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근사한 명분에 타협하기보다 순수한 정체성을 지켜나가는 공동체 [스 4:1-10]
 – 2025년 11월 04일
– 2025년 11월 04일 –
스 4:1-10 근사한 명분에 타협하기보다 순수한 정체성을 지켜나가는 공동체
    
귀환민들은 성전을 짓는 과정에서 대대적인 반대에 부딪히게 된다. 대적들은 성전 건축에 자신들도 동참할 것을 제안하지만 거절당한다. 그 후 그들은 협박과 페르시아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는 방식으로 성전 건축을 제지하려 한다.
    
    
    
1. 성전 건축과 성벽 건축 과정에 반대한 자들(1~10절)
바벨론에서 돌아온 귀환 공동체는 전체를 통합할 수 있는 구심점이 필요했다. 귀환민들은 성전을 삶의 구심점으로 만들고자 했다. 이런 과정에서 대대적인 대적들의 반대가 있었음을 본문을 통해 밝힌다. 그 방해는 성전 재건 반대뿐 아니라 아하수에로(주전 485~465년)와 아닥사스다 왕(주전 464~424년) 때 있었던 성벽 재건에 대한 방해도 포함해 다룬다(6~10절). 이 사건들은 스룹바벨과 예수아가 활동하던 시대(고레스-다리오 왕 때)와 상당한 시간적 차이가 있다. 이는 본문의 기록이 연대기적 순서가 아니라 신학적인 주제에 따라 성전 재건의 역사를 돌아보고 있음을 의미한다. 1~10절은 귀환 후 성전 중심의 공동체를 세우는 일의 중요성과 이 일에 따르는 대적들의 집요한 반대를 보여준다. 본문은 문학적으로는 성전과 성벽 재건의 업적을 부각하고, 9장에서 본격적으로 제기되는 이방 민족과의 구별이라는 주제를 준비하는 기능을 한다.
    
1~2절은 “사로잡혔던 자들의 자손’이 성전을 건축한다는 소식을 들은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들’의 반응을 다룬다. 이들은 당시 유대인들과 갈등 관계에 있던 사마리아인들을 포함하여 포로로 끌려가지 않고 그 땅에 남아 있던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들을 대적이라고 부른 것은 이들이 성전 건축을 반대하고 귀환 공동체를 핍박하는 일에 앞장섰기 때문이다. 그들은 스룹바벨과 족장들에게 자신들도 성전 건축에 동참할 것을 제안한다(2절). 그러면서 그들은 앗수르 왕 에살핫돈 시대(주전 681~669)부터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있었다고 주장하며(2b절), 이를 명분 삼아 성전 건축에 참여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열왕기 기록에 따르면 그들의 신앙은 여호와와 다른 민족들의 신을 함께 섬기는 혼합주의 양상이 분명했다(왕하 17:29, 32~34, 41). 이 문제는 귀환 공동체가 직면하고 있는 신앙의 순수성에 대한 문제를 도드라지게 할 수 있는 것이었다.
    
3절을 통해 그들의 제안에 대해 스룹바벨과 예수아, 그리고 족장들이 단호하게 거절하는 모습을 소개한다. 그들의 제안을 거절한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고레스 칙령 때문이었다(3b절). 하지만 실제적인 이유는 북이스라엘 멸망 이후 사마리아 지역에 전개된 역사적인 상황과 관련된다.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의 정책은 피정복민들을 포로로 잡아가고, 다른 지역의 사람들을 강제로 이주시키는 것이었다. 민족적 동질성을 와해시킴으로 정복지에서 일어날 수 있는 반란의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려 한 것이다. 그 결과 북이스라엘과 수도 사마리아는 인종적으로뿐 아니라 종교적으로 혼합된 상태가 된다. 이는 바벨론 포로기를 거치면서 종교적 순수성을 추구하는 귀환 공동체의 입장에서 보면 이들은 이미 이스라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한 사람들이었다. 이런 이유로 그들의 제안은 단호하게 거절되었다. 귀환 공동체는 비록 초라해 보였지만, 정체성이 분명한 공동체로 남기를 결단한 것이다.
    
4~10절은 거절당한 대적들의 집요한 반대를 서술한다. ‘그 땅의 백성’은 유다 사람들을 위협한다(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여, 4절). 그들의 방해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백성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4절의 ‘손을 약하게 하는 것’은 불안감을 불어넣어 사기를 떨어뜨리거나 낙담시키는 것을 의미한다(삼하 4:1; 사 13:7; 렘 6:24). 둘째, 페르시아 관리들을 뇌물로 매수하려는 시도다(5절). 결국 그들의 방해 공작으로 성전 건축은 다리오 왕 때까지 중단되고 만다(5a절). 대적들의 방해가 일시적으로 성공한 듯 보이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중단되지 않는다. ‘다리오가 즉위할 때까지’라는 표현에서 이들의 방해가 한시적이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대적들의 방해는 고레스 통치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6~10절은 시기적으로 후대에 있었던 별도의 방해 공작을 보도한다. 이렇게 볼 때 성전과 성벽을 재건하면서 대적들의 반대는 귀환 공동체가 귀환한 이후 100여 년 지속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먼저 아하수에로 왕의 즉위 시에 있었던 대적들의 협박으로 대적들이 왕에게 상소문을 올려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을 고발한다. 그들의 참소는 아닥사스다 왕 때에도 이어진다(7~8절). 아닥사스다의 통치 연대(주전 464~424년)는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서 활동했던 시기와 겹친다(스 7~10장).
    
대적 중 비슬람, 미드르닷, 다브엘과 그의 동료들이 왕에게 상소문을 올려 유대인들을 고발한다(7절). 그 고발문은 페르시아 제국의 공용어인 아람어로 기록되었다(7b절). 8절부터의 내용은 아닥사스다 왕 때 있었던 대적들의 참소를 보도한다. 이 부분도 아람어로 기록된 참소문의 원문으로 추측된다. 대적들의 고소는 16절까지 계속된다. 고소의 주동자는 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새로 소개된다(8절). 이들과 더불어 페르시아의 관료들과 지역 주민들의 이름이 열거된다(9~10절). 본문에서 상소한 자들을 총 열 그룹과 민족으로 나열한다. 이는 대적들의 방해 공작이 위협적이고 대대적이었음을 의미한다.
    
귀환 공동체가 함께 하고자 하는 대적들의 제안을 거절한 이유는 정체성을 지키고 신앙의 순수성을 보존하려 했기 때문이다. 회복된 공동체는 회부 사람들과의 경계를 분명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그들과 인종적으로 그리고 종교적으로 혼합되는 것을 거부하였다. 귀환민들의 목표는 여호와 신앙에 기초한 순수한 신앙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사마리아 사람들의 방해는 간교했다. 귀환 공동체가 감동과 열정에 사로잡혀 역동적으로 성전 건축을 시작하자 대적들의 교묘하고 끈질긴 방해도 함께 시작되었다. 과거 멸망한 앗수르 제국 에살핫돈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사마리아에 정착한 후 지역의 패권을 차지하고 있던 자들이 함께 성전 건축을 하고자 제안한다. 자신들도 하나님을 섬기니 자격이 있다고 주장했지만, 사실 협력의 가면을 쓴 방해일 뿐이었다. 성전이 세워지면 예루살렘은 귀환한 유다인들이 장악하는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공간이 될 것이고, 그동안 누렸던 정치, 경제적 혜택을 잃게 될 것을 우려했을 것이다. 그들의 혼합 종교에서 여호와는 단지 만신전의 수많은 신들 중 하나일 뿐 홀로 참 신은 아니었다.
    
-“다르지 않다, 돕겠다”라는 근사한 명분으로 다가오는 사탄의 전략이 얼마나 간교한가!
    
-사마리아 사람들의 간교한 제안에 스룹바벨과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명백한 차이를 무시한 채 세력을 확장하는 선택을 하지 않는다. 작고 연약하지만, 정체성이 분명한 공동체가 되기로 하고 연합 제의를 단호히 거절한다. 고레스의 조서를 거절의 근거로 제시했지만, 눈앞에 있는 실리를 위해서 혼합 종교와 손잡지 않겠다는 신앙적인 결단이었다.
    
-때로는 편협하고 독선적이라는 오해를 무릅쓰고라도 결코 타협해서는 안 되는 복음의 진리가 우리에게 있다. 복음은 모두에게 들려야 하지만, 복음의 진리를 다른 것과 섞을 수는 없다. 관용과 상대주의가 보편적인 세상에서 외면할 수 없이 선명히 드러나는 곤란함과 어려움이다. 담대하게 감당해야 하리라.
    
-단호한 거절에 대적자들의 본색이 드러난다. 사악한 의도를 숨긴 제안이 거절당하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한다. 뇌물로 제국 관리들의 마음을 훔치고, 사실을 왜곡한 거짓 편지로 제국 궁정의 판단력을 흐려 놓는다. 이스라엘이 성전을 재건하고 무너진 성벽을 다시 쌓던 고레스 왕 때부터 아하수에로, 아닥사스다, 다리오 왕에 이를 때까지 그들은 쉬지 않고 방해했다. 그리고 마침내 공사 중단을 끌어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지만 반대도 있고 중단도 있다. 믿음 아니면 이길 수 없는 싸움이 하나님의 공동체를 세우는 일에 늘 기다리고 있음을 잊으면 안 된다.
 
-세상 권력이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고 훼손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섭리는 모든 것을 통제하고 계심을 확신해야 믿음의 굳건함으로 행할 수 있다. 개개인의 삶에서 부당한 오해나 거짓 고발이 어려움을 겪게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사람과 세상의 평판보다 하나님의 신선에 더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교회 공동체는 세상의 권력이 물질의 안락함을 기준으로 진리를 왜곡하도록 압박할 때, 혹은 인권이라는 미명하에 창조질서를 어지럽히는 일에 동의하라고 촉구할 때, 세상 소리보다 오히려 공의와 진리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깨어 있는 심령이 되어야 한다. 교회 공동체가 하는 일에 세상의 불편한 시선과 왜곡된 평가가 이어지더라도 그것이 그 일을 멈출 이유가 아니라 하나님을 더 신뢰하며 기다릴 이유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 나라 공동체는 하나님의 때를 바라보며 인내한다.
 
  
    
    
*주님, 근사한 명분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늘 분별하여 복음의 진리를 순전하게 지켜나가겠습니다.
*주님, 거룩하신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길에는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방해가 있음을 알고 언제나 세상의 시선보다 하나님만 바라보는 단호함을 견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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