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 4:11-24 언제나 방해자, 대적자들은 있다.
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새는 이스라엘이 자행한 과거 반역의 역사를 예로 들면서 아닥사스다 왕에게 유대인들의 성벽 재건을 중단시키도록 요청한다. 예루살렘 성이 재건되면 유대인들은 왕에게 조공과 세금을 바치지 않을 것이며 강 건너편 영지를 잃게 될 수도 있음을 상기시킨다. 이에 반응하여 아닥사스다 왕은 조서를 내려 유대인들의 성벽 재건 공사를 중단시킨다.
당시 페르시아 제국은 넓게는 20개 행정구역(satrap)으로 나뉘어 왕족들이나 페르시아 귀족들에 의해 통치되었다. 그리고 세부적으로는 127도(province)로 구분되었고 각 도의 지방 귀족들(govemor)이 다스렸다. 20개의 행정구역을 책임지고 있던 사람을 일반적으로 총독(폐하) 으로 불렸다. 당시 편제에 의하면 ‘유다도’가 위치한 팔레스타인은 유프라테스강 서쪽 지역 다섯 번째 영지(satrap)인 “강 건너편 영지(아바르 나하라)”로 시리아, 페니키아, 팔레스타인을 거쳐 이집트 접경까지 미쳤다. 당시 “강 건너편 영지”의 행정 중심지는 사마리아였다. 유다 도는 강 건너편 영지에 속해 있었지만, 자체 화폐를 사용할 정도로 어느 정도 자치권이 주어져 있었다. 사마리아 지역의 대적들이 시기할 만하다.
본문은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들이 아닥사스다 왕에게 상소문을 보내 예루살렘 성벽 재건 공사를 중단하게 한 사건을 다룬다. 먼저 11절부터 16절까지는 대적들의 상소문이다. 17~22절은 아닥사스다 왕이 그들의 상소문에 답하여 성전 공사 중단을 명령하는 조서의 내용이다. 끝으로 23~24절은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에 따라 성벽 재건 공사가 중단되고(23절), 다리오 왕 2년(주전 520년)까지 성전 건축 공사가 중단되었음을 알린다.
1. 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새의 편지(11~16절)
‘강 건너편(아바르 나하라)’은 페르시아 사람의 관점에서 볼 때 유프라테스강 서편 지역, 즉 두로와 시돈 페니키아, 팔레스타인 지역을 통칭하는 용어다. 대적들은 상소문에서 구체적으로 유다 백성에 대한 고발 내용을 제시한다(11~16절). 먼저 대적자들은 ‘왕에게서 올라온 유다 사람들(아닥사스다 왕 시절 2차 귀환단[주전 458년])’이 패역하고 악한 성읍을 건축하고 있다고 모함한다(12a절). 이 편지에서 ‘유다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이미 그 기초를 수축하고 성곽을 건축하고 있는 중(12b절)’이라고 밝히므로 대적들이 방해하려는 것이 성전 건축이 아니라 성벽 재건임을 보여준다. 주의할 것은 이 편지를 보낸 당시는 아닥사스다 왕(주전 464~424년)의 통치 시기였고, 성전 건축은 이미 주전 515년에 완성된 상태였다. 에스라는 성전 건축과 성벽 건축을 분리하지 않고 하나의 사역으로 간주하고 있다. 진정한 의미의 성전 건축은 성벽 재건과 공동체 재건으로 완성되기 때문이다.
대적들은 왕에게 성벽 재건을 중지해 달라고 요청하며 두 가지의 실제적인 이유를 제시한다. 첫째, 성벽 재건 후 유다인들이 페르시아 정부에 조공과 관세와 통행세를 납부하지 않을 것이고, 이에 따라 왕실에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13절). 당시의 사고에 의하면, 피지배국의 백성이 주권국의 왕에게 세금을 바치지 않는 것은 반역을 의미한다. 당시 아닥사스다 왕은 제국 이곳저곳에서 발생하는 반란을 제압하느라 힘든 상황에 있었다. 대적자들은 이런 상황을 이용해서 성벽 건축을 저지하려 한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왕의 소금을 먹는 사람들’로서 왕이 당할 피해를 우려하여 상소문을 올린다고 말한다(14절).
둘째, 대적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 예루살렘의 패역함을 입증하는 역사적인 증거를 제시한다(15b절, ‘예로부터 그중에서 항상 반역하는 일을 행하여’). 그리고 그 근거로 제시한 ‘조상들의 사기(15a절)’는 이전 바벨론 시대부터 전해 온 역사 기록을 의미한다. 당시 페르시아는 바벨론의 합법적인 계승국으로 자처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역사적인 사실을 증거로 들어 예루살렘이 근본부터 반역적인 성읍임을 알리며 결정적인 반역의 증거로 예루살렘 파괴라는 역사적인 사건을 제시한다(15b절). 이런 상황에서 예루살렘 성읍이 중건되면 다른 지역에도 영향을 미쳐 결국 ‘강 건너 영지’가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넌지시 경고한다(16절). 즉, 왕이 즉시 성벽 재건 작업을 중단시키지 않으면 왕 영토의 상당 부분을 상실하게 될 것이라는 위협이다.
대적들의 상소문은 예루살렘 재건 공사가 내포하는 잠재적인 위험성을 효과적으로 부각한다. 그러나 그들의 고발은 근본적으로 이기적인 동기, 정치 경제면에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뺏기지 않기 위한 탐욕에 기인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기적인 욕심을 마치 왕에 대한 충성심인 양 포장하고 있다.
2. 아닥사스다 왕의 답장(17~22절)
대적들의 고발장은 즉시 효과를 발휘했다. 아닥사스다 왕은 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새의 상소문에 곧바로 답장한다. 르훔과 심새의 상소문을 받은 후, 아닥사스다 왕은 즉시 궁중의 문서 보관소에 있는 문서들을 살펴보게 하여 그들의 주장이 사실임을 확인한다(19절). 그때 아닥사스다 왕은 문서를 통해 또 하나의 사실을 확인한다. 그것은 옛적에 강 건너편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다스린 큰 군왕들’에게 조공과 관세를 바쳤다는 사실이다. ‘예루살렘을 다스린 큰 군왕들’은 추측하기로 다윗과 솔로몬 같은 이스라엘 왕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왕들의 존재는 반역의 가능성을 언급한 대적들의 고발의 신뢰성을 더하게 했을 것이다.
아닥사스다 왕 당시 페르시아는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아하수에로 왕 때 페르시아의 지배 아래 있던 이집트가 반란을 꾀하다 진압된다. 이후 아닥사스다가 왕위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주전 460년)에 이집트가 다시 페르시아에 반기를 든다. 이런 정황으로 인해 아닥사스다 왕은 이집트 근처에 있는 팔레스타인 정세에 매우 민감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결국 예루살렘 재건 작업을 중단할 것을 명령한다(21b절). 한편 ‘조서 내리기를 기다리라’라는 말에는 칙령이 바뀔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이것은 문맥상 앞으로 성벽 공사에 대한 중지 명령이 철회될 것을 암시한다.
3. 공사 중단(23~24절)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가 유다 땅에 도착하자, 르훔과 심새는 곧바로 행동에 옮긴다. 그들은 곧장 예루살렘으로 달려가서 유다 사람들이 하고 있던 성벽 재건 공사를 중지시킨다(23b절, ‘권력으로 억제하여 그 공사를 그치게 하니’). ‘권력’으로 억제하다’라는 표현은 대적들의 행동이 단지 중지의 정도를 넘어 건축 중인 성벽을 파괴하는 데까지 이르렀음을 암시한다(참고, 느 1:3). 중단되었던 성벽 재건 공사는 후에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에 따라 느헤미야에 의해 재개된다(느 2:1~9). 고레스의 마음을 움직이셨던 하나님이 이번에는 아닥사스다의 마음을 움직이신 것이다.
대적들의 방해에 관한 이야기는 아닥사스다 왕 시대의 사건에서 다시 다리오 왕 시대(주전 520년) 성전 건축의 일로 돌아온다(24절). 그런 면에서 24절은 5절과 직접 연결된다. 고레스 통치 기간에 일어난 대적들의 반대로 성전 재건 작업이 다리오 왕 2년(주전 520년)까지 연기되고, 17년이 지나서야 다시 성전 건축을 재개할 수 있게 된다.
본문은 주전 538년 귀환한 백성들이 왜 주전 520년(다리오 왕 2년) 까지 성전 재건 사역을 미루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면서 그 배경에 치밀하고 조직적인 대적들의 반대가 있었음을 밝힌다. 결국 대적들과의 타협을 거부하고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고레스 시대부터 다리오 왕 2년까지 17년 동안 성전 건축이 중단되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렇지만 이 기간은 귀환 공동체가 신앙적으로 더 강해지는 시기이며, 더 큰 역사를 위한 준비의 기간이었다. 이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역사에는 어려움이 있기 마련이고, 결실을 보기 위해서는 인내와 희생이 필요함을 교훈한다.
나는?
-대적자들은 아닥사스다 왕에게 거짓 정보가 담긴 편지를 보내서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중단시키려고 설득한다. 성이 재건되면 유다인들은 바사의 왕에게 등을 돌려 조공과 세금 납부를 중단할 것이고 옛 관할지였던 요단강 서쪽의 나라들까지 다시 장악하여 왕에게 막대한 손해를 끼칠 것이라고 경고한 것이다. 주위 나라에 고분고분하지 않았던 이스라엘의 지난 역사를 거론하며 자신들의 예측에 신빙성을 더했다. 거짓을 이용하여 사실을 가려 왕의 염려와 욕망을 부추겼다.
-일부의 빌미를 사실로 둔갑시키고, 침소봉대하여 두려움과 욕망을 자극하는 거짓 도모는 세상이 늘 사용해 왔다. 특히 하나님의 일을 하는 곳에 늘 존재했다. 분별하여 흔들리지 않고 인내하며 주님의 일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진실이 항상 당장에 승리하지는 않는다. 왕은 이스라엘 대적자들의 편지를 믿고 공사를 중단시킨다. 왕은 초조와 염려 때문에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이미 일어난 일로 여겨버렸다. 변방의 작은 나라에 성 하나 세워지는 것조차 용납 못 할 만큼 제국은 넉넉하지 않았고 안정적이지 않았다. 거짓 정보에 쩔쩔매는 왕의 모습이 얼마나 나약하고 초라해 보이는지….
-초조와 불안으로 일어나지 않은 일을 염려하여 과도한 조처를 하는 모습이 안타깝다. 조작된 정보가 무분별한 두려움을 낳은 것이다.
-친히 작정하시고 황제와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감동하여 시행한 성전 재건이 대적들의 거짓 행각에 속절없이 중단되는데도 그냥 두고 보신다. 하나님은 분명히 역사에 간섭하시지만, 그 진행을 사람에게 맡기신다. 더디고 둘러 가더라도 그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성숙해지는 만큼 역사는 앞으로 나아간다.
-하나님이 바란 것은 성전이 있는 옛 이스라엘로의 회귀가 아니었다. 열강들의 복잡한 이전투구 사이에 끼어 있으면서도 거룩한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을 더 정교하게 다듬어 가는 사람들로 새롭게 창조하시기 위해 박해와 방해와 회유라는 광야의 상황에 자기 백성을 던져 넣으신 것이다. 그리하여 날마다 하나님께 의존하고 말씀에 따라 삶의 방향을 조정해야 하는 존재임을 일깨우신다.
-하나님 백성은 이런 반대에 직면하여 부딪혀 싸우며 더욱 하나님을 신뢰하며 강한 백성으로 거듭날 것이다. 하나님 나라 공동체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얼마나 많은 방해가 기다리고 있을까!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고 맞서 싸워야 한다. 끝내 이길 것이다.
-자기 이익을 위해 세상의 권력에 아부하며 거짓으로 보고하며 의인들을 핍박하는 이들은 언제나 있어 왔다. 혹시 그런 아류에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스며들어 있지 않은가? 돌아보고 점검해야 할 것이다.
-아닥사스다 왕의 안목과 판단이 아쉽다. 사마리아 사람들의 편지를 받고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는 일을 중단시킨 그는 눈앞의 이익에 급급한 나머지 하나님이 고레스를 통해 시작하신 놀라운 역사의 큰 흐름은 읽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매 순간 말씀에 붙들려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제대로 읽지 못한다면 그때그때 사람들의 말과 상황에 이끌려 하나님의 위대한 뜻을 그르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언제나, 어디서나, 말씀에 유의하며 살아내야 할 것이다.
-왕의 조서가 도착하자 르훔과 서기관 심새는 득달같이 달려가 성벽 공사를 중단시킨다. 결국 작업은 중단되었고 아닥사스다 통치 20년이 되어서야 느헤미야에 의해 공사가 재개된다. 백성들은 대적들과의 타협을 거부한 대가로 오랜 시간 동안 공사가 중단되는 대가를 치렀다. 그렇지만 그 기간은 자신들을 보호해 줄 눈에 보이는 성벽은 없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울타리를 소망하고 신뢰하며 더 단단하게 다져져 갔다.
-하나님의 역사에는 늘 어려움이 따른다. 결실을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한 법이다. 이것은 결코 시간 낭비가 아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시간은 헛되지 않다.
*주님, 주님의 뜻을 이루러 가는 걸음에 언제나 방해가 있음을 봅니다. 그러나 그런 방해에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걷겠습니다.







