “봉투 구조”를 형성하며 그 안에 등장하는 자료들(성전 건축, 공동체 재건, 성벽 건축)이 주제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 저자는 이를 통해 에스라-느헤미야서의 전체의 이야기를 하나의 통일되고 연속된 이야기로 만든다. 성전 건축이 단지 외적인 건축물의 완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벽 재건과 느헤미야서의 핵심 주제인 공동체 회복으로 나아가야 함을 의미한다.
1. 포로에서 귀환과 지도자들의 명단(1~2절)
사로잡혀간 사람들의 귀환을 알리는 1절은 예루살렘 정착에 관해 보도하는 70절과 함께 2장 전체를 감싸는 구조다. 2장은 바벨론에서 유다에 있는 각자의 성읍에 돌아온 이들이 있었음을 언급한 후(1절) 이들이 누구인지를 밝힌다(2~69절). 그리고 이들이 각자의 성읍에 거주했다고(70절) 확인해 준다.
귀환민들은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사람들의 자손들(하골라)”로 소개된다(1절). ‘하골라’는 예레미야의 예언과 직접 연관된다(렘 24:5; 28:6; 29:1). 예레미야는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될 백성을 “좋은 무화과”, 즉 “남은 자 이스라엘”로 비유한다. 귀환민은 대부분 바벨론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사람들로 이미 그곳의 문화와 관습에 익숙해 있었지만,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기 위해 자기들 삶의 터전을 떠난다. 에스라서에 의하면 이스라엘의 정통성은 바로 이들을 통해 이어지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본문은 의도적으로 이들을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언급한다(2b절).
귀환자들의 명단은 귀환을 주도한 11명의 지도자의 이름으로 시작한다. 평행 본문인 느헤미야 7:7은 12명으로 소개한다. 이 차이는 1장에서 언급된 총독 세스바살을 이미 전제한 것으로 보는 견해와 전승 과정에서 필사자의 실수로 평행 본문에 등장하는 “나하마니(느 7:7)”가 빠진 것으로 보는 견해다. 이 지도자들은 회복된 이스라엘을 대표한다. 이 중에서 지도자 중에 가장 먼저 언급된 ‘스룹바벨과 예수아’는 정치와 종교 면에서 공동체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스룹바벨은 사로잡혀간 여호야긴의 손자다(대상 3:19). 그는 세스바살과 함께 귀환했거나 적어도 고레스 재위 기간에 유다에 도착한 것으로 추측한다. 제사장 예수아는 바벨론 포로 이전 마지막 대제사장 요사닥의 아들이다(스 3:2; 대상 6:14).
2. 일반 백성들의 숫자(3~35절)
지도자들의 명단에 이어 일반 백성의 목록이 소개된다. 이 단락은 귀환자들의 명단에서 가장 많은 지면을 차지한다(총 33구절). 전체 내용은 소개하는 방식에 따라 가문별 목록(3~20절)과 성읍별 목록(21~35절)으로 구분된다.
가문에 따른 소개는 바로스 자손으로 시작하여(3절), 깁발 자손까지 이어진다(20절). 전체 인원은 총 15,604명이다. 또 성읍들에 거주한 사람들의 목록은 베들레헴 사람(21절)을 시작으로 스나이 자손(35절)까지 총 8,650명이다. 이들을 지명에 따라 기록한 이유는 그들의 가계를 정확하게 밝힐 수 없거나, 족보의 부정확함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도자의 이름과 더불어 일반 백성의 목록을 제시하며 성전 재건과 공동체 회복에 그들의 참여가 중요했음을 밝힌다.
3. 제사장, 레위인, 성전의 일꾼들 숫자(36~58절)
일반 백성의 목록에 이어 제사장과 레위인들의 목록이 소개된다. 제사장 중에는 가장 먼저 “예수아의 집 여다야의 자손” 숫자가 소개된다(36절). 여다야 자손이 대제사장 예수아가 속했던 가문임을 알 수 있다. 제사장들의 목록은 다윗 시대 24개 가문과 달리 4개의 가문만 소개된다(여다야, 임멜, 바스홀, 하림 자손). 이는 제사장들 중 일부만 귀환 길에 올랐음을 의미한다. 다른 제사장 가문들은 2차와 3차 귀환 때 귀환했음을 추측하게 한다(스 8:2~3). 귀환한 제사장들의 총 숫자는 4,289명으로 전체 인원의 약 10분의 1에 해당한다.
제사장에 이어 레위 사람들의 목록은 세 부류로 소개된다(40~42절).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을 레위 사람들과 별도로 소개하는 것으로 보아 기록 당시에는 이들이 분명하게 레위인으로 분류되지 않았음을 추측할 수 있다(비교. 느 11:19; 12:25; 대상 9:17~32; 26:1~19). 레위인들의 전체 숫자는 431명으로 제사장의 숫자에 비해 매우 적은 숫자다. 이는 레위 자손들이 예루살렘 귀환에 소극적이었음을 반증한다(스 8:15). 43절부터 58절까지는 성전의 일을 도왔던 사람들을 열거한다. 먼저 느디님 사람들의 목록으로 35명의 이름이 언급된다. 이들의 이름 중 많은 경우는 히브리식이 아니어서(시하[43절], 하수바[43절], 르신[48절], 바르고스와 시스라[53절] 이들이 이방 출신임을 짐작하게 한다. 55절의 “솔로몬 신하의 자손들”은 솔로몬 당시 강제 노역에 동원되었던 이방인의 후손들(왕상 9:20~21)이었으나 훗날 느디님 사람들에 동화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4. 족보가 불분명한 사람들(59~63절)
귀환민들 가운데는 델멜라, 델하르사, 그룹, 앗단, 임멜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있었다(59절). 이 지명들은 포로로 끌려간 유대인들의 정착지로 정확한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들은 조상의 가문과 선조를 밝힐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62절). 이들 가운데는 제사장들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하바야 자손, 학고스 자손, 바르실래 자손들이다(61절). 이들에게는 성전 제의가 더럽혀지지 않게 하려고 제사장 직무가 정지되었다(62절). 방백(유다 총독 세스바살?)은 우림과 둠밈을 가진 제사장이 일어나기 전까지 이들이 지성물을 먹는 것을 금지했다(63절).
에스라가 족보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이 시기 공동체 안에 만연되어 있던 이방적 요소를 제거하는 것과 관련된다. 귀환민들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순수한 신앙 공동체를 이루고자 했다.
5. 귀환민들의 총수, 족장들의 봉헌, 예루살렘 정착(64~70절)
귀환민들의 숫자는 온 회중 42,360명, 그 외에 남종과 여종 7,337명, 그리고 노래하는 남녀 200명이다. 총인원은 49,897명이다. 그런데 실제 목록에 기록된 사람들의 숫자(2~42, 58, 60절)는 29,818명으로 64절의 총인원 수와 상당한 차이가 발생한다. 추론하기로는 42,360명에는 어린이, 여성, 유다와 베냐민 이외 지역의 주민들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한편 귀환민들이 가지고 온 말, 노새, 낙타, 나귀와 같은 가축들(66~67절)은 그들이 경제적으로 윤택했음을 암시한다. 이것은 또한 출애굽의 상황과 비슷하다(출 12:35~36). 예루살렘의 성전 터에 이르자 족장들 가운데 일부는 성전 건축을 위한 기부금을 드린다(68절). 그 액수는 금이 61,000다릭(514kg), 은이 5,000마네(2,850kg), 그리고 제사장의 옷이 100벌이었다(69절). 당시로서는 상당한 액수가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에스라는 이 일이 자발적으로 이루어졌음을 밝힌다(68절, ‘예물을 기쁘게 드렸다’).
2장의 마지막은 온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정착을 보고한다(70절). 이를 통해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셨던 땅과 후손의 약속이 단절되지 않았음을 밝힌다(참고, 창 12:1~3). 앞으로 이들을 그루터기 삼아 그 약속을 성취할 것을 내다본다. 한편, 귀환자들의 명단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을 건축한 사람들이 누구였는지를 보이려는 의도로 작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에스라는 이들이 바로 새로운 역사를 이룬 주인공들이자, 회복된 이스라엘의 주역임을 드러낸다.
나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다 돌아온 42,360명 가운데 일부의 명단을 상세하게 기록한다. 오늘 우리에게는 별 의미 없이 보이는 지루한 나열이지만, 저자 에스라나, 1차 독자들에게 이 명단은 그 자체로 자부심이고 감동이었을 것이다. 에스라는 유다와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바벨론에 붙잡혀 갔지만 그곳의 안정된 삶을 두고 약속의 땅으로 믿음의 귀환을 한 이 사람들을 통해 다시 하나님 나라의 소망이 이어져 갈 것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새 역사의 건설자들이요, 하나님 나라를 견인해 갈 일꾼들이다.
-이 명단은 가계별(3~20절), 지역별(21~35절)로 귀환자 명단과 숫자를 소개한 후 제사장들과 레위인들과 문지기들과 노래하는 자들을 특별히 따로 언급하고 있다. 모두 성전에 종사하는 자들이다. 흥미롭게도 제사장의 숫자는 많은데 레위인들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다(8:15). 이것은 귀환한 공동체는 정치 공동체가 아니라 성전과 율법을 중심으로 한 신앙 공동체가 될 것을 암시한다. 메시아를 통해 온전한 성전이 이뤄지기까지는 가능성과 한계를 모두 안고 있는 공동체가 될 것임을 보여준다. 하나님 나라는 정치력이 아니라 말씀과 예배가 중심이 된 나라다.
-귀환한 족보에는 이방인들(43~54절)은 물론이고 족보가 분명하지 않은 사람(59~63절)도 포함되어 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처럼(창 12:1~3)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참여한 자들은 누구나 언약의 성취가 주는 복을 누릴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 성전이 있던 터에 이르자 감동하여 성전 건축을 위해 힘껏 예물을 드린 지도자들이 있었다. 크든 작든, 많든 적든,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하나님께서 감동하시는 대로 물질이든 시간이든 노동이든 “드리고 나누고 쏟는다.”
*하나님께서는 오랜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고 회복하셔서 하나님의 집을 건설하게 하신다. 하나님이 바벨론을 통해 그들을 징계하시기도 하셨지만, 이제 그들을 용서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위한 새로운 비전을 품고 출발하게 하신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은 우리도 또한 이 세상에서 황폐해진 하나님의 집을 재건해야 할 사명이 있다. 영적으로 적용해 보자면, 성전 재건을 위해 돌아온 이들의 긴 명단이 이어지고 이어져서 오늘 내 이름까지 포함되어 있음을 바라본다.
*백성의 지도자 그룹이 먼저 소개된다(1~2절). 이들은 이미 오랜 포로 생활 동안 고통받았고, 또 성전 재건하려면 고생을 각오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앞장서서” 돌아왔다.
*성전 재건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계층의 다양한 사람들이 돌아왔다(3~35절). 하나님 나라의 일은 모두 함께 참여해야 할 공동의 비전이기 때문이다. 혹시 “나 같은 사람이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소극적인 생각으로 머뭇거리지 않는가? 나와 다른 성품과 직업과 환경을 가진 지체들이 하나 되어 함께 이뤄 가는 일을 통해 하나님 나라 비전이 성취된다. 즐거이 자원하여 거룩한 공동체를 세워 나가는 것, 그것은 꿈에 머문 일이 아닌 이미 일어났던 역사다.
*하나님의 전에 필요한 모든 물품과 함께(1:6~11), 필요한 모든 사람이 함께 돌아오는 모습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는 물적 자원뿐 아니라 인적 자원도 넉넉히 채워지는 것을 배우게 된다. 지금 무엇이 부족하여 쩔쩔 매지 않는가? 즐거이 자원하여 거룩한 공동체를 세워 나가야 한다.
*성전에서 막일하던 이방인들도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성전 재건을 위해 돌아왔다. 하나님의 약속에 외인이었던 나를 죄와 허물에서 살리시고, 하나님 나라의 이 거룩한 사역에 동참하게 하신 은혜를 생각하며 모든 일에 충성을 다해야 하리라.
**돌아온 귀환민들은 바벨론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이들이었다. 그곳 문화와 관습에 익숙했다. 그러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기 위해 삶의 터전을 떠났다. 안정된 삶을 포기하고 믿음으로 귀환을 택한 이들이야말로 새 역사를 견인해 갈 주역들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에 이와 같은 정체성이 있지 않은가? 세상에 살지만, 하나님 나라를 이루라는 부르심에 응답하여 다양한 상황, 관계에서 익숙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새로운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기 위해 나섰다. 주님께서는 그 이름을 생명책에 기록하여 영원히 기억하실 것이다.
**특히 감동되는 것은 귀환민 가운데 델멜라, 델하르사, 그룹, 앗단, 임멜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있었다는 보고다. 이들은 바벨론에서 오랜 시간이 흘러 조상의 가문이 불분명한 사람들이었다. 그중에는 제사장 신분을 가진 자도 있었지만, 혹시 성전 제의가 더럽혀지지 않도록 직무가 정지되었다. 또한 우림과 둠밈을 가진 제사장이 세워지기까지 성물 먹는 것이 금지되었다. 새로 시작되는 공동체는 다양한 구성원을 용납하고 포용하되 정체성이 뚜렷하고 거룩해야 한다.
*주님의 나라는 많든 적든 기쁘게 헌신하는 이들에 의해 세워진다. 귀환민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하자 어떤 족장들이 성전 건축을 위해 헌물을 기쁘게 드렸다. 제법 많은 양의 금과 은과 제사장 옷이 드려졌다.
*주님, 하나님 나라를 온전히 이루어 가는 일에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말하며 행동하겠습니다.
*주님, 더 예수님처럼의 삶을 살아내는 공동체 되기 위해, 공동체 지체들 모두가 참여하게 해주십시오.
*주님, 자원하는 곳에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늘 어디서나 자원하여 순종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